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레오나르도는 잠시 동안 아리아스필이 내뱉은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되새겼다.
아리아는 방금 고해성사를 들은 사람이 자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레오 본인이 고해성사를 한 적은 단 한 번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고해성사의 내용은...
“...아아아...”
레오의 얼굴을 떨리기 시작했다. 피부마다 혈색이 퍼져 볼 부분이 도드라지며, 시선은 이미 갈 곳을 잃었다.
손가락은 계속 꼼지락거리게 되더니 이내 가만히 둘 수가 없어서 주먹을 쥐게 되었다.
“...아니야!!”
이내 레오가 낸 첫 반응은 부정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사실 누구라도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평소라면 아리아가 말한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근거로 알 수 있는 레오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다.
“...레오는 내 가슴에 끼우는 거 상상하는 게 좋았지?”
그리고 그 부정은 몇 초도 되지 않아 깨부서져 먼지처럼 흩어졌다.
“...하...하하하...”
실성할 것 같다. 두개골이 달걀 껍데기처럼 깨져 뇌세포가 계란처럼 흘러나올 것 같은 고통이 일어온다. 어디부터... 아니, 언제부터가 문제였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실성을 넘어선 광소가 레오에게서 계속 울려퍼진다. 화를 내는 것에 본질도 잊은 채로 레오나르도는 정신나간 웃음을 터뜨렸다.
“...레오...? 괜찮...”
“너 같으면 괜찮겠냐?!”
레오는 예의고 뭐고 다 팔아먹은 채로 회귀 전 말투 그대로 돌아갔다.
“야!!”
공과 사 따위는 이미 이성과 함께 저 먼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야?!”
아리아는 저런 격식도, 예절도 없는 레오를 보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리아가 생각한 것은 부끄러움에 몸부림치는 먹음직스럽게 꼴리는 레오였는데, 지금은 또다른 맛의 레오가 탄생하고 있었다.
“그래! 너...너, 넌 양심도 없냐?!”
“뭐...뭐가! 나도 듣고 싶어서 들은 게...”
“그런 인간이 음성변조까지 하셨어요!? 예!?”
존댓말이지만 전혀 존대하지는 않는 말투였다. 아리아스필도 레오의 그런 화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받아치기 시작했다.
“하! 그러는 레오는 신도 안 믿으면서 왜 고해성사를 했는데?!”
“난 고해의 자유도 없냐?! 오히려 네 쪽에서 음성변조해서 이상한 질문 해댔잖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질문은 전부 나사가 빠져서 정신이 나간 것 밖에 없었다.
어떤 부위를 상상했냐느니, 횟수는 몇 번이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까지도 전부.
“그거야... 고해성사할 때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는 게 규칙이니까...”
“어디서 약을 팔아?! 네가 본인이잖아!”
“약을 판다고...!?”
레오 입장에서는 많이 순화한 욕이었다. 회귀 전에는 아예 대놓고 ‘미친년’이라던가, 아예 같은 비유를 덧대어 아리아의 정신을 긁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레오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면.
‘...레오가 나한테 약을... 판다고 했다고...?’
지금 아리아스필은 레오의 욕설에 면역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평소의 공손한 말투에 격식과 예절을 어릴 때부터 항상 강조해오던 레오였기에.
“너 지금 나한테 뭐라고...!”
아리아스필에게는 생각보다 묵직한 타격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뜻까지 해석해줄까? 왜 사기를 치냐고.”
“사기?! 사기는 네가 쳤지! 왜 있지 않은 결혼 이야기를 꺼내!! 그리고 애? 동정이 무슨 애야!?”
아리아의 발언은 따지고 보면 아인을 딸이라 부르는 논리에 큰 어폐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흥분한 둘은 그런 것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동정?! 내가 좋아서 동정인 줄 알아?! 그리고 거짓말은...”
“줘도 못 먹는 놈인 건 알지! 나를 그렇게 음탕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으면서!”
아리아의 독설에 레오도 더 이상 참지를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아리아스필에게도 있지 않은가.
“너...도 만만치 않거든! 날 가지고 그렇게 야한 꿈을 꿨으면서!”
아리아스필의 얼굴이 완전히 붉어진다. 이젠 본래의 맑은 흰 피부를 찾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마탑의 시련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신전에서는 그런 식으로 욕구를 풀어왔던 아리아스필이었기에 더더욱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그...그건...그건...”
아리아스필은 계속해서 ‘그건’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언어 능력이 고장난 것처럼 버벅거리는 것이 레오나르도에게는 퍽 만족스럽게 다가왔다.
승리했다라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순간,
“으익!!”
“뭐하는 거야!! 아리아!! 여기엔...!”
아리아스필은 레오의 아공간 망토를 잡아 흔들며 숨어있었던 아인을 꺼내었다. 늘 무표정하던 아인마저 아리아의 돌발행동에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아인아!! 아인이는 엄마 편이지?!”
아리아는 튀어나온 아인의 어깨를 붙잡으며 절박하게 물었다. 저런 모습이 추해보일 수 있겠지만, 몰릴대로 몰려 광분한 아리아에게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예?! 그건...”
아인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저번 사건 때 이후로 유대감이 깊어졌다 한들 아인으로서는 선듯 아리아의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것도 반대측이 레오나르도라면 더더욱.
“애한테 뭐하는 짓이야! 어?!”
추태에 보다 못한 레오는 아인을 자신 쪽으로 끌고 갔다. 아인을 품에 안으며 레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인이는 아빠 편이지?”
마찬가지로 레오도 추한 인간이었다.
“...그건...”
예전이라면 분명 망설이지 않고 ‘전 아버지 편입니다.’라고 할 아인이었다.
하지만 저번 사건 이후로 감정이 풍부해진 아인으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도 자신을 그렇게까지 위로해준 어머니를 배반할 수 없었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아인은 생애처음으로 감정 때문에 대답을 보류했다.
아마 아인을, 타입 디아트의 설정을 고안하고 제작한 현자가 봤다면 감탄에 기립박수를 칠만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꼭 고른다면?!”
“엄마지!? 엄마잖아! 아인아!”
다만 지금 상황은 몹시 추잡스러워서 온갖 매도란 매도를 같은 욕설로 표현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아인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아인은 그날 후회라는 감정을 깨닫게 되었다.
***
“...아인 양...”
아메리는 지금 펼쳐지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직 축제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붐벼있는 인파, 모두들 활기있게 웅성거리며 몇몇 사람들은 앞으로 있을 결투의 승패에 노름을 하거나, 자릿세를 주고 받았다.
그뿐일까, 원형으로 쳐져 있는 진의 중심에는 익숙해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입 밖으로 욕설이 튀어나올 뻔한 인간들이었다.
분명 30분 전만 해도 대화를 풀려고 나온 사람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음지에서나 볼 법한 결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가요?”
“...죄송합니다. 제 경솔한 발언으로 상황을 악화시킨 것 같습니다.”
아인은 그 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승리하신 분의 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인이 말한 승리는 ‘대화의 논리성’의 의미였다. 둘 중 더 논리적인 사람의 편을 조금 더 많이 들어주겠다는 뜻일 뿐, 물리적인 주먹다짐을 상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건 아인의 언어적 표현능력과 눈치가 부족해서도 있었지만, 그 말 자체는 저 둘의 분노를 터뜨리기에 적절한 명분에 되어주었다.
그것도 ‘2인자’ 레오나르도에게는 말이다.
“...아니요. 아인 님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고... 저 두 분은 도대체 무슨 말씀을 나눈 건가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인의 언어 능력으로는 저 추태를 설명할 방법도, 포장할 방법도 없었다.
“뻔하지.”
하지만 리오스는 팔짱낀 채로 이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리오스? 정말? 어떤...”
“둘이 서로 사랑싸움한 거야.”
“너한테 뭘 기대한 내가 바보지.”
“나 아메리한테 기대받은 거야? 와우~ 행복한데.”
“하...”
아메리는 손을 입으로 가렸다. 입으로는 욕을 박긴 했지만, 리오스가 내뱉은 말이 웃겨 입술이 꿈틀거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인은 저 둘을 바라보며 ‘저것도 사랑의 일종’일지 모른다고 데이터에 기록했다.
“...그래서 진짜 싸운다는 거죠?”
아메리는 주먹을 손동작으로 강조하며 물었다.
“예, 사과를 걸고 대련을 하겠답니다.”
사실 이해를 못할 상황도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아리아스필과 레오나르도는 서로 간의 불화를 대련을 풀었으니까.
다만 지금 생긴 불화의 이유가 정말 같잖고 허접할 뿐이었다.
“...괜찮을까요? 둘이 심하게 다치기라도 하면...”
“아니, 그렇게 될 정도면 그전에 이 장소가 마탑 지도에서 사라질걸.”
리오스는 진지하게 이를 확신했다.
아리아스필은 원로원 절반과 동시에 싸우면서 전원을 시체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성검으로 소각했고.
레오나르도는 마나량과 화력은 아리아보다 떨어지지만, 70년 간의 생존으로 갈고 닦여진 경험과 현자에게 직접 배운 마법 실력이 있었다.
아마 둘이 진심으로 한다면 마탑 전체가 일순에 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리아스필과 레오나르도도 그걸 알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사람은 언제 이렇게 모였대...”
관객들에게는 둘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이미 두꺼운 방어막과 결계가 진을 쳐 방음 효과까지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리아는 바깥의 사람을 신경쓰면서도 쥔 성검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행여나 레오가 비겁한 방식으로 기습할 경우를 대비해 발도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알잖습니까? 제가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싸우는지.”
레오나르도는 어느샌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검은 돌로 검을 만들었다.
“이제 와서 존대하기는.”
말은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아리아스필은 성검을 뽑아들었다.
과거를 보았기에 알고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대결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를.
몇 번을 싸우고, 몇 번을 패배했는지를.
“나를 그렇게 음란한 눈으로 보는 전속 기사님?”
하지만 그게 지금 놀리지 않을 이유는 되지 못했다. 원래 싸움은 비겁하게 하는 것이라 레오 본인이 회귀 전에 공인하지 않았던가.
언변으로 정신을 흔들어놓는 것은 훌륭한 전술 중 하나였다.
“아, 그러세요? 전속 기사에게 덮쳐지는 꿈을 즐기시는 고결한 용사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레오는 아니었다. 그 한 마디에 아리아스필의 얼굴도 울그락푸그락하게 변했다.
“...괜찮겠어? 뼈가 너무 많이 삭아서 잘못하면 골절될지도 모르겠는데?”
“아가씨야말로 괜찮겠어요? 기절하시면 꿈속에서 또 가버리는 게 아닌가 몰라.”
서로 지지 않는 도발이 이어졌다. 솔직한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저 둘의 감정에 그런 것은 필요 없었다.
“해보자는 거지...?”
“이제 와서 뭘 새삼스레.”
성검은 아리아스필의 유치한 자존심에도 신성하게 빛났다.
“진심으로 할 거야.”
레오나르도의 흑색 검의 도신에 붉은 빛이 천천히 손으로 퍼져나갔다.
“오히려 내가 진심으로 해야지? 안 그래. 꼬맹..."
“좋아해. 레오.”
“...잠깐, 뭐라...!”
콰아아아아앙!!
아리아는 그 기습적인 고백과 함께 성검을 휘둘렀다.
여태까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저 멍청한 남자에 대한 복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고백 공격은 무섭습니다.
상대의 정신을 완전히 혼절시키죠.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야, 얘가 너 좋아한대!’
‘아...아니야. 미안해... 쟤가 아까 놀린 거 거짓말인 거 알지?’
라는 교내에서 일어나는 흉흉한 응용 공격법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봤어요. 보기만 했다니까요.
보기만 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