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183
아즈 제국의 수도.
거대한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도시의 한 부분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뱀이 보인다.
어찌나 사람들을 많이 잡아 먹었는지 배 부분이 볼록하다.
“케찰코아틀 님께 날개가?”
조금 특이한 것은 등에 작은 날개가 새로이 돋아났다는 것이다.
웬 이상한 녀석들에게 인어 여왕을 빼앗긴 것이 억울했나 보다.
“그래서 추격대는?”
“흔적이 한 곳밖에 없었습니다.”
“중간에 합류를 한 것인가?”
“단정 짓기는 힘드나 정황상 그런 듯 보입니다.”
도시는 너무 개판이 되어서 그들을 특정할 수 있는 흔적을 찾는 것은 힘들었다.
다만 도시 주변을 수색했을 때 소수의 인원이 이동한 것은 발견할 수 있었다.
“인어 여왕의 기운은?”
“제사장들을 대거 투입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케찰코아틀 님께 그렇게나 힘을 빼앗겼는데, 숨겨 놓은 것이 있었나 보군.”
인어 여왕의 존재감은 대단해서 스스로 차단하지 않으면 먼 곳까지 퍼져 나갔다.
거기다 너무도 강렬했기에 스스로 차단하는 것도 제법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다른 흔적은?”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대제사장에게 건넨 것은.
“이건. 그 스랑 놈들의 물건이지 않은가.”
“아마도··· 이번 일의 배후에······.”
“그래. 이상하다 했어. 국경에 병력이 늘어난 것도······.”
그때 고위급 인물로 보이는 자가 급히 대제사장에게 달려왔다.
“적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저들은 국경으로 도주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들이 향한 곳은 스랑 제국의 국경이었다.
“전국 소집령을 내려라. 더 이상 저 이방인들을 봐줄 수가 없구나.”
***
부선장과 해병대원들은 바삐 움직였다.
행색은 영락없는 아즈 제국의 사제와 전사들처럼 보였다.
“가자아아아!!!”
그들은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언덕을 대각선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곳에는 소규모의 스랑 제국군이 주둔 중이었는데.
“중대장님!! 저··· 적! 적입니다. 전사급으로 보입니다.”
“젠장. 신호탄을 쏴라.”
참고로 이번 작전에 참여한 리안의 부하들은 전원 각성한 기사급이다.
기존의 해병대원들 대부분은 원래부터 마나 유저 이상이었기에 만가 섬에서 리안이 준 영약으로 각성을 한 것이다.
“주··· 중대장님! 일단 후퇴를······.”
이곳 주둔지는 적을 막는 용도가 아닌 감시 목적.
물론 막아 낼 수 있는 적이라면 막아야 하겠지만, 적들은 전원 전사급.
화력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젠장! 아주 작정을 했구나.”
율 대륙에서도 기사는 흔하지 않는데, 이곳 신대륙에선 더 귀했다.
저 정도의 기사 전력이라면 저들도 무리를 했을 것이다.
“최대한 뭉친다. 아무리 전사라 해도 밀집된 마총병은······.”
그때 다른 부하가 보고를 해 왔다.
“중대장님. 적들이 그냥 갔습니다.”
“읭?”
저들은 목책으로 만들어진 주둔지를 쑥하고 뛰어넘더니 반대쪽으로 쑥하고 빠져나갔다.
원주민 전사 중에 체구가 작은 여성도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손까지 흔들어 주는 여유를 보였다.
“뭐··· 뭐야. 어디로 간 거야?”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보고를······.”
그런데 또 다른 부하가 달려왔다.
“중대장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뭐? 되돌아온 것인가?”
“아닙니다. 새로운 대규모의 적입니다.”
이리하여 스랑 제국과 아즈 제국의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였다.
***
굽이굽이 이어진 산 중 유난히도 평평한 곳.
절벽 위에 있는 평화로운 마을.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다녔으며, 사람들의 얼굴도 평온했다.
다만, 절벽 끝에 매일 아침 나와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한 남자가 있었으니.
“아아···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백옥 같은 피부와 대비되게 얼굴 곳곳에 거무죽죽한 골짜기가 생겼다.
점점 피가 말라가고 정신이 피폐해져 간다.
“달링~ 또 나와 있는 건가요?”
곰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가는 여인?
“왜··· 왜 나왔소.”
“의식을 치를 시간이에요.”
“그··· 그런. 어찌 의식이 밤낮이 없는 거요.”
“그건 산신님의 뜻이랍니다.”
동글동글한 주술사는 온몸을 비틀었다.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주술사의 몸에 산신이 깃드는 것은 사실 같은데, 그게 거의 하루 종일인지는 모르겠다.
휘이이잉~!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어어어?!! 후··· 후작!!!!”
원주민이 아닌 원래의 붉은 머리.
세이나와 인어 아가씨도 같았다.
거기에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인도 있었다.
“헙!”
신비로운 호박색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공작은 가문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 모델 일을 했고. 율 대륙 각지의 미녀들을 만나 보았다. 그런데, 저런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은 본 적이 없다.
안구 정화.
주술사로 인해 피폐해진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분은······.”
“인어 여왕님이십니다.”
리안이 소개를 해 줬다.
그러자 공작은 움찔거리며 경기를 일으켰다.
“그··· 그렇군.”
이미 몸은 몇 발자국이나 뒤로 도망간 상태였다.
그때 저 절벽 아래에 다른 선원들도 복귀하는 것이 보였다.
날아온 리안과 저들이 비슷한 시기에 도착한 이유는 말 그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날아왔기 때문.
날아가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휴~”
공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복귀하고 있는 인원들도 전원 변신이 풀려 원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사히 돌아오신 것은 기쁘나. 의식을 치를 시간이오.”
주술사가 근엄하게 말했다.
참고로 리안이 떠난 뒤에도 의식을 계속 치른 이유는 변신이 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데······.
“누··· 누굴 위한 의식이오!! 주술사.”
공작은 분노로 호통을 쳤다.
“다··· 달링. 왜 그리 화를 내는 건가요. 당연히 그대의 부하들을 위해······.”
“저들을 말하는 거요?”
매일 같이 절벽 아래를 바라보는 것이 공작의 일과라 누구보다 빨리 리안의 나머지 일행을 발견했던 것.
“어··· 언제··· 헙!! 달링. 그게 아니라. 흙!!!”
거대한 주술사는 눈물을 훔치며 도망가 버렸다.
폼은 영락없는 여자의 뜀박질이었다.
“안 가 봐도 되는 겁니까? 전하.”
“됐어. 제기랄. 그동안 나를 속이다니.”
공작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 리안의 옆에 있던 인어 여왕도 머리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서··· 설마.”
그걸 본 공작은 주저앉은 채로 뒷걸음질 쳤다.
“안 돼. 못해. 이대로라면 난 본섬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야.”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여왕님은 남자와 정을 통하지 않으시니까.”
“다··· 다행이다.”
공작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음? 왜··· 왜이러시오. 인어.”
“식량. 급하니 조금만 취하겠다.”
“아··· 아니. 여왕이 쓰러졌는데. 왜 인어 그대가······.”
“여왕님은 아무하고나 정을 통하지 않는다니까요.”
결국 공작은 인어에게 뒷덜미가 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어디선가 공허한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다른 소리에 묻혔다.
“도련니이이임~~!”
“샤롯. 수고했어.”
달려와 머리를 내미는 샤로트의 정수리를 문질러 줬다.
“많이들 지쳐 보이네요. 낙오자는 없죠?”
리안이 고개를 돌려 부선장을 바라봤다.
“후. 말도 마. 몇 날 며칠을 달렸더니 입에서 단내가 난다.”
전투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저 흔적을 스랑 제국 쪽으로 돌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좋아요. 하루만 쉬고 철수합니다.”
“그보다 이거 무슨 소리야? 어디서 곡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신경 안 써도 돼요.”
주변을 둘러보니 원주민들의 표정도 대수롭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매일 들어 익숙하다는 듯.
“흠. 그렇군.”
부선장도 대충 이해를 했다.
“그보다. 저 아리따운 레이디는.”
여자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부선장조차도 인어 여왕을 발견하고는 눈을 떼지 못했다.
“인어 여왕님이십니다.”
“큼. 그렇군.”
인어라는 말이 들어가자 두드러기라도 난 듯 온몸을 비비더니 잔걸음으로 멀어진다.
그것은 부선장뿐만 아니라 다른 선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에선 인어에게 환장을 했는데. 왜들 이러지.’
아마도 부작용이 없는 아슬아슬한 수치까지 인어가 뽑아 가서 일지도 모른다.
어떤 선원의 말에 따르면 한 달간 현타를 보증한다나.
“뭐. 일단 휴식들 합시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친 부하들을 향해 리안이 박수를 짝짝짝 쳐 줬다.
부하들도 마을에 도착해서 긴장이 풀렸는지 다들 이곳저곳에 편안하게 주저앉았다.
“이것 좀 드셔 보아요. 전사님.”
마을 처녀들이 그런 그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이상하게 적극적이었다.
“아아······.”
그러다 듣게 된 내막은.
주술사가 산신을 달래기 위해 결혼한 유부남들까지 동원을 한다나.
아까 전 공작의 얼굴을 떠올려보니 주술사는 인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뭐. 내 알 바는 아니니.”
리안도 계속된 비행으로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곧장 건물로 들어가 드러누웠다.
“음?”
그런데, 인어 여왕도 리안의 곁에 와서 누웠다.
“걱정 마세요. 성인이 되기 전까진 지켜 드릴 테니.”
여왕이 리안의 품에 들어와 싱긋하게 웃었다.
인어에게 홀린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성인이고 뭐고 다짜고짜 달려들 뻔했다.
“저를 인정해 주신 건가요?”
“이미 전 세계의 인어들은 그대를 아버지로 여길 거예요.”
그러고 보니 인어 아가씨의 눈빛도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마치 존경심 그것과 비슷한 눈빛이랄까.
대하는 태도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돌아간다 해도 저를 잊으시면 안 돼요. 종종이라도 찾아 주세요.”
인어 여왕의 권능.
아니 인어 여왕의 남편이 부릴 수 있는 권능이 있다.
순간이동.
말만 들어도 이 요상한 능력은 인간인 인어 여왕의 남편이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인어 여왕에게 가기 위한 것이다.
이걸 잘 활용하면 순간이동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세계 어디라도 인어가 있는 바다라면 순식간에 저에게 데려다줄 거예요.”
반대로 인어 여왕과 있다가 돌아가려거든 인어가 있는 바다 어디라도 갈 수 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일인용이라는 것이지만.
“그리고 염치없지만, 꼭 아이들에게 조그마한 보상이라도 해 주시길.”
순간이동을 위해 고생한 인어에게 가벼운 입맞춤이라도 해 달란 말이었다.
인어 여왕의 남편이 되는 순간 바다의 신 가호를 받게 된다.
그걸 조금 나눠 주란 소리였다.
그것만으로도 인어의 에너지 효율이 일시적으로 올라가게 되며 순간이동을 위해 쓴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부인을 보는데, 통행료를 아낄 수는 없죠.”
설마 인어 아가씨가 선원들에게 하듯 정기를 한계치에 가깝게 쭉쭉 훔쳐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성인이 되는 순간 고통스러운 것은 리안 본인일 것이다.
선원들이 인어를 기피하지만, 그것은 현타 때문이다.
인어의 유혹은 결코 쉽게 뿌리칠 수 없다.
간단한 입맞춤으로 끝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정신력을 단련해야 하나······.’
게임에서도 이 능력의 부작용으로 ‘방탕함’ 또는 ‘문란함’이란 특성이 생기도 했다.
인어들 중 미녀가 아닌 개체는 없으며 바다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으니 삼천궁녀가 안 부럽다고 해야 하나.
어찌 보면 남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휴··· 약한 게 죄지.’
두렵지만 정말 필요한 능력이었다.
가지고 있는 영지들이 너무 중구난방으로 퍼져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율 대륙은 먹고 만다.’
율 대륙을 먹는 것은 어찌 보면 세계 정복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율 대륙의 국가들은 대외적으로 식민지를 쭉쭉 늘려 가고 있으니.
거기에 숟가락을 올려 버리는 것이랄까.
“여왕님!”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이야. 고생이 많았다.”
정체는 다름 아닌 인어 아가씨.
“주인님. 아니 왕께서도 함께 계셨군요.”
인어 아가씨는 얼굴까지 살짝 붉히고 있었다.
하여튼 인어들은 매우 특이한 종족이었다.
이제부터 리안은 처음 보는 인어들이게도 무한한 애정을 받게 될 것이다.
“송구합니다. 여왕님. 많이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괜찮다. 아가야. 무리하지 말거라.”
생긴 걸로는 여왕이 더 어려 보였지만, 그녀는 인어 아가씨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인어 아가씨는 행복한 표정으로 그 손길을 받아들인다.
“서방님. 혹시 괜찮다면 이 아이에게 축복을 나눠 줄 수 있나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인어 종족들의 생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