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4화 (14/248)
  • EP.14 친구-3

    현재 저택 내부는 한층 더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본가는 물론이고, 본가에서 떨어진 별채조차 급박하고 어지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때는 임금님 납시온데, 지금은 황제가 온 수준인데?]

    <그럴 수밖에요. 가문에선 진짜 황제나 다름 없을걸요.>

    라인하르트 뿐만 아니라, 어떤 명문가에서도 가주가 올 때는 그에 대한 응대를 허접히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가문 자체의 위신을 세우는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 가문 주인이 누구인지 가문의 일원들이 다시 되새길 필요도 있으니까.

    [근데 그럼 보통 아들하고 같이 오지 않아? 따로 나갔나?]

    <나가는 건 같이 나갔을 거에요. 근데 들어오는 건...>

    “도련님.”

    레오가 대답하기 이전에 집사장인 알프레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돌아오실 때는 가주님과 함께 돌아오시지, 그러셨습니까?”

    “뭔가 부담스러워서 텔레포트로 들어왔지!”

    [아, 등신 맞네.]

    저 당당함에 현자가 가문의 차기 가주를 등신이라 인정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가주님께는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알프레드는 레오 자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레오나르도 군, 함께 가주님을 뵈러 가시죠.”

    “예? 같이요?”

    보통 가주를 맞이할 때는 종자는 종자들끼리, 집사는 집사들끼리 모여 행렬을 만든다.

    하지만 일개 종자가 집사장과 같이 가주를 맞이한다는 건, 그리 전례 있는 일은 아니었다.

    “괜찮겠습니까? 집사장님과 함께 가도...”

    “괜찮습니다.”

    알프레드는 소매에서 작은 편지를 꺼내었다.

    “아예 가주님께서 레오나르도 군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뭔가 불길하다.

    ***

    저택 입구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입구에 행렬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현자가 했던 비유가 적절한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기사들은 깃발과 검을 든 채 자신의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사람들이 선 차례는 시종, 종자, 기사, 그리고 가문 내 간부와 혈족들 순서였는데, 현재 그 규칙에 작은 예외가 생겼다.

    [오, 너 한번 라인 잘 탔다. 이게 바로 농담의 힘...?]

    <입 좀 다물어봐요. 안 그래도 부담돼 미칠 것 같으니까.>

    한 어린 종자가 가문의 고위 간부인 집사장 옆에 있으니 말이다.

    <...하... 그때 왜 농담을 씨부려가지곤...>

    그냥 예절만 잘 지켰어도 반은 갔을 것이다. 괜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농담을 친 것이 인생의 화근이 되었다.

    당장 지금만 봐도 종자들이나 기사들이 레오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아마 이유를 찾자면 고작 종자 주제에 집사장 곁에 있는 것이 원인일 테지.

    [니가 택한 농담 살해자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

    이젠 저 늙은이의 말에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나팔이 울리고 있는 거로 봐선 지금 가주가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일동! 차려!!”

    그 말에 기사들은 군기가 새겨진 기세로 발을 모았다.

    스릉!

    기사단장이 검을 뽑자 다른 기사들도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빛나는 검날이 하늘 높게 치켜드는 장면은 라인하르트의 위상과 가치를 빛내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이군.”

    그 말을 시작으로 화려한 백마를 탄 남자가 기사단을 이끌며 저택 정원으로 들어왔다. 맞이하는 기사단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원정을 통해 라인하르트의 영광과 긍지를 가져온 듯 보였다.

    ‘글라디오 라인하르트...’

    가문의 주인이자 6성의 오러를 지닌 기사.

    왕국 내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강자였다.

    “...이번에는 많이 일찍 오셨군요.”

    접대하는 기사들 중심으로 나온 것은 한 여성이었다.

    그는 기사도 아니었고, 또한 무인도 아니었다.

    ‘시리카 라인하르트.’

    가주의 유일한 아내이자 가문의 안주인이었다.

    ‘과거니까 확실히 젊으시긴 하네.’

    원래부터 관리를 잘하시는 분이어서 괴리감이라 할 것까진 없었지만, 전생의 모습을 바라보니 기분이 묘하기는 했다.

    새삼스럽지만 이곳이 과거라는 걸 되새기는 느낌이 들었다.

    “가문에 많은 일이 있다고 들어서 말이오. 가주인 내가 집을 오래 비울 수는 없었소.”

    백마에서 내린 글라디오는 자신의 반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저 양반 이쪽을 보는데?]

    집사장 옆에 있는 레오도 바라보았다.

    <하... 그 망할 놈의 신문...>

    알아본 까닭은 의심할 것도 없는 신문 때문일 것이다. 어디서 구한 지도 모른 얼굴 그림이 떡하니 인쇄되어 있으니 못 알아보는 것이 더 이상할테지.

    “알프레드, 실신했다 들었는데 몸은 좀 어떤가?”

    “괜찮습니다. 가주님. 오히려 오랜만에 웃은지라 몸이 가볍군요.”

    “그런가? 옆에서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워지는군.”

    그리고 글라디오의 시선은 천천히 레오나르도에게로 향했다.

    “자네가 그 유명한 농담 살해자인가?”

    참아야한다. 여기서 날뛰면 심문실에 가는 게 아니라, 즉결처형을 당할 것이다.

    “...소문이 와전되어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만, 전 그 별명을 부정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알프레드 집사장님은 정정하시니까요.”

    최대한 예절을 지키고, 미소를 그리며 예법에 맞는 인사를 시작한다.

    “종자 레오나르도, 가문의 주인이신 가주 글라디오 라인하르트 님을 알현하여 영광입니다.”

    레오는 허리를 숙이며 고개를 가볍게 내리고 예에 맞는 인사말을 꺼내었다.

    “...오, 전통적인 인사법이로군. 알프레드가 알려준 건가?”

    “아닙니다. 가주님.”

    “호오, 그럼 누가 가르쳐준 거지?”

    “용병으로 살면서 때때로 교양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더군요. 예전에 만난 귀족들의 예절 방식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갸웃거리던 현자는 물었다.

    [진짜야?]

    <진짜겠습니까?>

    사실은 거짓말에 가까웠다.

    이 예법은 전생에 종자로 일하면서 알프레드에게 직접 교육받은 방식이었다. 용병 생활을 하면서 예법까지 챙길 여유는 없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알겠네.”

    이번에 그의 시선은 다른 친족들에게로 향했다.

    “오랜만이네요. 아버지. 만수무강하셨습니까?”

    그 중 가장 먼저 인사를 꺼낸 것은 장남인 리오스 라인하르트였다.

    “그래, 30분 전만 해도 같이 출발했지만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인 거겠지.”

    근데 따지고 보면 리오스도 원정을 갔다온 사람이긴 했다는 게 문제였다.

    “안녕하십니까. 아버님.”

    다음으로 인사한 것은 장녀인 아리아스필 라인하르트였다. 오빠인 리오스와는 다르게 차갑고 절개있는 인사였다.

    “4달 사이에 키가 제법 컸구나. 아리아. 없는 동안 잘 지냈니?”

    그때 기분 탓이었을까, 그녀의 눈빛은 레오나르도를 향해 힐끔거려졌다. 그러곤 다시 글라디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나름 즐거운 수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에 글라디오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제법 놀라운 눈치로 자신의 딸을 바라봐야했다.

    “의외로구나. 항상 ‘보통’이라고 대답하던 너였는데.”

    “정말 즐거웠으니까요.”

    자식 간의 상봉을 끝낸 뒤에는 본가에 있는 친족 간의 인사를 시작해야했다.

    “원정은 잘 끝내셨습니까? 가주님.”

    무릎을 굽히며 크리스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오빠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이군. 크리스, 좋은 종자를 데려왔다고 들었는데.”

    다시 라인하르트 가문의 시선은 다시 레오에게로 향했다. 이건 두렵고 말고로 떠나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좋은 수준이 아닐 겁니다. 가주님. 편지를 쓰려고 했으나 마침 잘 됐군요. 식사라도 하면서 천천히 얘기하시죠.”

    “좋은 생각이군.”

    가주는 주변 친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가벼이 저녁이나 먹지. 다들 따라오게.”

    가주의 말에 라인하르트의 친족들은 대답으로 그를 따라갔다.

    <...아, 드디어 한시름 놓겠네요...>

    “아, 그리고.”

    돌아서 가던 글라디오는 안심하던 레오에게 긴장을 동메여주었다.

    “자네도 따라왔으면 좋겠군.”

    “...예?”

    “가문에 자네가 온 뒤로 흥미로운 일이 많이 일어났다고 들었네. 이럴 땐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직접 듣는 편이 낫지 않은가?”

    [...아무래도 너 찍힌 것 같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이번에는 현자의 말이 맞았다.

    ***

    넓고도 긴 식탁보 너머로 차례로 음식이 쌓인다.

    현생이든, 전생이든 쉽게 먹지도 보지도 못할 음식들이 한꺼번에 진열된다.

    아마 음식값만 총합하면 레오가 가져왔던 짐의 가격과 동일... 아니, 그 이상일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야... 이름값 하네. 라인하르트.]

    정작 자리에 앉은 레오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한 채, 속으론 떨떠름한 감정을 삼켜야했다.

    <지금부턴 말 좀 줄여주세요. 아무래도 시험인 것 같으니까.>

    [시험? 뭔 시험?]

    <저라는 인간에 대한 시험이요.>

    일개 종자를 가문의 식사 자리에 데려온 것은 단순히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한 의도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걸 명령한 게 가주이면 더더욱 말이다.

    [그럼 통과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데?]

    <잘요, 잘하면 돼요.>

    [그건 당연한 거고 쨔샤. 좀 구체적으로...]

    <그런 게 있으면 차라리 시험지 가져와서 문제로 테스트하겠죠.>

    싸가지 없다고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전생에서 본 글라디오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확인해왔다.

    “우선 가볍게 들게. 차린 게 많이 없어서 미안하군.”

    “아니요. 충분합니다. 오히려 차린 게 많았더라면 먹기도 전에 식탁 다리가 부러졌겠군요.”

    상황을 풀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 이런 게 큰 영향을 주진 않을 테진 레오 본인의 긴장을 푸는데는 큰 도움을 주었다.

    “크...흡...!”

    그때 뒤에서 대기 중인 한 고통스러운 노집사가 보였다. 폐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웃음을 간신히 누르기 위해 알프레드는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게 진짜 되네...”

    “역시 농담 살해자...”

    ...아,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알프레드, 잠시 방에 가서 쉬고 있게. 오늘은 식사가 길어질 것 같으니.”

    알프레드 집사장은 허리를 숙이며 식사실 밖으로 나갔다. 나간 직후 웃음소리가 중간에 들린 건 기분 탓일 거다.

    “내 딸이 자네에게 많이 신세를 졌는다고 들었네.”

    레오가 스테이크를 작게 잘라 입에 넣는 순간, 글라디오는 질문을 시작했다.

    “신세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리아스필 님 덕분에 제게 부족한 점을 많이 깨우칠 수 있었죠.”

    거짓이나 아부가 아닌, 마음 속에 나오는진심이었다.

    현생이든, 전생이든 그녀에게 배운 것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가?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고맙군.”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와인을 가볍게 흔들고 있는 글라디오는 잔을 입에 대며 물었다.

    “흠... 자네는 출신이 어딘가?”

    “동쪽 끝 지방에 있는 도론이라는 마을에서 왔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지방이로군.”

    “괜찮습니다.가주님뿐만 아니라, 도론 앞산 너머에 있는 마을만 가도 이름은커녕 위치도 모르는 게 태반이어서요.”

    나름 재치있는 답변에 글라디오는 나름 인자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 뒤로도 계속 식사와 함께 문답이 이어졌다.

    아리아스필과의 첫만남도,

    발록 간의 전투도,

    종자로서의 생활도,

    마나체련술에 대한 정보도,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글라디오의 표정에는 흥미가 깊어져만 갔다.

    “혹시 설명이 부족한 게 있습니까?”

    “음... 이건 공적인 장소에서 묻긴 그렇다만, 혹시 지금 물어도 괜찮은가? 너무 궁금한지라 참을 수가 없군.”

    “그렇게 흥미를 느낀다면 답변하는 제가 더 영광입니다. 어떤 질문이죠?”

    지금까지 잘 대답해왔다. 상황도 많이 누그러졌으니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닐...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아닐 게 아니었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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