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225화 (225/248)
  • “그럼 백아리아와 흑아리아로 정리한다. 이해했지?”

    백아리아는 지금 옆에 흰 옷을 입고 있는 아리아스필을 뜻하는 호칭이었고.

    흑아리아는 성검 안에서 검은 갑주를 입은 아리아스필을 명명하는 명칭이었다.

    특징적인 부분으로 불쾌감 없이 구분했기 때문인지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레오나르도가 아리아스필 본인까지 설득했으니 문제될 것도 없었기 했고 말이다.

    “어쨌든 성검에 있는 흑아리아는 목적이 모호해. 널 없애는데 개인적 감정도 있겠지만 대의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사실 이 추측은 대부분 심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라면 이런 주장에는 신빙성은 없기 마련이었지만.

    아리아스필에 대한 감정 하나로 이곳에 온 레오의 말인 것으로 근거는 충분했다.

    {...하지만 성검에 사람의 영혼을 담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앤젤라는 의아한 기색으로 성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검에 본디 그런 기능이 있다면 성녀인 자신은 모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초대 성검을 사용한 루벤의 영혼도 없는 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동방에는 검의 극의에, 정확히는 한 무구의 극치에 도달하면 하나의 경지에 오른다고 하더군.”

    [신검합일 말하는 거냐?]

    현자라는 이름이 장난이 아니듯 그는 동방에 대한 지식 또한 박식했다. 레오나르도조차 현자가 전문용어를 알고 있자 짐짓 놀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느낄 때 있잖아. 지금 쓰는 도구나 무기가 한 몸이 되는 감각.”

    알고 있다. 알 수밖에 없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 한 분야에 달인의 경지에 오른 이들, 출중한 재능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영웅들이었으니까.

    “신검합일은 그 감각이 모든 상황에 계속되는 거야. 뜻 자체가 몸과 검이 하나가 된다는 거거든.”

    말그대로를 넘어 지금은 보이는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믿어야할 근거가 있음에도 믿기지도 않는사실에 모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다지 놀랄 거 없잖아. 크리스도 반 정도는 신검합일인데.”

    “...예!? 제가 말입니까!?”

    반지를 찼을 뿐임에도 빠르게 안정된 크리스는 다시 놀란 표정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자신이 단검술과 쌍검술에 달인인 걸 알고 있었지만, 신검합일에 도달한다는 자각은 전혀 없었다.

    “정확히는 재능이 뛰어난 네가 너무 검에 몰입한 나머지, 마검에 잠재된 새로운 능력을 끌어낸 거니까 애매하긴 하지.”

    실제로 근본적인 무재가 없는 레오나르도는 얼터 블레이드를 쓰고 또 써도 분신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만큼 신검합일은 신의 경지라고 봐도 무방해. 무기가 뛰어날수록 소유주의 기량은 그 이상이 되어주어야지.”

    레오나르도는 눈앞의 아리아스필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초대 용사보다 센 게 아부는 아니었나봐.”

    불세출의 천재라는 여자가 뻘쭘하면서도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하는 게 지금은 웃기기만 할 뿐이었다.

    “...또다른 저는 성검의 신검합일이라는 경지에 오른 거군요.”

    “죽어서까지 성장하는 독종이라니까. 아리아스필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그렇게 재수없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지금까지 알게 된 정보를 정리했으니 이제는 방침을 정할 때였다.

    그에 대한 명령은 전적으로 레오나르도에게 주도권이 있었다. 이제는 멋대로 판단해서 실책과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떡하고 자시고도 없어. 지금은 내실부터 다지는 먼저지. 마왕에 대한 정보가 현저히 부족해.”

    적에 대해 잘 모르고 공격하는 것은 늦든 빠르든 자멸로 이어진다. 설사 안다 해도 그에 맞는 내실을 다지지 못하면 제대로 된 방법을 쓸 수도 없을 것이고.

    “...그... 외람...”

    좌절하고 있던 에일린은 힘겹게 회복하며 대화에 참여하고자 했다. 다만 차마 염치가 없어서 입을 열기가 고역스러웠을 뿐.

    “허락했으니 씨부려봐.”

    “...예예! 감사합니다!”

    레오나르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에일린은 부라나케 입을 열었다. 이미 정신적인 조련은 끝난 눈치였다.

    “...만약 내실을 다지는 도중에 마왕이 쳐들어오면 어떡합니까? 아니면 성검 속 용사가 독단행동을 벌인다면...”

    이내 에일린은 다시 눈치를 보았다.

    자신이 직접 한 짓은 아니었지만 이미 영상 속 악행 아닌 악행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거리감을 둔 후였다.

    어떤 반론이 나와도 이상할 건...

    “역시 이런 계략 쪽에는 제법 머리가 돌아가네.”

    그 얼어있는 분위기를 깨준 건, 이 공기를 형성한 레오나르도 본인이었다.

    “에일린 네 말대로 마왕과 성검, 둘 중 하나라도 돌발행동을 하면 큰일이야. 이런 식의 지적은 자주 하라고. 나도 완벽한 건 아니니까.”

    동시에 얼어있는 에일린을 풀어주며 자신의 완벽하지 않았다는 걸 알린다.

    그것으로 자신에게 과중하게 쌓인 의존을 풀어낼 필요가 있었다.

    레오나르도 본인도 스스로가 완벽한 리더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아니까.

    [거짓말치긴. 대비책 준비해뒀잖아.]

    현자만이 그 속내를 알아채어 지적해주었다.

    레오나르도가 자기 입으로 지적을 해달라 했으니 그대로 따라주는 거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안전책 정도는 있어.”

    이내 레오나르도는 자신을 엄지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만한 행동처럼 보였지만 근거가 있는 자신에서 나온 신호였다.

    “너희들 내가 어떻게 광전사가 있는 곳까지 갔다고 생각해?”

    “...그건 현자님이나 아인이가...”

    겉모습만큼은 확실히 소년소녀인 현자와 아인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저들은 처음에 계획대로 위치를 알리지 않고자 했으니까.

    “그릇인 내가 적진에서 안 싸우는 게 하는 발상 자체는 올바르지. 왜냐하면...”

    레오나르도는 지금도 기억한다.

    광전사의 포효가 자신의 입에도 울리고.

    그 괴물이 뜯어먹은 인육을 먹은 감각을.

    “나도 엄연히 마왕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거든. 일부가 되어가면서 광전사의 위치도 알아낼 수 있게 됐어.”

    “...예?”

    짧게나마 다들 되물었다.

    너무 엄청난 고백에 모두가 경악해버렸다.

    모두 레오가 마왕의 그릇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비어있는 형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럼 마왕도 이 내용을 듣고 있는 거 아닙니까...?”

    마왕도 이 정보를 알고 있을 거라는 위험감, 거기에 더해 레오나르도가 지금 마왕에게 정신 침식 당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었다.

    “다행히 현자 양반 말로는 정신오염이나 지배는 당하지 않는다더군. 실제로 신전에서 전용으로 사용되는 사형수 포박쇠사슬까지 써서 확인했잖아?”

    현자는 자신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이들은 짐짓 놀란 듯 레오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그것까지 노려서 사형수로 들어간 걸까, 다들 소름을 느낀 것이었다.

    “하물며 이건 증거기도 해. 내 위치를 알아도 공격할 수 없는 근거.”

    “...그쪽도 손실을 입었다는 거군요.”

    광전사를 죽이는 건 당연하게도 마왕 쪽에도 타격을 줬을 것이다. 애초에 간단히 광전사 같은 괴수를 소환할 수 있었다면 진작 해서 쓸어버렸을 테니까.

    “하물며 내 상태가 심각해져서 우리 쪽의 계획을 안다해도 상관없어.”

    “...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전략을 파훼당하는 건, 당연하게도 모든 전투 상황에서도 좋지 않다.

    레오나르도도 그 유출 자체가 타격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다만 그 타격이 미미할 정도로 의미 없었을 뿐.

    “너희, 1회차 때 내가 라인하르트에 있는 아리아스필을 이기려고 죽도록 발버둥친 거 알고 있지?”

    “...아...”

    굳이 돌려서 답변하지 않아도 표정이 대답해주고 있었다.

    아리아스필조차 이에 대해서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레오의 인생에 극도의 변곡점이 생긴 건 아리아스필에게 끝없이 패배하면서 생긴 오기에 있으니까.

    “근데 내가 왜 한번도 못 이겼는지 아나?”

    [그때 네가 약하고 아리아스필이 세서.]

    {현자...!}

    현자의 직설적인 말에 앤젤라는 황급히 말렸다.

    지금 레오나르도의 정신 상태는 너덜너덜할 터, 저런 말을 듣는다면 누구라도 상처가 생길 것이다.

    “왜 내가 댁 같은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는지 납득은 되네.”

    [그걸 지금에서야 아냐?]

    “너무 거만 떨지 말라고. 애늙은이.”

    두 사람만이 대화가 통하자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현자라는 칭호에 걸맞는 사람들이 이 둘이기에 일어난 상황이기도 했다.

    “움직임이 잽싼 녀석이면 다리를 분지르고, 저격이 특기인 녀석이면 눈알을 찌부러뜨리면 돼. 힘이 센 녀석은 원거리에서 쏴죽이면 되고. 자존심이 높은 새끼면 도발로 흔들면 그만이야.”

    레오나르도는 10살 때부터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특기가 있다면 그 특기를 악착같이 못 쓸 상황을 만들고, 그에 따른 약점을 집중적으로 후벼판다.

    전략적으로 그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근데 아리아스필은 그게 안 먹혀. 왜냐.”

    하지만 그런 전략에게도 난적은 당연히 존재한다.

    너무나 당연한 거다.

    “정석적으로 단련하고, 그에 따라 이상적으로 강해진 녀석을 무슨 수로 이겨. 그런 거에는 전략이고 나발이고 안 먹히거든.”

    틀린 말은 결단코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2회차 레오나르도가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은 무수한 경험과 그에 따른 성장속도, 거기에 아리아스필이라는 인간을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었으니까.

    그건 다르게 말하면.

    “안 믿기겠지만 난 정석을 엄청 좋아해.”

    마왕은 지금 1회차의 레오나르도나 다름없었다.

    “정석적으로 싸우는 건 싫어도, 강해지는 거는 아주 좋아한다고.”

    지금 상황은 유리하지 않을지언정, 극단적으로 불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실을 다진다해도...”

    “괜찮아. 문제만 알아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게 정석이라는 거거든.”

    자신만만하게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난 엄청 앞서 있는 사람이지.”

    비유적인 의미로도, 직접적인 의미로 해석해도 완벽히 부합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레오만큼 앞서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오늘은 푹 쉬고 할 일을 해야지. 아주 바빠질 거야.”

    “...그... 레오... 아니... 레이널드 님.”

    아리아스필은 호칭을 일부러 신경쓰며 레오나르도를 불렀다.

    지금 레오나르도가 고의적 한 부분을 빼가며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또다른 제가 성검을 움직인다면 어떡할 건가요?”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를 이해하고 있다.

    만약 1회차와 2회차의 레오나르도가 서로 죽이려 싸우다면 자신은 어느 쪽의 편을 들어줄 수 없다.

    게다가 어느 쪽도 설득의 여지가 없다고 가정하면 누구라도 고민에 빠질 것이다.

    열차가 달려오는 양 선로에 어제의 친구와 내일의 친구를 동시에 묶어놓으면 누가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설사 나를... 버린다 해도...’

    납득할 수 있는 처사였으니까.

    “아마 성검 속의 너는 네 20살이 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거야.”

    레오나르도는 미소를 지으며 성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도 봤다시피 난 일부러 흑아리아를 자극했어. 옛 추억을 계속 건드려서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려고 했지.”

    백의 아리아스필도 기억하고 있다.

    설마 그런 것까지 계산했을 줄은 전혀 상상치 못했지만.

    “하지만 그 녀석은 말 한 마디도 변명하지 않았어. 너희들조차 심한 잘못을 했어도 갖은 쌍욕을 들으면 노려보기라도 하는데 말이지.”

    부끄러운 사실이었지만 라인하르트의 모든 이들은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합리적인 인간일지라도 치부를 들추어 계속해 난도질하는 폭언에는 냉정한 판단은 힘들었다.

    애초에 인간은 합리화는 잘해도 합리하고는 거리가 먼 존재니까.

    “아마 죄책감이든, 양심이든 간에 내가 성검에 들어가는 걸 안 이상 그날까지 널 방해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군요.”

    설득력 있는 말에 다들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다만.

    “하지만 그럼에도 성검과 네가 폭주해서 자폭기를 시도하면.”

    지금 레오나르도는 그 이상을, 예상 외까지 생각해야했다.

    “난 즉시 네 양팔을 잘라낼 거야. 때에 따라서는 사지 전체도.”

    그 말에 모두의 눈이 벌어진다. 아무리 잔혹한 전략에도 찬성할 생각이었지만, 레오가 한 말은 이미 상식의 영역에 있지 않았다.

    “...그게... 무슨...”

    “이해를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야. 동의를 구하고 하는 말도 아니고.”

    레오나르도 본인도 잘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정신나간 계획인지.

    “하지만 현 시점에서 타협점은 없어. 아마 성검 스스로는 아리아스필을 죽일 수는 없지만.”

    성검은 애초에 용사의 도구, 인격이 있다해도 아리아 본인을 죽이는 건 까다로울 것이다.

    “기억의 동화로 아리아스필이 자기혐오로 자살이라도 한다면 그런 방식이라도 쓰는 수밖에.”

    레오나르도은 무표정하게 통보했다.

    속으로는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져도 자신만큼은 동요해서는 안 되었다.

    “절단한 부위는 냉동으로 보존하고, 용사가 필요할 때면 신성력으로 붙일 거야. 너희 두 명이라면 설비도, 능력도 충분해.”

    루미네와 에일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상식적으로 하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당화할 생각은 없어. 내가 직접 간호해주고, 건강, 산책, 위생, 식사나 기타 바라는 걸 직접 책임져도 이건 쓰레기짓이 맞으니까.”

    아리아스필이 용서한다 할지라도 레오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패륜이었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했다.

    만약 이 성검이 이 대화를 듣고 스스로 목적을 억제하길 기도해야할 뿐이었다.

    “단지 각오하라는 거야. 너희도, 아리아...”

    덤덤히 말을 이어가던 레오나르도의 말이 멈춘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음에도 지금 상황은 자신을 넘어서있었다.

    일순이었지만.

    “...네에... 알겠어요... 어쩔 수 없네요...”

    아리아스필의 볼에는 미묘한 홍조가 그려졌고, 입맛을 다시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거부가 없는 건 다행이었지만 너무 무서웠다.

    다행이라고도 생각해야 그나마 두려움이 가시는 시점에서.

    사랑스러운 공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역시 가짜 광기는 진짜 광기를 못 이겨.]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죠?}

    [알잖아.]

    {아...뇨? 솔직...히 너무 어려운데요...?}

    [...솔직히 나도 몰라. 무서워. 뭐야 저거...?]

    {오늘 밤 같이 주무실래요?}

    [좀 안아줘. 나 무서워...]

    광기 앞에서 사이가 돈독해지는 현자와 성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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