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41화 (41/248)

EP.41 마탑-3

“...휴... 간신히 거절했네요...”

흑탑주는 계속해서 대학원생을 빙자한 노예 계약을 권유했다. 사람도 많은지라 거절하는데도 한두시간 걸린 게 아니었다.

[잘한 거야. 쟤 봐라. 인간이 할 짓이 아니야.]

현자의 말대로, 앞에 있는 대학원의 노예는 네크로맨서와 계약한 언데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차라리 언데드는 통각이라도 없으니 그나마 덜 안타깝기라도 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오... 아직 어리시니이... 대학원은 천천히 생각하셔도 돼요오...”

저 정도면 성녀나 다름없었다.

자신이나 현자 같았으면 같이 죽자는 의미에서 물귀신마냥 같이 하자고 꼬셨을 것이다.

“...근데 아메리 씨는 왜 대학원생을 했나요?”

슬며시, 그리고 자연스레 궁금했던 의문을 물어보았다.

왜 저렇게까지 하면서 대학원생을 하는지, 같은 인격체이자 생명체로서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이 재밌어서요. 헤헤... 지금도 재밌어요... 그리고 나중에 학위도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오...”

분명 칭찬할 정도로 바람직한 이유인데, 왜 더 안타깝게 보일까.

그 의문은 모두 알지만 풀지는 못할 난제였다.

“대학원은 졸업하는데 오래 걸린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오...! 하프 엘프도 장수하거든요...!”

이유가 납득은 되는데, 너무 처량했다.

[...저건 마법의 미래가 밝다고 봐야할까?]

<...그렇다고 생각하죠. 흑마법사로 타락하지 않은 게 어디에요.>

기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모두에게 좋았다. 저렇게 괜찮다고 하는데 옆에서 걱정하는 게 더 민폐였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오...! 이제 과제 준비해야돼서어...”

“...네, 가보세요.”

[쟤 안 죽는 건 맞지?]

<예, 딱하게도요.>

현자나, 레오나 눈으로 저 학위의 노예에게 애도를 표했다.

언젠간 편한 곳으로 가길.

[그러고 보니 아리아는?]

<...아, 늦었겠다.>

지갑만 갖다준다는 게 그만 강의도 벌이고, 중급 마법 허가서도 받아버렸다.

적어도 3시간은 넘게 지나갔을 것이다.

[...애 완전 화났겠는데?]

<...그렇겠죠? 아무래도...>

[가면 싹싹 빌어. 답은 그거밖에 없다.]

현자답게 현명한 답안을 내주었다. 고향과 같은 마탑에 온지라 지혜가 상승한 것 같았다.

“...아리아 아가씨...?”

도서관에 들어가, 아리아가 있는 자리를 향해 조용히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 반응에 따라 분노의 정도를 간을 재는 것이었다.

“...”

아리아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책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었지. 귓가나 볼이 붉은 걸로 봐선 확실했다.

[...빡친 것 같지?]

<...예... 몹시...>

레오는 조심히 아리아에게로 향해 말을 걸었다. 죽을 각오는 반 정도는 되어있었다.

“...아리아 아가...”

“난 아무 생각도 안 했어!!”

갑작스러운 외침.

도서관에 있는 모두가 아리아를 놀란 채 바라보았다.

“...어... 왜 그래요...?”

레오나르도조차 그 외침에 당황한 건지, 살짝 주춤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어...!? 그...그게 말이야...!”

그녀는 레오와 책을 힐끔거리더니 급히 책을 덮어 뒤짚었다.

“그게... 책에 너무 집중해서 놀랐어... 하하...”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책에 집중하셨어요? 무슨 책이었는데요?”

“그...그게...”

그녀는 책은 한 손으로 최대한 가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 주머니에 넣었던 쪽지가 생각났다.

“아아...! 그러고 보니 아누스 씨께서 쪽지를 전해달라는 사람이 있었지?!”

“예? 그랬긴 했는데...”

“얼른 가자! 얼른!!”

아리아스필은 안 어울리게 흥분하며 레오나르도를 붙잡고 뛰쳐나갔다. 평소의 분위기만 생각해도 명백히 의심스러웠다.

<...왜 저럴까요? 평소답지 않게.>

[그러게. 야설이라도 몰래 읽었나?]

<...그걸 추측이라고 합니까? 마탑 도서관에 야설이 어딨어요?>

현자의 추측은 몹시 근접했지만, 레오나르도의 지적 또한 타당했다. 현자도 확신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건 그런데, 표정이 꼭 니가 자다가 팬티에 싼 거랑...]

<그냥 좀 닥쳐요. 물어본 내가 나쁜 놈이지.>

현자가 혀를 차긴 했지만, 저 관음증 늙은이의 말을 굳이 귀담을 필요는 없었다.

“그럼 적당히 잘 장소를 안내해달라고 부탁하죠.”

“...잘 장소...?!”

갑자기 경악하며 아리아는 레오나르도의 바지춤을 바라보았다. 그런 기묘한 시선에 레오는 조금 당황해하며 말을 이었다.

“...마탑에는 여분의 기숙사도 있을테니까요. 거기로 안내해달라는 말이었는데... 혹시 싫으신가요?”

“아...아... 아니야... 미안.”

도대체 무슨 의미로 오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사과했으니 추궁하지는 않기로 했다.

[쟤 진짜 야설 본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요. 마탑이 썩었어도 그 정도로 미치진 않았겠죠.>

[근데 왜 바지 사타구니 쪽을 보는데? 아무리 봐도 거기 보는 거 아니야?]

참으로 발상이 한심한지라 레오는 눈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레오나르도도 그 방향으로 시선이 향한다는 착각이 들었다.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아마도.

***

마탑의 방은 각각 개인실로, 아리아는 여성 기숙사 방향, 레오나르도는 남성 기숙사 방향으로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아리아는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마탑의 규정인지라 군말없이 그 지시에 따랐다.

[근데 이제 어쩔 거냐?]

침대 누운 레오를 보며 현자는 물었다. 레오나르도는 피곤한 몸의 기지개를 피며 대답했다.

<우선은 휴가 기간 동안은 마탑에 있으려고요. 3서클 마법에 대한 연구를 한다는 핑계를 대면 충분하겠죠.>

마탑의 자료와 연구는 리오스가 가르치는 것보다 훌륭한 건 사실이었으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 3주 동안 그 놈들 다 잡게?]

<그건 힘들죠. 지금은 즉결 처분 대상에만 집중하려고요.>

어디까지나 잡지만 않는 것일 뿐이었다. 확인 절차 정도로 간결하게 감시할 용의는 있었다.

잡을 혐의만 없을 뿐, 그들이 한 악행은 레오의 뇌리에 똑똑히 남아있었으니까.

[괜찮겠냐? 책 조금 보니까 대규모 몰살을 한 놈도 있던데.]

사실 현자의 말대로 안전을 생각하면 그런 녀석들은 죽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기회를 가질 자격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무슨 자격으로 심판하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 같아서요.>

레오는 선을 넘고 싶지는 않았다.

[무책임하구만.]

<무책임은 심하죠. 소(少)책임한 겁니다.>

[알았다. 소책임한 소인배야.]

뛰어난 언어유희력에 탄복하며, 레오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시작하다니, 뭘 어떻게 하게?]

<증거를 잡아야죠.>

레오나르도는 검은 돌이 변한 팔찌를 어루만지며 기숙사 밖을 나가 복도를 걸었다.

[근데 그렇게 쉽게 되겠어? 마탑은 내 시대 때에도 삼엄했다고. 현대에는 발전하면 했지 퇴보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현자의 지적은 의외로 맞는 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개방적인 척을 하고 있었지만, 실상을 까보면 더러운 면을 어떻게든 은폐하는 조직이니까.

개인적인 비리나 악행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니가 은신을 잘해도 마법 경비 시스템을 다 뚫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혹시 내가 모르는 게 더 있냐?]

<아니요. 현자님 말대로에요.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경비를 뚫을 순 없죠.>

마탑에 기본적으로 설치된 감시용 수정 구슬과 경보용 정령, 그리고 비리를 저지른 철두철미한 쓰레기들은 특수한 잠금장치나 비밀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레오나르도가 날고 기어도 그걸 전부 뚫고 해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 어떻게 하게? 속여서 들여 보내달라고 할 거냐?]

<그것보다 나은 방법이 있죠.>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옆에 있는 현명한 유령을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어떤 인간들도, 정령들도, 마물들도, 심지어 마법사나 정령사조차 저 유령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게다가 유령이기에 어떤 물체에도 통과, 투시하는 것도 가능했고, 마법적 식견도 뛰어나 관련된 물체를 식별하는데도 능했다.

그렇다는 건.

<현자님이 들어가시면 되잖아요.>

현자가 들어가면 절대로 들키지 않는 완전 범죄가 된다.

[...그러네?]

<...그걸 이제야 아셨어요?>

[야, 그게 오히려 고마운 거지. 이거 악용하려면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다? 어?]

어째 말뜻과 방향이 묘하게 이상했지만, 우선 조력자였으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근데 들어가서 보는 건 그렇다치고... 증거는 어떻게 꺼낼 건데? 그건 나라도 불가능하다고.]

<그건 증거를 찾은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증거의 유무였다.

어디있는지 알아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자신의 정보가 확실한지도 판단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선 그 새끼부터 족치러 가죠.>

레오나르도의 노트에 적혀있는 1순위는,

[제프리 페드니안]

아리아스필에게 찝쩍였던 아동성애자 개새끼였다.

***

[...야... 이제 좀 쉬자...]

<한 곳만 더 들르고요.>

[그 말만 4시간째 10번이나 했잖아!!]

현자의 말대로 레오나르도 새벽 동안 6시간이나 쉬지 않고 각종 방과 장소를 돌아다녔다.

단순히 돌아다닌 것이면 현자도 역정내지 않겠지만, 지정된 방에서 모든 벽면과 지면,그리고 천장을 통과해 살피는 건 생각보다 지치는 일이었다.

<어차피 안 주무시고, 안 다치시는 분이 왜 그러세요?>

[야... 넌 못 봐서 그래. 아까는 바닥의 쥐가, 천장에는 곱등이들이, 벽에 바퀴벌레가 생명의 탄생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더라? 그걸 봤어? 네가 봤냐고?!]

<한 늙은이의 오밀조밀한 장기를 직접 보긴 했죠.>

2년도 더 된 일이었지만, 레오에겐 영원히 잊히지 않을 트라우마였다.

[그거는 봉사지. 봉사.]

<......>

[알았어. 무리수였어.]

이번엔 인정이 빨라서 다행이었다.

<이번 놈은 진짜 악질입니다. 자기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전부 다 도용한 뒤에, 그 학생들은 마탑에서 내쫒은...>

[여어 출발해라. 그런 새끼는 다 죽여버려야돼. 스물다섯 살 연하의 미인을 아내로 둔 놈은 더 그렇고.]

좀 많이 추하긴 했지만, 결과적 목적과 의도는 같았기에 레오나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를 시작했다.

“저기...”

누군가가 레오나르도를 조심히 불렀다. 그 부름에 레오는 조금 경직됐지만, 자연스러움을 위해 최대한 부드러이 대답했다.

“네? 누구... 으아 시발!!”

분명 면전에 욕을 한 건 무례였다. 누가 봐도 무례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이유는 있었다.

[...낮에 본 대학원 노예잖아. 나도 언데드인 줄 알고 쫄았어...]

눈앞의 사람은 퀭한 표정에 눈그늘로 점철된 시선으로 레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에서 램프로 얼굴만을 비추고 있으니 섬뜩함이 더 가중되었다.

“...아하하...죄송합니다아... 갑자기 부르시니... 당황하셨겠어요오... 죄송해요오...”

“아...아닙니다. 저도 놀라서요...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퍼석한 머리를 긁으며 너털웃음을 내었다. 솔직히 안심되긴 했지만, 이젠 다른 의미로 걱정되었다.

“...근데 왜 부르신 건지...?”

사실 어째서 자신을 부른 건지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최대한 조심히 행동하기는 했는데...

“...아, 그게 레오나르도 군이 뭘 찾는지 알 것 같아서요오... 저랑 같은 걸 찾고 있는 것 같은 것 같아서어...”

이건 예상 외의 이유였다.

설마 회귀자인 자신 외에도 마탑의 비리를 눈치챈 인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아메리처럼 유약하다고 판단된 인물이...

“마탑에 있는현자의 유산들을 찾고 있는 거죠? 그렇죠?!”

아메리는 처음으로 곧은 시선으로 눈을 반짝였다. 이러니 정말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레오나르도는 슬며시 눈을 돌려 유산의 장본인인 현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게 있었나...? 늙으니까 영 기억력이...]

새삼 현자의 존재를 숨긴 것이 현명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것마저 알리면 저 인간 찬가의 마법사는 바로 흑마법사로 타락할 것이다.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