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0화 (20/522)

# 20

교육대 (3)

일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어떤 이는 헨리의 괴력에 경악했고 어떤 이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경악했다.

그리고 로난은 몸이 던져지는 와중에 몸무게가 돌아와 벽면에 부딪히며 엄청난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빨갛게 달구어진 상체는 흡사 광전사를 방불케 했다.

헨리는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땀에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장교님.”

“어, 어……?”

“판정 내려 주셔야죠.”

“어, 어! 그, 그래! 승자는 헨리 생도.”

누구도 헨리의 승리에 이견을 표하지 않았다.

다만, 단순히 긴장만 하고 있던 다음 도전자들은 로난의 패배를 목격한 순간부터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헨리는 뜨겁게 달구어진 몸을 식히며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서운 놈.’

로난은 베른 이후 처음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 사람이었다.

헨리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쓰러진 로난에게로 다가가 눈을 맞추었다.

“괜찮냐?”

로난은 멍한 눈동자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헨리가 말을 건네자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됐어.”

퉁명스러운 대답.

수석의 자존심이 무너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귀여운 놈.’

헨리는 뾰로통해진 로난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뻐근해진 목 관절을 휘휘 돌리며 구경 중이던 동기들을 향해 말했다.

“다음 도전자 나와.”

한 사람만 더 쓰러뜨리면 공동에서 단독 수석이 된다. 헨리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도전자들은 하나같이 시선을 피했다.

‘쫄기는.’

비록 편법으로 이기기는 했으나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마법 또한 자신이 가진 힘들 중 하나였으니까.

헨리는 전체적으로 위축된 분위기를 알아채자마자 기선 제압이라도 할 요량으로 일부러 도전자들에게 다가가 시선을 맞추었다.

“너 아직 나랑 안 붙었지? 나와.”

“아, 아냐! 됐어, 난 그냥 기권할게!”

붙어 보지도 않고 꽁무니를 빼는 동기를 보며 헨리는 자존심도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은 동기들에게도 대련을 종용해 보았지만 대답은 매한가지였다.

답답함을 느낀 헨리가 교육 장교를 쳐다보며 말했다.

“장교님, 어떡할까요? 전부 기권한다고 하는데요.”

베릭은 자신의 교육 장교 생활 중 난생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좀처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무려 수석을 집어 던진 괴물이었다. 그런 놈을 상대로 박투술이라니, 현재의 생도들에겐 더없이 버거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꺾인 의지를 수긍해 주어서도 안 될 문제였다.

이들은 병사들을 아울러야 할 차기 지휘관들이었으니까.

“이런 겁쟁이 같은 놈들! 다들 뭐 하는 거야! 니들이 그러고도 장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죄송합니다!”

“당장 다음 놈 튀어나와!”

교육 장교의 고함에, 남은 도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순서를 정해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호흡을 다시 가다듬는 헨리와 죽을상이 되어 앞으로 나서는 도전자들.

이 상황은 흡사, 호랑이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생쥐 떼를 연상케 했다.

* * *

이론 수업에서의 만점.

박투술 테스트에서의 만점.

검술 테스트에서의 만점.

이 모두가 오늘 하루 동안 헨리가 이룩해 낸 업적들이었다.

덕분에 교육대는 난리가 났다.

이론 수업에서 만점을 받는 생도는 더러 있었지만 기량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는, 그것도 박투술과 검술 두 가지 모두 만점을 기록한 생도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화려한 데뷔전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이셀란 또한 집무실에서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크하하핫! 그 미친놈! 내 그럴 줄 알았다!”

자칫 잘못하면 낙하산이라는 인식을 심을 수도 있었건만 헨리는 멋지게 그 오명을 씻어 냈다.

아니, 씻어 내다 못해 교육대의 전설적인 인물로 등극하고 말았다.

* * *

헨리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방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음?”

헨리는 바로 수업에 투입되느라 보지 못했던 룸메이트의 얼굴을 그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룸메이트는 공교롭게도 밀려난 일인자, 로난이었다.

헨리는 로난과 잠깐 동안 눈이 마주쳤지만 로난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마치 말 한마디 섞기 싫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야, 아직도 삐진 거야?’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로난은 박투술에 이어 검술 수업에서까지 수석 자리를 맡고 있던 놈이었다.

그런데 그런 로난을 두 번이나 차석으로 밀어냈으니 헨리가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후후, 귀여운 놈.’

사내로서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헨리에게 기가 꺾이지 않고 끝까지 투쟁했던 놈이다. 게다가 가진 실력만큼이나 자존심도 무척이나 세 보였다.

헨리는 그런 놈들을 좋아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함에 분해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헨리는 손주뻘쯤 되는 로난이 그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로난이라고 했나? 통성명이나 하지. 내 이름은 헨리 모리스다.”

좋든 싫든 몇 주는 같이 지내야 할 놈이었다.

약해 빠진 다른 놈들은 어떨지 몰라도 저 녀석과는 친분을 쌓아 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꽤나 높은 집 자제일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로난은 유독 다른 동기들에 비해 고급스러운 기품이 흘러넘쳤다. 저것은 결코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헨리는 혹시라도 그가 높은 집안의 자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황궁의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헨리의 인사에 로난은 한동안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인사에 답했다.

“로난 포람이다.”

‘포람?’

순간, 헨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포람이라면 그 킹턴 포람의 포람가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포람이라면 혹시?”

“그래. 나는 포람 가문의 양자다.”

킹턴 포람.

은퇴한 바할드 경을 제치고 제국 제일검에 등극했으며 기사왕과 그랜드 마스터의 칭호를 가져간 남자.

하지만 그런 남자라고 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제도의 의무를 등한시할 순 없었다.

‘그런 사정이었나.’

보통은 스스로가 양자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는 경우가 흔치 않다. 양자는 곧 가문에서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러나 로난은 스스로를 양자라고 미리 밝혔다.

그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헨리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어쩐지 발재간이 희한하더라니, 그럼 너도 포람의 검술을 익혔겠네?”

그래서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로난의 성을 듣자마자 왜 그런 보법을 사용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런 종류의 박투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검술도 마찬가지였고. 정체가 뭐냐?”

고지식할 줄로만 알았던 녀석은 의외로 대화가 통하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점점 더 대화를 나눌수록 두 사람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채 대화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너는 대체 정체가 뭐냐? 이론 시험도 만점에 박투술에 검술까지 만점을 받다니. 아버지도 괴물이지만 너한테서도 괴물의 싹이 보인다.”

“그 쉬운 걸 못하는 너네가 바보라는 생각은 안 해 봤고?”

“재수 없는 새끼.”

“크크크, 꼬우면 다시 붙든가.”

둘 다 스무 살의 동갑내기였다.

헨리 또한 알맹이는 여든 노인이었지만 육체가 젊어져서 그런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사고방식이 젊어지는 듯했다.

“그래도 네가 중간에 합류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왜?”

“너도 붙어 봐서 알겠지만 동기 놈들 실력, 형편없잖아.”

“그건 나도 동감한다. 지휘관 생도라는 놈들이 하나같이 그 모양이라니.”

대부분이 로난처럼 군역을 대신 치르기 위해 거두어진 양자일 것이다.

양자들은 군역을 위한 소모품으로 길러지기 때문에 대부분이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긴 그게 그놈들 잘못이겠냐마는.’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소모용 양자들은 가문에서 오랜 세월 동안 물건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오게 마련이기에, 보통 자존감이 엄청나게 저하된 상태다.

집안의 시종보다는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으나 직계 혈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푸대접을 받게 되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갈취된 자존감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 여파는 입대 후에도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놈들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겠지.’

이 또한 윗대가리가 썩었기 때문에 생겨난 수많은 나비효과 중의 하나였다.

덕분에 헨리는 다시 한 번 황제에 대한 분노를 곱씹을 수 있었다.

“그럼 너도 아카데미 출신은 아니겠네?”

“당연한 소릴. 나 같은 양자들은 꿈도 못 꾸는 곳이지.”

담담하게 자신의 처지를 읊조리는 로난을 보며 헨리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생각보다 더 엄청난 놈이었군. 아카데미 출신도 아닌데 그런 실력이라니.’

그는 천재가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겨우 스무 살짜리가 한 번의 각성과 검왕의 검술까지 익힌 자신을 거의 한계치까지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다른 양자들에 비하면 좀 나은 편이야. 보통은 양자들에게 가문의 검술 같은 건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

“그럼 너는 어떻게 배웠는데?”

“싸워서 얻어 냈지.”

“싸워서?”

“설마 양자가 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은 아니겠지?”

로난의 말에 헨리는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귀족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수많은 양자들을 입양했을 것이다. 그리고 로난은 그중에서 유일하게 포람의 검술을 익혔던 것이다.

‘정말 아까운 인재다.’

썩어 빠진 제도와 귀족 놈들의 욕심만 아니었더라면 아카데미의 입학을 통해 출셋길을 달렸을지도 모를 인물이 로난이었다.

헨리는 문득, 엄청난 재능을 가진 그에게 욕심이 생겼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은 대부분이 죽었고 그 외의 사람들은 자신을 우러러보았을 뿐이지 친구처럼 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좀 낯간지러운 방법이긴 했으나 직설적인 화법으로 친분을 쌓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난.”

“응?”

“우리 친하게 지내자.”

“뜬금없이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냥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미친놈.”

그러나 그 방법은 제법 먹힌 듯했다.

친하게 지내자는 말에 로난이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로난.”

“왜?”

“넌 군역을 마치고 나면 어쩔 셈이냐?”

헨리는 그의 행보가 궁금했다.

어차피 의무를 위해 이곳으로 보내진 몸. 군역이 끝나고 나면 가문에서도 필요 없는 인물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글쎄. 거기까진 딱히 생각 안 해 봤는데.”

“혹시 가문으로 돌아가거나 그래야 하냐?”

“사실 잘 모르겠다. 돌아간다고 한들 환영해 줄 것 같은 사람도 없거든. 내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직계 혈통을 이길 순 없을 테니까.”

“그래?”

맞는 말이었다.

로난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양자들 중에서나 뛰어날 뿐, 한낱 도구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게 포람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리는 오히려 그런 포람의 어리석음에 감사했다.

아무도 줍지 않을 원석을, 자신이 주워다 세공하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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