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와 외부조는 완전히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이미 광전사의 등장만으로 충분히 경악스러운데, 내부 정보를 전달해주는 사역마들과 골렘, 마도구들이 전부 먹통이 되었다.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흉흉한 비명, 그리고 광증으로 정신 이상을 지닌 채 밖으로 뛰쳐나오는 몇몇 동료들 뿐.
이미 계획과 전략이 뒤틀렸다는 건 외부에 있어도 알 수 있다.
“어떻게...!”
모두 혼란에 빠진 상태, 아메리 뿐만 아니라 다른 잔뼈가 굵은 인물들마저 판단력이 흐려졌다.
설마 대부분의 마수, 마인, 흑마법사까지 공략했는데 단 한 명의 적 앞에서 지금 용자들이 바람 앞의 낙엽처럼 쓸려나간다.
용사, 성인, 마탑주들마저 빠짐없이.
“지금 당장 지원하고 구조해야 합니다!! 이미 절반은 넘게 당했어요!!”
한 마법사가 다급히 언성을 높였다. 지금 저곳에는 자신과 함께 마법을 배워온 학우와 전우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었다.
구하고 싶다는 감정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무런 근거 없는 감정론만은 아니었다.
지금 외부에 대기 중인 2군 또한 이런 상황을 대비한 비상수단, 정석적으로 생각해도 들어가 구하는 게 맞았다.
“...잠시만요! 정보를 검토하고...!”
“흑탑주 대리!! 겁 먹을 때입니까!?”
흑탑주의 대리 권한이 있다해도 아메리는 전장에 한번 제대로 서보지 못한 초짜.
아무리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겁에 질려 돌입을 미루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입니다! 그러...!”
“그러니까 너흰 들어가면 안 되는 거야.”
그가 나타나기 전까는 말이다.
“어차피 들어가봐야 너희들은 미치거나 예비 도시락이 될 뿐이거든.”
이질적인 어투였지만 익숙한 목소리였다.
검은 가면을 쓰고, 머리까지 하얗게 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 그가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레오나르도... 기억이...”
레오나르도였...
“레이널드다.”
...지만 여러모로 무언가 문제가 크게 있었다.
그나마 현자와 아인의 존재 덕분에 들어가는데에 문제는 없었다.
***
에일린은 광전사 때와는 다른 의미로 정신이 멍해지는 걸 체감했다.
분명 패배로 기울어지던 전황이 간신히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행운의 순간임에도.
이 역전을 만들어낸 구원자를 보자 혼란은 멈추지 않는다.
“...레이널드 그레이브...? 그게 뭔...”
저 사람은 어딜 봐도 레오나르도다.
기억을 잃어 유아퇴행을 한, 라인하르트 저택에서 잠든 채 대기하고 있을 레오나르도가 분명하다.
그 증인으로서 아인과 현자마저 옆에 시선을 돌린 채 서있다.
그럼에도 저 남자는 자신이 ‘레오나르도’라는 걸 부정하고 ‘레이널드 그레이브’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을 대고 있었다.
“아가리 여물어. 에일린. 이 병신 같은 작전 떠든 아갈머리를 찢어버리기 전에.”
게다가 자신에게는 여과없는 적의를 가히 천박한 어투로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잠시지만 정말로 저 사람이 레오나르도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우선 좀 진정하고...]
“닥쳐.”
2회차보다도 낮은 저음으로 레오는 그렇게 쏘아붙였다. 현자조차 반박 하나 하지 못하고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사실 도와주러 온 것만 해도 많이 화를 참은 거였으니까.
“...죄송합니다. 아... 레오...레이널드 님...”
감정이 둔한 편에 속하는 아인도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연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직접 결정하지는 않았어도 암묵적으로나마 본인의 의지로 찬성했으니까.
“...하...”
그런 아인을 표정을 보자 레오나르도는 목죽지에서 끓어오르면서 응달진 매도를 깊게 눌러내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이 없었다.
저 광전사도 금방 정신을 차릴 것이다.
“...레이널드 님...”
광전사의 거구에게서 벗어난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에게로 달려왔다.
혈액을 지나치게 사용한 탓일까, 피부는 회백색으로 보일 만큼 창백했고 속도가 빨랐음에도 걷는 것처럼 보였다.
“...가지가지하구나. 다들.”
레오나르도의 회귀를 알고 있는 이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차라리 이기고 있었더라면 뭐라 변명이라도 할 테지만 지금 레오가 오지 않았더라면 아리아스필은 분명 광전사와 공멸했다.
“...레오...나르도...! 드디어...!!”
광전사는 가슴과 심장이 녹아버리기 직전의 중상에서도 레오를 노려보았다. 저 가증스러운 광인의 가면은 죽어서도 잊히지 않는다.
“...마왕한테 피부 관리라도 받은 거냐...”
저 검은 비늘을 보자 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고전을 했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마치 리오스에게 끝없는 장마를 내리는 비구름을 내준 것 같은 최고의 조합.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보다 정말 선배이신...”
오브의 말은 그대로 잘린다.
“드래곤의 비늘이야.”
레오는 듣고 싶은 대답 대신에 필요한 대답을 했다.
뜬금없는 대답이었지만 모두 대답에 맞다는 걸 체감했다.
저 비늘이 정말 고대에 존재했던 용족과 동일하다면, 지금까지의 마법, 신성, 기타 물리 공격이 먹히지 않은 게 납득되었다.
“비늘은 마나를 우비처럼 밀어내고, 물리공격으로 가도 때린 쪽이 더 아플 테니... 참... 더 답이 없어졌네.”
자신이 광전사를 쓰러뜨린 방법은 도저히 쓸 수 없다.
장타를 계속 날려 위장과 내부 장기를 전부 부서뜨리고 뒤섞는 방식도 쓸 수 없을 거고.
그에 따라 각종 약품을 체내에 집어넣는 방식도 먹히지 않는다. 재생의 형태로 보건데 이미 저 광전사의 피에는 용혈이 흐를 것이다.
[...방법 알고 있잖아.]
“그래. 방법은 있지.”
현자를 보는 이는 그나마 레오나르도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미친 것처럼 혼잣말을 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
“야, 나한태서 한... 10걸음 떨어진 새끼들은 부상자들하고 정신병자까지 데리고 밖으로 나가.”
10걸음 이내에 있는 사람들은 1회차든 2회차든 레오나르도와 연이 깊은 이들.
혹은 최소한의 경지에 올라 정신과 육체는 아직 통제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그 외는 마치 걸리적거린다는 듯 손을 까딱거리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대었다.
“갑자기 와선 무슨 헛소리입니까?! 아직 싸움은...!”
지금 이 자리에 버티고 있는 병사들은 전우에 대한 복수와 위치에 맞는 책임감으로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그런 감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보다 당신은...!!”
“나가라.”
에일린과 마르켄은 전후사정도 없는 명령에 목소리를 실었다.
어차피 패배하면 전원이 먹혀죽는다. 그럴 바에는 먹힐 목숨을 하나라도 줄이는 게 합리적이었다.
“...알겠습니다...!”
감정적으로 납득하지 못한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대피와 후퇴를 시작했다.
에일린은 레오와 동급의 대마법사로서 존경받았고 마르켄은 집행기사단장으로 잔뼈가 굵은 노장.
지금 레오나르도인지도 불확실한 인간의 말보다는 신뢰가 갔다.
“...이제 방법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마르켄은 황제에게도 쓰지 않을 예의로 가장 정중하게 레오에게 질문했다. 그런 태도를 본 레오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악의와 살기가 여실히 드러나있었다.
“...당장 작전을 브리핑하고 싶은데...!”
지면이 떨린다.
지진으로 봐도 무방한 진도, 그 원인이 상상하기도 싫지만 상상을 너머 현실로 부닥친다.
“레오나르도오오오오!!!”
광전사가 달려든다. 등에 거대한 상처가 아직 벌어져 있음에도 자신을 죽인 인간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날린다.
[성혈투술-어혈검]
보호용 결계를 치던 대검 판넬들이 선혈색으로 빛나며 광전사에게 날아간다.
“...아무래도 오래 못 말하겠네. 얼마나 처먹은 거야.”
레오나르도의 어검술은 분명 달인의 경지에 올랐지만 광전사의 갑피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아마 광전사 고유의 능력 덕에 자신이 비늘을 썼을 때보다 단단한 상태, 아마 자신이 전력으로 무기를 휘둘러도 1cm 이상 파이는 건 기대할 수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이 애늙은이한테 설명들어. 저 새끼가 노리는 건 나일 테니까.”
[네 계획하고 내 계획하고 완전히 똑같을 거라고 확신해?]
“안쪽에서 배를 터뜨리는 거 알아챘잖아.”
[...그럼 내가 설명한다.]
심장에 현자의 돌이 연결된 만큼 둘은 서로의 생각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자아의 연결은 아닐 테지만 지식적, 전력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수준은 비슷할 것이다.
“그럼 간다.”
“잠시만요! 도대체 누구를 말씀하는 건데요...!”
오브 뿐만 아니라 이곳에 남아있는 성기사나 황실, 신전 측 인물들은 영문을 모르는 채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금 애늙은이라는 표현에는 그나마 부합하는 인물은 아인 뿐인데, 아인은 아까부터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나다.]
그 순간, 현자는 실체화했다. 이제는 가릴 게 없었다.
“...유...! 유령...?!”
2황자는 경악했다.
[나 유령 맞고 우선 설명부터...]
“근데 어떻게 지평좌표계에 고정...!”
이내 사람들의 시선을 보자 2황자는 자신이 눈치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작전은 설명되었고 시작되었다.
***
광전사의 난격은 육중하고 무거웠음에도 풍압이 울릴 만큼 민첩했다. 아마 레오가 신성력에 갖은 장비까지 동원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일격에 맞아 미간이 으스러졌다.
“...레오나르도오...!!”
“그러니까 레이널드라니까. 개명했다고.”
마왕의 그릇을 될 레오임에도 광전사의 주먹에는 주저가 없었다. 손에 구현된 드래곤의 비늘은 최강의 건틀릿으로서 레오를 파괴시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인정하긴 싫지만, 방법 모르면 죽을 만도 하네.’
장비 없이도 최상위 포식자에게 가장 귀한 갑옷과 무기를 두르게 한 셈, 예전처럼 혼자 싸웠다면 분명 죽었다.
“용사는 네 앞에서 뜯어먹을 거다...!! 산 채로 다리와 팔을 다 뜯은 채로 계속 비명을 네게...!”
“지랄하네. 밥버리지 새끼가.”
레오나르도는 가면 뒤에서도 입꼬리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저 괴물을 비웃었다.
남의 것으로 쉽사리 힘을 쌓은 덩어리가 뱉는 말이 가증스럽다.
자신의 라이벌이자 여자를 죽이려한 괴물의 광기가 기가 차고 분노가 찬다.
무엇보다.
“걘 내 거야. 내 먹잇감이니까 나만 먹을 거라고. 주제도 모르는 식충아.”
아리아스필은 내 거였다. 저런 괴물 새끼의 피와 살이 되게 성싶은가.
죽여도 내 손으로 죽인다. 저녀석을 죽이면 그렇게 할 거다.
“내 팔 먹은 것만으로 배탈 나는 위장 병신 주제에.”
그 한 마디에 광전사의 표정이 극한으로 일그러진다. 광전사는 지면에 있는 레오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이미 판넬들은 저 괴물과 맞부친 것으로 고장나고 으스러졌다. 마법 연동기기를 억지로 연결해 쓴 것이 화근.
남은 건 레오나르도 본인의 장비와 능력 뿐이었다.
“우오오오오...!!”
레오나르도는 지면을 향해 폭렬 도끼를 휘두른다. 폭발은 충격은 레오를 뒤로 밀어내며 먼지를 일으켰다.
쿠우우우우웅!!
광전사의 주먹에 지면이 갈라지며 먼지가 아예 폭풍의 형상을 이룬다. 시야는 가려졌지만 광전사에겐 한심한 잔재주일 뿐이었다.
“...잔재주밖에 못 쓰나!?”
연막 너머로 전방위에 날아오는 견제 공격들은 비늘 안에는 간지러울 뿐이다. 연막 따위는 풍압만으로 날려버릴 수 있다.
“거기구나...!!”
냄새만으로 레오나르도의 위치는 알아내었다. 감지하자마자 그 광기의 괴수는 그대로 레오나르도을 향해 파열음을 내며 맹진한다.
“그보다 옷은 좀 입지 그래?”
레오나르도도 알고 있다. 광전사의 추적 능력이 육지의 상어 급이라는 건.
지면에서 쇠사슬 소리가 울리며 검은 돌의 그물이 올라온다.
“.......!!”
휘감기는 건 광전사의 전신, 소리는 쇠사슬 같았지만 이 검은 포박은 아예 일체형으로 되어있다.
“...걱정 마. 힘 줘도 안 찢어지는 프리 사이즈야.”
사슬 형태에서 점점 뱀처럼 몸을 휘감아온다. 몸의 면적은 아리아의 맹공으로 인해 그나마 수축된 상태, 거기에 이 검은 돌은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만큼 끊기도 쉽지 않다.
“...이...이... 자식...!”
“아무리 갑옷이 강해도 관절기에는 장사 없거든.”
이윽고 들어가는 신성과 오러, 전신을 뒤틀고자 다각도로 조여진다.
그 함정을 본 광전사는...
“약해졌구나아아아! 레오나르도오오오!”
광소를 내비쳤다. 평화에 찌들어 정신적으로 안일해진 것이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지금 냄새로 봐선 누군가 접근 중, 분명 자신의 한쪽 눈을 날려버린 암컷이 분명했다.
“...크리스...!”
“하...그 용사 대신이다...!”
이윽고 광전사의 목이 뒤로 꺾이며 배후에 있는 크리스가 눈에 들어온다. 조력을 위해 양손을 검을 위쪽에서 내리치는 게 같잖기만 하다.
“...레오...!”
크리스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에는,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했잖아!! 빡대가리 년아아아!!”
우드득...
그대로 목만 빼고 검째로 몸이 먹혀버렸다. 레오나르도의 동공이 흔들리며 그대로 입가에 역한 기운이 맴돈다.
“...정말 맛이 좋군... 그 표정...”
우드득거리며 삼키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포박이 길면 자신도 불리하기에 맛은 음미하지 않는다.
그대로 몸이 다시 비대해지며 검은 돌이 늘어가고 짧은 시간 생긴 여유공간에 팔과 다리를 핀다.
쇠사슬과 천이 찢기는 소리가 울리며 그대로 검은 돌의 포박은 맥없이 끝났다.
그런 상황에서 레오나르도는 고개를 숙인 채 생각했다.
‘계획대로.’
첫 단추부터 잘 끼워졌다.
저 돼지 새끼의 배에는 이제 얼터 블레이드가 온전히 들어갔을 거다.
이제 위장에서 복제될 때까지 버티면 된다.
레오의 옆으로 구르던 크리스의 머리는 천천히 소멸한다.
어차피 분신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몰입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2회차 광전사는 1회차보다 몇배는 강합니다.
비유하자면
광전사의 성장은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죠타로가 돌가면을 쓴 정도입니다.
그리고 레오 표정은 데스노트에서 라이토의 이긴 썩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