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81화 (81/522)

# 81

두 번째는 확실하게 (7)

‘내, 내 손으로 내 제자들을 죽이라니…….’

눈앞에 떨어진 단검을 바라보며, 케일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턱을 떨어 보였다.

마법 아카데미에 재학할 때부터 애정을 가지고 여태껏 가르쳐 온 자식 같은 아이들이었다.

게다가 마법사는 평생을 독신으로 사는 이가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에게 있어 수제자들은 의미가 남달랐다.

힘들었다. 그리고 감히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파괴광이라지만 호랑이나 사자에게도 모성애는 존재했다.

“왜, 못 하겠느냐?”

“저, 저, 그, 그것이……!”

헨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의사를 물었다.

숨이 막혔다.

그것은 케일에게 있어 해일과도 같은 거대한 압박이었다. 바닷물은 차오르는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난파선과도 같은 상황.

케일은 자신을 바라보는 4개의 눈동자가 마치 벼랑 끝의 창날처럼 느껴졌다.

‘안 된다……. 내 손으로 어떻게 내 제자들을 죽인단 말인가……?’

이에 케일은 차마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눈앞에 떨어져 있는 단검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그렇게 단검을 노려보기도 잠시, 케일은 그제야 저 단검이 어떠한 단검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저건……!’

저것은 피프를 중독에 빠뜨렸던 단검이었다.

그것도 중상급 소드 마스터를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게 한 무시무시한 맹독이 발린 바로 그 단검.

단검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케일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가슴으로 당기고 말았다.

‘이, 이런 미친……!’

저런 칼에 찔린다면 고위 사제가 와도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피프의 말로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기에 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했다.

마치 비열하고 잔인한 한 마리의 맹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지금 자신의 아가리에 제자들을 집어넣지 않으면 너를 잡아먹겠다는, 그런 경고를 보내는 맹수.

‘꿀꺽.’

죽고 싶지 않았다.

특히 저런 맹독에 찔려 고통스럽게 죽는 것은 더더욱 두려웠다.

그래서 케일은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집어 들었다.

“헉!”

단검을 집어 든 순간, 케일은 손잡이의 차가움에 자기도 모르게 단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헉, 허억!”

단검을 떨어뜨린 순간, 케일은 혹시라도 칼끝에 스칠까 봐 잔뜩 과장된 몸짓으로 단검에게서 멀어졌다.

그것을 본 헨리가 물었다.

“못 하겠나?”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그럼 행동으로 보여라.”

케일이 겁을 먹었거나 말거나, 헨리는 여전히 단호한 모습으로 제자들의 죽음을 종용했다.

그 덕분에 케일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금 단검을 쥘 수밖에 없었다.

차갑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단검의 손잡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서슬 퍼렇게 느껴졌다.

손이 심하게 떨리고 얼굴에선 식은땀이 났다.

단검의 서슬 퍼런 차가움이 떨리는 그의 말초신경을 더더욱 명확케 하는 듯했다.

“살아야 해…… 살아야 한다…….”

중얼, 중얼, 중얼, 중얼.

케일은 그답지 않게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죄책감을 덜게 해 줄 변명거리 같은 중얼거림이었다.

케일은 천근같은 두 발을 이끌고 그릇처럼 포개어진 제자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눈을 감고 있는 녀석들.

케일은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녀석들과의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아서였다.

“눈 떠.”

그러나 헨리는 잔인하게도, 그에게 눈을 감을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흐으으으…….”

이에 케일은 억지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케일이 실낱같은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자 그의 턱관절이 오한에 걸린 것처럼 빠른 속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덜덜덜덜덜…….

그러나 선택해야만 했다.

아니, 마음은 이미 기울었다.

눈앞의 제자들이 아무리 사랑스럽고 소중한 놈들이라지만 결국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다잡은 케일의 두 팔이 활시위처럼 위로 당겨졌다.

‘미안하다……!’

화살이 쏘아졌다.

캉!

그 순간, 맹독이 제자들의 몸에 닿기 직전, 헨리의 검이 케일의 결심을 막아섰다.

챙그랑!

단검을 놓치고 마는 케일.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헨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 예……?”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에, 헨리는 그제야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약한 척해도 역시 근본은 확실하네. 이 정도면 쓸 만하겠어.”

“예……?”

당황하는 케일과 흡족스러워하는 헨리.

그리고 두 사람을 지켜보던 반은 고개를 내저으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이에 헨리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놀랄 것 없다. 제자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니 약속대로 네 목숨은 살려 주도록 하마.”

“저, 정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너의 목숨만이다. 네 제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죽어도 불만 없겠지?”

“그, 그건……!”

당황하는 모습과는 달리 케일은 속으로 내심 안도했다.

어찌 됐든 자신의 목숨은 건진 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하니 갑작스레 차후의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살았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살모라가 죽었으니 이제 곧 오베르 후작이 공격당할 테고, 그렇게 되면 이번 사건이 밝혀지면서 제자들의 죽음도 곧 밝혀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난……!’

마법사의 목숨은 곧 제국의 재산이나 마찬가지. 특히 그 마법사가 일등 마법사라면 더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엔 마탑에 보고도 하지 않고 몰래 살모라를 도운 것이었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 하고 오베르와 한통속이라는 누명을 쓰게 생겼다.

‘이대로 두면 마탑 재판에 회부될 뿐만이 아니라 한꺼번에 역적으로 매도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내 신변과 미래를 위해서라도 제자들을 살려 내야만 한다……!’

이 모든 계산들이 목숨을 건진 직후, 찰나에 이루어졌다.

차갑게 식는 머릿속.

계산을 마친 케일은 곧바로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리며 혼신을 담은 연기를 시작했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가 비록 제자들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하려고 하였으나 그래도 하나뿐인 저의 제자들입니다. 제발,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에 헨리는 자꾸만 피어나는 웃음에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마음껏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똑똑한 놈이야. 살려 두길 잘했어.’

대마법사이기 전에 제국의 대현자라고 불리던 헨리였다.

말인즉슨 헨리만큼 사람의 본질을 잘 꿰뚫어 보는 사람도 없다는 뜻.

그렇기 때문에 헨리의 눈에는 지금 케일이 어떤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흡족했다.

지금 헨리가 케일에게 바라는 것은 양심과 박애가 넘치는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한없이 이기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물었다.

“제자들을 살리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제발 제자들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좋다. 제자들의 목숨을 살려 주도록 하지.”

“그,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 그냥 살려 줄 순 없다. 네놈이 제자들의 목숨을 원하는 만큼 능력껏 제자들의 목숨값을 지불해라.”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제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시면 전 재산을 내놓을 것이고, 개처럼 짖으라고 하시면 개처럼 짖겠습니다!”

“흐음, 네 의지가 그렇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좋다, 그럼 내 한 번 더 너의 의지를 믿어 보마.”

이에 헨리가 품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물체 하나를 꺼내 케일 앞에 내밀어 보였다.

“받아라. 마법사이니 이름 정도는 들어 봤겠지? 마약 거머리라고 불리는 나르웜이다.”

나르웜.

마약 거머리라고도 불리는 이 녀석은 보통의 거머리들과는 달리 숙주의 마력을 섭취할 경우 마치 마약을 흡입한 것처럼 강렬한 쾌락과 환각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르웜이란 녀석은 생각보다 취향이 몹시 까다로워서 한평생 두 종류 이상의 마력은 섭취하지 않는다.

게다가 마력을 마약처럼 흡입하는 놈이니만큼 주기적으로 같은 마력을 공급받지 못하게 될 경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금방 자폭해 버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억지로 몸에서 빼내려고 해도 자폭하게 되고 두 종류 이상의 마력을 먹게 돼도 자폭해 버리고……. 여러모로 까다로운 놈이지.’

또한 나르웜은 마력에 환장한 만큼 마력이 풍부한 마법사를 가장 좋아했는데, 이 녀석이 기생을 시작하면 체내에서 마력이 가장 풍부한 곳, 즉 심장에 둥지를 트는 습성이 있었다.

그 말인즉슨, 녀석이 스트레스를 받아 폭발하게 되면 둥지를 튼 심장도 함께 폭발한다는 뜻.

나르웜을 받아 든 케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히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 케일은 창백해진 안색과 함께 헨리가 내미는 나르웜을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세상의 어느 멍청한 마법사가 자신의 몸에 나르웜을 심는 행위를 할까?

하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케일은 이젠 완전히 체념한 표정으로 팔뚝 위에 나르웜을 올려 두었다.

그러자 끈적거리는 거머리 특유의 촉감이 느껴지면서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꾸륵, 꾸르륵…….

이윽고 나르웜이 케일의 팔뚝 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큭!”

살갗을 파고드는 찌릿한 고통.

나르웜은 곧 새로운 둥지에 적응하기 위해 케일의 온몸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엄청난 고통에 케일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하였다.

“쿨럭!”

이윽고 마력의 중심지인 심장에 안착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케일이 피를 한 웅큼 토해 냈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그것을 본 헨리가 말했다.

“나르웜에 대한 특성은 잘 알고 있겠지?”

“……예.”

“녀석에겐 이미 나의 마력을 충분히 먹여 두었다. 그러니 그 녀석은 이제 다른 마력은 섭취할 수 없단 얘기지. 이게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겠지?”

“……예.”

“역시 마도사쯤 되니까 말귀는 잘 알아먹어서 좋네.”

심장에 둥지를 튼 나르웜을 빼내기 위해선 마법으로 심장을 절개하여 녀석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때 타인의 마력이 개입될 경우, 당연히 나르웜은 자폭하게 된다.

그러니 케일의 나르웜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헨리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마력은 일주일에 한 번씩 공급해 주도록 하지. 위치는 비발디 타운의 시청이다.”

“알겠습니다…….”

몸속에 살아 있는 폭탄이 심기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살아남았으니 앞으로 케일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살아갈 것이 분명했다.

“이제야 마음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겠네. 반갑다. 내 이름은 헨리 모리스라고 한다. 지금은 아이젠 백작의 뒤를 봐주고 있지.”

“……예?”

“놀라긴, 아쉽지만 네가 아는 그 이름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동명이인이다.”

뜬금없이 전직 마탑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단순한 동명이인이라는 말에 허무함이 밀려오면서도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일 이야기를 한번 시작해 볼까?”

대부분의 준비는 이것으로 끝났다. 준비를 마친 헨리는 그제야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 * *

“괜찮을까?”

“뭐가 말입니까?”

“케일, 그놈 말이야. 혹시라도 정보를 누설하고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괜찮을 겁니다. 자기 제자들을 팔아서라도 살아남으려고 했던 놈입니다. 게다가 몸속에 나르웜까지 심어 두었으니 머리가 장식품이 아니라면 입을 열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든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

하지만 죽음에 귀결되기까지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자에 속했다.

죽는다는 건 그만큼 두려운 것이었으니까.

‘손에 쥔 게 많은 놈일수록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법이지. 그래서 어떤 놈들은 불로불사를 꿈꿨던 것이고.’

천재라고 불림과 동시에 평생 동안 노력하며 살아온 존재들이 바로 마법사들이었다.

특히 마도사의 경지를 이룩하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살아왔는데 고작해야 친구 한 놈 도와준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기엔 너무나도 억울한 인생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아이젠의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저택 입구에 도착한 순간, 헨리에게 끝까지 반말을 내뱉던 놈을 비롯하여 베디칸 경비단장까지 마중을 나와 헨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베디칸과 헨리가 눈을 마주쳤다.

척.

먼저 고개를 숙여 보이는 베디칸. 그리고 그것은 나머지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들어가지.”

승전보를 울린 헨리는, 개선장군처럼 저택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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