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라인하르트-1
검격이 난무한다.
“...뭐야... 저건...”
그에 비례한 풍압이 울린다.
그 광경을 본 제하드는 입만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가 언제 저 정도까지...!’
눈 앞의 아리아스필은 자신이 알던 일주일 동안의 ‘아가씨’가 아니었다.
검술의 경지, 마나의 순도, 그리고 그에 임하는 자세마저도 여태까지와는 격이 달랐다.
‘...그리고 저 꼬맹이는 어떻게...’
그런 아리아스필의 검을 전부 받아내는 저 소년의 정체는 뭐냔 말이다.
고작 용병 따위가... 어떻게...!?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제하드는 눈치채지 못한 것이 두 가지나 있었다.
첫 번째는 제하드 자신이 둘의 움직임을 눈으로도 완전히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과.
두 번째는...
‘...역시 강해. 힘을 아끼면 안 되겠어.’
‘생각보다 빨라. 가볍게 가면... 밀리겠는데.’
저 두 소년·소녀는 아직 전력을 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카아앙!!
검이 부딪치며 둘은 잠시 거리를 벌리게 되었다.
“후...!”
숨을 한번에 내쉰 아리아스필은 마나를 완전히 전개했다.
주변의 바람이 몰아치며 마나가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온다. 꼬맹아.]
“알고 있어요.”
검격이 몰아친다.
일격이 전력인 난격, 그런 검술이 난무해왔다.
‘단순히 힘이나 자세만 좋은 게 아니야.’
그녀는 정확히 레오의 궤적을 예상해 그에 적합한 최선의 검술로 대응했다.
이미 일주일 사이의 훈련으로 아리아스필은 레오의 대응법을 짜놓은 것이었다.
[진짜 천재긴 하구만. 무슨 재능이 잡초마냥 끝없이 자라.]
<그거 칭찬 맞죠?>
칭찬을 욕처럼 하는 기막힌 재주일세.
하지만
<확실히 강해지긴 했네. 이대로 가면...>
간발의 차로 질 수도 있다.
그 사실이 두렵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그녀가 자신을 위협할 정도로 되간다는 것은 레오에게는 크나큰 희열이었다.
“오늘은...! 이길 거야...!!”
그녀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마나를 최대로 전개했다. 이젠 제하드 따위의 수준으로 따라볼 수도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
상대는 늘 그녀를 위협해왔던 2인자였다.
[오...!]
그녀의 검을 튕겨낸 것은 한 자루의 검이 아니었다.
“확실히 빨라. 한 자루로는 반격하기 어렵겠어.”
레오는 두 자루의 검으로 반격을 했으니까.
“...레오나르도 너, 이도류였어...?”
“뭐 경우에 따라선. 딱히 어느 쪽을 택한 건 아니고.”
레오나르도는 무기술에 재능은 있을지언정, 아리아스필처럼 정점의 성장력을 보유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무기술을 익히는 것, 그게 제가 택한 방도입니다.>
[그냥 한 우물만 파는 게 낫지 않냐?]
<그러는 사람도 있지만, 저에겐 이게 낫습니다.>
한 가지 기술만으로는 아리아스필을 꺾을 수 없다. 한 가지 방식에서는 그녀는 의심할 것 없는 일류니까.
[그러니 차라리 다구리 화수분 물량전으로 간다는 거지?]
<제 평생의 노력을 그렇게 하찮게 요약할 수도 있군요.>
폄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레오나르도는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간다.”
반격이 시작되었다.
아까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의 속격, 단순히 두 배로 빨라진 것이 아닌 연개의 이어짐도 변칙적으로 합쳐졌다.
‘강해...! 그리고 빨라...!’
그 검을 간신히 쳐내고 있는 아리아스필은 경악하고 경악했다. 닿았다고 생각했는데 레오나르도에겐 그 이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그 이상의 재능이 있었다.
‘아까만큼 세진 않아.’
양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만큼, 공격의 근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걸 깨닫는 건 쉽지 않은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늘 2인자를 꺾어왔던 1인자의 재목이었다.
카앙!! 캉!!
확연히 달라진 격돌음, 그걸 보고 들은 레오의 표정이 바뀌었다.
‘벌써 파훼법을 찾은 건가? 역시 무섭다니까.’
연속적으로 검이 부딪친다. 그리고 그 검의 울림은 결말에 접어들었다.
“헉...하...”
“...후...”
서로의 검에 마나가 깊이 농축된다. 아마 저 검이 결투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이길 거야...!‘
’아직 질 수는 없지.‘
자세는 준비됐다. 남은 건 검이 닿는 것일 뿐.
둘이 돌진하며 검이 닿는다.
콰아아아앙!!
귓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음.
그러나 검이 부딪친 소리는 아니었다.
[뭐여! 시발!! 여기가 제일 재밌는 부분인데!]
둘은 검무를 멈추고 폭음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죠!? 아가씨?!”
[마물이야.]
“마물이야.”
이 짙고 더러운 마기, 체련을 통한 예민한 감각으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마물이라고?”
“미안. 결투는 나중으로 미루자!”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폭음이 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 레오나르도!”
레오는 대답하지 않은 채, 폭음이 난 마을 쪽으로 뛰어갔다.
“갑자기 마물이라니...!”
[게이트가 갑자기 열린 건가?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어?]
회귀 전에는 일이 있는 줄도 몰랐다. 본래라면 레오는 아리아스필에게 패배하고, 그녀는 마을을 일찍 떠나게 된다.
레오도 마찬가지로 굴욕을 느끼고 그녀를 쫓아가 마을을 떠났다.
“그 전에 마을에 게이트가 났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이정도로 짙은 마기는...”
[그래, 고블린 정도나 스켈레톤 무리 같은 게 아니야.]
마을로 뛰어가자 사람들의 비명도 울린다. 마을 주변은 이미 폐허가 되기 직전이었고, 사람들의 사체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우워어어어어!!”
저 맹렬한 포효, 예전에도 저 괴성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발록...!”
[...새끼지만 확실해. 발록이야.]
업화의 괴수, 발록이었다.
“우워어어어!!”
화염을 내뿜으며 발록은 마을 사람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도와줘...!! 아빠아아아...!! 엄마아아아...!!”
발록 근처에 있는 어린 아이가 울고 있었다. 부모를 찾는 아이에게 발록은 기꺼이 아이를 죽은 아버지 곁으로 보내주려고 했다.
카아앙!!
“우워...?”
발록의 주먹은 레오의 검에 멈춰졌다.
“...어...?”
눈을 질끈 감은 아이는 슬며시 눈을 떴다.
“꼬마야...! 형이 지금 버티기 힘들거든...!”
발록의 주먹은 서서히 레오의 검을 밀어내고 있었다.
“얼른 도망치지 않아주련...?”
“아...아아...! 네!!”
아이는 레오의 말에 급히 뛰기 시작했다.
[...자, 이제 너도 도망...]
“안 돼요.”
주먹을 흘리치며 레오는 대답했다
[뭐? 도망 안 치겠다고?]
발록 간의 거리를 재며 레오는 다시 검을 잡았다.
“...네.”
[너 미쳤어? 새끼여도 상대는 발록이라고.]
발록은 2서클의 마법사도, 3성의 기사도 간신히 이기는 상대였다.
물론 저 앞에 있는 건 새끼였지만, 종족간의 격차는 이미 충분히 불리했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여기선 싸울 놈은 저밖에 없어요.”
그 말대로였다. 이 마을의 경비 수준으론 발록을 이길 수 없을테고, 제하드는 물론이고 아리아스필이더라도 상대할 수는 없을 거다.
[...영웅이 되고 싶은 거냐?]
“그럴 리가요.”
레오가 되고 싶은 건 영웅같이 허울뿐인 게 아니었다.
“도망치면 쪽팔리잖아요. 현자 제자로도, 그 녀석 경쟁자로도.”
[...으휴, 뭐가 다른 건지.]
한숨을 쉬면서도 현자는 피식 웃었다. 레오도 발록을 앞에 두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온다.]
발록은 입가에 불길을 뿜어내며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우워어어어!!”
불길에만 닿아도, 주먹에만 스쳐도 치명상, 아직 코어의 개수가 1성인 레오로는 즉사할 것이다.
‘그러니까 전부 피한다.’
발록의 공격은 전부 레오에게 닿지 않았다. 간발의 차로 전부 공격을 회피해내고 있었다.
[‘...일부러 약점을 보여주고, 공격의 궤적을 단조롭게 만들고 있어.’]
레오에겐 발록을 뛰어넘길 신체능력이 없었다. 힘도, 속도도 발록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오는 일부러 자신의 빈틈을 만들었다.
그 방식으로 발록의 공격을 맞으면 일격사지만, 확실히 피할 수 있는 공격으로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기만자 새끼.]
“죽기 직전인데 좀 닥치시죠?“
그리고 이 방식의 또 다른 장점은 방어와 회피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워?!“
발록이 주먹을 날리던 도중, 레오의 검이 휘둘러졌다. 기습적인 참격에 발록의 주먹이 조금 베였다.
[...카운터까지 되잖아. 이러고도 천재가 아니라고? 기만충아?]
회피와 동시에 이어지는 역습, 상대가 공격을 실패했을 때가 공격을 퍼붓기에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아 좀 닥쳐요! 한번 맞으면 뒈진다고!“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레오는 반대쪽 검을 휘둘렀다.
파창!
주먹에 금속이 깨지는 소리, 값싼 검인 만큼 비싼 능력을 기대할 순 없었다.
‘...이거면 충분해.’
하지만 상관없었다. 검이 깨짐과 동시에 울리는 충격, 그건 발록의 움직임에 정체를 줄 것이다.
”우워...?!“
그리고 그 정체를 레오는 놓치지 않았다.
”우워어어어!!“
발록의 손목을 반대쪽 검으로 내리꽂으며 역방향으로 꺾는다.
콰직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이 힘을 잃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이길 수 있어...!’
”우워어어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화르르륵!!
상대는 정정당당한 기사가 아닌, 업화의 괴수였다.
‘브레스...!‘
[...네 방향이 아니야.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시선이 그쪽으로 가는 순간, 그 생각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아아아...! 일어나봐...!“
아까 그 아이였다.
”루이스...! 엄마는 두고... 도망가...!!“
팔이 건물 잔해에 깔린 어머니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이였다.
”씨발...! 씨발...!“
입으로 연발 욕을 하며 레오는 그 모자에게로, 날아가는 화염구에게로 돌진했다.
그러곤 오러를 두른 검으로 그 화염구를 받아쳐냈다.
”빨리 가라고!! 모자 같이 천국 가고 싶냐!?“
”하지만 팔이...!“
”아!! 씨발!!“
욕과 동시에 레오는 팔을 깔아뭉갠 잔해를 걷어찼다.
”얼른!!“
어머니는 다친 팔을 부여잡으며 아이와 함께 도망쳤다.
”이제...!“
”우워!!“
이미 주먹은 날아왔다.
’씨발.’
[씨발.]
충격으로 레오는 나가떨어졌다.
”쿠허억...!“
충격으로 건물 벽에 부딪치며 몸이 넝마가 된다.
뼈가 탈골되고 으스러지며, 입가에서 피가 멈추지 않는다.
[너 괜찮냐?]
<...괜찮아 보여요?>
[아니.]
알면서 왜 묻는지.
[...설 수 있겠어?]
<10초만 있으면요. 오러로 대충 탈골된 부위만 맞추면...>
”우워어어어...!“
10초라는 여유를 부릴 순 없었다.
지금 1초마다 발록이 100m씩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야, 너 죽겠다.]
”...안 죽을 거든요.“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한 손으로 마나를 끄집어낸다. 강철과 같은 오러의 형태가 아닌 부드러운 연철의 마나.
[쓸 거냐? 가능하겠어?]
현자의 기술, 마법이었다.
<그럼 그냥 죽습니까?>
죽더라도 눈깔은 조져버리고 뒈져야지.
”우워어어어어!!“
술식은 완성되기 직전, 주먹도 날아오기 직전, 종이 한 장 차이로 목숨 한 장이 날아간다.
콰앙!!
발록이 더 빨랐다. 주먹은 이미 부딪쳤다.
”...?“
하지만 레오는 다치지 않았다.
”...괜찮아?“
부딪친 건 그녀의 검이었으니까.
”...아리아스필?“
공격을 막은 건 아리아스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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