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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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선에 붉은 노을이 피었다.
그림자로 산 끝의 나무들이 검은 도장을 찍은 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배고파…….”
“배고파!”
스랑 진형이든 루앙 진형이든 사정은 비슷했다.
오히려 봉쇄를 당했던 루앙의 상황이 조금 나은 수준.
“빵을 굽고 고기 스튜를 끓이세요.”
리안이 명령하자.
“식량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루앙의 사령관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조언을 했다.
“걱정 마세요. 오늘로 끝일 테니.”
“정말. 오늘 야습으로 적들을 끝낼 수 있습니까?”
“키예프 루스 제국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예정된 미래였죠. 허리띠를 조여 매야 하나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요.”
리안이 확고하게 말하자 사령관은 즉시 최대로 배급 명령을 내렸다.
일반 시민들도 배급제를 시행했었기에 오랜만에 나온 풍족한 식사에 다들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풍악을 울려라~~!”
리안은 높은 곳에 올라가 외쳤다.
간만에 배가 부른 군중들은 노래를 부르며 축제 분위기를 내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스랑 제국 진형에선.
“고기. 고기 냄새야.”
“빵 굽는 냄새가 향기로워. 아아. 집에 가고 싶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저 도시는 봉쇄된 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저렇게 식사를 할 수 있다니.”
“어쩌면 술도 나올지도…….”
다들 입맛을 다셨다.
스랑 제국의 장교들은 병사들을 다독거린다고 애를 먹고 있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일찍 재우는 수밖에 없었다.
“잠이 안 와… 배고파…….”
당연히 잠이 오지 않았다. 거기다가.
땡~땡~~ 때대대댕~~!
도시에선 밤이 늦도록 악기 두들기는 소리와 노랫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웃긴 것은.
드르러렁~ 드르렁~!
도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에 빠진 지 오래였다.
간만에 포식을 했더니 졸음이 쏟아졌던 것.
다만, 돌아가며 일어나 소란을 피우는 중이었다.
“저놈들!! 잠도 없나.”
스랑 제국의 병사들은 귀와 코를 막고 늦은 밤에나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이 든 지 얼마나 되었을까.
댕댕댕댕~!! 와아아아아!!!
뭔가 두들기는 소리와 함성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 이놈들아. 적이다. 적이 왔다!!”
밖으로 급히 뛰쳐나가니 북쪽에 횃불들이 가득했다.
적들이 성벽 밖으로 나온 것이다.
병력은 겨우 1/3쯤.
문제는 이쪽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꽤 많은 병력들이 빠졌거나 그로 인해 지쳐 있다는 것이었다.
“사령관님!!!”
“빌어먹을.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건지.”
잠시 고심에 빠졌던 사령관은.
“포대를 움직여라. 아직 적들이 가까이 오진 않았으니 시간이 있을 거다. 그리고 라인이 길어지더라도 병력들을 붙여서 배치하도록.”
“알겠습니다.”
아군끼리의 오인 사격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뭉쳤다.
어차피 병력은 이쪽이 많았다.
날이 밝아질 때까지만 버틴 뒤 역습을 하면 된다.
어쩌면 역으로 몰아붙여 도시를 점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했다. 그런데.
타다다다당!!!
갑자기 뒤에서 몰려와 마총을 갈기는 적들.
“뭐야?! 언제… 아……!”
사령관은 뒤늦게 깨달았다.
도시가 밤새 시끌벅적했던 이유를.
방심을 유도하고 시선을 끌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전방은 가짜다!! 진짜 적은 뒤쪽이다.”
저 멀리서 대규모로 흔들리는 횃불들은 시민들이었다.
완전히 속은 것이다.
“대열을. 대열을…….”
이미 늦었다.
투트트트트!!!
오토호스들이 측면 대각선에서 들이닥쳤다.
그들은 빠르게 스랑 제국을 관통하며 유린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거기다가 온 사방이 불 난리였다.
자신의 진형이 불타오르자 병사들은 공포에 질렸고. 적들보다 자신들의 숫자가 많음에도 탈영하는 자들이 늘었다.
더군다나 이들의 고향은 삼만리 먼 곳이 아니었다.
유혹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디 가나!! 이놈들아. 적들을 막아라!!”
장교들이 탈영병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둠으로 인해 탈영하는 병사들을 죽이거나 막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적들의 위치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뿌우우우~!
스랑 제국의 퇴각 나팔이 울렸다.
사령관은 이대로 어정쩡하게 싸우느니 퇴각하는 것을 선택했다.
일부는 도주하고 일부는 남는다면, 남은 쪽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야간이라 적들도 추격이 힘들 것이니.
와아아아~!!
스랑 제국의 병사들은 사방으로 무질서하게 도주했다.
루앙 측도 나름 추격하며 전공을 확대시키려 했지만, 야간이라 쉽지 않았다.
가끔 무리하게 추격을 하다 역습을 당하기도 했다.
능력이 있는 스랑 측 장교들이 자의로 병력을 모아 매복을 실시했다.
휘이이잉~!
바람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며 태양이 떴다.
사방은 불에 탄 흔적과 난자당한 이들이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어둠 틈에 싸우다 보니 죽은 자도 몇 번이나 찌른 것이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승리!! 승리했습니다. 전하!”
기후 백작이 리안에게로 달려와 소리쳤다.
리안은 살짝 지친 기색으로 오토호스에서 내렸다.
갑옷의 사방에는 핏자국들로 엉망이었다.
“와…….”
스스로 지휘관임과 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싶었지만, 어둠 속에서 싸우다 보니 근접전을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루앙 측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리안을 지켰지만, 엉망으로 뒤엉켜 싸우다 보니 별수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뭐가 말인가?”
“전하께선 기병들을 이끌고 최전선에서 싸우는데… 저는 뒤에서...”
“경이 없었다면, 이렇게 기병을 지휘할 기회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 말하고는 태양을 등지고 공중으로 훌쩍 오르더니 호랑나비 날개를 펼쳤다.
햇빛에 반사된 빛 때문에 날개가 황금빛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밤새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싸워온 병사들에게는 저것은 신의 광명처럼 보였다.
“만세!! 레온 전하 만세!!!”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리안을 연호했다.
어떤 이들은 그동안의 고생들이 주화등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눈물까지 흘렀다.
설마 하자니 이렇게 살아서 도시 밖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대승리를 거두며.
“더… 더 환호해라!!”
“와아아아아!!!”
도시의 시민들도 가세해서 함성을 질러 댔다.
건장한 남자들은 군인이 아님에도 용맹하게 적들과 싸웠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적들에게 이 정도로 피해를 강요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전리품을 챙길 시간입니다. 적당히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전투에 참여했던 시민들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하. 이런 대승을 거뒀는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리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사들은 죽은 자들의 무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불타지 않은 막사에 있는 물건들도 챙겼다.
“와아아아!! 레온 전하. 만세.”
그때 또다시 함성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과 전투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어느 정도 전리품을 챙기자 일반 백성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것 봐. 이런 귀한 팬티를!!”
“이빨도 잘 확인해. 금니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시민들은 적들의 시체에서 속옷까지도 벗겨서 알뜰히 챙겨갔다.
거기다 일일이 입속을 확인해 금니가 있으면 렌치로 냅다 뽑았다.
화르르르~!
그렇게 태초의 몸으로 돌아간 시체들은 구덩이에 던져져 불타올랐다.
활활 타올라 자연으로 돌아갔다.
“하루 동안 휴식 후 적들을 추격합니다. 편안하게 고향으로 돌려보낼 순 없지요.”
“알겠습니다. 전하.”
* * *
한편 키예프 루스 제국과 함께 이동 중인 황태자는 분통이 터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키예프 루스 제국의 사령관에게 따졌다.
“아니… 왜 이렇게 느린 것이오?”
“보급품이 모자랍니다. 특히 식량은 더더욱…….”
“그럼 도대체 저기. 저것들은 다 뭐란 말입니까?”
황태자가 병사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배낭과 주머니 그리고 허리춤에 뭔가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식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
현지 조달이라 쓰고 약탈이라 읽는 것을 행한 병사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머나먼 타지까지 와서 싸우는 병사들입니다. 저런 거라도 챙기지 못하면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질 겁니다. 그럼 적들과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지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이제 행군 속도가 좀 붙을 테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황태자 전하.”
속도가 아주 조금은 더 빨라질 것이다.
이제 챙길 만큼 챙겨서 식량을 우선적으로 약탈할 테니.
“하…….”
황태자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루스 제국의 군대가 이런 오합지졸인 줄 알았다면, 그 고생을 하며 이쪽으로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동쪽에서 로이센 왕국을 압박을 하는 것이 훨씬 위협적이었을 거다.
“후… 그래도 다른 부대가 있으니… 괜찮겠지?”
* * *
황태자가 말한 다른 부대.
그들은 리안의 동생의 영지인 라드 백작령에 묶여 있었다.
그들은 브루타뉴에서 징집된 병사들로 하루가 멀다 하고 정예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사령관님. 지금 수도에서 귀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레온 공왕이 상륙에 성공해서 수도로 진격 중이라고 합니다.”
“나도 병력을 빼고 싶다고!! 젠장. 도대체 저놈들은 정체가 뭐란 말인가!! 그리고 그깟 상륙을 못 막아서는.”
스랑 제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리안이 이끌고 온 병력이 세 배는 많았다.
그러니 이곳 사령관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1만에 가까운 병력이 있으니 다른 쪽에 상륙했다는 그 병력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다시 말해 몇 안 되는 병력의 상륙도 저지 못 한 해안 책임자를 탓하는 중이었다.
“일단 병력을 물리셔야… 수도가 공격받으면…….”
“알아. 안다고. 그런데, 저것들이 계속 물고 늘어지니… 하…….”
눈앞에 있는 적들은 요상해도 너무 요상했다.
전군이 마총으로 무장하질 않았나, 그럼에도 훈련도가 낮은 건지 마총의 성능이 떨어지는 건지 가까이까지 접근해 공격했다.
또 백병전 실력 들은 형편없었지만, 문제는 아군의 창병들이 적들에게 접근하기 전 대부분 죽어 버려 결국엔 백병전에서도 재미를 못 봤다.
“지휘관은 도대체 누구이지?”
거기다가 전술을 운용하는 방법도 이상했다.
파격적이고 저돌적이었다.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면 그걸 바로 실행해 버린다.
“레온 공왕의 애첩이란 소문이 있습니다.”
“뭐?! 지금… 공왕도 아니고 그 애첩에게 우리가 이리 고전하고 있단 말인가?”
사실 고전할 만하긴 했다.
지금 이곳 전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수도에 적들이 닥치게 생겼으니.
물러나고 싶지만, 저들은 악착같이 물고 늘어나니 불리한 싸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면으로 싸워도 승패를 알 수 없다.’
병력의 숫자는 당연히 스랑 제국 측이 많았다.
다만, 저쪽은 전군이 마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이상한 전술을 구사했다.
당연히 병종의 구성이 달라졌으니 전술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만. 샤로트의 진형에선.
“이 이상은 한계야. 다들 뒈지려고 하는데?”
장교진에서 걱정스러운 말들이 튀어나왔다.
지금 장교진들은 대부분 고잉미샤호의 선원들이었다.
현장에서 지휘를 한계까지 왔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훈련할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후…….”
샤로트의 머리도 과부하에 걸렸다.
전술은 신컨의 재에게 배웠지만, 그녀가 구사하는 대전술과 머릿속에 있는 전략은 모두 리안의 옆에서 보고 배운 것이었다.
그녀의 색을 온전히 찾지 못했기에 한계가 드러났다.
“적을 보내선 곤란한데… 흠… 하…….”
샤로트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굴렸다.
리안이 적 병력을 붙들고 있으라 했다.
그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왜 붙들고 있어야 하는 거지? 맞아. 지금 해적왕 할아버지가 수도로 가고 있으니까. 그럼… 시간만 늦추면 되잖아?!”
샤로트가 해답을 찾았는지 눈을 반짝였다.
명령을 일차원적으로 해석해선 답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저씨들. 더 이상 싸우는 건 무리란 거죠?”
“어. 그래. 전투에 조금은 익숙해졌다지만, 동료들이 죽을 때마다 맨탈들이 터지고 있어.”
그들을 다잡아 줄 고참병의 부재 때문이었다.
대부분 사람을 죽여 본 적 없는 신병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포에 익숙해질 시간이었다.
“좋아요. 그럼 좀 싸운다는 병사들만 따로 추려 내세요.”
“뭘 하려고?!”
“적들과 함께 행군하면 되죠.”
“뭐?!”
“굳이 여기에서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함께 가면서 소규모 병력으로 종종 싸우겠다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적들은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보다 해적왕 할아버지는 괜찮으려나…….”
스랑 제국의 수도에는 괴물이 황제를 지키고 있다.
율 대륙 삼 대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인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