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8화 (8/248)

EP.8 라인하르트-3

얼굴을 한 대 얻어맞은 제하드는 벌벌 떨며 말했다.

“어...! 어째서입니까?!”

잘못한 주제에 왜 언성이 높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걸 모른다는 점에서 이미 넌 자격이 없다.”

“...무슨...?!”

부어오른 얼굴을 부여잡으며 제하드는 눈을 부라렸다. 이젠 진짜 뵈는게 없나보다.

[저 새낀 뻔뻔한 거냐? 아님 진짜 대가리가 안 돌아가는 거냐?]

<제 생각엔 둘 다인 것 같습니다.>

[그래. 하나만으로 사람이 저렇게 등신일 수가 없어.]

처음으로 현자와 생각이 통했다. 이래서 다들 뒷담화를 즐기는 것이리고 생각될 정도였다.

아니, 앞에서 하곤 있으니까 앞담환가?

“민간인을 대피시켰다고?”

“그렇습니다!! 저는 기사로서...!!”

“네놈은 촌락의 경비병인가? 아니면 라인하르트의 영애를 지키는 호위기사인가?”

“그건...”

기사라면 약자를 지킨다.

그건 당연한 기사도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할 일을 한 뒤였다.

“그래, 백번 양보해 네가 민간인을 지키려고 했다고 생각해보지. 그렇게 생각해도 넌 호위기사 실격이지만 말이야.”

가문의 호위기사는 당연히 가문의 인물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했다. 상식이 있다면 말이다.

“난 확실히 봤다. 저 소년이 발록을 해치울 수 있음에도 두 모자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날리는 것을. 그동안 넌 뭘했지?”

그 일침에 제하드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민간인을 대피시킨다는 것도 핑계였으니까.

발록의 모습을 본 순간, 제하드는 직감했다. 저곳에 있으면 자신은 분명 죽는다는 것을.

두려웠다. 그렇기에 도망쳤다.

그게 기사로서 얼마나 큰 수치인지, 제하드의 긍지로는 알 턱이 없었다.

“나가. 다신 돌아오지 마라. 너의 존재는 라인하르트의 실밖에 되지 않는다.”

“...하...! 하지만 그럼 아가씨는 누가 가르칩니까?!”

이때까지 제하드는 수도 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 그 질문은 그가 하고 있는 가장 큰 착각이리라.

“가르친다고? 뭔가 단단히 착각했군.”

“...네?”

“그럼 지금 네가 아리아보다 수준이 높다는 건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그는 더욱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미 레오나르도의 대련에서 아리아스필의 실력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성장은 이미 빠르다는 개념을 넘어섰다는 것마저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제가 가르쳤기 때문에...!”

그 주장을 빙자한 헛소리에 레오도, 흑암도, 현자도, 아리아스필 본인마저 어이가 빠졌다.

[그래도 뻔뻔한 것보단 지능이 딸리는 게 큰 것 같네.]

<지능이 딸리니까 뻔뻔해지는 거 아닐까요?>

[오, 그럴 수도.]

서로의 죽이 이렇게 잘 맞았던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뒷담화가 만든 경이로운 유대성엔 정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아리아스필과 대련해라.”

“...네?”

크리스는 아리아스필을 바라보며 물었다.

“가능하겠지?”

“네? 네.”

아리아스필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오, 선생이라 말하는 작자가 고작 제자와 대련하는 걸 두려워한다라. 농담이었다면 아마 궁전 광대도 울고 갈 거다.”

제하드는 아리아스필을 바라보며 잠깐의 간과 눈치를 보았다. 레오와 싸울 때는 분명 경이로운 검술을 내보였던 그녀였다.

재능 뿐만 아닌, 실력에서도 제하드는 확실하게 밀렸다.

하지만

‘지금은 발록과의 전투로 지쳤을테지. 지금이라면...’

상처는 치료술로 나았지만, 떨어진 마나와 체력은 완전히 보충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니 지금 싸운다면...

“...하겠습니다!”

“좋다. 둘 다 따라나오도록.”

나가는 크리스를 뒤따라 제하드와 아리아스필이 밖으로 나갔다.

침대에 앉은 레오나르도는 그저 나가는 일행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휴식을 취했다.

[괜찮겠냐?]

“뭐가요?”

[그... 아리아스필이 센 건 맞지만, 지금 쟨 발록과의 전투로 지쳤잖아. 그에 비해 저 등신은 지 몸보신 잘해서 쌩쌩하고.]

“그쵸.”

[뭐가 그쵸냐? 그럼 빨리 말리고 다음으로...!]

콰아아아앙!!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현자의 말이 끊겼다.

끝났구나. 생각보다 늦게 끝났네.

[...음?]

파열음이 서서히 사라지자, 두 백발의 기사가 걸어들어왔다.

“잘 끝났어?”

“응.”

소년과 소녀는 너무 태연히 승리를 확인하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긴 거냐?]

<그럼 졌겠습니까?>

물론 조건만 놓고 보자면 아리아스필이 불리한 건 맞았다. 경험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말이다.

근데 그걸 다 씹어먹는 게 천재란다.

“훌륭한 솜씨더군. 아리아. 마나 코어 자체도 질이 많이 올랐고, 검술의 묘리가 한 층 더 깊어졌어.”

“레오나르도 덕분이에요.”

갑자기 아리아스필한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묘해진다.

늘 하는 말이 재수가 없어서, 그냥 레오 자신의 종자 인생이 재수 없는 거라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역시. 이 또한 무인의 이끌림, 운명이로군.”

“하하...”

어색한 웃음만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저런 말을 너무 태연히 하니 오히려 말이 안 나온다.

“아, 그러고 보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이런 대화 주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레오는 아까의 전투에 느낀 의문을 물었다.

“왜 저희를 도와주시지 않았습니까?”

따지는 듯한 말일 순 있으나, 이는 꼭 질문해야 마땅했다.

해석에 따라선 13살의 아이들이 죽는 걸 방관했다는 의미도 될테니까.

“훗, 좋은 질문이다.”

[난 300년 넘게 살면서, 누가 직접 ‘훗’이라고 말한 건 처음 들어본다. 내가 이상한 건가?]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목이 칼칼해서 숨소리가 헛나왔다고 생각합시다. 그게 정신건강에 편해요.>

그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종자로 살아오면서 얻은 눈치였다.

“이유가 있습니까?”

“사자는 자식을 절벽에 떨군 뒤 기어오르는 새끼만 키우는 법이지. 아직 어린 전사들의 성장을 위해선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필요한 과정치곤 부러진 갈비뼈가 몹시 욱신거리긴 했지만, 굳이 화를 내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신사적으로, 교양있게 말을 전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고맙군. 너와 같은 전사라면 이해할 줄 알았다.”

“근데 한 가지 지적하자면 사자는 본인의 새끼를 절벽에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그 말에 무게를 잡던 크리스의 낯빛이 변했다.

“...뭐라고?”

“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맹수들은 자신의 자식을 절벽에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포식자에 위치한 동물일수록 모성애가 깊은 편이죠.”

라인하르트에서 훈련을 못 할 때마다 읽었던 것이 책이었다.

가주님께서 허락해주시기도 했고, 명문가의 종자로서 최소한의 지식은 쌓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다지 독서를 즐기진 않았지만, 이런 내용은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지.’

크리스 라인하르트, 나중에 그녀가 한 헛소리에 일일이 반박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속담으로서 하는 말일 뿐이다. 나...나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그런 것치곤 말투가 세상에 산타가 없다는 걸 안 꼬맹이 같은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요즘 애들도 산타클로스는 안 믿는데.

“아, 그러고 보니 떨어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합니다.”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은 말에 동심을 잃어가던 크리스가 다시 표정을 풀었다.

“그런가?! 역시 그렇군! 고귀한 사자답게...!”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기 위해 수사자들은 가끔 새끼 사자를 절벽에다가 던진다더군요. 그 소문이 와전돼서 그런 속담이 되어버리긴 했지만요.”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법이다.

“...그게...정...정말인가?”

“예.”

이젠 동심을 잃는 수준이 아닌, 없던 동심마저 가슴에서 끄집어내서 망치로 난타해 가루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넌 왜 순수한 애의 꿈을 부숴버리고 난리니?]

<저보다 20살은 넘게 많은데 무슨 앱니까?>

[내 눈엔 백 살도 애야.]

하긴 그건 맞는 말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참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나이 먹도록 연애 한번 안 했다니... 역시...’

[싸물어.]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마음속으로 나 고자라고 생각했잖아. 망할 놈아.]

이걸 아네. 어쨌든 지금 말할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저기 크리스 님?”

“.........”

아까 말한 게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그녀는 말없이 허공만을 내다보았다.

“크리스 님?”

“...아아, 미안하군. 무슨 얘길 하고 있었지?”

“수사자가 절벽에...”

[그만해라. 저 여자 동심은 이미 가루야.]

그건 맞는 지적이었다. 저러다가 저 사람 이불이 찢어져라잠을 못 잘 것 같았다.

“...그건 됐고, 어째서 크리스 님께서 이 마을에 오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좌절과 절망을 곱씹고 있었지만, 질문에 답하지 못할 만큼 유약하진 않았다.

다만 동심이 지나치게 순수했을 뿐.

“...내가 이곳에 온 건, 아리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저를요?”

아리아스필은 고개를 돌려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근처 지역에 임무가 있기도 했고, 아리아 네가 수행 삼아 나왔다고 들었을 때 어느정도 성장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지.”

그러고 보니 아리아스필은 본가로 돌아갈 때, 거쳤던 마을에서 크리스와 만났었다.

‘...그때 발록은 크리스 님이 잡은 거였군. 그럼 아귀는 맞아.’

전생과 현생의 사건을 퍼즐처럼 맞춰져 갔다. 그렇게 추리하던 와중 크리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너의 성장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조언과 수련법 덕분에 그녀는 전생1년분의 성과를 단축해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함께 발록을 잡는 소년을 보며 생각했다. 분명 네가 아리아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준 존재라고 말이야.”

크리스 라인하르트는 그 소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렇기에 제안 하나를 하지.”

어째서일까, 이 제안이 무엇인지 레오나르도는 듣지도 않고 알 수 있었다.

“라인하르트 가문, 용사의 피와 영혼이 흐르는 유서깊은 가문의 종자가 되어주지 않겠나?”

“고모!”

그 말에 아리아스필은 큰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침에 크리스는 당황했다.

고모라는 격 없는 호칭을 사용해서가 아니었다.

‘아리아가 저렇게 큰 소리로 흥분한다고?’

자신의 조카지만 늘 냉혈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소녀였다. 그랬던 아이가 흥분한 눈동자로 본인을 바라보고 있다.

“왜... 부르지?”

“레오나르도는... 종자로 있기엔 아까운 사람이에요! 지금... 아, 그래! 제하드가 그만뒀으니...!”

“할게요.”

...침묵이 잠깐 흘렀다.

“...뭐?”

“...뭐?”

[...뭐?]

삼연속으로 같은 단어가 울려퍼졌다.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 레오나르도는 덤덤히 대답했다.

“종자 좋네요. 하겠습니다.”

망설일 건 없었다.

왜냐하면

「너의 눈은 의지와 열정으로 차있군. 당장 승리를 잡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아리아에겐 큰 도움이 될 테지.」

「우리 가문의 종자가 되지 않겠나?」

저런 사람이더라도 크리스는 자신의 인생에 기회를 준 은인이니까.

그런 가문과 기사를 모실 수만 있다면 종자더라도 괜찮았다.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