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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35화 (35/522)
  • # 35

    수확 (2)

    달밤이 내린 요새는 침묵 그 자체였다.

    헨리는 짙은 어둠 사이를 달렸고 금방 성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플라이.”

    그리고 헨리는 날았다.

    밤이면 더욱 삼엄해지는 요새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끝없이 하늘로 솟았다.

    그리고 마침내 발아래의 성문이 손톱만큼 작아졌을 때 헨리는 마법을 거두고 중력에 몸을 맡겼다.

    슈우웅!

    헨리의 육체가 빠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헨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낙하 속도를 즐기며 시원한 밤바람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낙하지점은 마물의 숲이었다.

    이런 방식을 거치면 경계병의 시야를 피해 안전하게 숲의 안쪽으로 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페더 폴.”

    손톱처럼 작았던 성문이 보이고 마침내 숲의 나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워졌다.

    탁.

    착지 마법을 시전하자 마치 계단 한 칸을 내려온 것처럼 가볍게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달렸다. 발에 땅이 닿자마자 헨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소리 없이 숲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세이프티 존을 지나 6급 구역의 안쪽에 도달했을 때였다.

    “클레버.”

    -예, 주인님.

    헨리의 부름을 받은 클레버는 다시 한 번 새하얀 고양이가 되어 헨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후, 고양이가 된 클레버는 앞장서서 킨 머시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한 번도 수색한 적이 없는 낯선 길목이었다.

    길목에는 다른 곳들처럼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클레버는 그중에서 한 나무를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이 나무 뒤에 있어요, 주인님.

    “그래?”

    겉보기엔 딱히 차이점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클레버가 그렇다고 하니 일단은 성검을 뽑아 들었다.

    서걱!

    꽤 두꺼워 보이는 나무였지만 마도사의 마력을 담은 성검은 두부를 썰어 내듯 나무를 가볍게 잘라 냈다.

    밑동이 잘린 나무는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고 자신의 무게만큼이나 육중한 소리로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쿵!

    어두웠다.

    달빛 한 점 들지 않는 숲속이라 그런지 나무의 뒤편은 여전히 새카맣기 그지없었다.

    “여기가 확실해? 아무것도 없잖아.”

    -아니에요, 주인님. 한번 자세히 보세요.

    클레버의 권유에 헨리는 한 걸음 다가가 나무의 뒤편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포자?”

    새카맣기 그지없는 것, 그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킨 머시룸이 뿜어낸 자욱한 ‘포자’였다.

    ‘이게 다 포자라고?’

    처음엔 나무의 그림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살필수록 그것은 그림자 따위가 아닌 수많은 버섯들이 뿜어낸 숱한 포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많이도 자랐네.’

    하지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양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킨 머시룸은 6급 생태계에 휘말리지 않는 5급 생태종이었으니까.

    ‘천적이 없으니 마음 편히 증식할 수밖에.’

    천적이 없는 생물은 오로지 ‘영양 섭취’와 ‘생식’밖에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였고 눈앞의 포자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헨리는 새카만 포자로 가득 찬 킨 머시룸 군락지를 제거하기 위해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렇게나 많은 포자를 제거하는 방법은 역시 불로 지져 없애는 것이 제일 간단하다.

    하지만 현재 시각은 야심한 밤, 여기서 거대한 불꽃을 일으키면 순식간에 수많은 마물들의 표적이 될 것이 뻔했다.

    얼마 뒤, 헨리는 고민 끝에 제법 괜찮은 방법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클레버에게 포자를 빨아들일 것을 명령하는 것이었다.

    위스키도 빨아들였던 클레버의 체스트 능력이라면 이까짓 포자쯤은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클레버.”

    -예, 주인님.

    “저것들, 빨아들일 수 있지?”

    -물론이죠! 맡겨만 주세요!

    이윽고 클레버가 자욱한 포자 앞으로 다가가 조그마한 입을 열어 보였다.

    -냐앙!

    고양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울음이 끝나는 순간 클레버의 입속으로 무수한 양의 포자들이 거세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개미지옥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클레버는 개미지옥보다 훨씬 더 빠르게 포자들을 집어삼켰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포자까지 집어삼켰을 때, 헨리는 달빛이 내리쬐는 거대한 군락 터를 볼 수 있었다.

    “버섯까지 삼킨 거냐?”

    -앗, 저도 모르게 그만.

    “잘했다.”

    뭣하면 킨 머시룸까지 제거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살아 있는 그대로 집어삼켰으니 오히려 헨리에겐 좋은 소식이었다.

    살아 있는 킨 머시룸은 좋은 마법 재료였으니까.

    ‘아공간보다 훨씬 쓸 만하군.’

    물론 진짜 아공간보다야 보관할 수 있는 양이 적겠지만, 그래도 아공간 주머니보다 훨씬 편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헨리는 군락이 있던 터를 밟고 들어갔다.

    군락 터는 생각보다 넓었으며 그 끝에는 입구가 조그마한 굴 하나가 존재했다.

    ‘찾았다.’

    저 굴은 헨리가 수십 년 전에 인위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저것은 마법사의 캠프와 비슷한 형태였는데, 굴을 만든 이유는 순전히 보물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라이트.”

    굴속은 캄캄했다. 헨리는 마법을 사용하여 시야를 밝혔다.

    한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거대한 공동 속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 있군.’

    도착한 공동의 중심에는 먼지와 곰팡이가 잔뜩 핀 거대한 석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석상은 타우로스만큼 큰 키를 가졌으며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방패를 든 기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헨리는 석상 앞에 다가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인사를 건넸다.

    “넌 여전하구나.”

    석상의 이름은 실더.

    헨리가 숨겨 놓은 보물을 지키기 위해 만든 일종의 ‘연금체’였다.

    실더는 5서클에 준하는 마법들에 대한 완벽한 내성을 가진 존재였다.

    더불어 제국 장인들의 역작인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풋내기 익스퍼트 유저의 오러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굉장한 경도의 수호자였다.

    헨리는 직접 손으로 석상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 주었다.

    아쉬웠다.

    원래대로라면 유산으로 남겨졌어야 할 물건인데 복수를 위해 회수해야 한다는 게 그저 안타까웠다.

    헨리는 한동안 씁쓸한 눈빛으로 실더를 응시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지막이 실더에게 주문을 외웠다.

    “……다했고수 안동그.”

    쩌적, 쩌저적!

    헨리가 외운 주문은 실더의 수명을 거두는 최후의 주문이었다.

    헨리가 주문을 외우자 이윽고 실더의 몸에 금이 가더니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파스슷.

    부서진 석상은 모래가 되었다. 모래는 무덤처럼 소복하게 쌓였다.

    헨리는 짧은 묵례로 실더의 마지막을 빌어 주었다.

    “여기 있네.”

    쌓인 모래 속에 손을 넣자 조그마한 나무 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함은 수십 년 전에 넣어 두었던 그대로였다.

    딸깍.

    별도의 잠금장치는 없다.

    나무 함에 힘을 주어 열자 그 안에는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보랏빛 구체가 들어 있었다.

    -주인님, 이건 뭔가요?

    헨리의 어깨 위로 올라온 클레버가 물었다.

    “베놈이라는 마족의 심장이다. 이 녀석의 심장을 먹으면 세상 모든 맹독에 면역이 되고 몸속의 피 또한 아주 치명적인 맹독으로 변하게 되지.”

    -해독제는 없는 건가요?

    “있어.”

    -다행이네요.

    해독제가 있다는 말에 클레버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드디어 손에 넣었다.’

    동방에선 세상 모든 독에 대한 내성을 가지는 경지를 일컬어 ‘만독불침’이라고 한다.

    그리고 베놈의 심장은 그 만독불침을 가능하게 해 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약이었다.

    헨리가 수많은 보물들 중에 베놈의 심장부터 찾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전생에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이 바로 맹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독 내성을 키우고 나약한 신체를 보완하기 위해 검술 수련을 시작하기도 했다. 오러로 잘 단련된 기사의 육체는 웬만한 독에는 내성을 가지게 되니까.

    하지만 그것은 모든 독에 대한 내성은 아니었고, 충분한 단련이 필요하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전생의 오점이자 트라우마였던 맹독에 당할 위험을 완전히 뿌리 뽑기로 했다.

    와작.

    심장을 꺼내 든 헨리는 주저 없이 그것을 입에 가져다 넣었다.

    마치 껍질이 바삭한 빵을 연상케 하는 식감이 느껴졌다.

    ‘더럽게 맛없네.’

    물론 식감만 빵과 비슷할 뿐이지 맛은 없었다.

    하지만 헨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것을 선 자리에서 모두 먹어 치웠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그래.”

    베놈의 심장이 몸속으로 흘러들어 가자 전신이 후끈해졌다. 마치 데운 술을 한 병 마신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헨리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주인님, 그건 뭐예요?

    “독.”

    -예?

    맹독, 프라시아의 죽음.

    이것은 헨리의 모든 것을 앗아 간 실버 잭슨이 건넨 바로 그 독이었다.

    -그, 그걸로 어쩌시려고요?

    “약을 먹었으면 한번 시험을 해 봐야지.”

    -예, 예?

    대답을 마친 헨리는 그것을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꿀꺽.

    한입이 채 되지 않는 양이었다.

    하지만 농도와 양, 모든 게 전생의 그것과 똑같았다.

    병은 깨끗하게 비워졌고 보랏빛을 넘어 거무죽죽하기까지 한 프라시아의 죽음은 순식간에 헨리의 식도를 타고 넘어가 전신을 헤집어 놓았다.

    덕분에 클레버만 깜짝 놀랐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헨리가 말했다.

    “……멀쩡하네.”

    -괘, 괜찮으세요?

    “효과는 확실해.”

    원래대로라면 식도를 넘어가자마자 내장에 용암을 들이부은 것처럼 고통스러워야만 했다.

    그리고 몸 곳곳에 뻗어진 마력의 혈맥을 틀어막고 끊임없이 장기를 괴롭혀야 정상이었지만, 맹독을 마신 헨리는 한없이 멀쩡했다.

    볼일을 마친 헨리는 입술에 묻은 맹독을 혀로 쓱 핥아 보인 후 중대로 유유히 복귀했다.

    * * *

    이튿날.

    헨리는 아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행정실로 들어섰다.

    “아이고, 우리 헨리 소대장 왔어?”

    살로몬의 태도가 부쩍 살가워졌다. 그것은 보그나 휴고 또한 마찬가지였다.

    “헨리 소대장은 당분간 푹 쉬도록 해. 대장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셨으니까.”

    “대장님께서 말입니까?”

    “어, 그래. 아무래도 특임 대원 전체가 입원해 있으니까 쉬면서 전투력을 다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

    “알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이거.”

    살로몬 중대장은 휴가 소식과 함께 헨리에게 조그마한 쪽지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너한테만 따로 떨어진 공문. 관사로 돌아가서 한번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이런 식의 공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외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어 헨리는 짧은 묵례 후 다시금 관사로 복귀했다.

    ‘무슨 공문이지?’

    관사로 복귀한 헨리는 가장 먼저 접힌 쪽지부터 펼쳐 보았다.

    “이건…….”

    쪽지의 내용물을 확인한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나 오늘 휴가야, 그러니 점심이나 함께 하자. 관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살로몬이 공문이라고 건넨 쪽지는 다름 아닌 티니의 개인 쪽지였다.

    헨리는 티니를 대담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장난칠 수 있는 사람 또한 그녀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중대의 공문 대부분이 티니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얼마간 고민하던 끝에 흔쾌히 그녀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그녀 덕분에 임무를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어젯밤에 그토록 찾던 보물까지 찾았으니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어디…… 간만에 기분이나 좀 내 볼까?”

    옷장을 열어젖힌 헨리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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