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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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은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관상을 보아하니 거짓말을 잘 칠 얼굴이로다.”
“그게 무슨…….”
“끌고 가라.”
“폐하. 억울합니다. 저희는…….”
그렇게 폴란 왕국의 사신들이 끌려나갔다.
“서방님. 저들이 정말 거짓말을 하고 있나요?”
앙드네드는 고개를 한쪽으로 살며시 기울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했다.
그럴 것이 첩보에 의하면 진짜로 스랑 제국의 군대가 폴란 왕국을 약탈을 하며 이곳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봤는데 어설프게 저항을 하고 있더라고. 저항을 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그게 아니라면 빨리 적들이 지나치게 비워 놓든가.”
다시 말해 스랑 제국과 폴란 왕국이 뒤에서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 사실을 아는 폴란 왕국과 스랑 제국의 군인은 많지 않을 거다.
두 군대는 실제로 싸웠고 죽고 죽였으니.
다만, 폴란 왕국은 어설프게 싸우다가 퇴각하기를 반복했다.
“아마 우리가 싸우면 적의 뒤를 치겠다고 약속해 놓고 우회 기동하여 우리 레온 제국을 공격하겠지.”
“아아. 그럼 어떻게 하면 좋죠? 병력이 모이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군대는 트리아-헝그 왕국의 기병대뿐이다.
이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급히 동원령을 내리기는 했으나 시간이 촉박했다.
“걱정 안 해도 돼. 곧 내 군대가 도착할 것이니.”
리안은 앙드네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 * *
너폴레옹이 이끄는 스랑 제국의 군대는 빠른 속도로 진격했다.
루스 제국까지 다녀온 것에 비해 상당히 풍족해 보였는데, 오는 도중 보이는 마을과 도시를 열심히 털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폴란 왕국에서 희생을 감수하고 묵인해 준 것이다.
“드디어 헝그 왕국이군.”
“폐하. 기병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기병이 언제 적 기병인데. 이제 기병의 시대는 갔다.”
저 멀리 보이는 한 무리의 헝그 왕국의 기병들.
그들은 싸우지 않고 지켜만 보다가 떠났다.
“이상하네요. 헝그 왕국의 기사들은 저돌적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이곳이 평야임에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다.
“겁을 먹은 거지.”
“하긴. 폐하께서 기병대를 박살 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긴 하죠.”
기병은 여전히 위력적이지만, 단독 병종으로 완편된 부대를 상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럴 것이 이제 전군이 마총으로 무장한 시대.
거기에 더해서 포병의 화력 지원까지 받게 된다면 기병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은 더욱 좁아졌다.
특히 너폴레옹은 포병 장교 출신으로 보병용 소형 마포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계속 진군한다!”
너폴레옹은 트리아 왕국의 관문으로 향했다.
그곳의 성은 높고 튼튼했지만, 보병용 포대를 많이 운용하는 너폴레옹에게는 큰 걱정이 없었다.
요새의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그나저나 그놈들은 어떻게 되었지?”
“아. 기만술을 위해 보낸 폴란 왕국의 사신들 말입니까?”
“그래. 계획대로라면 저놈들이 기어 나와 싸워야 했는데.”
“방금 전 전령이 도착했는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자신들은 우회하여 다른 방면으로 트리아 왕국을 친다고 합니다.”
“쯧. 쓸모없는 놈들. 포병을 준비시켜라.”
평야에서 대회전을 벌일 것이 아니라면 기병은 필요 없다.
저들도 그걸 아는지 산맥을 넘어 헝그 왕국의 후방인 트리아 왕국을 칠 계획으로 보였다.
두드드드드!
그런데, 스랑 제국군의 저 후방에서 대규모의 기병이 등장했다.
“설마. 그놈들이 배신을 한 것인가?”
후방에 나타날 기병이라 해 봐야 폴란 왕국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닙니다. 조금 이상합니다. 여기.”
부관이 망원 아티팩트를 너폴레옹에게 넘겼다.
“음?! 지금 내가 똑바로 보고 있는 것이 맞나?”
“저도 똑같이 보았습니다.”
과거 오토호스가 나오지 않은 시절 율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몽골 제국의 군대가 시간을 뛰어넘어 나타난 느낌이었다.
대군이었지만 그들은 오토호스가 아닌 진짜 말을 타고 있었다.
물론 일부는 오토호스를 타고 있었지만, 티가 나지 않았다.
“어디서 온 놈들이지?”
“루스 제국에서 동방의 유목 민족들을 고용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도 숫자가 과하다.”
벌레를 모아놓은 것만 같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행색은 형편이 없었지만, 그 숫자 때문이라도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
투트트트!
너폴레옹은 즉시 사기를 높이기 위해 연설을 시작했다.
“율 대륙의 최강 육군이 누구인가?!”
“우리입니다. 폐하!”
“폐하께서 이끄는 군대가 곧 최강입니다.”
“당연히 스랑 제국군입니다!!”
너폴레옹이 연설을 시작하자 긴장이 풀린 병사들이 하나둘 외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너폴레옹은 더 강력하고 더 많은 숫자의 적들을 상대해 항상 승리해 왔다.
그걸 떠올리자 병사들은 자신감이 올라갔다.
“맞다. 저런 마적들 따위가 우리의 상대가 되겠는가? 걱정하지 말고 싸워라. 너희의 뒤엔 내가 있으니.”
와아아아아!!!
병사들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함성을 질렀다. 그때.
-아아. 마이크 테스트.
요새의 성벽에 한 미청년이 나타나 다리를 하나 올렸다.
-거기 너폴레옹 있는가?
그 말에 너폴레옹도 확성 마도구를 들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감히 대 스랑 제국의 황제를 함부로 부르는가.
-거참. 기억력도 나쁘군. 그대의 후원자를 까먹다니.
-황제 레온인가 보군. 그 돈은 잘 썼다.
너폴레옹도 어느 정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리안이 올 것을.
루스 제국의 궁전에 편지를 남긴 걸 봐선 동방에서 돌아온 모양.
-그래 보이는군. 수고가 많았다.
-후회되지 않는가? 그대가 키운 것은 사자였다네.
너폴레옹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착각하는군. 그대는 사자가 아니라 사냥개였다네. 진정한 사자는 이 몸이지. 사냥을 하러 다니느라 그동안 고생이 많았단 말이다.
-흥! 기고만장한 걸 보아하니. 저 숫자만 많은 엉터리 기병을 믿나 보군.
너폴레옹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유물이나 다름없는 진짜 기병대를 보고 황당할 따름이다.
-그럼 시험해 볼 텐가?
-얼마든지.
그 말을 끝으로 너폴레옹은 대 기병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마총병으로 사각형으로 거대한 테르시오 진형을 여러 개 짜고 그 안에 보병 마포들을 집어넣었다.
“버텨라!!! 버티면 적들은 알아서 와해될 것이다!!!”
너폴레옹이 외치며 병사들을 다독거렸다.
두드드드드드!!!
동시에 땅이 진동한다.
여진족 기병들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너… 너무 많아!”
저 멀리 보이던 기병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런데, 막상 가까워지니 기병의 숫자가 정말로 끝도 보이지 않게 사방에서 밀고 들어왔다.
“당황하지 마라. 그래 봐야 구시대 경기병이다! 마포 발사!!”
펑!! 펑!! 퍼어어엉!!
마포들이 불을 뿜었다.
퍼버벅!
포탄이 기병들을 쓸고 지나갔다.
위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포탄 한 발에 몇 기나 나자빠졌다.
두두두두!!
그럼에도 기병들은 멈추지 않고 넘어진 아군을 너머로 계속해서 돌진해 왔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숫자.
그럼에도 스랑 제국의 군사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베테랑 병사들은 오토호스로 이루어진 기병들도 충분히 상대해 봤기에.
“마총으로 기세를 꺾는다!”
적들이 사정권에 도달하자 명령이 하달되었다.
타다다다당!!!
마총이 발사되고 기병들이 꼬꾸라졌다.
사방이 마나 연기로 일렁거렸다.
짙은 농도에 어지러움이 밀려올 지경.
“대열을 이탈하지 마라!!”
이제 사격을 마친 이들이 마총을 세워 기병을 견제하고 후열의 병사들이 자유 사격을 할 차례였다.
앞 열이 잘만 버텨 준다면 기병은 그저 움직이는 표적일 뿐.
그런데.
“드라군?!”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칼이나 조잡한 활 따위로 무장을 했으리라 생각했던 적들의 무장이 이상했다.
씨익!!
검은 땟국물이 좔좔 흐르는 동방 기병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들은 보병들보다 짧은 마총을 들어 올렸다.
타다다당!!!
이번에는 기병 쪽에서 마나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여름 날의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 같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당!!
타다다다다다당!!
끊임없이 쏟아지는 마총들.
어이없게도 기병들은 한 발 쏘고 이탈하는 식의 차륜전을 벌렸다.
사거리도 재장전 시간도 위력도 약함에도 기병들은 빠른 기동력과 압도적인 숫자로 발사 속도를 압도했다.
끄아아악!!
스랑의 병사들이 마총에 맞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물론 안정적으로 지상에서 사격하는 스랑 제국군이 더 유리하긴 했다.
교환비도 7:3 정도였다.
“버텨라!! 밀려선 안 된다!!”
그나마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펑! 펑! 펑!!!
중간중간에 쏘는 마포 덕분이었다.
기병들이 돌진이 아닌 마총으로 응수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도 조금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투트트트트!!!
오토호스.
어느 순간 기병들도 정예가 투입되었다.
“우익이 무너졌다. 쓸어 버려라!”
기후 백작이었다.
그는 이곳까지 오는 동안 리안에게 너폴레옹의 전술을 배웠다.
-참으로 골치 아프군요.
기병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진형.
격자로 길을 만들어 놓아 돌격을 감행하면 어쩔 수 없이 수로에 물이 흐르듯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빨려 들어간 기병들은 숫자에서 밀려 학살당한다.
개미지옥과도 같았다.
-마총으로 돌려 깎으면 균열이 일어날 겁니다.
-만약 균열이 안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별수 없이 빼야죠.
리안이 현장에 있다 해도 별수 없다.
현존하는 최강의 전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무리한다면 이길 수는 있다.
그리한다면 전투에선 이길지 몰라도 전쟁이 길어지게 된다.
퍼버버버벅!!
정예 기병이 빈틈을 비집고 우익을 무너뜨렸다.
다른 곳에 비해 신병의 비율이 높았기에 가능한 일.
“폐하! 우익이 뚫렸습니다.”
“예상했던 일이다. 문을 열어라!”
우익이 뚫리자 스랑 제국의 진형이 바뀌었다.
중앙에 대기하고 있던 포대가 일제히 그곳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펑! 펑!! 펑!!!
정예 기병이 측면을 두들겨 맞고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정예 기병은 기수를 돌렸다.
“닫고 버틴다.”
다시 진형이 움직였고 살아남은 우익이 중앙으로 붙었다.
예상보다 훨씬 치열한 전투였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상대측에 소드마스터가 있을지도 모르니.”
소드마스터는 소드마스터로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진형 그 자체로 억누를 수 있기 때문.
병사 개개인은 약할지 모르겠지만, 일정 숫자가 모이게 되면 마나의 흐름이 생긴다.
소드마스터라 할지라도 진형에 잘못 갇히게 되면, 힘을 쓰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한다.
뿌우우우~
레온 제국 진형에서 나팔 소리가 들렸다.
“폐하. 적들이 물러납니다.”
“후…….”
부관의 보고에 너폴레옹은 한숨을 쉬며 바닥에 대충 털썩 앉았다.
숫자가 적기에 조그마한 실수라도 했다간 삽시간에 무너질 수 있었던 상황.
정신력 고갈로 정신이 멍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오래 쉬지 못했다.
“본국으로 귀환한다.”
“알겠습니다.”
더 많은 피해를 본 것은 레온 제국이었지만, 스랑 제국 측도 만만치 않았다.
이곳은 본토가 아니다.
병력 충원은 물론 물자조달도 힘들다.
특히나 상대는 기동력이 좋은 다수의 기병.
보급대가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척척척!!!
기병들이 물러나자 스랑 제국군은 즉시 철수를 시작했다.
기습을 대비해야 하기에 최소한의 진형을 유지한 채.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겁쟁이구나.
리안은 철수하는 너폴레옹의 뒤통수에 대고 확성 마도구를 사용했다.
답을 하지 않고 무시하는 너폴레옹.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겉보기엔 딱히 패배를 했다고는 보기 힘들었으나, 결과적으로 본다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에 패배나 다름이 없었다.
어찌 보면 너폴레옹의 첫 패배였다.
“이대로 돌려보내는 것입니까?”
헝그 요새의 사령관이 리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여진 기병도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헝그 제국의 기병대도 있다.
그들을 동원한다면 적의 뒤를 물어뜯을 수 있으리라.
“아니요. 잘못 물었다가 피해만 더 커질 겁니다.”
퇴각하는 스랑 제국의 꽁무니에는 독이 발려 있었다.
어설프게 공격했다가는 엄청난 피해를 강요당할 것이다.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