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172
호랑나비.
기분이 아니라 진짜로 호랑나비가 된 것 같았다.
아직 시제품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이 날틀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인지.
“조금만 더 집중을······.”
날틀은 특별한 조종기 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부유선의 조종구처럼 마나의 흐름으로 조작하는 것.
거기에 대전사의 바람 속성을 가미하면 된다.
이런 탈것이라면 자신 있었다··· 가.
“아니··· 었네.”
아래쪽에서 나비 하나가 더 날아왔다.
호랑나비가 아니라 우아하고 고혹적인 흑나방이었다.
“으··· 세이나··· 누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춤을 출 수 있는 거죠?”
리안은 통제가 안 되어서 호랑나비처럼 발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뭐. 부유선 몰던 짬이··· 으악. 어디에··· 우읍! 가는 것이 ···잇. 아니죠.”
“저도 분발하겠습니다. 합하.”
그리 말하고는 우아하게 멀어졌다.
“아니. 왜 나는 안 되냐.”
중심을 잡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세이나처럼 안정적인 비행을 하려면 한참이나 걸릴 것 같았다.
***
북신대륙 스랑 제국의 항구.
이 황자가 도착하자 총독이 직접 나와 맞이했다.
“정말 때마침 물자를 보내 주셔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보급 문제로 잉글슨과 소강상태에 있는 중입니다.”
북신대륙에서 스랑 제국의 함대는 잉글슨 함대에 밀렸기에 보급이 쉽지 않았다.
항상 잉글슨에 비해 모자란 실정.
그러다 처음으로 바다를 가지게 되니 본토에서 물자를 넉넉하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바다가 갑자기 이상해져 오시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본국에서 초장거리 통신으로 이 황자가 주요 물자를 가지고 떠났다는데, 이들도 바다가 이상해진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본토에서뿐만 아니라 신대륙에서 본토로 가는 것도 애를 먹고 있었다.
어떤 상단들은 이벨 왕국이 점유하고 있는 남신대륙 쪽을 거쳐 율 대륙의 남쪽에 있는 검은대륙을 경유해 가기도 했다.
남신대륙의 바다도 변화가 있었지만, 북쪽만큼 지랄맞지는 않았기에.
“이제 이 황자님께서 항로를 뚫으셨으니 기본 물품들도 보급이······.”
“아닐세. 내가 온 항로는 엉뚱한 놈이 먹고 있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레온 후작이라고 아는가?”
“그런 인물도 있사옵니까?”
북신대륙 식민지 총독은 금시초문이었다.
당연할 것이 율 대륙 본토에 신경을 쓰기엔 북신대륙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허구한 날 크고 작게 잉글슨의 식민지 군대와 치고받고 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곳곳에서 원주민들이 들고일어나 괴롭혔다.
거기에 별의별 이상한 몬스트들까지도 날뛰니 아주 죽을 맛.
빨리 총독 자리에서 물러나 본토의 평화로운 중해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을 정도.
하도 시달리다 보니 권력이고 뭐고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다.
“브루타뉴 공국 출신으로 아주 괴물 같은 놈이지.”
“그곳은 우리의 우방이지 않습니까?”
속국이란 말을 우회적으로 했다.
“그놈이 잉글슨에 붙었어. 배은망덕한 놈이야.”
“거참. 불쌍한 선택을 했군요. 신대륙에서야 서로 비슷하게 치고받고 싸운다지만, 율 대륙 본토에선 잉글슨은 이등 국가지 않습니까.”
“쯧. 그러니 미치겠단 말이지.”
그 섬만 장악한다면 잉글슨의 식민 함대가 돌아온다 해도 북대서양의 제해권을 가질 수 있다.
싸움을 아무리 잘해도 함대는 보급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특히 부유선의 부속들은 정교해서 북식민지에서 조달할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밀어버리고 싶었지만, 황제가 일을 벌이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혹시라도 조금의 실수가 생기면, 추후 공작 자리를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
황제는 신대륙 간 초장거리 통신으로 보고를 받았다.
“그놈이 무사히 도착했다고?”
“네. 다만 문제가 조금 있사옵니다.”
“문제라니. 또 사고를 친 것이던가?”
황족 중 가장 사고뭉치를 한 명 뽑으라면 단연 이 황자였다.
특히 어릴 때부터 전쟁터를 좋아했는데, 의외로 자질한 공을 꾸준히 세워 왔다.
문제는 수도에 있을 때 사건 사고는 다 일으키고 다녔다.
그래도 능력이 있으니 봐 줬는데, 최근 잉글슨과의 대해전에서 이 황자의 실수가 드러나 버렸다.
“아니옵니다. 직접 보시는 것이······.”
황제는 보고서를 건네받아 읽었다.
거기에는 섬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뭐? 만가섬? 이딴 섬도 있었나?”
“원래는 쌍둥이 섬이란 이름이었는데, 점거한 자가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이름이란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나 그곳의 주인이 영향력이 없다면 더더욱.
“뭐? 레온 후작? 그놈이 왜······.”
황제는 급히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리안은 스스로 쌍둥이 섬을 자신의 영지로 삼으며 그곳을 만가 남작령이라 명령했다.
특이한 것은 그곳의 남작이 리안보다 더 어린아이라는 점이다.
“추가 보고인가?”
“그렇사옵니다. 황태자님이 떠난 뒤 다른 배들도 그곳을 거쳐 간 상선이 꽤 되옵니다.”
“아니. 이놈은 황태자보다 더 빨리 신대륙으로 떠났다더니······.”
황제는 골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만가 섬으로 인해서 함대가 없이도 북신대륙의 바다를 통제하에 둬버린 것.
“폐하. 브루타뉴 공왕이 왔사옵니다.”
“그래? 잘되었다. 어서 모시고 오게나.”
원래는 속국이나 다름없는 부루타뉴의 공왕을 종 대하듯 했으나 사정이 바뀌었다.
너무 뛰어난 봉신을 가진 탓이었다.
리안은 이제 스랑 제국의 황제도 신경을 쓰는 인물이 되어 버렸다.
“실로 오랜만에 존안을 뵈옵니다. 폐하~!”
공왕은 황제를 보자 손바닥을 열심히 비벼 대며 아부를 했다.
“그래. 실로 오랜만일세. 그때보다 살이··· 아닐세. 하하하.”
“왜··· 그러시는지. 신이 무슨 실수라도······.”
황제의 태도가 온건해진 것이 이상하게 여긴 공왕은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브루타뉴 공국은 분명 독립국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스스로 ‘신’이라 칭하며 낮췄다.
“실수랄 것까지는 없고. 참으로 뛰어난 봉신을 뒀더군. 다시 봤네. 공왕.”
“아··· 아! 레온 백작을 말하는 거군요.”
“백작이 아니라 후작일세.”
“······?!”
역시나 소식이 한참이나 늦는 브루타뉴 공국이었다.
“잉글슨 왕국에서 후작위를 받았다네.”
“그··· 말씀은······.”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후작이 공작과 비슷한 급이라 해도 공작은 아니니. 독립하진 못할 걸세.”
말은 저렇게 했지만, 실로 위협적인 말이다.
가끔 봉신의 작위가 높아져 버리면 자동으로 독립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리안의 경우도 무시하기 힘든 것이 영지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다 보면 스스로 공왕을 칭하며 독립해 버릴 수도 있다.
만약 거기에 교황청이나 열강 중 한두 국가가 지지한다면 낭패가 따로 없다.
박수를 치며 축하나 해 줘야 할 상황.
“그··· 그렇겠지요.”
브루타뉴 공왕은 이제 이마에까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생각해 보니 이제 자신과 리안 사이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첫 만남에서 모든 것을 청산해 버렸으니.
이제 그저 상위령이라는 명분만 남았는데, 리안의 영지와 작위가 늘어난다면 결국엔 독립을 해 버릴 것이다.
당연히 레온 백작령과 루데악 백작령을 뱉어 낼 일은 없을 것이고.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 공왕.”
“하하. 그럴 리가요.”
“아니야. 다스리는 자들은 항상 아래 녀석들을 잘 살펴야 해. 배은망덕하게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니까. 그래서 내 그대를 위해 묘수를 떠올렸다네.”
“무··· 무엇이옵니까? 폐하.”
고개가 살짝 앞으로 기울어지는 공왕.
“그놈에게 노르망 공작위를 주는 것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노르망 공작은 현 잉글슨의 국왕······.”
“문제는 그놈과 전쟁 중이지.”
참으로 꼬이고 꼬였다.
“거기에 독립까지 시켜 공왕을 시켜 준다고 하게.”
“그··· 말씀은.”
“아아. 그렇지 참. 브루타뉴 공국에 있는 레온 경의 영지들은 내가 노르망 공작령 근처의 땅들로 바꿔 줄 걸세.”
공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 딸 중 하나도 줄 생각이야.”
“이미 그는.”
“아직 약혼 상태일 뿐 결혼은 아직 하지 않았지. 솔직히 신센롬과 이벨 왕국의 공주와 결혼해 봐야 레온 후작에게 무슨 득이 있겠나.”
“하긴 그야 그렇습니다.”
“내 딸도 땅을 좀 가지고 있어. 반면 내 손을 잡는다면 레온 후작은 진짜 대귀족이 될 수 있단 말이지.”
“그런데······.”
물론 잉글슨 국왕을 있는 노르망 공작령에서 밀어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겠지만.
“알고 있어. 그런데, 아직 자네는 레온 후작에 대해 잘 몰라. 솔직히 직접 노르망을 줄 필요도 없네. 그저 명분만 주면 되지. 이왕이면 총사령관직도 준다고 하게.”
“초··· 총사령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만약 노르망 공작령 이외의 잉글슨 땅을 먹는다면 그것도 그의 것이 될 걸세.”
스랑 제국의 땅에 있는 잉글슨 국왕의 땅은 노르망뿐만 아니라 자질구레하게 많았다.
노르망에 그것들을 합하고 스랑 제국의 황녀와 결혼까지 해서 그녀의 땅까지 합한다면, 공왕이 아니라 그냥 왕국을 세워도 된다.
스랑 제국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것이 잉글슨 국왕이 그 땅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우호적인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어차피 몇 대가 지나면 다시 흡수되겠지.’
리안이 죽고 난 뒤 국력의 차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다시 통합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인심을 쓰듯 지금 줘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종양과도 같이 스랑 제국의 땅 일부를 파먹고 있는 잉글슨이니.
“소신이 직접 가서 저··· 전달하겠나이다. 폐하.”
공왕이 고개를 조아리고 대전을 나갔다.
그러자 황제는 측근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북신대륙 총독에게 전하게. 레온 후작이 북신대륙에 발을 딛지 못하게 하라고. 어차피 물길이 통합되어 오고 가는 해로는 정해져 있다고 했으니 말이네.”
“그 말씀은.”
“사로잡으면 좋고. 죽여도 좋네. 그런 잡놈에게 내 딸은 조금 아깝지.”
어차피 리안이 신대륙에 나타난다는 것은 자신의 말을 거절하는 것이니까.
물론 공왕을 만나지 못한 채 길이 엇갈려 신대륙으로 먼저 간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
리안은 만가라 불리는 섬에서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루의 삼분지 일은 날틀을 타며 보냈고. 또 삼분지의 일은 낚시를 했고. 나머지 삼분지의 일은.
“후작··· 언제까지 그렇게 뒹굴··· 아니. 섬에 머무를 것인가?”
해리 78,900세 공작이 시간을 때우는 리안에게 물었다.
이대로라면 신대륙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신이 말라 죽지 않을까?
“급할 것 없지요. 아직 제 기사들의 훈련이 마무리가 안 되어서요.”
“굳이 장교들을 키울 필요가 있는가? 북신대륙의 병력은 완 편이 된 상태라네. 그대는 가서 지휘만······.”
“뭐. 그동안 유리하게 잘 싸우던 군대이긴 하죠.”
“그렇다네. 신대륙에서 확실하게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우리 잉글슨이 스랑 제국을 밀어내고 있었다네.”
“그렇죠. 단, 함대가 있다는 전제하에요.”
리안의 말에 공작은 입을 꽁하니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 리안에게 이것저것 퍼다 주고 띄워 주면서 신대륙으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의 군사적 능력도 능력이지만, 함대의 공백을 대신해 주길 바라서였다.
해적왕과의 인맥이 있으니 말이다.
“에이. 왜 그러실까. 표정 풀어요. 공작 아저씨.”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뭘 어떻게 해요. 함대가 없으니 육전으로 승부를 봐야지.”
뭔가 당연한 소리 같긴 했지만.
“간간이 스랑 제국의 보급선들이 통과되는 걸로 알고 있네. 우리 잉글슨은 보급이 없고.”
보급선을 보내봐야 함대가 없으니 가는 족족히 적에게 노획당할 것이다.
“그것도 노 프라블람~”
“정말이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공작이었다.
인어 아가씨에게 정기를 빼앗기는 것은 둘째 치고라서도 신대륙이 걱정이기도 했다.
북신대륙에 그의 지분도 꽤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잉글슨의 군대가 완전히 물러나게 되면 공작 자신의 가문도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땡땡땡~~
그때 짧고 경쾌한 타종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사이 징~ 하는 큰 종도 울렸고.
“오. 뭔가 또 왔나 보네.”
리안은 뒹굴거리며 마나를 채우다 말고 벌떡 일아나 부두로 달려갔다.
“오~ 열심히 하고 있네요.”
부두로 향하는 도중 땡볕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는 부하들도 보여 손을 흔들어 줬다.
“서··· 선장!! 제발··· 이제 그만··· 바다로.”
선원들은 아주 죽는 표정을 보였다.
그럴 것이 신컨의 재가 아주 개같··· 아니 열심히 굴리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몸만 굴렸으면 저리 불만을 가지진 않을 거다.
원래부터 몸 쓰는 게 일인 사람들이니.
“훌륭한 기사님들이 될 거라 믿어요. 그럼. 이만.”
리안은 그대로 쌩하며 달아나 버렸다.
시대가 바뀌고 있었다.
기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기사만큼 하급 지휘관들도 중요해졌다.
그 자리를 저들이 채워 줄 것이다.
“합하!!”
리안이 부두에 도착하자 부두 관리인이 리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타종은 왜 친 거예요? 어디 왕이라도 온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합하.”
“오오. 어느 나라 왕이죠? 통행세를 좀 세게 걷어도 되겠네.”
“합하의 왕께서 오셨습니다.”
“읭? 내 왕이면 공왕님인데··· 진짜네.”
부두에 닿은 배에서 미녀들에게 둘러싸인 남자가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