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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215화 (215/253)

215화

##215

리안은 용을 타고 영주 대리를 만나러 갔다.

그는 운하의 상태를 점검하고 관찰하기 위해 코파나 영지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했다.

펄럭!!

아래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운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측량하는 것이 보인다.

“공왕 전하를 뵙습니다.”

대설 남작이 리안을 발견하고는 급히 예를 올렸다.

그는 영주 대리임에도 직접 돌아다니며 시찰한 것으로 보였다.

옷 곳곳은 흙투성이에 성한 곳이 없었다.

“고생이 많네요. 코파나 백작.”

“네에?!! 제 가문은 대설인데…….”

그는 영지없는 몰락한 남작 귀족.

그러니 이벨 왕국에서 코파나 백작령의 영주 대리로 임명해 놓은 것.

리안이 이곳을 받고도 돌려보내지 않아 어찌어찌 묶여 있는 중이었다.

“그대에게 이 백작령을 맡기는 바. 코파나라는 성을 하사한다.”

대설이란 이름은 운하를 관장하는 영지에 붙이긴 불길했다.

“가…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받아드린 대설 아니 코파나 백작.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고 있었다.

가문이 영지를 잃은 지 어언 100년.

이름이 바뀌는 것은 아쉬운 일이나 숙원을 이룬 것이다.

“즉위식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미안하네요.”

“아니옵니다. 전하!!”

“그래. 배는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

“몇 번 시도해 본 결과 중심부로만 가능합니다.”

이 운하는 오랜 시간 사용되지 않아 퇴적된 것이 많았다.

“다만, 시간이 더 지난다면 바닥에 깔린 것들이 조금씩 쓸려 나가 더 넓어질 것으로 예측되옵니다.”

직접 돌아다니며 측량을 한 이유가 그 때문인 것 같다.

코파나 백작은 군사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행정가로는 쓸만했다.

“곧 수백 척의 배가 몰려올 테니 준비해 주세요.”

“저희 영지는 그들을 수용할… 송구합니다. 최대한 준비하겠습니다.”

머뭇거리다 변함없이 웃는 리안의 모습을 보며 다시 계산을 했다.

이것은 가능, 불가능이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하는 일임을 직감한 것이다.

리안이 공왕이 되었단 소식은 이미 들었다.

그런 그가 홀로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전하. 정령석 수급이 원활하게 진행 중이옵니다. 드워프들과 저번에 전하께서 구해 주신…….”

“작은 히어로 호텔 몽키 말입니까?”

“네. 전하!!”

정령사는 자유분방하며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족속들.

황제라 할지라도 그들을 붙잡아 놓고 정령 갑옷의 핵심인 정령석을 수급하지 못한다.

‘기사는 어찌 만들어도 대전사는 걱정이었는데, 이걸로 한시름 놓았네.’

고잉미샤호의 해병이었던 이들이 대부분 기사가 되었다.

다만, 그들을 입힐 갑옷이 없었는데 이걸로 해결되었다.

“그것도 맡기고 갑니다. 얼마 뒤에 도착하는 배들을 차질없이 옮겨 주세요. 아! 그리고 푸른 염료가 필요한데…….”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코파나 백작은 사신의 비서에게 지시해 짐을 뒤졌다.

꽤 많은 문서들이 있었는데, 그걸 확인하고는.

“질은 좋지 않지만, 급한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염료가 묻힌 곳이 있습니다. 다만, 양이…….”

뛰어난 행정가답게 역시나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

솔직히 기록된 양이면 채산성이 맞지 않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인데, 기록해서 보관 중이었다.

“드워프들에게 빨리 채굴해 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전하!”

체계도 잘 잡혀 있었다.

새로 합류한 드워프들도 행정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보였다.

비서에게 명령이 하달되자 삐걱거림 없이 부드럽게 일이 착수되었다.

동시에 염료를 다룰 줄 아는 장인들을 불러 모아 임시로 생산에 돌입했다.

마치 이런 일이 발생할 줄 알았다는 듯이. 돌발 사태에도 유연한 대처를 보인다.

“백작 주길 잘했네.”

어차피 코파나 영지가 직접 전투를 벌일 일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전투가 발생하면 무조건 무관장에게 맡기세요. 직접 판단하지 말고.”

“네?! 아… 알겠습니다.”

그가 전투에 관여하면 대설이란 전 가문명처럼 폭풍으로 싸 버릴 테니.

“자. 이리 와요. 용님.”

“음??? 갑자기? 나는 왜…….”

“밥값 하셔야죠. 코파나 영지는 내 땅인데, 놀고먹을 생각입니까?”

“무슨 소리냐. 내가 이 땅에 눌러앉은 게 언제인데.”

“그럼 나와 전쟁이라도 할래요?”

덩치는 산만 한 고룡이지만, 그는 힘을 영 쓰지 못한다.

전투력은 그냥 제로.

“끙. 뭘 하면 되는 거냐.”

“이런 경험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뭘…….”

리안은 당황하는 용을 두고.

“자자. 다들 색칠을 합시다.”

“으으음?!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랩핑을 하는 건데요? 용님도 황토색보단 푸른색이 좋지 않으세요? 얌전히 받으실래요. 아님 맞고 받으실래요.”

“이… 이런!!!”

결국 용의 비늘은 황토색에서 푸른색으로 꼼꼼하게 칠해졌다.

처음에는 자존심 때문에 저항하는 듯했으나 리안이 몽둥이를 가져오라고 하자 얌전해졌다.

고룡의 자존심이 있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얻어맞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훨씬~ 보기 좋네요. 이래야. 내 애마지.”

“무슨 소리냐. 내가 애마라니.”

“한동안 잘 부탁할게요.”

고룡인 그는 결국 리안의 애마가 되어 태평양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한낱 인간의 탈것이 되다니 참으로 애석했으나 거부가 불가능했다.

“오오오!! 빠르다. 빨라.”

태평양은 넓었지만, 용의 날갯짓은 그걸 단번에 뛰어넘을 만큼 대단했다.

전투력이 없을 뿐이지 비행은 건강한 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대충 시간이 된 것 같은데…….”

“무슨 시간을…….”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눈에 띄지 않게.”

태평양을 건너온 리안은 용을 내버려 두고는 정찰에 나섰다.

삐이이이~ 삐이이~

어디선가 풍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 먼 숲에서 그걸 관찰했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자들의 긴 행렬. 그 중심에 화려한 가마.

“물렀거라~ 물렀거라~ 어가가 지나가니 물렀거라.”

왕의 행렬이었다.

리안은 달력을 꺼내 대충 훑어보았다.

“딱 맞게 도착했네.”

그걸 확인한 리안은 즉시 바다로 가서 주변의 인어들을 불러 모았다.

파닥파닥!!!

이 근해에서 활동 중인 인어는 총 3마리?

“어머멋!! 소식은 들었는데, 이렇게 잘생기신 분이였다니.”

“이년아. 어디서 그 더러운 손을 잡아. 죄송합니다. 왕이시여.”

“언니. 그러는 언니는 왜 손을 계속 잡고 있는 건데?”

“이것들 남녀칠세부동석 모르느냐!! 떨어지거라.”

“아니. 왕언니. 가슴에 미역은 다시 붙이고 말하죠?”

“왕님이 오실 줄 알았으면 내가 미역이 아니라 가리비를 입고 왔지!! 에긍.”

세 명의 인어들이 조잘거리는 터라 리안은 정신이 없었다.

조금 특이한 것은 피부색과 머리색이었다.

아까 보았던 행렬들과 같은 인종으로 보인다.

“그보다 왕님이 율 대륙 쪽에서 나오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미백도 하고. 염색도 할걸.”

“에잇. 그러면 여기서 영업하기 힘들어져요. 언니.”

인어들은 노력하면 인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듯 보였다.

“그보다 좀 도와주세요.”

“도움이라니요. 명령만 하세요. 왕님.”

“그 대신 입술 박치기라도.”

“왕언니!! 좀!!!”

두 동생 인어들이 가장 나이 많은 인어를 떼어 놓았다.

웃긴 것은 셋 모두 20대의 모습이라 왕언니란 말이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샤샤샤샤~!

그때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왔다.

“어… 어……!!!”

놀란 인어들이 급히 리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용왕이에욧!!! 피하세요. 저희가 시간을 끌 테니.”

“어쩜 좋아. 여긴 싸우기 힘든 곳인데…….”

“왕님의 안전이 더 중요해!!!”

장난스럽던 세 인어의 눈빛이 점점 진지하게 바뀌어 갔다.

“걱정 마세요. 그대들이 생각하는 거 아니니까.”

푸슈슈슈!!!

그때 수면 위로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거대한 푸른 대가리.

“어멋?! 드래곤?”

“멸종한 거 아니었나.”

“그보다 더 큰일인데…….”

드래곤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 전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결코 여기 세 인어는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니. 시간을 끄는 것이라도 가능할까?

“아니. 용님.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요. 우리 인어님들이 놀랬잖아요.”

“아… 그… 그래? 미안하다.”

용은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봤다.

“됐고. 다들 준비나 하세요.”

“음? 뭘 말이냐.”

* * *

10년 전 커다란 전쟁이 있었다.

나름 동방의 2인자라 생각했던 조선국은 그동안 무시하던 남쪽의 왜에게 공격당해 하마터면 나라를 잃을 뻔했다.

“전하. 의식 준비가 완료되었나이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것은 육지뿐만 아니라 바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이것밖에 방법이 없는가?”

“마음을 굳건히 먹으소서. 전하.”

“아니. 전쟁을 일으킨 것은 왜인데, 용왕의 분노를 우리가 달래야 한다니 참으로 한탄스럽구나.”

왜국이 조선국에게 패해 본섬으로 돌아가며 조선의 바다에 무언가를 풀고 갔다.

처음에는 별일이 없었으나 3년이 지나자 거대한 바다뱀이 출몰하며 해안의 마을과 배들을 공격해 사람을 잡아먹었다.

“어쩔 수 없지 않사옵니까. 뱃길이 막히면 조운선이…….”

아직 조선국은 세금을 쌀로 걷어 들였으며, 이것을 조운선을 통해 바닷길로 운반했다.

가뜩이나 전쟁의 여파로 나라 살림도 좋지 않은데 조운선까지 피해를 보니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대한 뱀이 말했다.

-나는 이 바다의 왕. 너희로 인해 잠에서 깨어났으니 그에 따라 매해 공녀 50명을 바쳐라.

조정에선 갑론을박이 펼쳐졌으나, 공녀 50은 싸게 먹힌다는 것이었다.

조운선은 물론 한 해 동안 해안 마을에서 죽어 나가는 백성이 수백 명이니.

“참으로 한탄스럽구나. 내 백성을 지키지는 못할망정 왕이 되어 저 불쌍한 것들을 사지로 내몰다니.”

“전하. 저들은 전하의 백성이 아니옵니다. 죄인들의 자식이거나 천민들이옵니다.”

“죄인의 자식이라 해서 어찌 자식까지 죄인이며, 천민이라 해서 어찌 짐의 백성이 아니란 말이더냐.”

왕은 호통쳤고 신하는 고개를 숙였다.

“아아… 선왕들이시여…….”

눈물을 흘리는 왕이었으나 그도 마땅한 대처가 없었다.

상국 노릇을 하는 중원의 명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도 자기 코가 석 자였다.

북방에서 이민족이 준동하여 위협하고 있으니.

둥~! 둥~! 둥~!

밖은 벌써 용왕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왕도 의관을 고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샤아아아~!

바다가 요동쳤다.

어느새 물살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거대한 뱀이 나타났다.

“올해는 영 공녀들의 상태가 좋지 않구나.”

커다란 뱀은 혀를 날름거린다.

말은 그리 해 놓고선 혀에서 침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싫다면 그만 돌아가시오!”

왕은 거대한 뱀을 두려워하지 않고 응시했다.

두 존재는 한참이나 말없이 서로를 노려본다.

“흥! 되었다. 하여간 자존심은.”

거대한 뱀은 그대로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는.

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50명의 공녀를 산채로 집어삼켰다.

수백 명의 군사가 있음에도 그걸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바다 근처에서 자칭 용왕이라 하는 저 거대한 뱀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몇 번이나 싸워 봤지만, 불리하면 바다로 도망가 버린다.

그러고 나면 보복으로 더 극심한 피해가 발생했다.

“그럼. 내년에 또 보지. 조선국의 왕.”

그렇게 거대한 뱀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조선왕은 사라진 곳을 노려봤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주제에!!”

그냥 이무기도 아니고 7년간 벌어진 전쟁 찌꺼기를 먹고 큰 이무기다.

물론 저 이무기가 진짜로 이 조선의 바다에 대대로 살았던 용왕이라 믿는 자들도 있었다.

특히나 백성들은 더더욱.

샤아아아.

그때였다.

바다에서 다시 물살이 일어났다.

왕을 지키는 장군들과 병사들은 긴장을 하며 무기에 손을 얹였다.

“용!!!”

방금전 시커먼 뱀의 머리를 확대시켜 놓은 것과는 전혀 달랐다.

머리에는 사슴과 같은 뿔이 달려 있었고. 시원한 눈매와 보고 있자면 경이롭기까지 한 완벽한 외모의 용머리.

파닥파닥!

거기에 더해 신화에나 용왕을 모신다고 와전된 인어들까지.

방금 전 이무기와 비교하자면 명품과 짝퉁만큼이나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진짜다. 진짜 용왕님이 나타났다!!!”

일개 병사들뿐만 아니라 대신들도 호들갑을 떨었다.

대적 불가능한 이무기로 인해 다들 마음속에선 초월적인 존재를 바라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샤아아아~!

인어 중 하나가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왔다.

유일한 남자 인어였다.

“색목인?”

머리는 붉은색이었고 피부는 귀신처럼 하얗다.

얼굴선은 여성처럼 고왔고. 나이는 조금 어려 보였다.

뚝뚝!!!

인어는 놀랍게도 뭍으로 나오자 다리가 생겨났다.

펄럭!

그는 코트를 꺼내 걸쳤다.

모두가 그 신기한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노오오옴!!!”

그런데, 다짜고짜 남자 인어가 조선의 국왕에게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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