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5화 (45/522)

# 45

기획과 상술 사이 (4)

헤글러의 실력은 뛰어났지만 소드 마스터급은 아니었다.

그가 만약 진짜 소드 마스터였다면 헨리의 마력으로는 결코 그를 이길 수 없었을 테니까.

헨리가 그를 일으켜 세운 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며 말했다.

“그나저나 희한한 일이군요. 헤글러 씨 정도 되는 분이 무슨 이유로 도피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 정도 실력자가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까지 왔다면 뻔한 이야기지요.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가족분들을 모신 뒤에 천천히 나누도록 할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하실 말씀이라도?”

헨리의 반문에 헤글러가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이제부터 제 윗사람 되실 분이신데 말씀을 좀 편하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난 또 뭐라고. 그럼 오늘까지만 경어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첫 만남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는 존대가 훨씬 더 익숙한 듯했다.

이어서 헨리는 보조관을 통해 첫 번째 합격자가 탄생했음을 알리도록 했다.

“합격자라고? 그럼 벌써 3차 시험을 통과했다는 얘기야?”

“와…… 부럽다. 저 사람은 이제 인생 폈구만…….”

“와 씨, 1차 시험장을 통과하는 사람이 진짜로 있기는 있구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들 부러워했다.

헨리는 전쟁 영웅처럼 헤글러의 위신을 한껏 드높여 준 뒤, 그의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깁니까?”

도착한 곳은 어느 이름 모를 가정집의 허름한 창고였다.

헨리의 물음에 헤글러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돈이 부족해서 여인숙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나 창고를 빌리게 되어 여기서 묵고 있었습니다.”

헤글러가 창고 문을 열자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여보?”

모습을 드러낸 이는 헤글러의 부인, ‘소나’였다.

그런데 헤글러의 부인을 본 순간,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허…… 엄청난 미인이군.’

소나는 여색에 관심이 없는 헨리조차도 감탄할 만큼 몹시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소나는 헤글러와 마찬가지로 넝마에 가까운 옷을 입고 있었으나 그것도 그녀의 미모를 감추지는 못했다.

장담컨대 비발디 타운의 그 어떤 여자보다 소나가 훨씬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헨리는 생각했다.

“여보, 다행히 입단 테스트에 합격했어.”

“그, 그게 정말인가요? 맙소사, 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부가 서로를 끌어안고 흐느끼려던 순간, 뒤쪽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빠?”

“오, 우리 공주님! 엄마 말 잘 듣고 아빠 기다리고 있었어?”

“응! 근데 저분은 누구야?”

“니아야, 말씀을 높여야지. 저분은 앞으로 아빠가 모실 분이란다.”

‘허…… 딸까지 미인이야?’

얼추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딸 또한 엄청난 미인일 줄은 몰랐다.

이어서 헨리는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며 헤글러의 입단을 다시 한 번 축하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밀리언 용병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헨리 모리스라고 합니다.”

“소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니아예요.”

니아가 배꼽 인사를 해 보였다.

헨리는 그런 니아에게 따뜻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헤글러 씨는 지난 몇십 일 동안 치러진 입단 테스트에서 유일하게 합격한 첫 번째 합격자이십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갖고 마음껏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한 입장입니다. 헤글러 씨 같은 유능한 인재는 좀처럼 모시기 힘든 법이니까요.”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헨리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첫 번째 단원이 유부남이 될 줄은 몰랐으나 그의 가족을 만나 보니 헤글러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가정이 있는 남자만큼 믿음직스러운 사내도 없는 법이니까.’

감사 인사를 전한 헨리가 이어서 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장소를 옮기도록 하죠. 밀리언에 입단했으니 약속드린 대로 살 집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버, 벌써 말입니까?”

“언제까지 창고에서 지낼 순 없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집을 내어 줄 줄은 몰랐다.

헨리는 헤글러의 가족을 데리고 텐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택 앞에 도착했을 무렵, 헤글러 가족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들어가시죠.”

“다, 단장님. 자, 잠깐만요! 여긴 귀족분들이 머무르는 곳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예?”

“여긴 밀리언의 후원자가 사는 집입니다. 그리고 그 후원자를 후원하는 사람이 바로 저고요.”

“……예?”

이상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으나 맞는 말이었다.

표면적으로 밀리언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천만황금이었지만, 그 천만황금을 지원하고 있는 이가 바로 헨리였기 때문이다.

헨리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텐이 헤글러의 가족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천만황금의 주인, 텐이라고 합니다. 헨리 경에겐 미리 말씀을 들었으니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지내시면 됩니다.”

헤글러는 처음엔 따로 집을 구해 주면 안 되겠냐고 의견을 냈으나 헨리는 이 의견을 단칼에 거절했다.

거대한 저택을 놔두고 굳이 쓸데없는 지출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발언권이 없는 텐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고, 헤글러 가족 앞에서 억지로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분들은 목욕부터 하신 후 의복을 갈아입으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헨리가 두 번 박수를 치자 저택의 시종들이 헤글러의 부인과 니아를 데리고 사라졌다.

이윽고 응접실에는 헨리와 텐 그리고 헤글러만이 남게 되었다.

응접실 의자에 앉은 헨리가 헤글러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슬슬 사연을 들어 보도록 할까요? 텐.”

헨리가 텐의 이름을 부르자 텐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준비했다.

이윽고 헤글러의 입에서 사연이 시작됐다.

“실은…….”

사연은 간단했다.

헤글러는 평민 출신 기사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어느 백작가로 스카우트되었다.

그러나 엄청난 미모의 소나에게 반한 영주가 헤글러 몰래 겁탈을 시도했다가 헤글러에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도망을 쳤다?”

“그렇습니다…….”

최상급 익스퍼트씩이나 되는 실력자가 왜 궂은 용병 일을 하려고 하는지 얼추 이해가 됐다.

“다른 나라를 돌며 계속해서 일자리를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쫓기고 있는 몸이라 그런지 어느 곳도 저를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저희 용병단 소문을 듣게 된 겁니까?”

“예. 이곳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귀족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그건 중죄에 해당하는데 말이죠.”

헨리가 나지막이 현실을 꼬집자 헤글러의 낯빛이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었다.

“얼마나 때렸습니까?”

“……팔 하나를 부러뜨렸습니다.”

“정말 팔 하나가 전부입니까?”

“……실은 다리도 분질렀습니다.”

제국에서 평민이 귀족을 때리면 중죄에 해당한다.

헤글러도 그 사실을 알기에 곧바로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을 택한 것이었다.

사실을 실토할수록 헤글러의 얼굴은 점점 더 거무죽죽해져만 갔다.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두렵습니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들 때문에 두렵습니다.”

“가족은 가장이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이죠. 그러게 왜 귀족을 때렸습니까?”

“한평생 그렇게까지 분노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당시에 느꼈던 억한 심정이 다시금 치솟았는지 헤글러의 눈가가 벌겋게 물들었다.

“잘하셨습니다.”

“……예?”

“만약 저였다면 목을 베었을 겁니다. 하지만 헤글러 씨의 심성이 워낙에 유약하신지라 사지 몇 개 부러뜨린 걸로 끝낸 게 아니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헤글러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습니까? 분명히 귀족을 때린 건 중죄에 해당하지만 반드시 지켜 드리겠다고 이미 약속을 드렸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저도 귀족입니다.”

헨리가 품에서 은으로 된 신분 패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이에 헤글러가 화들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귀, 귀족이셨습니까?”

“평민이 성씨를 갖고 있는 경우가 흔치는 않죠.”

“모, 몰라뵀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제가 감히……!”

“호들갑 떨지 말고 그냥 자리에 앉으세요. 그래도 떠나기 전에 한 명이라도 건져서 다행입니다. 그렇지, 텐?”

텐에게 동의를 구하기 위해 텐이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텐이 헤글러보다 훨씬 더 놀란 표정을 하고서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왜 그래?”

“뭐가 왜입니까! 무려 백작입니다! 남작도 아니고 무려 백작에게 상해를 입혔는데 이게 그냥 넘어갈 문제입니까?”

“난 또 뭐라고. 그게 문제였어?”

“그럼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텐은 진심으로 놀란 듯했다.

하지만 그런 텐의 반응에도 헨리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태평하게 대꾸했다.

“뭘 그렇게 걱정해?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그보다 너는 내가 앙켈만에 다녀올 동안 헤글러 씨 가족들이나 잘 보살펴 줘.”

“어디 떠나기라도 하십니까?”

텐의 눈치를 보던 헤글러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인재가 없어서 직접 구하러 갑니다. 원랜 진작 떠났어야 했는데 떠나기 직전에 헤글러 씨가 1차 시험에 통과하셔서 출발을 좀 미뤘습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닙니다. 막판에 헤글러 씨라도 건져서 다행인 겁니다. 아무튼 입단 테스트가 끝나기까지 앞으로 열흘 정도 남았으니 그동안 저택에서 푹 쉬도록 하세요. 여태 마음 졸이면서 살았을 텐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아, 참! 그리고 이거.”

헨리가 내민 것은 10골드짜리 금화였다.

“이렇게 큰돈을 왜 저에게……?”

“축하금입니다. 쉬는 동안 이 돈 가지고 가족들이랑 재밌게 보내세요. 비발디 타운이 제국에서 가장 큰 유흥 도시인 건 알고 계시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텐을 가볍게 무시한 채 헨리는 헤글러에게 축하금까지 내리며 그를 격려했다.

이로써 한시름 덜게 된 헨리는 그제야 앙켈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 * *

대륙의 서쪽 끝에서 남쪽으로 떠나는 길이었다.

대도시에서 대도시로 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큰길을 따라간다면 최소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헨리는 오랜만에 보물 지도를 펼쳐 지리를 살폈다.

‘앙켈만까지 가는데 작은 영지가 2개 정도 있군. 굳이 들를 필요는 없겠어.’

식료품은 넉넉히 챙겼다. 잠자리는 마도사의 캠프로 해결할 터이니 볼일이 없다면 굳이 들를 필요가 없었다.

대신 헨리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보물들을 수거하기로 했다.

‘한동안 좀 뜸하긴 했지. 타운 근처엔 보물도 없었으니.’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앙켈만 일정을 열흘로 잡은 까닭은 혹시 모를 변수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가적인 활동까지 고려하여 넉넉히 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도를 살핀 결과, 헨리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보물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동선에 걸친 것은 이 정돈가.’

시선이 멈춘 곳에는 자그마한 호수 하나가 표시되어 있었다.

일명 ‘속삭임의 호수’.

헨리는 이 호수의 깊은 곳에 ‘위스퍼링’이라는 아티팩트를 숨겨 두었다.

‘동식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귀걸이라…… 니아가 좋아하겠네.’

위스퍼링은 동식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마법이 걸린 귀걸이였다.

헨리에겐 그다지 쓸모없는 것이었으나 어린 니아가 장난감으로 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물건이라 생각했다.

‘괜찮겠지, 이 정돈.’

헤글러가 독신이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딸이 있었다.

그리고 자식이 은혜를 입으면 부모가 그 은혜를 갚는 법.

그것을 알고 있는 헨리는 조금만 시간을 내기로 했다.

* * *

속삭임의 호수는 지형이 험준한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디딜 곳만 있다면 절벽조차 횡단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제이드였다.

제이드는 헨리의 명령에 따라 숲의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어느 절벽 앞에 설 수 있었다.

“여기가 맞나?”

절벽 앞에 선 헨리는 다시 한 번 지도를 확인해 보았다.

“맞네.”

까마득한 절벽, 아직 환한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벽이 너무 높은 나머지 절벽 아래가 까맣게 그늘져 있었다.

“제이드, 뛰어.”

푸릉.

아래가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하지만 제이드는 헨리의 명령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몸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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