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떻게 설명하죠?”
엄마로서 시리카는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인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문제는 생이별한 부모와 연관된 질문이었으니까.
그것도 배배꼬인...
“지금은 간결한 걸 좋아하니까... 간단하게 레이널드 씨 엄마가 복제가 되어서 시체 두구가 보관되어 있다고 말하는 건...”
“제정신이니? 리오스.”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라도 이건 허락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요약이 좋다고 해도 이런 복잡한 사정을 직구로 날리면 누구라도 진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순화해도 이 설명은 도저히 완화할 수 없었다.
의무적으로 말해야하는 소재가 ‘어머니 부활’, ‘2명의 어머니’. 그리고 ‘키메라 개조’와 ‘시체 해부’이니.
내용의 본질 자체가 따귀 한 대는 기본으로 들어갈 예민하고 위험한 소재였다.
“우선은 운을...”
“아까부터 뭘 하자는 거지?”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금의 레오나르도는 다른 때보다도 인내심이 부족했다.
“어줍지 않게 쑥덕대지 말고 그냥 설명해. 들어줄 테니까.”
“...예!?”
아까의 적의적인 태도에 대비된 제안이었다. 모두가 경악하며 ‘레이널드’를 바라보았다.
“어설프게 순화하느니 차라리 제대로 말이라도 해. 내 쪽에서도 답답하거든. 또 바보처럼 보이는 것도 열 받고.”
건방진 태도였으나 일행들에게는 호재로 다가오는 명령이었다.
레오 쪽에서 저렇게 말한다면 자신들에게도 정당하게 말할 기회와 권리가 생긴 셈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이건 좀, 복잡한데요...”
그럼에도 아리아스필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술을 떨었다.
총대를 매게 해주었음에도 이 주제는 그만큼 꺼내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레오, 아니 레이널드 씨의 부모님께서...”
“렌, 내 친모가 살아있나?”
레오의 입에서 저 말이 먼저 나왔다.
10살 때 부모와 생이별하고 40년 동안 죽었다 생각한 중년의 남성에서 그런 말이 앞서 나온 것이었다.
“...어떻게...”
“댁들은 거짓말을 어지간히 못 해. 나니까 안 거기도 하지만.”
옛추억이 서린 한숨이 소폭 내쉬어졌다.
“...그게... 사실 살아계신 건지는 모르겠어...요...”
아리아스필은 자신없는 두루뭉술한 설명을 내뱉었다.
“...그러냐.”
하지만 확실했던 ‘사망’이 ‘실종’으로 변화했다는 시점에서 이야기할 가치는 있었다.
“퇴직금으론 괜찮은 정보네. 말해봐.”
씁쓸함을 곱씹으며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스필을 바라보았다.
* * *
이야기는 길게 설명되었다.
렌이라는 존재의 정체는 아직까지 미지수였고, 현재는 정보를 찾고 판별해내가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레오나르도에게는 그 이야기가 그리 길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그건 이야기을 건성으로 들었기 때문이 아닌, 정보 자체에 강한 몰입을 하고 있었기에 일어난 현상이라 본인은 추측했다.
“...허...”
설명이 끝나자 레오나르도는 부드럽고 허탈한 감탄을 내었다. 그러곤 별 동요 없이 천장만을 멍하니 올려다보곤 푹 숨을 내쉴 뿐이었다.
[...의외로 놀라지는 않네.]
현자의 말엔 눈치가 없었지만, 다들 그 의견에는 동의하는 듯 보였다. 오히려 원로원이 전원 몰살당했다고 들었을 때, 더 격정적으로 반응했었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 거야.”
[반말하지 말고 못 믿겠으면...]
“지금으로 치면 대략 10년, 내 시대에는 40년 동안 못 본 부모가 갑자기 키메라로 배양돼서 돌아왔다는 소리를 들어봤으면 마저 욕해. 유식한 현자니까 알 수도 있겠네.”
지금 상황을 요약한 한 문장으로 요약하며 동시에 현자를 비꼬자 모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레오도 말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입을 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믿겠습니까?”
“월급 인상마냥 넙죽 받아들이는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너희가 사기를 치는 것 같지도 않단 말이지.”
레오의 말은 타당했다.
죽었다고 생각한 부모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만 들어도 경악하거나 흥분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터인데.
지금의 이야기는 윤리와 추억마저 갈기갈기 찢어내는 지옥도였다.
냉정하게 한숨만 내쉬는 것이 재능이라 말할 만큼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자세한 정보는... 시체에서 조사를 끝냈고, 현재 적탑주의 자료를 마탑에서 해석 중이니 조금 기다리시면 전모를 알 수 있을 거예...요.”
레오나르도를 중심으로 마탑의 배신자인 적탑주를 해치운 뒤, 소란은 힘겹게나마 정리되었다.
물론 마탑의 피해는 쉽게 회복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에일린의 신속한 지휘로 해결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덕에 적탑주의 비리는 밝혀졌고, 그녀의 연구자료는 마도 처형자들과 이단 심문관들의 추적에 의해 찾아낼 수 있었다.
“...적탑주라... 하긴, 마탑주 전원은 그날 이후로 죽었고 후계자도 제대로 없었긴 했지. 근데...”
레오나르도는 이내 눈을 굴리며 석연치 않은 점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상황이 모순되어있어.”
{거짓말이라는 의미입니까?}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말이 안 되긴 하지.”
비꼬는 것보다는 앞서 말해 기가 차서 자조하는 어투에 가까웠다.
굴러가던 레오의 눈은 이윽고 아인에게로 향했다.
“꼬맹이, 너 분명 마탑의 사역마라고 했지?”
사역마라는 정보도 이미 들어둔 차였기에 아인의 딱딱한 마음은 불안에 떨렸다.
따지고 보면 아인이 바깥으로 나왔기에 렌의 키메라가 완성된 것이었으니 원망이나 분노를 분출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당신의 사역마입니다. 그건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인은 그 사실을 상기하며 갓 깨어난 감정을 가다듬었다.
스스로가 결국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다. 지금 레오가 자신을 자식이라 아니라 주장한다 해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단지... 외부 정보에서 처리 속도에 지체가 될 뿐이었다.
“꼽... 눈치주려고 부른 거 아니야. 책임을 물라고 할 것도 아니고.”
어설프게나마 언어를 순화시키며 레오는 아인을 안심시켰다. 겉으로 무표정함에도 소녀의 두려움을 눈치챈 것은 저 둘이 평범한 주종관계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너 분명, 내가 16살 정도일 때 꺼내줬다고 했지?”
“정확히는 18세이지만, 대략적으로는 맞습니다.”
“그리고 내 회차에는 네가 나오지 않았던 거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키메라가 구성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다 쳐도 이상한데...”
레오나르도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아인의 존재가 아니라, 인과 관계의 모순이었다.
“이상하다니...”
[...확실히 지금도 납득이 안 되긴 해.]
레오의 지적에 따라온 인물은 현자 뿐, 아직 다른 이들은 모순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이윽고 레오나르도는 지금껏 석연치 않게 여기던 부분을 짚어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간대에는 어머니 키메라는커녕 시체도 못 건졌잖아. 그것부터 어색하단 말이지.”
“....그거야 아인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연구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 내가 흡혈귀를 로드째로 완전히 박살냈는데도 정보 하나 나오지 않은 건 이상하잖아.”
확실히 그건 기이했다.
전 회차에서 렌에 대한 단서가 한줌도 남지 않은 것은 분명 어색한 일이었다.
특히나 당시 흡혈귀 로드를 처리했던 레오나르도가 아무런 언질이나 정보를 듣지 못한 것은 기이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적탑주가 배신자인 것도 이상하단 말이야.”
“...그건 아니에요. 적탑주 제인 나르샤는 분명 마인과 손을 잡았어요. 직접 싸워서 알 수 있어요.”
반론한 리오스와 아리아, 그리고 기억을 잃었을지언정 레오나르도 본인도 직접 타락한 그녀를 상대했기에 알 수 있다.
적탑주 제인 나르샤는 분명한 배신자, 변호할 여지도 없는 변절자였다.
“아니, 지금 회차 말고. 내 회차 말이야.”
“...1회차에는...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잘나신 미래의 내가 치매라도 오지 않은 이상, 적탑주를 바로 안 잡을 리가 없잖아.”
그 말대로 1회차에 적탑주가 배반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레오는 즉각적으로 그녀를 배제하거나 처단했을 것이다.
하물며 마탑에서 숨기거나 에일린이 감추었다 한들, 아득 더 먼 미래의 지식을 지닌 자신이 그런 대역죄인을 모른다는 것은 어폐가 있었다.
“...확실히... 그건...”
“회차가 바뀌었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점이 너무 많아.”
[근데 니가 한 것도 많긴 해.]
“설마 그게 나비효과를 불러서...!”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그래 레오, 아니 레이널드 씨 알 바는 아니...”
이내 아리아스필의 말은 멈추었다.
다른 사람들도 레오나르도의 갑작스러운 방관 선언에 얼어버렸다.
“...갑자기 왜...”
“갑자기? 난 원래부터 ‘퇴직금’으로 이 정보를 들은 거야.”
모두 레오가 냉정한 채로 이야기를 듣고 있자 잊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본인은 처음부터 가문을 떠나겠다고 주장했다.
“...이게 타인의 일로 보이나? 네 부모...!”
“부모? 그래. 말 한번 잘했어. 흑암.”
레오나르도는 크리스와 동등한 눈높이에서 그의 푸른 눈을 부라렸다.
“당신은 10살 이후로 자식을 버리고 나간 년을 쉽게 부모라고 부르나봐? 당신이 좋아하는 격언하고 닮아서 그런가? 사자는 자식을 절벽에 던져 키운다고?”
크리스는 레오의 눈을 보자 뭐라 변명하지 못했다. 귀족의 삶을 누리며 부모의 사랑은 당연하게 누렸던 크리스에게는 대답할 수 없는 상처였는지도 모른다.
“레오... 레이널드...!”
“아니면 가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은 건가?”
레오나르도는 슬며시 크리스의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들었다.
“버려졌어도 괴물의 피가 섞여있을 테니...”
자연스럽게 시가를 꺼내 맨손으로 잘라내며 일순의 움직임으로 불을 붙였다.
“후... 괴물 부모의 멱은 자식인 내가 따는 게 순리라고.”
시가를 피우며 다분히 악의적인 해석으로 레오나르도는 라인하르트의 일행을 몰아붙였다.
정도를 추구하는 라인하르트에게는 잔혹하리만치 다가오는 악의에 저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악의가 진정으로 악해서가 아닌.
“어차피 기대도 안 했지만.”
본인의 마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처투성이였기에 차마 반박하지 않았다.
“라인하르트 네놈들은 더러워질 각오도 없잖아.”
시가를 탁자에 눌러 꺼대며 레오나르도는 날카로운 조소를 내보였다.
“...그럼 이만...”
“잠시만.”
그런 흉터 뿐인 레오나르도의 마음에 다가선 소녀가 있었다.
“...이제 할 이야기도 없을 텐데? 용사님?”
아리아스필이었다. 그녀는 나가려던 레오나르도의 손목을 잡으며 그의 공허한 눈을 마주보았다.
“아, 설마 아까 했던 지옥에서 엄마가 돌아왔다는 걸로 꼬투리 잡을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정말로...”
“나 이기고 싶지 않아?”
그 말에 레오나르도의 적색 눈에 초점이 잡혔다.
“...네가 내 목표이듯, 너도 내 목표라고 했잖아.”
“...그래서? 결투라도 하자고?”
어이없다는 듯 눈을 치켜드는 레오,
“그게 우리가 납득하는 방식이잖아.”
하지만 소녀의 기개는 굳건했다.
“...하...”
다시 나오는 한숨, 하지만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레오나르도의 태도는 처음 내뱉었던 한숨과는 상반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런 쓸데없는 부분은 왜 그대로인지...”
“왜? 쫄려?”
용사가 할 법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되는 격떨어지는 표현.
가족들은 경악했으나, 그 이상으로 레오가 경악했다.
“...하...하하하하하...!”
이윽고 나오는 폭소, 하지만 이번 웃음은 처음의 광소와는 판이하게 다른 미소였다.
“재밌네. 좋아. 시시한 도발에 넘어가주지.”
말은 그렇게 해도 레오나르도의 표정에는 오만하고도 유쾌한 미소가 잔류해있었다.
“대신, 그냥 하면 나만 손해잖아.”
레오나르도의 팔이 사냥하는 늑대처럼 아리아를 몰아간다.
“지면 너희들에게 협력해주지.”
이윽고 벽에 다다르며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하지만 이기면.”
레오의 몸이 아리아를 집어삼키듯 감쌌다. 위압감에 아리아는 기개마저 천천히 얼어가는 것을 느꼈다.
“널 개처럼 능욕하고 범해주마. 죽여달라 애원해도, 내가 만족할 때까지 널 겁탈해주겠어.”
그 말에 공기가 다시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습니까? 아까 보기론 정신도, 몸도 먹기 좋게 무르익었던데.”
물론 레오는 그게 착각이라 생각했지만 상관없었다.
보건대 지금 아리아와 미래의 자신에게는 동료 이상의 단단한 유대가 있을 터.
억지로 겁탈하는 것으로 그걸 깨부술 수 있다면 자신은 만족할 수 있었다.
‘...’
그리고 아리아는 생각했다.
‘항복할까...?'
레오나르도는 여전히 착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인아? 뭘 꺼내는 거니?”
레오나르도가 사퇴하겠다 말할 때, 아인은 자신의 로브에서 작은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꺼내들었다.
“참과 거짓을 구별해주는 마법의 목걸이입니다.”
참고로 진실과 사실의 목걸이는 1회차에선 전혀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레오였다.
안타까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