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9화 (19/522)

# 19

교육대 (2)

점심 식사 이후, 오후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훈련 생도들에게 헨리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헨리 생도는 비록 교육 기간 중에 합류하였지만 첫 주에 치르는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따라서 오늘부터 함께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헨리 생도, 동기들에게 인사하도록.”

“헨리입니다. 반갑습니다.”

가문이나 신분은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 있는 모두가 귀족가의 자제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짝짝짝짝.

소개를 마치자 형식적인 박수가 이어졌다. 그 누구도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통성명은 수업이 끝난 후에 하도록 하고 이제부터 오후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교육대는 보통 오전에는 이론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무예를 익힌다고 했다. 자고로 지휘관이란 문무를 겸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박투술부터 시작하도록 하겠다. 박투술 연습에 앞서, 헨리 생도는 앞으로 나오도록.”

이름이 불리자 헨리는 앞으로 나가 기립 자세를 취했다.

“헨리 생도는 첫날이니만큼 자신의 기량부터 확인하도록 한다.”

“예, 알겠습니다.”

“기량 테스트는 다음과 같다. 생도는 지금부터 동기들과 일대일 대련을 시작한다. 대련은 생도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거나 여기 있는 생도들이 모두 쓰러지면 종료된다. 그럼 헨리 생도와 제일 먼저 맞붙어 볼 생도?”

교육 장교가 지원자를 모집하자 몇 명의 생도가 손을 들었다.

‘무제한 대련이라는 거네.’

마탑에서도 똑같은 테스트가 있었기에 헨리는 이 룰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헨리는 동기들의 수를 대충 눈으로 가늠했다.

‘대충 스무 명 정도인가.’

대련에 앞서, 헨리가 질문했다.

“장교님.”

“왜 그러나?”

“혹시 기량 테스트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은 생도의 성적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열 명이다.”

“감사합니다.”

열 명. 전체 숫자 중 딱 절반이 되는 수였다.

헨리는 왠지 모르게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은 니드부터 시작한다. 니드 생도는 앞으로.”

“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비슷한 신장과 체형을 가졌다.

두 사람은 교육 장교의 지시대로 상의를 탈의한 후 대련장 앞에 섰다.

“눈을 찌르거나 급소 가격, 깨물기 등 비열한 수법을 사용할 경우, 그 즉시 패배로 간주한다. 그럼 시작해라.”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헨리는 짧게 자른 노란 머리의 니드를 말없이 응시했다.

그의 신체는 잘 단련되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키는 헨리보다 훨씬 작았다.

‘우선은 한 놈.’

박투술을 이용한 싸움은 처음이었다. 더불어 베른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의 대인전 또한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렵거나 그러진 않았다. 또한 설렁설렁 할 생각도 없었다. 교육대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은 이셀란의 귀에 들어가게 될 테니까.

헨리는 그 때문에라도 압도적인 성적을 거둘 필요가 있었다.

헨리는 왼발을 앞으로 살짝 뻗은 후 두 주먹을 들어 올려 가장 정석적인 준비 자세를 취했다. 제국 박투술의 자세였다.

그러자 니드 또한 헨리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음?”

하지만 둘 다 같은 자세를 취했다고 생각하던 순간, 헨리의 왼손이 앞으로 길게 뻗어졌다.

‘저건 또 뭐야?’

처음 보는 자세였다.

기본적인 제국 박투술의 자세를 취하되 왼 주먹을 길게 내뻗은 자세.

하지만 준비 자세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 니드가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

“흡!”

호흡을 짧게 삼킨 후 허리를 숙여 갈비뼈 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런데…….

‘어, 어?’

갈비뼈 쪽으로 파고들었으니 당연히 오른팔을 내려 상체를 막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헨리는 수비가 아닌, 뻗은 왼손을 아래로 내려 니드가 파고든 위치로 주먹을 갖다 댔다.

주춤.

긴 팔 길이, 그리고 창처럼 뻗어진 왼손.

그 때문에 니드는 갈비 쪽으로 파고드는 것에 실패했다.

더불어 길게 뻗어진 왼손 때문에 순간적으로 눈앞의 시야가 가려졌다.

콱!

헨리는 니드가 주춤거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시야를 빼앗겨 잠깐 동안 주춤거리는 사이, 헨리는 카운터로 사용하는 오른 주먹을 아래로 내뻗어 니드의 오른쪽 목덜미를 가격했다.

“컥!”

목덜미 또한 급소에 해당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 지망생들은 목 근육을 충분히 단련했으므로 이 정도 일격에는 즉사하지 않는다.

대신.

털썩!

턱과 어깨 사이를 정확히 가격당한 니드는 엄청난 고통에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헨리의 승리였다.

“……어?”

“저, 저게 뭐야?”

“설마 니드가 기절했다고?”

검술보다 박투술에 더 재능이 있는 니드였다.

그는 스무 명의 동기들 중 박투술로만 세 번째로 높은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합 만에 기절한 니드를 보고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한 번의 수비와 한 번의 공격.

그 두 가지를 한 번의 연계 동작으로 끝내 버린 헨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도전자를 기다렸다.

* * *

‘이걸로 아홉 명짼가.’

박투술 최고 성적인 열 명을 해치우기까지 이제 겨우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압도적인 승리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제국 박투술을 사용하다 보니 처음 보는 헨리의 방식에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헥터 그 녀석, 참 대단한 것 같단 말이야.’

그렇다. 헨리가 구사하는 박투술은 헥터의 것이었다.

그의 공격적인 무예는 검술뿐만이 아니라 박투술에까지 이어졌는데, 두 가지 박투술을 모두 익힌 헨리는 검술처럼 또 하나의 박투술을 창조해 냈다.

그 덕분에 제국 박투술만을 익힌 동기들은 맥도 추리지 못했다.

‘대체 저놈은 정체가 뭐야?’

대련을 지켜보던 박투술 교관, 베릭은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쩌면 신기록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기량 테스트는 교육 장교들이 벌인 일종의 촌극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어느 정도의 박투술 수업을 거친 후에야 기량 테스트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헨리가 중급 지휘관용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낸 덕분에 자연스럽게 무예는 어떨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그 결과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정말 일대장님께서 키우시는 차기 수행 기사란 말인가?’

처음 한두 명은 그러려니 했다. 우연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대련을 거듭할수록, 제국 박투술을 뛰어넘는 신묘한 기술들의 연속에 이상야릇한 괴리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열 번째 도전자가 호명되는 순간이었다.

“로난 생도 앞으로.”

길쭉한 체형과 탄탄한 근육, 그리고 정돈된 금발과 상처 없는 하얀 피부.

누가 봐도 지체 높은 집 자식임을 알 수 있는 증거였다.

교육 장교가 말했다.

“로난 생도는 현재 박투술 수업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헨리 생도가 로난 생도를 제압하게 되면 로난 생도와 함께 나란히 공동 수석이 된다.”

“예.”

수석을 쓰러뜨리면 당연히 자신이 수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싶었지만 기량 테스트는 순전히 쓰러뜨린 사람의 숫자로만 성적을 판단했다.

헨리는 눈썹을 한번 으쓱여 보인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샌님같이 생겼는데 수석이란 말이지?’

바로 전에 차석을 쓰러뜨렸던 헨리는 결승전을 치르는 마음으로 다시금 왼손을 뻗었다. 헥터식 준비 자세였다.

그러자 금발을 빼닮은 로난의 황금빛 눈동자가 헨리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시작!”

경기가 시작되었다.

헨리는 아홉 명의 도전자를 쓰러뜨렸음에도 불구하고 타격을 거의 입지 않아서 그런지 호흡이 안정적이었다.

‘이번에도 마법 무장은 할 필요도 없겠군.’

굳이 마법 무장을 두르지 않아도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 주고 있던 차였으니까.

게다가 검술을 익힌 뒤부턴 정말로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스스로의 수련을 위해 웬만해선 마법 무장을 두르지 않게 된 헨리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탐색전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수석은 좀 다르다는 건가?’

앞서 도전했던 놈들과는 달리 로난은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눈동자로 끊임없이 헨리를 주시했다.

자세는 같았다. 그 또한 제국 박투술의 사용자인 듯했다.

모두가 숨을 참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좀처럼 탐색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는 헨리가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수석인데 한 번쯤은 자존심을 세워 주지.’

단 한 번도 선공을 펼친 적이 없던 헨리가 먼저 움직이자 구경꾼들의 눈동자에 불꽃이 지펴졌다.

헨리는 원을 그리는 척하며 순식간에 헥터 스텝으로 변환시켜 거리를 좁혔다. 그런 다음 게헨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속임수와 함께 원을 그리며 뒤를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빡!

그 순간, 로난의 뒷발차기가 날아오며 헨리의 팔꿈치를 가격했다.

얼얼했다.

테스트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치게 만든 공격이었다.

‘오?’

이번에도 적당히 치면 억 하고 쓰러질 줄로만 알았건만.

하지만 그래서인지 헨리는 더욱 기뻤다.

여태껏 잔챙이만 사냥하다 드디어 제대로 된 사냥감을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군.’

헨리의 선구안이 말했다, 저놈은 확실히 다르다고.

쉭!

로난이 움직였다.

그 또한 원을 그리며 서클 스텝을 밟는 듯했다.

그런데 오른발이 완전한 원을 그리기도 전이었다.

‘음?’

원을 그리던 오른발이 갑작스레 꺾이면서 날카로운 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좁혀진 각은 예리한 칼날처럼 순식간에 앞으로 뻗어졌다.

‘다른 스텝?’

서클 스텝이 아님을 눈치챈 헨리는 일부러 공격을 회피하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재간을 파악하는 것보단 차라리 난투전으로 화끈하게 실력을 가리는 것이 오히려 나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빡! 빡! 빡!

오른팔, 왼쪽 정강이, 오른쪽 무릎.

단련장에는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마치 거울 속의 자신과 싸우듯이 두 사람의 동작은 상당히 닮아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오러가 없으니 순전히 육체적인 힘만으로 진검 승부를 벌였다.

보는 이의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거센 결투의 연속이었다.

한쪽이 얼굴을 내주면 상대방은 가슴께를, 한쪽이 가슴께를 내주면 상대방은 복부를 가격했다.

퍼억!

뻗어진 주먹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가격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음 수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콰직!

거울 같은 공방전이 계속됐다.

덕분에 두 사람의 상체는 불에 달구어진 쇠처럼 점점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독한 놈!’

지고 싶지 않았다.

합을 겨룰수록 헨리는 점점 더 욕심이 났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실력이 자웅을 겨루기 쉽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그 순간, 로난이 상체를 숙여 헨리의 허벅지를 휘감더니 앞으로 넘어졌다.

‘어, 어?’

순식간에 무너지는 헨리.

덕분에 자세가 무너진 헨리는 바닥을 나뒹굴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로난은 곧바로 헨리 위로 올라타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

“끝이다.”

주도권을 잡은 로난의 무차별적인 폭격이 시작됐다.

헨리는 두 팔을 모아 얼굴을 감쌌다.

고통스러웠다. 굉장한 대미지 덕분에 금방이라도 팔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 때문인지 불현듯, 헨리의 머릿속에 패배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절대 안 되지!’

동등한 조건을 가졌을 때 승패는 찰나의 순간에 좌우된다.

하지만 헨리는 로난과 동등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헨리가 마지막으로 숨겨 둔 패.

그것은 바로 마법이었다.

‘라이튼 그램!’

대상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마법.

마법을 시전한 순간, 헨리의 가슴을 깔아뭉개고 있던 로난의 몸무게가 순식간에 어린아이처럼 가벼워졌다.

“으아아아!”

그 순간, 헨리가 괴성을 지르며 상체를 일으켰고, 무게가 가벼워진 로난은 속절없이 뒤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 어?”

로난의 표정에 당혹감이 드리웠다.

헨리는 그 즉시, 넘어진 로난의 발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끝이다.”

헨리는 가벼워진 로난의 발목을 붙잡은 채 있는 힘껏 벽을 향해 그를 집어 던졌다.

‘라이튼 그램, 캔슬!’

콰앙!

벽면에 부딪힌 로난의 몸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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