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진짜가 나타났다 (5)
소문은 금방 퍼졌다.
천만황금의 주인이 대대적인 홍보를 해 준 탓에 헨리의 마지막 경기는 비발디 타운에서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다.
‘잘하고 있네.’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
사람이 많아야 배당률이 올라갈 것이고 헨리가 받을 배당금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 시간은 점심 식사가 끝나고 난 뒤.
헨리는 제공된 호화로운 룸서비스를 양껏 즐긴 뒤 천천히 나갈 채비를 했다.
“컨디션은 좀 어떻습니까, 헨리 선수?”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룸서비스가 끝난 직후, 텐이 헨리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인사차 들렀다.
“현재까지 배당률 차이가 어떻게 되죠?”
“자그마치 백십 배입니다.”
“다들 킹에게 기대를 거는가 보군요.”
“뭐, 아무리 도박의 도시라 해도 안정적으로 돈을 딸 수 있는 경기가 있다면 그쪽으로 몰리기 마련이니까요.”
아무리 푼돈이라 할지라도 뻔한 결과에 모험을 거는 이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그중에서도 특히 헨리와 킹의 경기가 그랬다.
킹은 여태껏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무패의 존재였고 투기장 유일의 소드 마스터였으니까.
이에 헨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도 경기 시작 전에 저한테 베팅을 좀 하고 싶은데, 괜찮겠죠?”
“일종의 자기암시 같은 건가요?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참가 선수는 상대 선수에게 베팅할 수 없다. 승부 조작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참가 선수가 본인에게 베팅하는 것은 결코 패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 얼마든지 허용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하시죠.”
채비를 마친 후 텐과 함께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경기는 도시 한복판에서 열렸으며, 무대를 빌리기 위해 중앙 광장 전체를 천만황금에서 대여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대 곳곳에는 베팅 접수를 위한 간이 접수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저는 말씀드린 대로 베팅을 좀 하고 오겠습니다.”
“얼마든지요.”
흔쾌히 헨리의 베팅을 승낙해 주었지만 텐은 속으로는 마음껏 비웃고 있었다.
헨리가 아무리 떠오르는 신예라 할지라도 러너급 검사가 소드 마스터에게 이겼다는 이야긴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 헨리 선수 아니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헨리의 얼굴을 알아본 접수처 직원이 친절하게 응대했다.
“저도 이번 경기에 베팅하러 왔습니다.”
“헨리 선수가 베팅을요? 참가 선수는 본인에게밖에 베팅할 수 없다는 거 잘 아시죠?”
“물론입니다. 당연히 저한테 베팅하려고 온 겁니다.”
“얼마나 베팅하시려고요?”
“10만 골드.”
“예?”
“저에게 10만 골드를 베팅하겠습니다.”
“노, 농담이시죠?”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에 접수처 직원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아공간 주머니를 가지고 왔습니다. 돈이나 받으시죠.”
이따금씩 큰손들이 나타나 재테크의 일환으로 거액을 베팅하긴 했지만 보통은 이길 것 같은 선수에게 거는 게 정석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스스로에게 10만 골드를 걸었고, 접수처 직원은 서둘러 다른 직원들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백금화들을 헤아리기에 바빴다.
“확인됐습니다. 정확히 10만 골드입니다. 여긴 영수증입니다.”
헨리는 10만 골드짜리 베팅액이 기재된 영수증을 받았다.
이제 이 종이는 잠시 후면 비발디 타운을 뒤흔들 거대한 티켓이 될 것이다.
골든티켓을 거머쥔 헨리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설마 천만황금이 정말로 천만 골드를 가지고 있진 않겠지.’
헨리가 승리하게 될 경우, 헨리는 파이트머니를 포함하여 1천만 골드가 넘는 금액을 천만황금으로부터 배당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천만 골드는 일개 업자가 소유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전생의 헨리조차도 1천만 골드나 되는 현금은 가져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액수를 베팅한 까닭은 간단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마도 텐, 그 녀석이 콜트아이언을 제일 많이 갖고 있었다지?’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금속들 중의 하나인 콜트아이언.
콜트아이언은 바다 깊은 곳, 심해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천연 광물 중의 하나였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들 중의 하나이며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유일한 금속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콜트아이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일반인들은 감히 거래를 할 수 없게 법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어떻게 손에 넣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콜트아이언은 내가 가져가 주마.’
헨리는 압수한 콜트아이언을 바탕으로 개인 무구를 제작할 생각이었다.
콜트아이언만큼 헨리에게 잘 어울리는 금속도 없었으니까.
준비를 마친 헨리가 마련된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와아아아!”
수많은 인파, 비발디 타운의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익숙했다. 늘 받아 왔던 것이니까.
‘평범하게 생겼네.’
킹이라는 무지막지한 호칭을 쓰기에 어떻게 생긴 놈인지 내심 궁금했다.
그러나 의외로 킹은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챔피언 방어전은 특별 룰이 적용되어 상해를 입혀도 선수 자격이 박탈되지 않습니다. 이외엔 모든 것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경기를 위한 철검이 배부되었다.
심판의 손이 중앙을 갈랐고 두 사람은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
헨리는 갑작스럽게 몸이 무거워지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짐을 느꼈다. 마치 현기증이 난 것처럼 말이다.
‘마법?’
마법이 확실했다.
그것도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일종의 디버프 마법이었다.
‘그렇군. 무패의 비결이란 게 바로 이런 거였나.’
킹이 검치기의 제왕으로 등극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1~2년 정도.
게다가 킹은 천만황금을 스폰서로 업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챔피언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특별 룰은 입막음을 위해서겠군.’
상해를 입혀도 좋다는 특별 룰을 이용해 도전자의 입을 막으려는 속셈이었다.
도전자만 없애 버린다면 이 어쭙잖은 영업 비밀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판단을 마친 헨리는 숨어 있는 마법사들의 마력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3서클 정도…… 그래, 네 녀석들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도사를 데려올 순 없었겠지.’
마법사의 서클이 높을수록 훨씬 더 확실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낱 투기장의 승부 조작에 명예를 팔 마도사는 제국에 없었다.
‘리턴 매직.’
퉁.
점점 더 뿌옇게 변하는 시야에, 헨리는 나지막이 발을 굴러 한 가지 마법을 시전했다.
리턴 매직.
마도사의 권능 중 하나로, 시전된 마법을 술자에게 되돌려주는 강력한 방어 마법이었다.
“커헉!”
이에, 멀리서 사람들 몰래 마법을 시전 중이던 두 명의 마법사가 각혈을 하며 자리에서 쓰러졌다.
되돌려진 마법이 역류하면서 마력의 공급지인 심장을 강타하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시금 몸이 가벼워지고 시야가 되돌아왔다.
헨리는 이어서 마법 무장을 시전했다.
퉁.
헨리가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자 킹 또한 천천히 검날에 오러를 맺기 시작했다.
‘음?’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소드 마스터라고 알려진 킹의 오러가 미묘하게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헨리는 킹이 맺은 오러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 결과, 저것은 소드 마스터의 오러가 아님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선수조차 거짓이었나.’
비슷해 보였지만 그는 결코 소드 마스터가 아니었다.
잘 쳐주어도 최상급 익스퍼트 정도였다.
전생에 수많은 소드 마스터들을 보아 온 헨리였다. 게다가 그는 칼리번 요새에서 지내던 당시 저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익스퍼트 유저들을 숱하게 보아 왔다.
‘영업은 여기서 끝이다.’
특임대 휴고의 검마저 베었던 헨리다.
헨리는 마력을 실은 그대로 검을 뿌렸고, 거짓으로 얼룩진 킹의 철검을 가볍게 부러뜨렸다.
* * *
새로운 왕이 된 헨리의 이름이 하루 종일 도시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모두가 환호할 순 없었다.
킹에게 돈을 건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호하지 못하는 무리 속에는 천만황금의 주인인 텐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뭐,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헨리 선수가 경기 직전에 10만 골드를 자신에게 베팅했습니다.”
“10, 10만 골드?”
“예.”
킹의 패배가 너무 충격적인 나머지, 텐은 그제야 헨리의 배당금에 대한 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
“자, 잠깐만. 그럼 배당률은? 배당률은 얼마나 돼? 그럼 대체 얼마를 지급해야 된다는 거야?”
당황하는 텐 앞에서 직원이 황급히 펜대를 놀리기 시작했다.
“배당률이 112배에 파이트머니를 포함하면…… 대략 1,123만 7천8백 골드가 나옵니다.”
“뭐, 뭐라고? 아이고!”
어림잡아 1천1백만.
천문학적인 액수에 다리에 힘이 풀린 텐은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손이 떨렸다.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이 고작해야 1백만 골드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1천만 골드라니?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헤, 헨리. 그놈을 죽여야 돼.”
“누구를 죽인다고?”
그때였다.
최후의 비책을 결심한 순간, 어둠 속에서 헨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철퍼덕.
“저, 저들은!”
헨리가 텐의 눈앞에 두 명의 마법사들을 집어 던지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해 봐.”
잡혀 온 이들은 승부 조작에 관여한, 고용된 마법사들이었다.
말문이 막혔다.
마법사의 존재는 텐과 킹을 포함하여 극소수의 간부들밖에 모르는 일급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소리쳤다.
“다, 다들 나가 있어!”
“주인님, 왜 그러십니까?”
“다들 나가! 헨리 경과는 내가 직접 이야기하겠다.”
“진작 그래야지.”
텐의 호통에, 자리를 메우고 있던 직원들이 우르르 방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방에는 헨리와 텐, 그리고 헨리가 잡아 온 두 명의 마법사만이 남게 되었다.
“여,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태연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
“용건만 얘기하지. 돈 받으러 왔어. 배당금만 순순히 지급한다면 날 죽이니 어쩌니 하던 이야기들은 못 들은 걸로 해 줄게.”
한낱 검치기 선수에 불과했던 헨리가 이제는 더없이 거대한 태산처럼 느껴졌다.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배당금을 받지 못하면 내가 아니라 시장님이 직접 받으러 와 줄 테니까.”
“시, 시장? 시장이라면 설마 벤트 시장님 말입니까?”
“이미 시장님과는 모든 이야기가 끝난 사항이다. 그러니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돈이나 내놔.”
헨리가 블랙 카드를 흔들어 보이며 악마처럼 미소 지어 보였다.
헨리가 벤트 시장까지 들먹인 이상, 텐에게는 더는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었다.
모든 것을 잃은 텐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솔직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없습니다.”
“뭘?”
“제가 가진 전 재산이라고 해 봤자 겨우 1백만 골드가 조금 넘습니다. 그러니 시장님을 통해 압류하든지 말든지, 그쪽 마음대로 하십시오.”
“알고 있어.”
“……예?”
“천만 골드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돈이 없을 거란 건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제안을 하나 할까 해.”
“제안……요?”
“일단 너희 집으로 가자. 그리고…… 어이!”
헨리가 널브러진 두 마법사에게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조아려 보였다.
“마법사씩이나 돼서 너흰 배알도 없냐? 부끄럽지도 않아?”
“죄, 죄송합니다.”
헨리는 두 마법사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기로 했다.
“꺼져.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딴 짓거리 하고 다니면 그땐 정말로 죽여 버릴 테니까.”
“예, 예!”
* * *
천만황금의 명성에 걸맞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헨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초조해하는 텐을 앞에 두고 한가롭게 차를 음미했다.
“헤, 헨리 경. 제안이란 게 대체 뭡니까?”
어느새 텐의 태도는 단순한 선수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귀족을 만나기라도 한 듯 공손해져 있었다.
“너, 콜트아이언 얼마나 갖고 있어?”
“예? 코, 콜트아이언이라뇨?”
“시치미 떼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네놈 창고에 콜트아이언이 한가득 쌓여 있다는 거 다 알고 온 거니까.”
다시 한 번 떨리는 눈동자.
텐이 콜트아이언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제국의 고관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헨리는 그 고관들 중의 하나였다.
“대, 대체 그걸 어떻게?”
“그게 중요한가?”
“아, 아닙니다!”
“아무튼 얼마나 가지고 있어?”
“3, 3백 킬로그램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나한테 빚진 1,123만 7천8백 골드 중에서 3만 7천8백 골드를 변제해 주마. 네가 가진 콜트아이언 전부를 넘기는 조건으로 말이야.”
금보다 비싼 것이 바로 콜트아이언이었다.
그래도 고작해야 콜트아이언 3백 킬로그램을 대가로 약 4만 골드나 빚을 변제해 주는 것은 너무나도 후한 처사였다.
하지만 후한 처사는 그것이 전부였다.
헨리는 콜트아이언을 확보한 뒤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아까 현금은 1백만 골드가 전부랬지? 그것도 내놔. 그럼 대략 1천만 골드가 남네?”
“그렇습니다…….”
배당금이 변제될수록 텐의 안색은 점점 더 파리해져만 갔다.
“남은 금액은 나눠서 내도록 해. 그 정돈 배려해 줄게.”
“나, 나눠서 말입니까?”
“설마 1천만 골드나 되는 금액을 그냥 봐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당연히 지급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아, 참! 그리고 이건 선물.”
“이게…… 뭡니까?”
“호출권.”
“예?”
“장사 안 할 거야? 이젠 승부 조작 같은 건 안 해도 돼. 내가 처리해 줄 테니까.”
체스에 이어 검치기의 챔피언이 되었다.
하지만 체스와는 달리 헨리는 검치기 챔피언의 명성까지 놓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