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두 번째 각성 (1)
꽈릉! 꽈르릉!
벼락 마법이 무서운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잖아도 파괴력이 무시무시한 벼락을, 인간의 입맛에 맞춰 좌표까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떨어진 벼락은 헨리가 만들어 준 새하얀 장벽들을 포함하여 그 안에서 경계 중이던 병사들까지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떨어졌다.
“끄아아아!”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벼락에 휩쓸리자마자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한 공포는 전염병처럼 성안에 창궐하였다.
콰릉! 콰릉! 콰르릉!
화살 세례가 퍼부어지듯이 벼락이 떨어졌다.
그로 인해 막대한 양의 마력들이 소모되었지만 헨리는 케일이 탈진하지 않도록 아이젠 몰래 자신의 마력들을 듬뿍 공급해 주었다.
그렇게 한바탕 재앙이 떨어진 직후, 넝마가 된 장벽을 보며 헨리가 말했다.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군요.”
공포는 이만하면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헨리는 케일에게 마법 포격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그런 다음 쇼난군의 깃발을 메고 있는 기마병에게 큼지막한 두루마리 하나를 내밀었다.
두루마리는 비단으로 된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가서 전하고 오도록.”
전령에게 내민 두루마리.
그것은 칸의 인장이 새겨진, ‘샤하트라 왕의 서신’이었다.
이윽고 왕의 서신을 들쳐 멘 전령이 술탄 성의 입구로 향했다.
그것을 본 아이젠이 말했다.
“성공했으면 좋겠군.”
“성공할 겁니다. 상대가 술탄 사람들이니까요.”
전략은 간단했다.
충분한 공포를 보여 준 후 항복을 권유하는 것.
특히 그 항복의 권유자가 왕권을 찬탈당한 왕이라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술탄 사람들은 겁이 많고 귀가 얇기로 유명한 족속들이었다.
그렇기에 베네딕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별다른 저항 없이 항복했던 것이고.
‘샤하와 술탄, 두 개의 오아시스를 되찾은 것만으로도 이미 공적은 아이젠이 훨씬 앞서게 된다.’
반이 샤하의 군사들과 함께 칼리프의 뒤를 칠 것이니 그 공적 또한 무시 못 할 양이었다.
만약 정말로 운이 좋아 베네딕이 칼리프 성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적장의 목을 베는 것만큼이나 최고로 명예로운 공적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한참 뒤, 헨리는 멀리서 다가오는 두 명의 인영을 보고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성공했네요.”
두 명의 인영. 한 명은 헨리가 보낸 전령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술탄의 최고 지휘권자인 ‘바둘라 술탄’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쇼난군에 도착했을 때, 바둘라 술탄이 헤라리온에게 무릎을 꿇어 보이며 말했다.
“전하, 전하의 말씀대로 베네딕의 부하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제가 직접 전하를 모시러 왔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 술탄을 어여삐 여기시고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압도적인 무력을 내세워 항복을 권했다. 그리고 겁 많은 술탄민들에겐 이보다 더 좋은 전략은 없었다.
이에 헤라리온이 씁쓸한 눈빛으로 바둘라를 내려다보았다.
헨리가 말했다.
“전하.”
“……알겠습니다.”
헨리의 재촉에, 헤라리온은 바둘라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이에 바둘라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기 시작했다.
“전하,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단지…….”
“사죄는 됐소, 괘씸하기는 해도 그대들 또한 사정이 있었을 테니.”
어차피 용서해야 한다면 시원하게 잘못을 덮어 주는 것이 맞다.
대범함, 그것 또한 왕이 가져야 할 자질들 중 하나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우웅!
갑작스레 헨리의 눈앞에 조그마한 마법진 하나가 허공에 그려졌다.
그것을 본 헨리가 바둘라에게 물었다.
“바둘라 님?”
“예, 예?”
“서신에 적혀 있던 그것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 예! 그렇잖아도 지금 전하께 드리려고…….”
“주십시오.”
서신에 적혀 있던 것.
그것은 항복의 증표로서 술탄 최고 지휘권자만이 가질 수 있는 술탄 민족의 하나뿐인 보물이었다.
이른바, 술탄의 눈물.
“저, 이건…….”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장신구에 바둘라가 헤라리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에 헤라리온이 가볍게 턱짓하며 말했다.
“주시면 됩니다.”
“저…… 이건 저희 민족의 보물이나 마찬가지라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깐만 쓰고 금방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둘라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홱!
술탄의 눈물을 넘겨받은 헨리는 허공에 고정된 마법진을 향해 가볍게 장신구를 던져 넣었다.
“……!”
허공에서 사라지는 장신구.
이에 바둘라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술탄의 보물은 아주 중요한 곳에 쓰일 예정이니까요.”
마법진 속으로 던져진 술탄의 보물.
그렇게 던져진 보물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반의 발 앞이었다.
* * *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콰앙!
분노한 베네딕이 테이블을 거세게 내려쳐 두 동강을 냈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기치 못한 샤하의 증원군과 고작해야 1천의 병력으로 대체 어떻게 술탄을 함락시켜 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획한 모든 것들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대로 가다간 왕권의 찬탈은커녕,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
수도로 돌아오자마자 남은 병력들을 모두 집결해 전력을 파악했다.
그러나 급하게 수도의 백성들을 징병해도 5천이 한계였다.
아무리 그가 일당백 이상의 힘을 끌어낸다고는 하지만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칼리프에서 급하게 혼자 도망치는 바람에 정예군도 대부분 잃어버린 상태.
결국 남은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 수만은 피하고 싶었건만.’
베네딕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만이 아는 비밀의 방으로 향했다.
사실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가 주거하는 공간에는 그를 제외한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착한 방은 촛불 하나로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벽면 전체가 커다란 거울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울 앞에 선 베네딕이 거울 위로 손을 올렸다.
그러자.
참방.
잔잔한 수면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듯, 거울 표면이 물결치듯 흩어졌다.
번쩍!
잠깐의 광명.
그리고 거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밤.
베네딕이 도착한 곳에는 달빛으로 방 안을 비추는 어느 응접실이었다.
응접실에 도착한 베네딕이 생각했다.
‘정말 그놈 말대로군, 신기한 물건이야.’
벽면 전체가 이루어진 거울은 일종의 아티팩트였다.
지정된 장소로 사람을 순간 이동을 시켜 주는 이동학파의 아티팩트.
물론 사용할 때마다 막대한 마력이 소모되었기에 횟수에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 같은 긴급한 상황에 사용하라고 아서스가 베네딕에게 선물한 것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베네딕 경?”
달빛이 들지 않는 곳.
길쭉한 응접실 탁자의 가장 끝에 아서스 공작이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이에 베네딕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예를 표했다.
“후훗, 표정을 보니 일이 잘 풀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수도 칸을 제외한 나머지 오아시스 전부가 놈들에게 넘어갔습니다.”
“저런, 베네딕 경만 믿고 있었는데 말이죠…….”
짧은 탄식.
그 탄식이 가지는 압박감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이에 베네딕이 다시 한 번 자존심을 굽히며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공작님.”
“물론이죠. 애초에 베네딕 경을 전적으로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감사합니다.”
“내일까지 모드레드 경을 포함해 사람들을 보내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말인데, 야누스의 증표는 확보하셨나요?”
“……죄송합니다. 그것 또한 아직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저런,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칸에게서 증표를 빼앗아 오는 건 힘들겠군요?”
“…….”
베네딕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전투에서 패배한 데다가 세 개의 오아시스를 빼앗겼다.
그러한 상황에서 칸이 가지고 있는 야누스의 증표를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베네딕이 말을 아끼자 아서스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후훗,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지을 것 없습니다. 이 또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 그럴 줄 알고 이미 손써 두었습니다.”
“……예?”
“사람을 보낼 때 야누스의 증표와 맞바꿀 수 있을 만한 것을 함께 보내도록 하지요. 분명히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감사하긴요. 지원하기로 약속한 이상, 베네딕 경 또한 제 사람입니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사람을 보낼 터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원래 목표한 것을 완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하의 패배에도 아서스는 쓴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힘을 내주며 베네딕을 한없이 격려했다.
이윽고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처럼 베네딕이 모습을 감춘 뒤, 아서스가 말했다.
“모드레드에게 전하세요. 슬슬 준비해 두라고 말이죠.”
“알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리고 아서스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마저 홀짝였다.
* * *
탈환된 오아시스들의 정리를 마친 토벌군은 각 오아시스에서 재정비를 마친 후 수도 앞에 집결했다.
여기서 며칠의 시간이 소모되었지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토벌군 쪽이었으므로 조급함을 내비칠 필요가 없었다.
술탄군과 샤하군이 합세해 준 덕에 토벌군의 숫자는 칼리프에서 잃은 병력을 제외하더라도 어느덧 2만을 훌쩍 넘고 있었다.
모두가 제대로 훈련받은 정예병들이었다.
그에 비해 포로가 된 반란군에게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제 수도에 남은 정예 반란군은 고작해야 3천을 웃돈다고 했다.
‘억지로 징병하면 5천 정도는 모이겠지. 하지만 5천이 모여도 네 배가 넘는 차이다.’
누가 봐도 끝이 뻔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남은 문제는 누가 ‘태양 검’을 사용하는 베네딕을 제압할 있는가였다.
‘역시 나뿐인가?’
결국 수세에 몰렸던 반은 헨리가 준 스크롤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후퇴한 것이지 결코 힘의 차이에 대한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분명히 아서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텐데…….’
토벌이 이루어지는 내내 신경 썼던 것. 그것은 바로 아서스의 개입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세 개의 오아시스가 함락되는 동안 내내 아서스의 개입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단 하나도 포착되지 않았다.
‘설마 베네딕을 버린 건가?’
쓸모가 없어지면 꼬리를 자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헨리의 추측일 뿐, 확정된 사실이 아니었다.
헨리는 모든 상황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끝까지 최대한 안전하게 토벌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시작해.”
준비는 모두 끝났다.
장벽으로부터 불과 수백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둔 토벌군은 헨리의 명령에 의해 뿔나팔을 불어 올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우!
엄청난 기세였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뿔나팔을 불어 올리자 이윽고 토벌군을 주시하고 있던 경계병들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토벌군 쪽에서 무어라 선포를 내리기도 전에 반란군 사이에서 베네딕이 얼굴을 내비쳤다.
“음?”
모두의 이목이 베네딕에게로 몰렸다.
베네딕은 장벽 아래의 이들과 한동안 시선을 맞추더니 이내 턱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베네딕의 부하들이 복면을 쓴 두 명의 사람들을 끌고 와 베네딕 옆에 무릎을 꿇렸다.
다시 한 번 모이는 이목. 그리고 베네딕은 보란 듯이 두 사람의 복면을 벗겨 냈다.
“……!”
벗겨진 복면.
그 속에는 헤라리온의 친모와 아내, 즉 두 사람뿐인 칸의 혈육들이 잔뜩 겁에 질린 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