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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89화 (89/522)
  • # 89

    변수 (3)

    “반란이라니?”

    반란이라는 단어에 황제는 순식간에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제국이 건설된 직후,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던 단어가 바로 반란이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이에 화기애애하게 의견을 주장하던 아이젠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입을 다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어서 환관이 말했다.

    “샤하트라에서 방금 막 긴급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현재 샤하트라에서 갑작스러운 내부 반란이 일어나 수도가 전복되고 황족과 일부 신하들만 급하게 대피한 상태라고 합니다.”

    “샤하트라라면 그 사막 왕국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폐하.”

    “이런 더러운 모래 먼지 같은 놈들이……! 먹고살 만하게 도와줬더니 감히 이딴 식으로 뒤통수를 쳐?”

    엄밀히 말하자면 전 황제인 골든 잭슨과 개국공신들이 그들을 먹고살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아무도 황제의 분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윽고 황제가 이마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후우, 반란이라니……. 그것도 짐의 시대에 반란이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겉으로는 분노한 척해도 초조함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도 그런 것이 현재의 황제는 위 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전부였기에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대처해 본 적이 없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혼자서 분노를 삭이던 황제가 드디어 가주들에게 해결책을 묻기 시작했다.

    이에 아이젠이 먼저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폐하,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드물게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서스 공작이었다.

    아서스가 입을 열자 아이젠이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좋은 생각? 어디 한번 들어나 보지.”

    황제에게 있어 아서스는 절대적으로 신임받는 존재.

    황제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의견을 물었다.

    “샤하트라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할 토벌군으로 여기 있는 백작들을 보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백작들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결투를 벌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 기회에 토벌로 기량을 가려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토벌로 기량을 가린다라…….”

    “마침 여기 있는 세 백작 모두가 무인으로서 출중한 자들이니, 토벌에 실패할 염려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백작들이 직접 나선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

    “그렇습니다, 폐하. 또한 제국군이 아닌 각자의 사병을 이용하여 토벌군을 편성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병을?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물론입니다, 폐하. 이 또한 일종의 시험. 자신들의 사병과 재산을 얼마나 헌신적으로 희생하는지에 따라 후작의 자격을 가늠해 볼 수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공작이오! 그대 말이 맞소!”

    아서스의 간단명료한 논리에 황제는 이미 넘어간 듯 보였다.

    그러나 그와 대조적으로 세 백작의 표정은 떨떠름하기 그지없었다.

    ‘저 망할 놈이……!’

    사병과 재산의 운용.

    제국에 대한 헌신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이 기회에 귀찮은 반란군을 예산 한 푼 들이지 않고 처리하겠다는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제는 이미 흡족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도 평소 성격의 아이젠이었다면 반드시 한두 마디 정도를 덧붙였을 텐데 말을 내뱉으려던 순간, 아이젠은 헨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만에 하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다면 무조건 그러겠다고 대답하십시오. 절대 다른 의견은 내지 마시고 무조건 알겠다는 대답만 하셔야 합니다.

    이유는 몰랐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신신당부를 했던 말이었기에 아이젠은 잠자코 그러겠다고 했다.

    적어도 헨리의 말을 들어서 득을 봤으면 득을 봤지, 손해 보았던 적은 없었으니까.

    이에 아이젠을 포함한 세 명의 백작이 마지못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 토벌해 보이겠습니다, 폐하.”

    “그대들만 믿겠소. 날짜는 따로 공고하지 않을 터이니 한시라도 빨리 샤하트라로 출발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로써 갑작스러운 변수에 의해 회의는 이상한 방향으로 종료되고 말았다.

    * * *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갑자기 환관 놈이 나타나선 샤하트라에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지 뭐냐? 그 덕분에 거의 다 넘어온 계획을 죽 쑤고 말았다!”

    반란.

    생각지도 못한 사건의 발발에 헨리 또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반란이라니?’

    지난 몇 년간, 아무리 황궁 분위기가 어수선했어도 반란이 일어날 만큼 제국 관리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죽고 1년 정도가 지난 지금, 절대 일어나선 안 될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자, 헨리로선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결국은 망국의 수순을 밟는 것인가? 아냐,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다.’

    반란이 가져다주는 충격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그래서 헨리는 몇 가지의 가능성들을 떠올렸지만 이른 판단은 내리지 않기로 했다.

    이윽고 평정심을 되찾은 헨리가 태연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이 좀 번거롭게 꼬이긴 했지만 백작님에겐 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제가 능히 일을 해결해 보이겠습니다.”

    “네가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백작님께서 저를 가신으로 들이셨으니 저는 제 역할을 수행해 내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역시 너밖에 없구나. 그래! 그럼 이번에는 어떻게 이 난관을 해결했으면 좋겠느냐?”

    “해결책을 모색하기 전에 먼저 다른 두 백작들에 대해 알려 주시겠습니까?”

    “아아, 그렇지. 나는 알아도 너는 모를 수도 있겠군. 그럼 지금부터 나머지 두 놈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도록 하마.”

    헨리에게만큼은 한없이 친절한 아이젠이었다.

    설명은 간단명료했다.

    세 백작은 모두 제국군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

    아이젠이 수도군의 총사령관이라면 오스카 에이지 백작과 테리온 팔콘 백작은 각각 창병단과 궁병단의 총사령관을 맡고 있었다.

    그야말로 각 제국군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세 분 다 전력은 비슷할 테니 전술을 얼마나 잘 운용하느냐의 싸움이 되겠군요.”

    “전력이 비슷하다니? 그놈들은 내 발끝도 못 따라오는 놈들이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토벌할 샤하르트는 사막지대라는 특수한 환경을 가졌으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차별화된 전략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거야 그렇지.”

    “그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백작님의 사병대, 그러니까 쇼난군의 전력에 대해 알아야 하니, 이번에는 쇼난군에 대해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

    이제는 아이젠을 다루는 것에 수준급이 되었다. 헨리는 이윽고 운용할 수 있는 군량미라든가 가진 전쟁 도구 등을 점검하며 쇼난군의 전력들을 파악했다.

    그리고 대략적인 파악이 끝난 후,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백작님이십니다. 이 정도면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사병대인데 당연하지.”

    “역시 백작님이십니다. 그래도 백작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당장 출발해도 충분한 전력입니다. 하지만 샤하트라가 대륙 유일의 사막지대이니만큼 그에 맞는 마땅한 장비를 갖춘 후에 떠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물론 그에 대한 준비 또한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다. 그럼 너만 믿고 모든 것을 맡기도록 하겠다. 그동안 나는 간만에 몸이나 좀 풀어 둬야겠군.”

    “감사합니다, 백작님.”

    아이젠 백작의 대대적인 권한이 헨리에게 위임되었다.

    확실히 아이젠의 말대로 쇼난군의 전력은 대체로 준수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전쟁이 종식된 지 꽤 오래된 탓에 반란군을 압도적으로 토벌할 만큼의 숫자는 되지 못했다.

    ‘어차피 사막지대에서 숫자 싸움은 무의미하다. 익숙하지도 않은 지형에 사람만 들이붓는다고 능사는 아니니까.’

    결국은 전술 싸움이었다.

    그것도 별동대 같은 헨리가 대부분이 처리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전술을 말이다.

    ‘그나저나, 하필이면 샤하트라라니……. 이거 간만에 좀 애를 먹겠군.’

    모든 전투에 있어 강인한 자신감을 내비쳤던 헨리였지만 통일 전쟁 시절, 유독 애를 먹었던 몇 군데가 있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사막의 샤하트라였다.

    결국 갖은 수를 사용하여 속국으로 굴복시켜 낼 순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던 기억이 있기에 그다지 반가운 곳은 아니었다.

    ‘드디어 그걸 쓸 때가 왔군.’

    대략적인 계획을 세운 헨리는 우선 쇼난군부터 재편성하기 시작했다.

    * * *

    “텔레포트.”

    우우웅!

    그날 저녁, 비발디 타운으로 돌아온 헨리는 반과 헤글러를 데리고 장인들의 도시, ‘무슈’로 향했다.

    무슈는 앙켈만과 같은 자유도시들 중 하나로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자들이 모여 사는 장인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이제 쇼난가의 가신이라는 권력을 손에 넣었으니 무슈로 직접 텔레포트를 해도 됐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하여 헨리는 무슈 근처를 좌표로 잡았다.

    텔레포트가 이루어진 직후, 헤글러가 말했다.

    “단장님, 저는 정말로 새로 장비를 맞춰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번에 받은 장비들도 아직 멀쩡한걸요.”

    “그래. 헤글러 말이 맞다. 나도 굳이 새로 맞출 필요 없어. 이 이상은 낭비야.”

    이에 헨리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두 사람 다 그냥 잠자코 받으세요. 이번에 맞출 장비는 보통 장비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번 토벌 작전에선 쇼난 정규군과는 별도로 움직일 소수의 별동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별동대는 당연히 저희 셋이 맡을 예정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장비가 중요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별동대랑 장비랑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번에 맞출 장비들은 모두 콜트아이언으로 맞출 생각이거든요.”

    “콜트아이언? 허, 재주도 좋구나. 그 귀한 콜트아이언으로 장비를 맞출 생각을 하다니.”

    “콜트아이언은 예로부터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금속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전신을 콜트아이언으로 휘감고 제가 마법으로 서포트를 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습니까?”

    꽤 오래전에 입수해 둔 콜트아이언 3백 킬로그램을 드디어 사용할 때가 되었다.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금속, 콜트아이언.

    아직 오러를 발현시키지 못한 헨리의 전력을 보강하고 소수로 움직일 별동대를 효율적으로 보조하기 위해선 콜트아이언으로 만든 장비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콜트아이언을 최고로 다룰 수 있는 장인을 찾아 이곳, 무슈로 온 것이었다.

    ‘무슈인들은 입이 무겁다. 특히 의뢰인에 대한 정보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는 편이지. 그러니 더더욱 무슈에서 장비를 제작할 수밖에.’

    헨리가 아무리 대가문주 아이젠을 등에 업고 있다고는 하지만 콜트아이언은 엄연히 유통이 금지된 불법 금속.

    그렇기 때문에 조금의 흠이라도 잡히지 않기 위해서 단가가 좀 비싸더라도 무슈에서의 장비 제작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이윽고 세 사람은 무슈의 입구에 들어섰다.

    “충성! 대가문 쇼난가를 뵙습니다!”

    물론 아이젠의 영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용했다.

    입구를 지키는 위병들은 헨리의 옷깃에 달린 쇼난가의 배지를 보자마자 칼같이 경례를 올렸고, 별도의 신분증 검사도 없이 손쉽게 입구를 통과할 수가 있었다.

    “……권력이 좋긴 좋구먼.”

    “과거가 그리우십니까?”

    “그리워만 해선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만 믿고 따라와 주신다면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약속드리겠습니다.”

    헨리의 장난스러운 호언장담에 반과 헤글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더더욱 믿음이 갔다.

    이윽고 헤글러가 물었다.

    “단장님, 그럼 저희는 어느 장인에게 일을 맡기는 겁니까?”

    “좋은 질문이야. 헤글러, 너는 무슈 최고의 장인이 누구인지 아냐?”

    “사실 무슈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슈의 장비는 식칼 한 자루만 해도 몇 골드는 호가한다고 들어서 저와는 평생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슈의 식칼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보통은 사치스러운 혼수품으로 구매하기도 하니까. 아무튼 우리가 만나러 갈 장인의 이름은 불카누스라는 이름을 가졌다.”

    “불카누스 말입니까?”

    “그래.”

    “뭐, 뭣? 불카누스?”

    대수롭지 않게 언급하는 헨리에 비해 반은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내가 설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지금 설마 내가 아는 그 불카누스에게 장비 제작을 맡기러 간다고?”

    “그렇습니다. 적어도 불카누스 정도는 돼야 콜트아이언을 맡길 만하지 않겠습니까?”

    “허, 너란 놈은 정말이지…….”

    반이 연신 놀라움을 표하자 곁에서 듣고 있던 헤글러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저, 불카누스라는 장인이 그렇게 대단한 장인입니까?”

    “뭐야? 너 정말 불카누스에 대해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

    “예, 그렇습니다만…….”

    다시 한 번 놀라는 반.

    이에 헨리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불카누스는 무슈의 시장이야. 그것도 무슈의 장인들 중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장인에게만 내려지는 호칭이지.”

    “무슈는 시장을 어떻게 선출하는지 알아?”

    반이 헤글러에게 물었다.

    “글쎄요.”

    이에 헨리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무슈의 시장은 무슈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장인이 맡지.”

    “예에에?”

    이번에는 헤글러의 눈이 동그랗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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