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80화 (180/248)
  • 옛 동방의 병법서에는 이런 격언이 존재한다.

    [승리란 건 싸우기 전에 전부 결정되어있다.]

    지금 상황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말은 따로 없을 것이다.

    “...누가 말려야하는 거 아니에요?”

    루미네는 정말 안쓰러운 표정으로 레오나르도를 걱정했다. 만약 기억을 되찾는다면 아마 레오나르도는 쥐구멍에 몸을 욱여넣다 죽을지도 모른다.

    [놔둬. 자기가 깨달아야 안 해.]

    물론 현자는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영체의 일부로 팝콘까지 만들어가며 레오의 착각 투성이인 기행을 즐겼지만 말이다.

    {확실히, 사랑을 깨달으려면 저런 강경책도 필요한 법이죠.}

    앤젤라도 저런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또다시 은근히 현자를 껴안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손 치워라. 그런 의미로 말한 거 아니야.]

    {너무합니다. 현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300년 더 안 만날래?]

    그 원령들이 투닥거리는 사이 라인하르트 일가들도 레오의 돌발행동에 당황스레 반응했다.

    “...저 놈이...!”

    “...가만히 있어줬더니...”

    부친인 글라디오와 조부인 마르켄으로서는 아무리 기억을 잃은 레오라고 해도 저런 발언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하나 뿐인 딸이자 손녀를 개같이 겁탈한다는 말을 듣고 화를 안 낼 가장이 세상에 어디있겠나.

    “...고정하십시오...! 단장님...! 일부러 한 도발인 거 알잖습니까...!”

    “그래요...! 그리고 어차피 연인이나 다름없으니...”

    물론 라인하르트 일가 입장에서는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스필의 연인이자 예비 사위나 다름없었기에 도발의 타격은 현격히 적었다.

    “그래도 용납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것이 있단...”

    “할아버지, 아리아 표정부터 보고 그런 말씀하시죠?”

    순애에 대해선 탐지견이나 다름없는 리오스에겐 여동생인 아리아스필의 감정을 보지 않아도 육감으로 알 수 있었다.

    ‘...항복할까? 항복해도 괜찮겠지? 아니, 그래도 그러면 레오가 떠날 텐데...! 그래도 제대로 한판하는 거면 아깝진 않은데...! 어떻하지? 아니면 삼판 이선승제로 한번 지고 이겨서...!’

    아리아의 머릿속에는 레오의 ‘성검’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무기으로 써도 될 정도로 길고 굵은 레오의 물건, 박히는 순간 분명 체험치 못한 쾌락이 온몸을 지배할 것이다.

    그것도 자신 쪽이 아닌, 레오 쪽에서 주도해서 거칠게 유린당하는 것이다.

    분명 기억을 되찾은 레오라면 분명 하지 않을 체위일 터.

    그걸 포기해야한다니...

    아니, 다른 방법이 분명...

    “머리 굴러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소란의 와중 레오나르도는 또다시 도발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고작 정조 가지고 꼬리를 말고 도망치고 싶다 쳐라. 병신 같은 요조숙녀 따위는 내 쪽에서 사양하고 싶거...”

    “아니, 포기하지 않겠어.”

    그 말에 레오나르도는 이빨이 드러날 정도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에는 어떻게든 용기를 내는 소녀 용사처럼 보일 것이다. 호기롭지만 동시에 가소로운 혈기에 웃은 것이겠지만.

    [...쟤 분명 일부러 진다.]

    {그래도 루벤의 후계자이니 신뢰해보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방안을 찾을 수도 있잖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속내가 뻔히 보여서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겁탈당한다가 전제입니까...?”

    [전과가 있잖아.]

    {전과가 뭡니까? 그런 건 추억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헛소리에도 차마 반박하지 못하는 루미네는 성자로서 이다지 슬픈 일이 없다 확신했다.

    “용사님다우시네. 그럼 연무장으로 나와.”

    “...잠깐, 무기는 안 챙겨도...”

    “필요없어.”

    이윽고 나온 말엔 오만한 자신감이 드러났다.

    “무기까지 쓰면 너무 재미가 없거든.”

    오만했으나 어째서인지 허세로는 보이지 않았다.

    ***

    연무장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도록 미리 손을 써두었다.

    결투를 보아서 좋은 것도 없었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레오나르도에 대한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일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외부에 퍼져 적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이 상황을 분명 이용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시합은 단장님께서 신호를 보내면 시작이야. 그동안 움직이면 실격패로 처리할게.”

    시합의 전, 아리아스필은 철저히 시합 규칙과 연무장 주변을 살폈다. 함정을 설치 못하도록, 하물며 설치할 기회도 없도록 꼼꼼하게 시합 환경을 살폈다.

    “흠... 예전보다는 철저하게 하네. 사실 이게 당연한 거긴 하지만.”

    “누구 덕분에요.”

    이미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에게 승부의 냉혹을 경험한 뒤였다. 하물며 지금의 레오나르도는 예전의 레오보다 거친 상태, 방심하면 바로 패배할 수 있었다.

    ‘...지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아니야! 그러면 안 되지!’

    아리아는 연신 도리질을 치며 머릿속의 삿된 생각을 지워내었다.

    지금은 개인적인 욕망을 채울 것이 아니라, 세계의 용사이자 레오의 연인으로서 책무를 다해야했다.

    “그럼 기대하도록 해볼까. 지금의 넌, 내가 아는 그 아리아보다 얼마나 나을지.”

    레오나르도는 손가락에 깍지를 낀 채로 손을 풀었다. 팔에 있던 상처는 이미 재생되어 있었다.

    “...그럼...”

    그런 레오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보면서도 마르켄은 결투 시작을 위해 손을 올렸다.

    “...시작!”

    시작이라는 말이 터지자마자 고압의 마나가 양쪽에서 폭발한다.

    “...오, 오러 코어는 대강 6성인가? 예상은 했지만 제법인데.”

    상식적으로 오러 코어는 하나 생성하는데도 몇 년이 걸린다. 그런데도 10대 후반인 아리아스필이 6성을 달성했다는 것은 역사상 전무한 일일 것이다.

    카아앙!!

    즉각적인 공격, 성검과 주먹이 부딪친다. 분명 맨주먹이 날붙이와 충돌했음에도 경질적인 금속음이 크게 울렸다.

    ‘오러만으로 맨손을...!’

    마나를 응축한 것만으로 레오의 손은 강철과 같은 경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 증거로 몇 번을 성검과 맞부딪쳤음에도 레오의 손에는 골절은커녕 상처도 나지 않았다.

    ‘...마나와 체력 탈진을 유도해서 장기전으로 가야돼.’

    아리아는 한발 물러나며 전략을 결정했다.

    본래라면 단기전으로 결판을 냈을 테지만, 지금의 레오나르도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하물며 무기도 없는 레오라면 자신이 백병전에서도 유리했다.

    “카아아아...!”

    그런 생각을 깨부순 것은 레오나르도가 괴랄한 호흡을 내뱉기 시작한 직후였다.

    “...이 호흡음은...”

    괴상했으나 호흡의 박자는 들어본 적이 있다. 아니, 라인하르트의 인물이라면 들어보지 않고는 모를 수 없는 호흡음이었다.

    “당신들이 가르쳐준 건, 유용히 쓰고 있다고...! 카아아아...!”

    라인하르트의 마나호흡법, 레오나르도와 현자의 합작인 마나체련술이 생긴 이후로 사용이 줄었어도 알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사용하는 호흡의 근본은 라인하르트의 마나수련법에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왜 저걸...”

    마나호흡법은 단련용일 뿐.

    전투에는 사용할 필요도, 사용해서도 안 되었다.

    마나 호흡을 하면 폐에 공기 중의 마나가 흡수된다.

    듣기만 한다면 전투 중에서도 마나를 회복할 수단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격한 행동을 보이면 체내에서 마나는 뒤섞여 역류한다.

    그렇게 되면 코어고, 혈도고 각종 내상으로 몸은 무너져내린다. 그랬기에 마나체련술은 혁명적인 수련법이라 전해진 것이다.

    “...눈이...!”

    그 증거로 레오나르도의 눈은 점차 붉게 충혈된다. 지금 레오나르도는 호흡을 하면서 동시에 피부로 마나까지 방출하는 기행을 보이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레오나르도! 그만...!”

    “휴우우...! 바보냐...?”

    호흡음이 끊기며 레오나르도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퍼어억!!

    방금과는,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속으로 레오나르도는 정권을 날렸다.

    “...아악...!”

    위력도 이미 예전보다 상회해있다.

    “적을 걱정하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냐? 그 넓은 마음에서?”

    레오나르도는 쓰러진 아리아의 흉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내상을 입은 사람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어떻게 저런...”

    [레오, 저 미친 놈...]

    현자는 보자마자 어떤 원리로 저 기행이 성립하는지 이해해버렸다.

    {...신성으로 바로 치료하다니...}

    레오나르도는 마나호흡으로 받은 내상을 신성으로 즉각적으로 재생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역류하는 마나를 재조정해 한계 이상의 마나를 방출해내었다.

    “...그런 게 가능합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왜 성기사님들은...”

    “말도 안돼요. 그건...”

    [그래, 통각이 있는 사람새끼라면 못 써야돼.]

    신성이 아무리 상처를 재생시켜준다 해도 통각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코어와 혈도의 내상은 내장이 불로 타는 듯한 통각을 가져다준다.

    “카하하하...! 검은 것도 나쁘진 않은데...!”

    그런 통각을 느끼고 있는 장본인은 광소를 부르짖으며 전희를 다졌다.

    “...그만둬...! 네 몸이...!”

    “왜 적을 걱정하지? 설마 패배라도 하고 싶은 거냐?!”

    레오나르도의 일갈에 아리아스필은 몸이 오싹거리는 것을 느꼈다. 설마 레오가 자신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가 하는 전율이 몸을 뒤흔들었다.

    파앙!!

    안타깝게도 레오 본인은 정곡을 찌른 것도 몰랐지만 말이다.

    ‘...진정하자...! 지고 싶지만...! 참아야 해...!’

    아리아스필은 흥분을 가다듬으며 신성으로 몸을 치유했다. 이내 성검을 감싼 오러가 압축되며 검날의 예리함을 강화시켰다.

    “오호라...! 후...! 그런 식으로 승부하시겠다?”

    아리아의 검날과 레오나르도의 손이 다시 부딪친다. 딱딱한 음색이 또다시 주변에 울려 퍼지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확실히 머리를 굴렸어.”

    검날이 주먹에 부딪친 순간, 아리아는 검강의 오러를 즉시 신성으로 치환시켜 폭발시켰다.

    압축된 검강에 주먹에 감싼 오러는 뚫리고 2차적으로 폭발한 신성에 주먹이 당한 것이다.

    “...내 쪽에서도 스타일을 바꿔야겠어.”

    이 이상, 근접전을 시도하는 것은 불리하다. 그렇게 판단한 레오나르도는 그나마 멀쩡한 오른팔로 연무장 지면을 내리쳤다.

    콰아앙!!

    바닥이 부서지며 주변에 흙먼지가 연막처럼 퍼진다. 시야가 가려진 사이, 레오나르도는 또다시 사라졌다.

    ‘...그렇다면...’

    아리아스필은 검강의 압축을 해제하며 성검으로 신성을 분사했다. 위력은 약했지만 광선의 풍압은 연막을 밀어내기에는 충분했다.

    “...거기구나...!”

    시야에 레오나르도가 보이자마자 바로 돌진했다. 패배해야겠다는 부정한 생각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전투에는 더더욱 몰입하고 집중해야겠다.

    “이것도 받아보지 그래!!”

    돌진한 아리아스필에게 날아온 것은 지면의 잔해.

    피가 듬뿍 묻어있는 돌팔매가 고속으로 회전하며 아리아에게 직진했다.

    ‘...못 피할 건...’

    하지만 이윽고 돌팔매는 회전에 따라 곡선의 방향으로 아리아를 지나간다.

    ‘...저 방향은...!’

    “용사님은 지킬 게 많지?”

    잔해는 시리카에게로 날아갔다.

    “...어...?”

    무인이 아닌 시리카에게는 피할 여력은 당연하게 없었고, 저 속도로 날아간 돌을 직격당한다면 중상은 기본이었다.

    “...비겁하게...!”

    아리아스필은 뛰어갈 여유도 없이 검기를 날려 잔해를 깨부쉈다.

    “적이 네 사정을 봐줘야 해?”

    콰아앙!!

    양손에서 날아온 연격, 폭음이 울리며 아리아의 성검과 연속해서 부딪치며 맹공이 이어진다.

    “...그래도 놀랐다고. 전부 막을 줄이야.”

    그럼에도 아리아스필은 중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몸과 옷에 묻은 피는 본인의 것이 아닌, 레오의 주먹에서 튀고 흘러내린 혈흔이었다.

    “...이건 선을 넘었어. 노릴 거면 날...”

    “[제게는 죄업 밖에 없습니다.]”

    분노한 아리아스필의 말은 레오의 갑작스러운 영창에 잘렸다.

    {...저 영창은...}

    “[그 죄업은 제 피에 녹아있으며.]”

    정도보다는 사도에 가까운 기도가 울린다.

    [...저건...]

    “[죄업의 사슬마저 저의 영혼을 붙들지니.]”

    신을 예찬하고 숭배하는 기도가 아닌, 스스로에게 암시를 거는 맹세에 까운 영창이 읊어진다.

    “[저의 피에도 죄업의 사슬이 드러나길.]”

    위경에 가까운 외경의 전문이 읽혀졌다.

    아리아와 접전을 벌이며 점점 밀림에도 레오는 기도의 영창을 멈추지 않았다.

    “[맹세합니다.]”

    이윽고 검은 신성이 흘러나온다. 레오의 손의 혈액은 물론.

    촤르르륵...!

    “...이건...”

    아리아의 몸이 점차 둔해진다. 몸에 묻었던 피가 굳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해.”

    피의 사슬이 형성되어 아리아의 몸을 휘감아 묶어낸다.

    [성혈투술-혈박]

    “내가 이기면 침대에서도 이렇게 만들테니까.”

    몸이 완전히 묶이면서 아리아의 머리에 맴돈 것은 탈출법이 아니었다.

    ‘포박 플레이! 강간 플레이!! 귀갑 포박 플레이!! SM...!! 포박 강간이라니이...!!! 질까?! 이정도면 져도 되잖아! 져도 괜찮잖아! 자연스럽잖아아아!!’

    용사 아리아스필의 딜레마가 (레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보기 중 빈칸에 들어갈 인물로 가장 알맞은 사람을 고르시오.

    [ ]: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질 수 있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①번] 애증 때문에 앞뒤 생각 안 하고 나대가다가 일이 커져서 이기면 옛 친구이자 동료, 그리고 라이벌인 여자를 겁탈하게 생긴 남자.

    [②번] 이겨야 집착하는 남자를 붙잡을 수 있지만, 지면 집착하는 남자에게 거칠고 화끈하게 착정당할 수 있는 여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