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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23화 (123/248)

그 고백에 일행들의 표정은 차례로 변했다.

리오스는 늘 감고 있던 실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글라디오는 당황했는지, 마른 입술을 꿈틀대며 소매를 정리했다.

마르켄은 눈을 크고 느리게 끔벅이고 있었다. 크리스는 무언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누른 채로 벽에 기댔다. 하지만 정말 이해했는지는 미지수였다.

시리카는 아예 이해조차 못했는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루미네와 아인은 이제야 묵은 체증이 가라앉았는지 제법 개운한 기색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

아리아도 아련한 눈초리로 레오를 보고 있었다. 사실 레오나르도는 회귀 사실만을 말했을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

사실상 바로 믿고 판단에 따라준 것도 감사한 일이었으니까.

“바로는 믿기는 어려우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레오는 이 이야기를 전해야 했다.

“최대한... 자세히 처음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자신의 죄를 마주하기 위해서라도.

진정으로 아리아를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이 기억에 새겨진, 동시에 역사에서 지워진 이야기는 전해야져만 한다.

“아리아 아가씨와 정말로 처음 만났을 때, 전 이기지 못했습니다. 완패했죠.”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사실만을 말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회귀 전에는 분명 이랬던 적이 제법 많았는데 말이다.

아리아에게는 시간상 못한 이야기도, 전부 천천히 풀어내었다.

가문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

미래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숨기고 독점한 것.

저들을 기만하며 몰래 해온 작업들이며.

원래 봐왔던 추악하고 나약한 과거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입에 담았다.

“...그래서... 지금에 오게 된 겁니다.”

그렇게 숨겨왔던 비밀의 고백은 끝났다.

길고도 굵은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모두들 입을 열지 않았다. 질문도, 따지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못 이해하지 못해서는 아닐 것이다. 70년은 족히 넘는 이야기일 테니 의문이나 설명이 덜 된 부분이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설명한 내용의 중심만큼은 알고 있을 것이다.

레오는 고개를 들지 않은 말을 이었다. 사실 감정으로서 본론은 말이 중심일 것이다.

“여러분들을 속인 것에 대해, 쉽게 용서받지 못할 건 알고 있습니다. 이제야 이런 말씀을 드려... 정말 송구합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용서 받고 싶었다. 모두가 진짜 ‘자신’을 알고 받아들여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자신은 분명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까.

“...회귀 전엔 우린 다 죽은 거야?”

리오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평소와는 달리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이걸 묻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이, 가족들이 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고 두려울 테니까.

“...제가 왔을 때는 시리카 님을 제외한 전원이 돌아가 계셨습니다. 따로 돌아가시기도 했고, 동시에 돌아가신 분도 계십니다.”

마지막 전장에 가기 전에 시리카에게 전해들었다.

가주 글라디오는 부상 때문에 병마에 시달리고, 독으로 중독되어 앓기 시작하다 돌아가셨다.

흑암 크리스는 마인의 군단장을 베다가 전사했다. 흑암답게 군단장과 공멸하는 업적을 보이기까지 하며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관철했다.

집행기사단장 마르켄은 크리스와 군대를 구조하기 위해 노년의 황혼의 불꽃을 태우며 마지막의 싸움에 나섰다.

라인하르트의 마법사 리오스는 군대와 아리아를 탈출시키기 위해 모두를 순간이동시키며 라인하르트의 명예를 지켰다.

라인하르트의 안주인인 시리카는 레오나르도에게 딸이 부탁했던 유언을 전해주며, 고결하게 나무의 목을 메달아 자신의 생을 끝냈다.

용사 아리아스필은 최후의 최후까지 성검을 휘두르며 괴물을 쏟아내는 게이트를 닫아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일을, 아리아는 굳건하고 당당히 자신의 번제로 삼아 성공시켰다.

모두 그들을 칭송하며 아리아와 라인하르트는 전설과 신화의 이야기로 퍼뜨려졌다.

그렇다고 이를 달갑게 받아드릴 이는 없을 것이다.

그 사이엔 자신들의 허무한 죽음이 있었으니까.

“...왜 숨긴 거야?”

리오스는 낮은 목소리로 짧게 물었다.

단호하면서도 차갑게도 느껴졌다.

당연했다.

이건 오만한 기만이었다.

용서를 못한다 하더라도 납득해야한다.

“...바로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믿기가 어려우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회귀한 구간은 아리아와 처음으로 만난 순간, 전생에 있던 대부분의 인연은 사라지고 잊혔다.

그리고 레오 또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제... 과오로 절 멀리 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기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오는 비밀을 유지하고 싶었다.

나약한 자신보다, 유능한 레오나르도만을 기억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건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더는 숨기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으..응?!”

아리아는 진지한 눈빛으로 레오가 자신을 부르자 약간 놀라면서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레오가 내 가슴을... 힐끔거리고 있어...!’

놀란 이유는 조금 핀트가 어긋났지만 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 레오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혹시 검집을 빌릴 수 있을까요?”

“...검집을?”

아리아는 레오나르도의 말에 검집을 잡아들었다. 그러고는 검집을 레오나르도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네, 감사합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면서 검집을 향해 검은 돌을 잡아들었다.

[‘그걸’ 하게?]

현자는 검집의 숨겨진 기능을 알고 있기에 확인삼아 레오나르도에게 물었다.

“원래는 제가 실종되거나 죽을 때를 대비한 물건이지만, 지금 들킨 이상 어쩔 수가 없죠.”

그런 섬뜩한 이야기를 너무나 태연히 뱉자, 주변인의 사람들은

[...알았다. 그럼 ‘열쇠’는 내가 만들게. 너 지금 마나가 거의 없어.]

현자는 그렇게 말하며 검은 돌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사실 열쇠라는 건 개념적인 의미에 불과하고, 지금 검은 돌이 변하는 것은 검집에 넣을 검에 가까웠다.

“뭘 하려고 하지?”

크리스는 레오나르도가 검은 돌로 만든 ‘열쇠’와 살짝 금이 간 검집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이 검집에는 특수한 기능이 탑재된 마도구입니다.”

아리아를 위해 여러 가지 기능을 탑재해두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 이 기능은 레오 본인의 결단과 각오를 담은 상징이었다.

“검을 연속해서 13번 연속해서 넣었다 빼면 제가 저장해놓은 정보들이 영상으로 나오죠.”

“어?! 내가 했을 때는 안 됐는...”

그 한 마디에 아리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차게 식는다.

“...그걸 왜 하십니까? 아리아 언니?”

“...그...그게 손이 심심하고... 발도술이나 연습할 겸...?”

평범한 납도와 발도라면 몰라도, 연속해서 13번 검을 뺐다가 집어넣는 건 상식적으로 이상한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현자는 보석 너머로도 보일 정도로 짜게 식은 눈빛을 쏘아내며 남은 말을 마저 끝냈다.

[...어쨌든 설명을 이어하자면 이 검집에 검 대신에 검은 돌을 끼워 넣으면 검집의 마법이 발동돼. 저장된 기억을 보여주는 거지.]

일종의 상영 장치로 봐도 괜찮을 것이다. 동시에 저장소의 역할 또한 해줄 것이다.

“...제가 일일이 말하는 것은 미화가 되거나, 기억이 희미해서 왜곡됐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이런 형태로 저장해놓을 필요가 있었죠.”

기억이라는 것은 풍화되기 마련이다. 자기 좋을대로 기억하고, 불리한 정보는 늘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의 사고회로다.

그건 레오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기억이 많기에 더 잊으려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혼의 정보 회로를 복사해 집어넣은 검집을 만들었다. 행여나 자신을 죽을 것을 대비해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자동적으로 잠금이 해제되도록 설정도 해놓았고 말이다.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검집의 틈에 검을 꽂았다. 이대로 검을 밀어넣으면 장치가 작동하고, 과거가 된 미래의 기억들이 환상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그럼, 시작하...”

“그 전에 하나 말해도 될까?”

레오나르도가 검집을 완전히 집어넣으려는 찰나, 아리아는 말했다.

각오와 확신이 담긴 표정으로.

“어떤 과거가 있던 난 널 싫어하지 않을 거야. 맹세할게.”

아리아는 자신의 기사에게 맹세했다.

자신의 이 마음이 거짓되지 않았으며, 사그라들지 않을 거라고.

“우리들도 마찬가지라네. 가주로서도, 아리아의 아버지로서도 맹세하지.”

글라디오가 저렇게 말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아리아에게도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드물었다.

아인과 루미네는 물론, 시리카와 마르켄까지도 글라디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호의적이여서 놀랐다.

“그럼 전 순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맹세할게요. 아우라면 믿을 수 있거든요.”

리오스는 표정과 말투만 침착할 뿐, 무척이나 흥분해있었다.

‘뭐야!!!! 이거!!! 이거 완전 순애!!!! 70년이나 안 잊고 돌아왔다는 시점에서 완전 순애잖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이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빵 100덩이는 그냥 먹을 수 있는데!!!!!!!’

사실 아까 70년의 회귀를 드문드문 설명할 때부터 계속 얼굴을 붉히거나 흥분을 했지만, 레오의 정신 건강도 걱정되었고 분위기가 너무 진지했기에 말을 자중했을 뿐이었다.

그건 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다른 시간선의 일이더라도 사제의 연은 깊다. 안 믿고는 흑암의 이름이 수치가 생기지.”

‘회귀라... 소설에서 들어본 적이 있어. 정말 들어본 적만 있었는데. 그보다 어둑시니라니... 그런 멋진 이명은 어디서 유례한 거지? 거기에 사령왕? 광전사? 뱀파이어 로드와 싸웠다고? 전생의 내가 잘 가르친 건가? 아니면 레오나르도가 혼자서 그렇게까지 성장한 것인가? 어찌 되었든... 그런 전설이 전생엔 내 제자라는 게 믿기지 않는군...!’

이렇게 흥분되는 이야기가 따로 없었다. 상황이 상황만 아니었어도 그 어둑시니라는 이명부터 차례로 묻고 싶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쌓아왔던 업적들도 말이다.

“...그럼 시작...”

“아버지, 질문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검집을 검은 열쇠를 잡아넣기 시작했을 때, 아인은 손을 들며 말했다.

“...어? 뭔데?”

“검집에 금이 갔는데, 괜찮습니까?”

그 순간, 레오나르도는 황급히 검집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저장과 송출 부위에 작은 실금이 갔다.

자신과 아리아의 격투전에서 깨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야야!!]

기본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막을 틈도 없이 검에서 광채가 빛나며 환상 영상이 송출된다.

“...괜찮은 것 같다만...”

[아리아스피이이일!!]

흔들리던 환상이 고르게 잡히더니 이내 레오나르도와 아리아가 나왔다. 밀폐된 미궁 속, 거기에 체구가 작은 때인 걸로 봐선 회귀 전의 일인 것 같았다.

[이 미친 년아아아!!]

이내 레오나르도는 소리친다. 평소의 예의있는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아예 아리아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러대고 있었다.

“...이거 꺼야해요!! 이건...!”

레오에겐 최대의 흑역사였다.

[잠깐만!! 레오한테서 검집 뺏어!]

“예, 알겠습니다.”

갑자기 현자의 말을 잘 듣게 된 아인은 레오에게 검집을 낚아챘다. 평소라면 몰라도 약화된 레오나르도로서는 아인의 동물적인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뿐일까.

“하하, 아우~ 모든 걸 보여준다고 했잖니~ 약속은 지키는 게 순애의 정석이란다~”

저 순애에 미친 뺀질이마저 레오를 포박마법을 걸며 온몸을 묶었다. 온몸을 묶고는 영상의 재생을 재촉하는 (기특한)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어쩔 수가 없었어. 물은 없는데, 넌 약해서 탈수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거기에 있는 레오는 유치하고, 허세가 가득했으며, 어린애 같았다. 그 나이 또래에 맞는 아이처럼. 물론 화가 좀 많기는 했지만, 나름 인간적인 면모가 많이 엿보였다.

[그걸 말이라고 해?!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거 아니야!]

[없었어. 너 예전에 물이 없을 때, 오크 피도 먹은 적이 있었잖아.]

그렇게 아리아는 태연하게 레오가 말하고 있는 오류를 꼬집으며 되받아쳤다. 하지만 레오에게는 그건 안중도 없었다.

[그게 이거랑 같냐!? 그리고...!!]

그만큼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본인의 목숨을 부지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싼 오줌, 정화해서 마신 게 죽는 것보다 더 굴욕적이야!! 임마!!]

...순간 싸늘한 침묵이 휘감겨졌다.

아리아와 레오나르도에게 모든 이의 시선이 뻣뻣이 향했다.

레오나르도는 차라리 가면을 쓴 채 죽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과연 그게 생존만을 위한 거였을까?

[죄송합니다. 최근에 현생이 바빠 연재가 늦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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