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살게라 (2)
사건의 발단은 점심 식사 무렵이었다.
하운드 용병단원들은 이동하는 내내 헨리에게 들으라는 듯이 계속해서 비아냥거렸다.
거기까진 참을 만했다.
하지만 식사가 보급될 무렵, 보급을 맡은 빌레이의 부하가 일부러 헨리의 식사를 엎지른 것이 화근이었다.
“더 이상은 못 참아!”
자신이 모욕받는 것은 괜찮았다. 참는 것엔 익숙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주인인 헨리가 모욕받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헤글러는 손에 쥐고 있던 식판으로 배급을 담당하던 놈을 후려 패기 시작했다.
“야야! 빨리 말려 봐!”
“무슨 놈의 힘이 이렇게 세?”
분노한 헤글러의 힘은 대단했다.
그렇잖아도 키가 크고 덩치가 큰 헤글러였는데, 그동안 충분한 휴식과 영양 공급이 이루어졌으니 폭주하는 괴력을 한낱 조무래기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쯧, 참을성 부족한 녀석.”
그리고 그런 헤글러를 보며 헨리는 가볍게 혀를 찰 뿐,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기만 했다.
“놔!”
그리고 마침내 서른 명에 달하는 하운드 용병단 전원이 헤글러에게 붙고 나서야 간신히 헤글러를 말릴 수 있었다.
이에 분노한 빌레이가 헨리에게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하운드 용병단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작 한 사람을 막기 위해 전원이 달려든 것도 모자라 헨리의 식판을 엎었던 놈은 눈도 못 뜰 만큼 중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뭘?”
“네 부하 놈이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내 부하가 저 지경이 됐잖아!”
“그래서?”
“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자기가 감당할 수 없으니 어서 좀 말려 달라, 이것이 빌레이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쪽팔리게 그걸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는 법.
결국 화를 참지 못한 빌레이가 허리춤에 찬 검 위로 손을 올렸다.
그 순간, 헨리가 빌레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거기까지.”
멈칫.
허리춤에 찬 검을 뽑기 전, 헨리는 빌레이에게 진심을 담아 충고했다.
그러나 빌레이가 느끼기엔 그것은 충고보단 경고에 가까웠다.
‘크, 크윽…… 무슨 놈의 살기가……!’
두 발이 얼어붙고 손에선 식은땀이 났다.
마치 발가벗은 상태에서 맹수와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검 위에 손을 올려놓은 지 몇 초. 헨리는 얼어붙은 빌레이를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헤글러.”
“후우우…… 예, 단장님.”
“그쯤 해.”
“후…… 예, 알겠습니다.”
“어어어!”
쿠당탕탕!
헨리의 명령에 헤글러가 긴 한숨을 내쉬며 달라붙은 잔당을 떨궈 냈다.
이윽고 헤글러가 다가오자 헨리는 뿜어 대던 살기를 거두었다.
“허억……!”
헨리가 살기를 거두자 그제야 빌레이는 편하게 호흡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빌레이는 잠시나마 자신이 겁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네놈……!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그러시든가.”
“큭……!”
마지막 자존심이었던지, 빌레이는 끝까지 헨리를 노려보며 겨우 자리를 벗어났다.
이윽고 헤글러가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
“됐어, 그만하고 거기 앉아.”
헨리는 헤글러를 문책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가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니까.
이윽고 헨리는 헤글러를 앞에 앉인 후 조그마한 가방을 꺼냈다.
“단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밥 먹어야지?”
“예? 그런데 왜 가방을…….”
“아공간 주머니라고 들어 봤냐?”
“예? 아공간 주머니라면,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다는 그 마법의 주머니 말씀이십니까?”
“맞아.”
헨리가 꺼내 든 것은 아공간 주머니가 아닌 단순한 보조 가방이었다.
하지만 자유롭게 체스트를 쓰기 위해선 이 정도의 작은 거짓말은 필수였다.
이윽고 헨리는 체스트를 개방시켜 전날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음식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우, 우와…….”
가방 속에서 음식이 나올 때마다 헤글러가 아이처럼 감탄사를 내뱉었다.
헨리가 꺼내 든 것은 샐러드를 비롯한 각종 요리들이었다.
분명히 먼 길을 떠나는 상단에선 신선한 요리가 아닌 육포나 건빵 같은 저장 식품을 식사로 제공할 것이 뻔했기에 미리 식사를 챙겨 왔던 것이다.
‘험한 일을 한다고 해서 음식까지 험한 걸 먹을 수는 없지.’
두 사람은 금방 차려진 진수성찬을 남은 시간 동안 천천히 음미하며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 * *
“이제 저기만 지나면 슬란 협곡이 나옵니다.”
상단은 일명 ‘살게라의 대문’이라고 불리는 첫 번째 협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날씨 또한 제법 쌀쌀해졌다. 살게라 지방에 가까워질수록 협곡을 넘어온 냉풍이 상단을 덮쳤기 때문이다.
문케의 말이 계속되었다.
“용병단 여러분, 여기서부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여기서부터는 이따금씩 도적들이 출몰하곤 하거든요.”
“걱정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희들이 있는데. 크하하하!”
문케의 충고에 빌레이가 가슴을 치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나름대로 기선 제압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비아냥거리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걱정은 밀리언 용병단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작해야 두 명이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헨리는 생각했다.
‘등신 같은 놈.’
속이 참 좁은 녀석인 듯했다.
그러나 이틀 전에 서열 정리가 확실하게 이루어진 후론 전처럼 대놓고 시비를 걸진 않았다.
“뭐…… 당연히 여러분을 믿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 출몰하는 도적 떼는 수준이 좀 다른 것 같아서 말이죠.”
“도적놈들 수준이야 다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뭐 백 마디 말보다는 직접 한번 보시는 게 낫겠지요. 아무튼 혹시라도 도적놈들한테 물자를 빼앗기게 되면 당연히 그에 따른 위약금이 발생한다는 것도 아시지요?”
“압니다, 알아.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전진이나 합시다.”
문케는 위약금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듯했다.
충고가 끝난 뒤, 다시 마차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진하기를 수십 분. 선두에서 갑작스레 이동 중지를 외쳤다.
“중지! 이동 중지!”
“음?”
식사 때나 잘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마차 바퀴가 멈춘 적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이동 중지에 모두가 의아함을 보였다.
상단 직원이 도적 떼가 나타났음을 알렸다.
“도적 떼가 나타났다!”
‘도적이라고?’
헨리는 그제야 왜 이동을 멈추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도적 떼가 나타났다는 말에 헨리와 헤글러가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아가 상황을 살폈다.
도적 떼가 나타났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헨리는 길목을 점거하고 있는 수십 명의 도적 떼를 보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도적 떼의 상태가 좀 특이했다.
보통의 도적 떼라 하면 두령 정도만 말을 타고 있고 나머지는 도보로 이동한다.
단순히 권위의 문제로 두령만 말을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이 그만큼 비쌌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의 도적 떼는 전원이 말을 타고 있음은 물론이고 검은색 의복과 복면 그리고 허리춤에 찬 칼의 방향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다.
‘부유한 놈들인가?’
아무리 잘나가는 도적 떼라 할지라도 파리 목숨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속을 나타내는 물건들은 절대로 맞추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뒤를 밟힐 위험 때문이었다.
‘뭔가 수상한데…….’
그런데 그 순간, 선두에 나와 있던 도적단 한 명이 목청껏 소리치며 경고를 날려 왔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우스웠다. 용병들이 해야 할 말을 도적들이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에 하운드 용병단원들이 배를 잡고 킬킬 웃으며 말했다.
“저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날이 추워서 머리가 좀 돈 것 같은데?”
“얼마나 멍청하면 이런 허허벌판에서 도적질을 할 생각을 하지?”
빌레이의 부하 말이 맞았다.
이곳은 살게라 지방으로 가는 길목. 산세도 험하고 날씨도 추운 데다가 살게라 외에는 어떠한 도시도 없기 때문에 제국에서 보내는 보급 상단이 아닌 이상 다른 상단의 존재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적들이 나타나다니.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
단순한 감일 뿐이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확정된 증거가 없으니 헨리는 일단 잠자코 있기로 했다.
그 순간, 빌레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얘들아! 간만에 몸 좀 풀어 보자!”
이에 헨리와 헤글러 또한 전투준비를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빌레이가 거만한 웃음소리와 함께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이, 너희들은 고작해야 두 명인 주제에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걸리적거리니까 얌전히 마차나 지키고 있어!”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이에 헨리는 잠자코 그러겠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 없다는데 굳이 함께 나서 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헤글러와 함께 뒤로 물러난 다음 다시 말 위에 앉아 하운드 용병단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하찮은 도적놈들 같으니…… 니놈들 간땡이가 얼마나 부었는지 내가 직접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슬그렁.
빌레이를 포함한 하운드 용병단 전원이 검을 뽑아 들었다.
도적놈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대략 스무 명 정도. 하지만 하운드 용병단원은 무려 서른 명에 달했다.
슬겅!
용병들이 항복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에 도적단 전체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츠즈즈즛.
‘음?’
검을 뽑아 든 도적단원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기껏해야 생계형 도적 떼인 줄로만 알았던 놈들이 전부 검날에 오러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기?’
도적단원 전체가 오러 유저라는 말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도적질 따위에 검기를 낭비하기엔 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하운드 용병단은 고작해야 빌레이 정도만이 익스퍼트급 유저였다.
이에 헨리가 조심하라고 충고하기 위해 문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씨익.
‘저건 또 뭐야?’
분명한 미소.
척 보기에도 심각한 상황이 분명한데 그런 상황을 보고 문케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마치 상황을 즐기는 듯한 그런 미소였다.
백번 의심받아도 할 말이 없을 그런 미소였다.
‘느낌이 안 좋은데…….’
헨리의 촉은 대체로 정확한 편이었다. 특히 안 좋은 쪽으로는 더 발달이 되어 있었는데, 지금 막 그 촉이 발동되기 시작한 차였다.
‘일단은 지켜보자.’
이내 헨리는 다시금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가자! 가서 놈들을 쓰러뜨리고 말을 빼앗아 오자!”
“오오!”
빌레이는 베테랑 용병답게 능숙하게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비록 상대 도적단 전원이 말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머릿수가 10개나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용기를 샘솟게 했다.
“가자!”
“우아아아!”
커다란 고함은 거대한 용기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빌레이는 우렁찬 고함 소리와 함께 자신의 용맹함을 내뿜으며 선두에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직! 콰지직!
도적단의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도적단은 타고 있는 말의 기동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하운드 용병단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무자비하게 검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한 번의 칼질에 한 명의 부하가 나가떨어졌다.
빌레이는 눈에 띄는 전력 차이를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단자앙!”
“크허억!”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 있는 사람보다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의 수만 더 많아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빌레이를 제외한 하운드 용병단 전원이 궤멸되었을 무렵, 도적단이 딛고 있는 바닥은 흙빛이 아닌 검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이놈들이!”
포위당한 빌레이.
20개의 검기가 빌레이를 향하고 있었다.
이윽고 도적단원 한 명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푸히히힝!
도적단원이 벤 것은 빌레이가 타고 있는 말의 다리였다.
말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 바람에 빌레이 또한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낙마하고 말았다.
털썩!
쓰러진 빌레이의 몸에 단원들의 핏물이 가득 묻었다.
허망했다.
자신의 용병단을 가지기 위해 소년이었을 때부터 용병들의 허드렛일을 해 왔던 자신이다. 그런데 한낱 도적놈들 때문에 평생을 꿈꾸어 온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빌레이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증발했다.
“죽여라…….”
모든 것을 잃은 이상, 더 이상 살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
빌레이의 말에 도적단원이 검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
서걱!
툭, 투둑.
검을 치켜든 도적단원의 머리가 빌레이 앞으로 굴러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