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가 만든 검집의 기억 재생 기능은 손상된 기억마저 복구해 상영하는 기능이 있다.
뇌에 저장된 기억이 아니라, 영혼에 내재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정보를 수복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물론 영혼마저 파손되었다면 회복은 불가능하지만.
[...자...자기...!? 하...익...!!]
뇌에 감춰진 기억은 이런 식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지금 영상 속 레오는 아리아의 목덜미를 핥고 있었다. 아리아는 계속해서 안된다며 신음을 내고 있었지만 정작 덮치고 있는 레오를 밀쳐내고 있지는 않았다.
“...으꺄아아악!!!”
아리아는 거의 광속을 주파할 기색으로 검집에 돌진했다.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리아가 뛰는 것보다 한 박자 늦게 들리는 것이 그 증거였다.
콰직...!
이윽고 그 돌진에 가격당한 검집은 그대로 보석 부분이 완전히 갈라져 버렸다. 그 덕에 영상의 뒷부분까지 나오지 않았다.
“...아리아...?”
“...아하하... 어쩌다...? 보니 완전히 고장났네...?”
누가 봐도 고의적이었다. 야생 와이번이 사용하는 브레스와 이빨에도 버틸 정도로 단단하게 제작된 검집이 어쩌다 부서질 리가 없었다.
“...그럼 수리해야죠. 아까 기억은...”
“아!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아메리 님께 수리를 부탁드릴게! 그럼!!”
아주 뻔뻔하게, 그리고 당황스레 변명을 하며 아리아스필은 검집을 들고 간 채로 바깥으로 뛰어갔다. 기숙사실 문이 부서지듯 여닫히는 것이 요란하게 울렸다.
하지만 의미없는 발버둥이었다.
“...이...걸 어떻게 잊혀버려...”
레오도 첫키스를 떠올렸으니까.
***
현자 연구부에는 많은 지원 학생들이 모였다. 레오나르도와 아메리, 리오스와 아인들이 합심해 마탑에 있는 현자의 유산이란 유산은 전부 찾아내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메리의 평가는 물론, 현자 연구부의 평가는 수직적으로 상승해 지금은 주력한 동아리들보다도 인원이 많을 정도였다.
그로 인해 현자 연구부는 더욱더 큰 부실을 받게 되었고, 예전에 사용했던 허름하고 작은 부서는 폐쇄하게 되었다.
사실 말이 폐쇄일 뿐, 사용하는 것을 막거나 출입을 금지한 것은 아니기에 원년 부원들은 이곳을 모임의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로 도망쳤다고?”
그 현자 연구부실로 용사가 찾아왔다.
“...어...으...응...”
리오스는 유례없는 정색을 지은 채 아리아를 노려보았다. 아마 아인이 평소 짓는 정색보다 건조하고 차가울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왜?”
“...응?”
그도 그럴 것이 순애의 수호자인 리오스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아니, 왜? 왜 도망쳤는데? 안 그래? 아메리?”
옆에 있는 아메리도 리오스 못지 않게 정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결과가 현재 사태인 걸 듣고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솔직히 저도 동의하는 바에요.”
평소에는 거의 굶주린 야수처럼 들이대는 주제에, 정작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저런 식으로 내빼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그게...”
아리아 본인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도망친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창피했단 말이야...”
발정난 야수 같은 그녀도 소녀였다.
“...뭐?”
“레오한테 그런 걸 보여주고... 어떻게 같이 있냐고...!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두 사람의 목구멍에는 ‘지금도 충분히 이상한데.’라는 차오르고 있었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이상...”
그래서는 리오스는 맞는 일침을 내뱉었고,
쾅
“...으아...”
매우 맞았다. 아메리는 순간 자신이 입을 다문 것에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리오스는 본능적으로 방어막을 쳤음에도 충격에 머리가 흔들려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레오를 볼 낯이 없어... 사실 감춘 거나 다름없으니까...”
레오나르도가 기억 못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걸 자신만의 추억으로 삼은 것은 아리아였다.
“...그렇다고 도망쳐요? 그 상황에?”
생각해보면 연애가 성사되지 않은 것은 아리아에게도 원인이 있었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버티지 못한다.
그걸 보여주는 것으로 연애를 성사시키는 방법도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벌컥
“아리아 아가씨.”
도망칠 시간도 없이 이 상담의 또다른 주인공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이미 레오는 암살자의 기술로 기척을 죽인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아리아는 물론, 정령들마저 레오가 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레...레오!?”
아리아는 떨기 시작했다. 레오가 지은 표정은 아메리나 리오스가 보인 정색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실로 심각한 표정으로 아리아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메리와 리오스조차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레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예, 레오나르도입니다.”
“...그게...그러니까...”
아리아가 벌벌 떨고 있자, 레오나르도는 얼굴에 드러누운 그림자를 걷어냈다.
“아가씨, 혹시 같이 점심을 드시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놓고 가셨더군요.”
레오의 손에는 도시락통이 들려져 있었다. 피시스가 아리아에게 쥐어준 수제 도시락이었다.
“참고로 거절하는 건 그리 권유드리고 싶지 않군요.”
레오는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 어떤 불쾌한 일이 있어도 대외적인 행동을 지키겠다는 식당 점원과 같은 미소였다.
“나도 화가 날 때가 있거든.”
아리아는 순간적으로 화내는 레오에게 마구마구 혼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다행히도 아직 아리아는 충동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아직은.
***
레오나르도는 아무 말 없이 교내를 걸어갔다. 그저 교내를 이리저리 구경하는 것이 아닌, 목적지를 두고 향해가는 것이었다.
“...그게...”
“...”
레오는 아리아가 말을 꺼내고자 하면 아무 말도 없이 물끄러미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발걸음마저 멈추었기에 아리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르켄에게서 느껴지는 노년의 기운이 레오의 눈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 기운에 아리아는 지금까지 레오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이 ‘굽히는’ 게 아닌 ‘굽혀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윽고 앞으로 나아가던 레오의 발걸음은 그대로 멈추었다.
“...여기에 앉으세요.”
자리는 햇빛이 쏟아져 덥혀져 있는 벤치 자리였다. 앞쪽에는 잔디밭이 깔린 공터가 있는 것이 나름 인상적이었다.
이곳에 왜 사람이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으...응...”
아리아는 한 꺼풀 꺾인 기세로 레오의 명령을 들었다. 이 또한 한편으로는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그 쾌감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지금의 레오는 무서웠다.
‘...설마... 나한테 정나미가 떨어졌나...’
그래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까 전에 아리아가 보인 행동과 기억은 불쾌하게 생각해도 당위적이었다.
“...아리아.”
아가씨라는 말은 붙이지 않았다. 사실 그런 허례허식뿐인 예의는 필요가 없는지도 몰랐다.
공석이 아닌 사석에서는 반말을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회귀 전에 그랬듯이.
“...먹어봐. 피시스 누나가 요리 하나는 잘하거든.”
자신에게 먹으라고 준 샌드위치를 내밀며 레오는 격을 놓았다. 아리아는 그 샌드위치를 받으며 조금 베어 물었다.
야채와 햄, 그리고 소스의 조합이 가히 예술적이라 말할 만했지만, 아리아는 이 상황에서 도저히 음식을 음미하며 집중할 수 없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 회귀 전에도.”
본래 아리아가 성검의 선택을 받는 나이는 20살, 15살에 성검을 받았던 때와는 시간과 장소에 차이가 있었다.
“...지금도 이랬던 적이 있잖아. 지금처럼.”
아리아는 레오의 말을 받아치며 말했다. 어쩌면 회귀 전의 자신에게 밀린다는 것은 아리아에겐 자존심이 깎여나가는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그래도 조금은 다를지도 모르겠네. 그때 난 집행기사였을 시절도 있으니까.”
집행기사로서 아리아와 임무를 나갔던 적도 종종 있었다. 임무를 할 때는 아리아가 혼자 대부분 적을 쓸어버렸지만, 한숨을 돌릴 때 즈음에는 이런 식으로 간단한 도시락으로 식사를 떼우곤 했다.
“가끔 내가 시덥지 않은 농담을 던지면, 그때 넌 늘 차게 독설을 날리고... 때때로는 낄낄대기도 했었지.”
아리아와 있었던 추억이었지만, 지금 아리아는 모르는 기억이었다.
“...그걸... 말하는 이유는...”
질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리아스필은 이미 레오나르도가 말하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아까 그 영상... 사실 넌 원래 기억하고 있었지?”
예전에 현자의 유산 중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을 얻기 위해 치렀던 시련에서 겪었던 거짓된 꿈.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스필이 본인이 뀠던 꿈에 대한 기억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레오나르도가 꿈에 대해 기억을 못했을 때, 아리아스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숨길 생각은 없었어... 아니... 미안해... 사실 이걸 먼저... 말해야하는데...”
“...미안할 거 없어.”
레오나르도도 샌드위치를 꺼내 한입 베어물었다. 분노도, 격정도 없었다. 호수물처럼 잔잔한 감정인 것도 아니었다.
“나는 대부분을 비밀로 이번 생을 산 건데, 너 정도면 약과지.”
“...용서해줘서 고마워...”
아리아는 레오나르도의 용서에 감사할지언정 호응할 수는 없었다. 레오의 용서에는 자조가 섞여있었기에, 그 감정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니, 고마워하지 말아줘.”
레오는 감사를 거절했다. 이윽고 레오는 식사를 내려놓았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 타오르듯 적셔지는 감정을.
그 감정의 존재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단지 알고 있을 뿐... 바라보질 못했어.”
하지만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마주보는 것이 부끄러운 감정이었기에.
대외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이제는 다 알 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왜 그렇게 있었는지.”
그걸 비밀로서 간직했기 때문에 몰랐다.
비밀을 진실로서 마주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비밀의 베일은 벗겨졌다.
“아이러니하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는... 나도 사실 상상을 못 했거든.”
“...레오...”
그게 무슨 말일지... 아리아는 알고 싶지 않았다.
아이러니는 지금 일어난 역설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지금도 내가 좋다면, 말해둘 게 있어.”
레오나르도는 숨을 고르었다. 지금부터 말할 것은 아마 죽음으로 씻어도, 70년의 삶을 반복해도 용서할 수 없는 죄일 것이다.
아리아스필이 진심으로 자신을 경멸하고, 증오할지라도.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 생각해야했다.
인간 레오나르도로서가 아니라.
“전... 말입니다. 아가씨...”
죄업을 지은 기사 어둑시니로서.
“사실 결혼한 이가 있었습니다.”
“...그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거짓부렁이었다.
“...지금 시대에는 없는 인간입니다. 영상을 통해서도 아가씨도 보지 못했을 테죠. 하지만 70년 동안 저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남녀 간의 정을 나누고, 아이도 가졌죠. 죽었지만...”
“...레오나르도.”
아리아스필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비밀이 밝혀진 김에 하나 더 말할 게 있어.”
레오나르도의 비밀은 그렇게 무너진다. 비밀의 베일을 쓴 거짓이었지만.
“내가 레오나르도한테 고해실에서 고해성사를 들어줬던 사람이야.”
사랑과 시간은 때때로 역설적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모티콘을 다시 신청했습니다... 오늘 중으로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대기 중이네요...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ts 레오 외전을 쓰는 것으로 타락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