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19화 (119/522)

# 119

재림 (5)

헥터와 함께 다시 왕궁으로 돌아왔다.

헨리는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손에 쥔 알을 보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클레버가 그렇게 됐으니 당분간 체스트는 못 쓰게 됐군.’

불편했다.

수납 마법의 원조 격인 ‘아공간’이나 마도구인 ‘아공간 주머니’보다 몇십 배는 효율적인 것이 바로 클레버의 체스트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헨리가 가진 것들의 대부분이 체스트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클레버가 진화 상태에 돌입하였으니 이제 헨리에게 남은 일은 클레버가 진화한 직후에도 온전히 그것들을 가지고 있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헨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려 보이자 헥터가 연신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이윽고 왕궁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 한 명이 헨리에게 말했다.

“전하께서 두 분이 돌아오시면 ‘그곳’으로 안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은 야누스의 신전이었다. 헨리는 시종의 뒤를 쫓아 헤라리온이 기다리고 있을 신전으로 향했다.

헤라리온은 여전히 야누스의 신전에서 못다 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신전의 마지막 문이 열리자 헤라리온이 먼저 알은체해 보였다.

“볼일은 모두 보고 오신 겁니까?”

“전하 덕분입니다. 그나저나 여태껏 신전에 계셨습니까?”

“하하, 다른 일도 아니고 헨리 공의 부탁이지 않습니까? 저에겐 이 일이 우선입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그래서 하시던 일은 어디까지 진행되었습니까?”

“부탁하신 육체는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입니다. 지금은 그냥 여분이 될 법한 다른 육체들을 한번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저것이 그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흑갑옷을 착용함으로써 헥터는 애초에 헨리가 필요로 했던 ‘엄청난 전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고로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법.

오랜 세월을 명계에서 보낸 망자의 욕심이란 끝이 없었다.

명계를 탈출한 헥터는 부활이라는 오랜 소원을 이루자마자 먹고 마실 수 있는 ‘인간이던 시절에 누리던 당연한 욕구’를 희망했다.

그리고 헨리는 그의 희망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헥터는 분명히 엄청난 전력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자의’에 의해 도와주는 것이지, 헨리가 강제하고 있는 전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사람과 비슷한 놈으로 구하느라 애먹었지만 어쨌든 생포할 순 있었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시죠.”

관 속에 누워 있는 그것.

그것은 160센티미터 정도의 신장에 평범한 성인 남성의 체격, 아니 오히려 호리호리한 편에 속했다.

또한 피부는 소녀처럼 새하얗고 깨끗했으며 육체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열 개씩 달린, 그야말로 그 외견이 인간과 몹시 유사한 신체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듣던 대로 정말로 얼굴이 없군요.”

“그것이 ‘코룬’이 인간과 다른 점입니다.”

녀석의 이름은 코룬.

인간과 유사한 외견을 가졌지만 머리털과 얼굴이 없는, 사막에서만 존재하는 희귀한 마물의 일종이었다.

코룬의 전신에는 헤라리온이 써 넣은 무수한 양의 샤하트라어가 새겨져 있었다.

“헥터 경, 제 윤리적 가치관으로 인해 인간을 준비해 드릴 순 없지만 그와 매우 흡사한 녀석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생긴 것만 빼면 정말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군.”

“녀석은 지금 영혼이 없는 텅 빈 껍데기입니다. 하지만 육체는 온전히 살아 있죠.”

“일부러 영혼을 제거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야누스라고 했던가? 여러모로 참 편리한 힘을 가졌군그래.”

“모든 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요. 아무튼 영혼은 없지만 육체가 살아 있으니 헥터 경께선 코룬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관리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육체도 생물학적인 죽음을 맞이할 테니까요.”

“그럼 만약 이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겁니다. 애초에 코룬의 육체는 헥터 경의 것이 아닌 빌려 쓴 것이니까요. 그리고 헥터 경께선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평생토록 이승에 머무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군…….”

헤라리온은 제법 진지한 어투로 설명하였지만 헨리의 귀에는 그저 장난감을 잘 관리하라는 충고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때 헥터가 물었다.

“근데 얼굴이 없는데 음식은 어디로 먹어야 하지?”

“감추어져 있을 뿐, 코룬의 입은 인간의 입과 같은 위치에 존재합니다. 다만 그 모양새가 좀 괴기스러울 뿐이죠.”

“근본이 마물이니 그것은 어쩔 수 없겠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코룬인지 뭔지 하는 놈의 몸뚱어리를 쓸 수 있는 거지?”

“흑갑옷에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하시면 됩니다.”

“그때와 같이? 흠…….”

똑같은 방식이라는 말에 헥터는 코룬을 말없이 응시했다.

휘리릭!

그때였다. 헥터가 정신을 집중한지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헥터의 영체가 코룬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까딱.

관 속에 쥐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코룬의 손가락이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음?”

떨리는 육체. 텅 빈 껍데기였던 코룬의 몸뚱어리가 새 생명을 되찾은 것처럼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아아…….”

이윽고 상체를 일으킨 헥터가 어색한 모양새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한동안 손을 오므렸다 펴며 오랜만에 되찾은 감각에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어색하군.”

코룬의 육체에 적응을 마친 헥터가 능숙하게 대륙어를 내뱉었다.

그리고 즉시 관 속에서 벗어나 뻣뻣한 관절을 돌리며 굳은 몸을 풀었다.

그것을 본 헤라리온이 물었다.

“어떠십니까? 저도 이러한 시도는 처음인지라 좀 걱정이 되는군요.”

“딱 좋아. 걱정할 것도 없어. 아주 훌륭해.”

비록 얼굴이 휑하니 비었기에 표정으로 그 기쁨을 알 수는 없었지만 헥터는 손가락을 부르르 떨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최고야! 정말 만족스러워. 이 얼마나 그립던 감각이란 말인가?”

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기뻐하기도 잠시, 헥터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헨리와 헤라리온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키가 좀 작은 것 같군.”

“최대한 인간과 유사한 놈을 고르다 보니 그만 신장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지. 여하튼 수고했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언제든지 내 힘이 필요하면 나를 부르도록. 육체가 부서질 때까지 너를 도와줄 테니.”

“감사합니다, 헥터 경.”

전생의 헥터는 190센티미터가 넘는 키를 가진 거구에 속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올려다본다는 것 자체에 익숙지가 않았다.

이에 그것을 느낀 헨리가 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좋게 생각하자고. 이젠 밥도 먹고 술도 즐길 수 있게 되었잖아?”

“그건 그렇지.”

헨리의 위로에 헥터는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 헥터의 얼굴이 네 방향으로 갈라지며 굉장히 징그러운 웃음을 보여 주었다.

이에 두 사람의 얼굴이 반사적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일그러진 미간을 본 헥터는 황급히 다시 입술을 닫았다.

“……그렇게 징그러운가?”

“……아무래도 사람 흉내를 내려면 외형부터 바꿔야겠어.”

“외형을 바꾸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성형술이라는 이름을 가진, 외모를 마음대로 바꿔 주는 마법이 있다. 아주 어려운 미용 마법의 일종이지. 내가 성형술을 통해 너를 다시 태어나게 해 주마.”

“자, 잠깐만! 정말로 외모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단 말이냐?”

“그래.”

“그렇다면 더더욱 신중하게 결정해야 되지 않을까?”

“음? 그게 무슨 소리지? 신중해야 하다니?”

“그, 그 말이 그렇잖아! 이왕에 바꾸는 얼굴이면 좀 잘생긴 얼굴로 바꾸는 게 좀 더…… 크흠!”

“……그래, 네 말이 맞다.”

끝없는 욕망.

헨리는 헥터의 무한한 욕망을 듣고서 과거의 반을 떠올렸다.

‘똑같은 놈들 같으니.’

물론 저러한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그렇다면 성형은 좀 미뤄 두기로 하지. 어차피 성형술은 굉장히 어려운 마법이라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그 의견에 동의하네.”

여유를 획득한 헥터는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에 헨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고, 헥터는 다시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본 헤라리온이 말했다.

“저…… 헥터 경? 혹시 코룬 이외에도 제가 준비한 다른 육체들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다른 육체들 말인가?”

“그렇습니다. 사실 코룬의 육체가 꼭 맞으리란 확신이 없어서 준비한 것들이긴 하지만요.”

다른 육체. 이를테면 개나 새 같은 스페어 바디들을 뜻했다.

이에 손가락만 한 새의 육체를 들어 올리며 헨리가 말했다.

“어쩌면 이런 육체들은 전략적인 사용이 가능하겠군요.”

“궁합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겠죠.”

헤라리온의 권유에 헥터는 한동안 다양한 육체를 넘나들며 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헤라리온이 준비한 육체 전부에 성공적으로 동기화를 진행시킬 수가 있었다.

그것을 본 헨리가 말했다.

“꼭 빙의하는 것만 같군요.”

“뭐, 엄밀히 말하자면 빙의가 맞긴 합니다만.”

세 사람은 헥터의 이러한 능력을 일컬어 간단히 ‘빙의’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윽고 모든 육체에 대한 확인이 끝나자 헨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전하.”

“아닙니다. 덕분에 저는 나라를 되찾았으니 이정도면 꽤나 수지맞은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슬슬 저녁이나 나누며 교역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할까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헥터, 너는 그 얼굴을 하고서 올라갈 순 없으니 급한 대로 개로 빙의하는 건 어때?”

“몇십 년 만에 먹는 소중한 식사인데 나더러 개의 몸으로 밥을 먹으라고? 차라리 후드를 뒤집어쓸 테니 후드를 가져다줘.”

“……그러시든가.”

헤라리온은 샤하트라의 첫 교류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제법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헨리는 끝끝내 그것을 거절했고, 그 대신 그동안 먹는 것에 한이 맺힌 헥터를 위하여 많은 양의 음식을 부탁했다.

그 결과, 샤하트라에서 가장 긴 식탁 위에 왕궁 특유의 산해진미들이 차려졌다.

그리고 헤라리온은 헥터가 식사를 함에 불편함이 없게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 그 덕분에 헥터는 후드를 벗어던지고 마음껏 식사를 즐길 수가 있었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 바로 이 맛이야!”

잠시 후 입이 짧은 헤라리온과 헨리, 두 사람은 금방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끝낸 직후, 헤라리온이 헨리에게 샤하트라 왕궁에서만 만들어지는 특별한 궐련을 권하며 물었다.

“헨리 공께서는 혹시 궐련을 즐기십니까?”

“딱히 즐겨 태우지는 않지만 전하께서 권하시니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맛은 썩 괜찮을 것입니다. 이것 또한 공물로 보내지는 것들 중 하나니까요.”

보는 이가 없으니 헨리는 성냥을 대신하여 손가락 끝에 불을 피워 궐련을 태웠다.

‘음?’

허공으로 분사되는 연기.

이윽고 헨리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어떻습니까?”

“맛이…… 정말로 굉장합니다.”

진심 어린 감탄이었다. 실제로도 샤하트라의 궐련은 대륙에서 제일가는 명품이었으니까.

이에 헨리가 물었다.

“혹시 이것도 교역품으로 책정되었습니까?”

“그렇다면야 좋겠지만 이 궐련은 만드는 방법이 워낙에 까다로운지라 대량으로 제작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돈이 문제라면 전하께서 원하시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돈 문제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제작 방법 때문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통시킬 수만 있다면 분명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은 분명합니다만…….”

교역이 불가하다는 말에 헨리는 아쉬움에 궐련을 한 모금 더 빨아들였다.

허공에서 흩어지는 연기.

궐련을 한 모금 빨아들이는 순간, 가슴이 편안해지고 머릿속이 차분해지는 것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쾌락이 사라지자마자 헨리는 한 번 더 궐련을 흡입하고 싶다는 강인한 욕구가 떠올랐다.

‘욕구?’

그때였다.

헨리는 그 순간, 궐련으로부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전하, 그렇다면 제조하기 쉬운 새로운 궐련을 만드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새로운 궐련을 말입니까?”

“예, 어쩌면 이 궐련으로 아서스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궐련으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가만히 궐련을 태우다가 이것으로 아서스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하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헨리의 계획에, 헤라리온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재료는 제가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선 새로운 궐련에 대한 제조법을 연구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아서스만 몰락시킬 수 있다면 저는 무엇이든지 환영입니다.”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예정에도 없던 계획이 갑작스레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라리온은 원래 예정되어 있던 약속처럼 자연스럽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어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고, 헨리는 그날 밤, 성공적으로 샤하트라의 첫 방문을 마무리 지을 수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