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82화 (82/522)

# 82

준비된 역전극 (1)

“으하하하! 헨리! 어서 와라!”

헨리를 발견한 아이젠이 괄괄한 웃음소리와 함께 과장된 몸짓으로 헨리를 맞아 주었다.

그의 입꼬리는 이미 귓볼을 뚫고 올라간 지 오래였다.

헨리가 저택으로 오기 전, 미리 승전보를 아이젠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백작님을 뵙습니다.”

“그래그래! 으학학학! 정말로 살모라 그놈을 죽였단 말이지?”

“마차에 실어 왔으니 직접 확인하시지요.”

도무지 입이 다물릴 줄 모르는 아이젠에게 헨리는 뒤편에 끌려오는 마차를 가리켜 보였다.

펄럭!

마차를 덮고 있는 가리개를 치우고 마차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정말로 십검의 살모라가 목구멍이 시원하게 뚫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

“크하하하! 정말이구나! 정말로 그 살모라의 목을 가지고 왔어!”

“옆에 있는 놈은 바이퍼 기사단의 1부대장, 피프라는 놈입니다.”

“크학학학! 살모라를 잡아 왔는데 그 밑에 부하 놈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정말 장하다! 정말 고생했어! 으학학학!”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어 젖히는 아이젠은 곧,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저택의 시종들에게 소리쳤다.

“얼른 술상을 대령해라! 내 오늘 나의 자랑스러운 귀빈들에게 쇼난가의 명성에 걸맞은 아주 후한 대접을 해야겠으니!”

“옛!”

집안의 영향인지 시종들 또한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에 응답했다.

그리고 곧 화려한 연회가 막을 올리게 되었다.

* * *

후작으로 오르지 못한 후, 아이젠은 꽤 오랜 시간을 스트레스와 히스테리 속에 살아와야만 했다.

하나 혜성처럼 등장한 헨리의 도움으로 인해 그동안 묵혀 왔던 답답함이 개울물처럼 시원하게 내려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항상 한숨과 예민함으로 가득 찼던 저택에 실로 오랜만에 생기와 기쁨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아이젠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도무지 식을 줄 모르는 열기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헨리와 반은 꽤 오랜 시간을 아이젠과 어울려 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밤이 깊고 새벽이 되었다.

연회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술기운에 나가떨어졌다.

그들을 잠재우기 위해 독한 술이 몇 드럼통이나 소비되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길고 긴 연회 끝에 살아남은 이들은 아이젠과 반, 그리고 체스트를 이용하여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은 헨리가 생존자들의 전부였다.

“그흐흐흐, 이런 인재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구먼!”

드디어 기세가 한풀 꺾인 아이젠이 반의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 주며 말했다.

아이젠은 강한 사람을 좋아했다.

그리고 반은 현재 렌버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

아이젠은 연신 렌버의 이름을 되풀이하며 살모라의 목을 베어 온 반의 뛰어난 실력을 칭찬했다.

그러나 반에게는 이 상황 자체가 우스운 상황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던 원수가 낯짝이 조금 바뀌었다고 해서 전혀 못 알아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 뒤, 아이젠의 취기가 충분히 올랐다고 생각될 때쯤, 헨리가 반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 음음…… 이거,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봅니다. 잠시 소피 좀 보고 오겠습니다.”

“그학학, 그래그래! 슬슬 방광이 터질 때도 됐지!”

헨리의 눈치에 반이 자리를 비켜서자 그 자리를 헨리가 메꾸었다.

“백작님, 많이 취하셨습니다.”

“오, 그래! 이번 계획의 진정한 일등 공신인 헨리! 네가 정말 나의 보배다, 보배!”

“과찬이십니다.”

몇 시간이 넘도록 아이젠의 흥을 빼는데 주력했다. 그런 반과 헨리의 노력에도 아이젠의 흥은 여전히 활화산이 폭발하듯 식을 줄을 몰랐다.

하지만 기분이 넘칠 때일수록 그 어떤 부탁이든지 쉽사리 들어주는 법.

연회 사람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둘만 남은 현재, 헨리는 지금이 일을 진행시키기 딱 좋은 적기라고 생각했다.

“한 잔 받으시지요, 백작님.”

“그래그래, 어디 한번 가득히 따라 보거라!”

반과 자리를 바꾸기 전, 헨리는 일부러 옷깃의 잘 보이는 위치에 쇼난의 배지를 착용했다.

잔을 받던 아이젠이 헨리의 옷깃에 달린 금색 배지를 발견하고서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 배지, 참 잘 어울리는구나.”

“백작님께서 주신 배지입니다. 이 배지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기 위해 당당하게 놈들을 물리치고 왔습니다.”

“크흐흐, 너는 말도 참 예쁘게 하는구나. 그래, 일단 한잔하자!”

챙!

금으로 된 술잔이 부딪치며 청명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 번도 쉬지 않고 금세 술잔을 비워 냈다.

이윽고 헨리가 말했다.

“백작님. 제가 감히 백작님께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감히라니! 내가 너에게 배지를 준 그 순간부터 실은 이미 마음속으로 너를 충분히 인정하였다. 그러니 어려워하지 말고 편히 말해도 되느니라!”

말이 길어지고 칭찬을 남발하는 것을 보니 드디어 술기운이 좀 도는 모양이었다.

‘등신 같은 놈.’

이에 헨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용기를 얻어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래!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백작님, 저에겐 꿈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꿈? 크크, 무슨 꿈이 생겼느냐?”

꿈이라는 단어는 어떨 때 들으면 참 멋있지만 어떨 때 들으면 참 낯간지러운 단어였다.

그래서 아이젠이 킬킬 웃으며 되물었다.

“제가 비록 변변찮은 준남작 출신의 하잘것없는 검사라지만 이번에 살모라를 무너뜨리면서 한 가지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가능성? 무슨 가능성 말이더냐?”

“백작님을 더 높은 자리로 올려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가능성을 말입니다.”

“뭐라? 그학학학학학!”

분명히 아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헨리는 우연찮게 반이 제3 부대원들을 잡아 온 그 시점부터, 아이젠을 더 높은 자리로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가능성을 엿보았다.

물론 그런 가능성을 엿본 까닭은 아이젠을 이용하여 그 윗놈들을 잡기 위함이었다. 멍청하고 힘센 아이젠만큼 다루기 쉬운 장기짝도 없었으니까.

이에 호탕하게 웃어젖히던 아이젠이 헨리에게 말했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구나. 지금 내게 아부하는 것이더냐?”

“아닙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백작님의 배경을 가지고 싶어 하는 놈입니다. 그런 제가 어찌 한낱 아부 한 번 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흐흐흐, 그래! 너는 그런 놈이었지. 야망이 아주 많은 놈. 그래, 좋다! 그럼 나를 대체 어떻게 더 높은 자리로 올려놓을 생각인지 한번 들어나 보자.”

“계획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제 꿈이 실현되기 위해선 우선 백작님께서 이번에 소집하실 두 번째 고발령을 성공적으로 마치셔야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흐, 지금 나를 못 믿는 것이더냐?”

“아닙니다.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안타깝다고? 대체 무엇이?”

“만약 백작님의 훌륭한 인품을 뒷받침할 만한 뛰어난 조력자가 곁에 있었더라면 첫 번째 고발령에서 백작님이 그런 곤혹을 치르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훌륭한 조력자라……. 하긴, 나에겐 훌륭한 책사 같은 권속들이 부족하긴 하지.”

말 그대로였다.

아이젠은 무려 제국의 대가문주들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가문들에 비해 ‘훌륭한 인재’들이 부족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워낙에 독단적이고 다혈질적인 아이젠의 성격 탓에 책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가신들이 아이젠의 성격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가문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중앙귀족이었던 시절에도 아이젠은 몸 쓰는 일만 했지. 머리 쓰는 일은 죄다 오베르와 알프레드가 도맡아서 했으니까.’

그 덕분에 후작 승작전에서 밀려난 것이긴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부분이 헨리에게 기회가 되었다.

이에 아이젠이 흐흐 웃으며 말했다.

“흐흐, 네놈. 가만히 들어 보니 지금 네놈이 어떤 뜻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지 빤히 보이는구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백작님의 곁에 있었더라면 백작님은 진작에 후작으로 승작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흐흐흐, 건방진 놈.”

후작으로의 승작.

옛날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아이젠의 오랜 숙원이자 꿈이었다.

“내가 후작이라니, 흐흐흐……”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었다.

이에 아이젠의 기분이 다시 한 번 최고조에 달했다.

“좋다! 그럼 내 너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도록 하마.”

드디어 기다리던 포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헨리는 여전히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되물었다.

“어떤 기회를 말씀이십니까?”

“너의 공은 이미 차고도 넘치지만 네 야망이 심상치 않으니, 내 너에게 나의 가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가신!’

경비단장인 베디칸은 직책은 비록 저택의 경비단장이긴 했지만, 손님이 올 때마다 직접 아이젠을 모시고 왔으니 아이젠의 권속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가신은 권속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존재이자, 아이젠에게 직접적인 조언을 건네고 가문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몹시 귀중한 직책이었다.

‘외부인인 나에게 가신보다 더 훌륭한 직책은 없다. 그러니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아무리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는 하나 외부인에게 이리도 쉽게 가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진 않는다.

그것도 쇼난가쯤 되는 대가문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아이젠에겐 마땅한 가신이나 권속이 없었고 후보가 될 만한 인재도 없었다.

더불어 근래에 유일하게 눈에 띄었던 인물임과 동시에 살모라의 목이라는 엄청난 공을 안겨다 준 사람이 바로 헨리였다.

생각보다 더 큰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 왔다.

헨리는 애써 입꼬리를 감추며 아이젠에게 각오를 고했다.

“어떤 명령이든지 능히 수행해 내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에게 백작님의 가신이 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주십시오.”

“흐흐흐, 좋다! 어차피 네가 돕지 않아도 뻔히 보이는 결과겠지마는 이번에 소집될 두 번째 고발령, 네가 한번 멋지게 판을 짜 보도록 해라.”

‘됐다!’

거저먹기나 다름없는 시험이었다.

게다가 오히려 헨리가 대본을 짤 수 있다면 혹시라도 멍청한 아이젠이 넋 놓고 당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점심에 바로 보고를 받아 보실 수 있게끔 확실하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크크크, 그래! 그럼 이제 더 마시자!”

볼일을 마친 헨리는 빠른 속도로 아이젠에게 술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쏟아지는 술잔을 견디지 못한 아이젠이 식탁 위에 머리를 박은 채 코를 골았다.

* * *

집무실 의자에 앉은 오베르는 연거푸 한숨을 쉬어 보였다.

“후우…….”

한숨이 쌓여 갈수록 집무실에는 짙은 근심의 안개가 쌓여 가듯, 애꿎은 궐련 연기만 뭉게구름처럼 피어났다.

‘이 개자식은 대체 뭐 하느라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거야?’

살모라에게 재떨이를 집어 던진 지도 벌써 이틀째.

예정대로라면 벌써 일 처리를 끝내고 보고서가 올라왔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벌써 사흘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은커녕, 기사단 본부에서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설마? 아니야, 아닐 거야…….’

아이젠에게 편지를 받은 직후부터 오베르는 한시도 편안하게 두 다리를 뻗고 잔 적이 없었다.

긴장이 풀어지려고 하면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무능한 황제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오베르는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십수 번을 앉았다가 일어나길 반복했으니 그만큼 오베르가 현재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똑똑.

“누구야?”

“후작님, 접니다.”

“들어와.”

갑작스러운 노크에 흠칫 놀랐지만 다행히도 아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관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불길했다.

그리고 불길한 예상은 늘 그러하듯 맞아떨어지곤 했다.

“후작님. 아이젠 백작이 고발령을 소집했습니다.”

“뭐, 뭐라고!”

오베르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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