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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95화 (195/248)
  • 뜨거운 습기와 공기가 흐르는 욕실 속, 적막이 흘렀다.

    “...그럼...”

    전라 직전의 반라 차림의 처녀 앞에서 레오는 천천히 자신의 옷을 벗어놓았다. 검은 겉옷이 어깨 밑으로 내려가고, 회색빛 셔츠가 상반신을 드러내었다.

    “...흉터...”

    레오의 상반신은 처음 보았을 때보다 흉터가 뒤덮여있었다. 아마 멀쩡한 피부보다 흉터 가 아문 자국이 더 많을 정도로 상처는 깊고 넓게 퍼져있었다.

    “...이정도면 양호하지.”

    바지를 조금씩 내리며 레오는 태연히 과거의 상처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미 이런 흉터는 미래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난도질되어 덧씌워졌다.

    “...아...그렇군요...”

    하반신이 완전히 드러나자 아리아스필은 차마 말이 안 나왔다. 성적 의미로도, 충격의 의미에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겉은 흉터뿐일지라도 본바탕인 몸에는 깔끔하고도 야성적으로 잡힌 근육들이 신체의 형태를 형성시켰다.

    자신의 풍만한 유방에도 밀리지 않을 대흉근, 자신의 가는 허리는 간단히 안을 수 있는 전완근까지.

    “...하아...하아...”

    진정하려는 아리아는 그 모습에 고양되지 않곤 배길 수 없었다. 한 발자국 떨어진 레오도 입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호흡이 거칠어졌다.

    “...긴장하지 말고.”

    레오는 각진 복근 아래로 수건을 두른 채 속옷을 아래로 내렸다. 하반신을 수건만이라도 가린 것은 찢겨진 이성이 일선을 넘지 않기 위해 친 발버둥이었다.

    “...네에... 알겠어요...”

    반라의 두 남녀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시선은 이성으로서 차이가 있는 국부 뿐, 힐끔거리는 시야가 피부를 핥는 것만 같다.

    “...그럼 들어갈까요...?”

    아리아는 다시 붉은 욕조를 가리키며 힐끗 다시 레오를 바라보았다. 지금 레오의 얼굴이 욕조에 담긴 물보다도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어... 그러자...”

    레오는 욕조를 보면서 아리아스필의 몸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갓 욕조에 나와 젖어있는 머리카락은 마음에 자극을 적셔왔고, 그녀의 달아오른 몸에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에 자신의 체액이 섞였다 생각하니 의식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으...”

    참방거리는 소리가 나며 아리아가 먼저 욕조에 몸을 넣었다. 아직 레오가 들어간 것도 아니었으나 욕조에는 신성의 촉감이 아직 잔류하고 있었다.

    “...레오, 레이널드 님도 얼른 들어오세요...”

    헷갈리는 이름을 수줍게 정정하며 아리아는 수줍게 욕조 속에 다리를 당겼다. 허벅지와 종아리의 살이 맞닿으며 공간을 만들어내자 남자는 본능에 따라 욕조에 다가갔다.

    “....아, 알았다고.”

    민망한 나머지 망설이던 레오는 거칠게 언성을 높이며 욕조에 들어갔다.

    그게 고결하며 관능적인 육체를 보며 물리적으로 부푼 ‘욕정’을 어떻게든 가리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걸 아리아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

    “...”

    붉은 욕조에 다 커버린 두 남녀가 아무말 없이 앉아있다. 레오가 앉은 방향에선 아리아가 보이진 않았지만, 아리아의 방향에선 레오의 등판이 시야를 채웠다.

    근육만으로 갑주와 같은 형상을 이룬 등은 지금 당장이라도 얼굴과 가슴을 비비고 싶은 충동을 자극했다.

    “...검사는 어떻게 됐어요?”

    어색하고 색정인 공기를 타파하기 위해 아리아는 사무적인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 목욕재계부터가 아리아의 성혈투술과 몸상태를 알아내기 시작한 거였으니까.

    “글쎄. 네가 너무 앙앙대서.”

    등 한번 돌아보지 않은 대답에 아리아스필의 얼굴은 완전히 익어버렸다.

    그때 자신은 한 마리의 짐승처럼 울음소리를 내짖기 바빴다. 자신의 몸에 다가오는 촉감과 자극에 취해 신음은 아직도 욕실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게에... 죄송해요...”

    민망하고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자신이 제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보이기 싫은 꼴을 보이고 말았다.

    ‘...으으... 왜 붙잡은 거야... 아리아스필....!’

    방금 레오의 손목을 붙잡은 건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전신 마취를 해 횡설수설하는 여자처럼 본능과 무의식에 의지해 나온 말이었다.

    레오가 받아드려서 다행이었지만 거절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레오도 사실은 검사를 못해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아리아의 육체는 오싹였고.

    심장은 눈치없게도 두근거렸다.

    “괜찮아. 중요한 부분은 대강 확인했으니까.”

    등만을 내보이던 레오는 이내 슬쩍 뒤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내었다.

    1회차 때 아리아는 대부분 사무적이었고 냉철했는데, 지금의 아리아스필은 청초하며 어린애 같이 귀염성이 있었다.

    ‘...사실 갓 20대라면 이러는 게 맞지.’

    그게 잘못됐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용사의 임무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레이널드 님?”

    레오가 지그시 바라보자 아리아는 의아하다는 듯 몸을 슬며시 가까이 다가세웠다.

    태산과도 같은 흉부가 조금의 이동만으로 지진이 일어나듯 떨리며 욕조물에 큰 파도를 만들었다.

    “그럼 지금은 부가적인 부분만 확인하는 건가요?”

    물이 붉은 탓일까, 아리아의 얼굴이 더욱 도드라졌다. 맑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부터, 자신이 난폭하게 잘라낸 백색의 단발까지도.

    “...어어!! 그렇지!”

    레오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아리아에게서 시선을 떼내었다.

    아깝고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1초라도 더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으니까.

    “...후...”

    다시 뜨거운 숨소리만이 욕실을 채웠다.

    이미 혼욕을 한다는 시점에서 충분히 볼 것도, 안 볼 것도 보았음에도 감정적인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가까운 관계이기에 가장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닐까.

    반라를 가깝게 밀착한 남녀는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 이 흉터는 언제 난 거예요?”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기 위해서일까, 아리아는 왼쪽 팔에 난 베인 흉터를 손으로 가리켰다.

    만지고는 싶었지만 행여나 아플까 아리아는 손가락으로 가르키기만 할 뿐 직접 만지지는 않았다.

    “...잘 모르겠어. 애초에 이 몸이 내가 기억하는 것과 똑같이 일치해서 행동한 것도 아니니까.”

    “...아... 그, 그렇죠...”

    지금 이 몸과 미래 레오의 육체는 시간차는 물론 다른 행동을 해 분기를 나누었기에 세밀한 형태에 있어선 형태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아리아스필...! 이 바보오오...!!’

    아리아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마음 속의 이불을 연신 걷어차기 바빴다. 당연한 걸 질문해서 상황을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이 천국 같은 상황이 아깝게 낭비되고 있어서 미칠 것 같은 심정인데...!

    ‘...아으으으...!’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아리아가 앓고 있을 무렵.

    “아리아스필.”

    이번엔 레오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아리아는 레오의 질문에 반응했다.

    푹 숙인 얼굴은 다시 레오의 몸으로 향했다.

    “...넌, 내가 괜찮아?”

    두루뭉술하다 못해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괜찮다는 말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으니까.

    “...괜찮긴 한데, 어떤 게...?”

    “내가 기억을 잃어버린 거.”

    질문했을 때, 레오는 아리아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몸은 일말의 미동도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기억이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게 질문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가장 레오를 깊게 보고자 했던 아리아이기에 알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불안하지 않다 말하는 건 기만이었다.

    때때로 예전의 레오가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하니까.

    기억이 돌아왔으면 하는 희망과 마음은 놓지 않고 계속 품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고 대답할 거예요.”

    그럼에도 아리아는 괜찮다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대답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왜?”

    레오로서는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본인이 말하긴 그래도, 10년을 넘게 함께 해온 남자의 기억이, 그 전부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을 텐데.

    실제로 괜찮지 않기에 ‘괜찮다 말한다’라는 표현을 쓰는 걸일 텐데.

    어째서 대답만이라도 그걸 택하는 것일까.

    “...그건... 레이널드 님도, 레오나르도도 마찬가지니까요.”

    아리아스필도 깨닫게 되었으니까.

    레오는 항상 이런 느낌으로 우리를 바라봤구나.

    동일인물이지만 자신의 기억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의 의미를.

    사람의 본질을 같을지라도 같이 살아왔던 추억은 다르다는 걸.

    그 추억에 대해 생긴 앙금이나 사랑마저도 모두 평행적으로 뒤틀려있다는 것마저.

    볼 때마다 그 감정이 납득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투정을 부리겠어요. 보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 사람인데.”

    “...!”

    그 한 마디 레오의 몸이 일순 떨었다.

    아리아 입장에선 레오와 일상으로 하는 말이나 다름없기에 위력이 적었지만.

    ‘...쟤...쟤는 부끄럽지도 않나...?!’

    평소 얼음장 같은 아리아의 추억과 기억밖에 없던 레오나르도에겐 저런 애정 표현조차 면역이 전혀 없었다.

    안 그래도 알몸의 직전 상태로 몸을 맞대고 있던 것도 신경쓰이고 의식돼서 미치겠는데.

    ‘...차라리 싸가지라도 없던가... 왜 이렇게 귀여운 건데 진짜...!’

    원래 알던 아리아스필과는 다른 의미로 화가 나는 여자였다.

    “...레...이널드 씨는 어때요?”

    그런 상황도 모른 채 아리아는 흉악한 흉부를 가까이하며 방금보다 편하게 말을 이어갔다.

    “...뭐가?”

    “저희가... 그렇게 돼서 썩 좋게 안 보일 텐데... 그래도 이렇게 도와주셔서요.”

    레오의 입장에선 자신들은 애증의 덩어리 그 자체였다.

    가문을 멸문시키고, 세계를 그렇게 만들었음에도 레오는 투덜거릴지라도 도와줄 것은 전부 도와주고 있었다.

    대인배를 넘어 구원자라고 생각해도 과장은 아니었다.

    “...넌 네가 죽은 게 개죽음처럼 보여?”

    “...예...?”

    갑작스럽게 들어온 죽음의 이야기

    아리아스필 본인에겐 무례하고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임에도

    대답할 수 없을지언정 아리아는 이 질문에 악의가 있다곤 생각할 수 없었다.

    “...아리아스필, 네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았다고 생각해?”

    “...그건 용사여서...”

    “아니.”

    용사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건 1인자의 아래에 있는 2인자이기에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부정에 대한 근거는 레오가 많이 경험했으니까.

    “...네가 참여한 전장 중에서, 아니 라인하르트 직계 본가 출신이 동참한 전쟁에서 사상자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

    “...그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적은 숫자는 아닐 것이다.

    전쟁이라는 건, 수백수천의 병사들이 전장에 참여하고, 그에 배에 달하는 민간인들도 죽는 지옥이 전쟁이라는 것이니까.

    “많아도 100명 이내, 가장 적은 때가 10명 안팎이었어.”

    “...네?”

    “참고로 전장에 참가한 병사들만 해도 1000명, 10000명은 기본이었어.”

    본인이라도, 본인이기에 납득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아무리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인 자신이더라도 가능할 업적이 아니였다.

    “그래서 기적이라 불려온 거야. 종교로서 추앙할 만큼.”

    “...그...그렇군요.”

    분명 칭찬하는 사실임에도 아리아는 기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질적인 업적이자 기적을 순전히 자신의 것이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죽은 거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했으니까.”

    원로원에 의한 명령이 아니더라도 아리아스필은, 라인하르트의 기둥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들은 항상 그렇게 올곧게 살아오는 방법밖에 몰랐으니까.

    “...근데 난 개죽음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의 근거가 뒤짚어질 정도로 반전된 발언이었다.

    하지만 모욕스러운 발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고의적으로 깎아내리는 듯한 말투로 보이지 않았다.

    “...네가 죽은 뒤로 바로 세계가 개판이 된 건 아니야. 네가 죽었듯 적의 구심점인 마왕도 사라졌으니 내정과 군사만 다시 수립하고 재정비할 수 있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 이유도 레오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 내정과 군사를 수립할 상징이 남은 라인하르트였어. 용사 아리아스필의 업적과 보상을 고스란히 받은 것이 그들이었으니까.”

    알아야만 했고, 알 수밖에 없었다.

    “근데 어떤 듣도 보도 못한 멍청이가 원로원을 시작해 차례대로 몰살을 시작했지.”

    그 멍청이가 누구인지 이 자리의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그 결과, 그나마 있던 구심점은 완전히 사라졌어. 그 멍청이는 누군지도 제대로 모를 잡놈이었고, 행여나 다른 조직이 배신한 게 아닐까 의심하고 분란이 조장되었지.”

    무엇보다.

    “그 멍청이는 이미 라인하르트와 아무 관계가 없었거든.”

    명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건 그저 살육극에 불과했다.

    “네 죽음은 개죽음이 됐어.”

    고결한 희생으로 새로운 미래의 초석이 될 수도 있음에도 무의미한 죽음이 되었다.

    “내가 개죽음으로 만든 거야.”

    남겨진 이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레오...”

    레오나르도는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붉은 물이 흘러내리며 레오의 몸을 타고 내려갔다.

    “검사는 끝났어. 먼저 나가볼게.”

    욕실을 나가는 레오의 등은 슬프게만 느껴졌다.

    “자...잠시만요!!”

    이대로 보낼 순 없었다. 저대로 두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아리아의 몸을 움직였다.

    “...너...”

    그 순간, 간신히 아리아의 나신을 가리고 있던 수건이 완전히 흘러내었다.

    “...레...오...”

    그 전라를 두눈으로 바라보자 레오의 수건으로 앞방향으로 늘어났다. 자기주장을 이겨내지 못한 레오의 수건도 그대로 흘러내렸다.

    ‘...크...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둘을 잡아먹고 있던 비관적인 생각은 그걸로 꽉 채워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가장 좋은 위로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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