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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70화 (170/253)
  • < 170화 >

    ##170

    잉글슨 왕국 후작의 깃발을 단 배치고는 너무 초라한 배.

    근해를 돌아다니거나 가끔 원해 항해를 다닐 법한 화물선.

    어디 내놓으면 오히려 후작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불릴 정도다.

    다만, 작위만 그럴 뿐이지 리안은 변방의 백작.

    지금 상황에서 저 정도도 감지덕지다.

    부루트뉴 반도의 백작 중에 원거리 항해가 가능한 배를 통째로 빌릴 수 있는 이는 없다시피 하다.

    애초에 그럴 일도 없고.

    원거리에 물건이나 인력 그 외에 소식을 전할 땐 여객선이 움직일 때 업어 가게 한다.

    “아아······.”

    배의 선장은 어리벙벙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많이 놀란 모양.

    베테랑 뱃사람이면 대서양에 이런 섬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이조차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 섬에 와 본 적이 있다면, 저런 반응이 아니라 이 주변의 해류가 이렇다고? 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만큼 수준 낮은 배를 고용한 것이다.

    “각하!”

    선장이 어리둥절하는 사이 배에서 한 남자가 내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정상인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한쪽 팔은 기계였다.

    “재 경. 각하가 아니라 합하라 부르세요. 그사이 이 몸의 등급이 좀 올랐거든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황하는 신컨의 재.

    “잉글슨에서 후작 작위를 받았거든요.”

    리안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 손은 작게 v자를 그렸다.

    “네에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신컨의 재.

    상식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도 나름 전장을 구르며 세상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었다.

    후작이란 작위는 공작을 얻는 것보다 힘들다.

    공작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후작은 귀족의 왕이다.

    “어찌 하다 보니 얻은 거니 그러려니 하세요.”

    후작은 한 세대에서 얻을 수 있는 그런 만만한 것이 아니다.

    몇 대에 걸쳐야만 겨우 얻은 수 있는 위치.

    가문 자체가 피를 토하며 갈고 닦아야 한다.

    “여··· 역시. 주군은 대단하십니다··· 아아아?”

    후작은 어찌 보면 공작과 동급이다.

    거기서 조금만 더 힘이 세지면 독립해서 공왕이 될 수도 있고.

    “뭐. 쫌 이 몸이 대단하긴 하죠. 흐흣!”

    리안이 멋지게 포즈를 취했다. 다만··· 주변에 서 있던 사람은 리안이 아닌 다른 쪽으로 시선이 가 있었다.

    리안도 자연스레 그 시선이 있는 곳으로 따라갔다.

    “오오······.”

    시선이 닿는 곳에는 공작이 있었다.

    뭔가 초췌해 보이면서도 우울하며 힘겨워하는 듯한 예술적인 무언가.

    이대로 사진을 박는다면 화보가 따로 없었다.

    귀부인들이 환장을 하며 소장용으로 보관할 만큼 뭔가 퇴폐적이면서도······.

    “저분은······.”

    한참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임에도 신컨의가 자신도 모르게 뱉었다.

    어찌 보면 약간은 무례할지도 모르나··· 정말 본능적이었다.

    “아아. 신경 안 써도 돼요. 해리 78,900 공작이에요.”

    “저분이 왜······.”

    “통장 보안 카드 같은 사람쯤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네에?”

    “어음이 저 아저씨 명의라.”

    “아아.”

    역시 이 세계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잘 아는 신컨의.

    잉글슨 왕국에게 어음을 받는 정도라니.

    “잉글슨에서 의뢰를 한 모양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주군.”

    “신문을 드릴 테니 읽어 보세요.”

    리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직 신컨의 재는 리안에 대해 업데이트가 안 된 모양이다.

    “그래서 일은 잘 끝내고 온 겁니까?”

    리안이 화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주군. 아직 만족할 만큼은 되지 않으나 지휘관의 움직임에 따를 정도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신컨의 재는 최고의 하급 지휘관이다.

    아니 하급 지휘관의 왕이라 불리는 인물.

    다시 풀이하자면 전술의 왕이다.

    또다시 말하면 정석의 왕이고.

    전략은 전술의 상위 버전이지만, 뛰어난 전술가는 대단한 전략가를 이기기도 한다.

    그게 전장이고 그래서 군인들이 보수적이기도 하다.

    지금 이 세계에 이 시대엔 신컨의 재가 파격적이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훗날 보병의 기본이 된다.

    “도대체 저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은 제 이론을 보며 비웃었습니다.”

    “그게 안목의 차이입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경의 생각이 곧 정답입니다.”

    “무섭습니다. 저를 믿어 주는 분을 배신할까 봐.”

    “아니요. 그것은 제 안목입니다. 오히려 제가 두렵네요. 제 안목을 믿는 경이 생각하는 저에 대한 믿음을 배신할까 봐. 한 번쯤은 제 생각이 틀릴진 몰라도 그래도 믿을 것입니다. 경을.”

    “아아······.”

    그제야 이해를 한 모양이다.

    “신은 주군께서 지금 당장 자결하라는 명을 내리셔도 따를 것입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운이 나빠 이 몸이 자결할 때가 오면, 경이 뒤에서 쳐 주세요. 고통 없이.”

    “오늘부터 연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럴 일이 없게 더욱 정진하겠나이다.”

    신컨의 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에 무언가 뚝뚝 흘리고 있었다.

    사실 그는 세상 모든 걸 포기한 인물.

    리안을 만나 새로운 삶은 얻었다.

    “오글거리니까. 여기까지.”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 신컨의 아저씨를 부른 이유가 뭐라 생각하세요?”

    “제 머리로는······.”

    훈련 교관을 왜 부른 것일까?

    머리가 나쁜 사람도 대번에 생각할 수 있는 것.

    그럼에도 정신이 혼미한 것처럼 보였다.

    “기사들이 많이 생겨서요.”

    “축하드립니다. 각··· 합하.”

    “문제는 그 기사들이 정상은 아니라서요.”

    정상이 아닌 기사들.

    “기본 자체를 몰라요. 라인 배틀의 개념도 모르는 사람이죠.”

    “라인 배틀이라면, 설마 마총병 간의 전투 말씀이십니까?”

    솔직히 이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는 개념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신컨의 재와 같이 창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발전된다.

    마총이란 것이 생겨난 이후 테르시오라는 것이 생겼다.

    여단급 병력에 총병을 보호하는 창병.

    화력 투사는 총병이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영약과 마총 자체의 개량 그리고 효용성을 따지다 보니 창병은 점점 사라지고 전장에는 마총병만이 남는다.

    마총의 효율을 생각했을 때 밀집과 일제 사격을 했을 때 위력이 더욱 강해지고 그걸 운영하는 것이 라인 배틀.

    “네. 그것 말고도 병력의 운영이나 지금 당장 소수의 병력끼리 부딪쳤을 때 뭐가 나은지 등등.”

    리안의 기사들.

    그들은 해적이다.

    해적은 난잡한 백병전을 주로 해 오던 자들.

    만약 이들에게 병력을 주고 싸우라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돌격! 돌격!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기사 작위를 가졌다는 것 자체다.

    원래라면 저 돌격에 후퇴도 동시에 가진 자들이다.

    약탈이 일상화된 자들.

    그런데, 군인은 죽어도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 말인즉슨 돌격과 죽음이다.

    특히나 리안의 명령을 맹신하는 자들이다.

    “설마··· 해적들을 기사로 삼은 것입니까?!”

    “저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리안이 확고하게 말했다.

    “차라리 제 교본을 따르는 것이 나은 것이군요.”

    “겸손해하지 마세요. 차선이 아니라 경의 교본이 율 대륙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정말 과분한 주군을 모시는 것이군요.”

    편하게 말하려 해도 신컨의 재는 흐트러짐 없이 리안을 진지하게 대했다.

    그런 확고한 사람이니 전투 교리의 정석을 만드는 사람 중 한 명이겠지.

    “그럼. 부탁드릴게요. 제 기사들을. 경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까운 생명을 잃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추방이 아니라 축출.

    해적이 기사가 되었는데, 여기서 퇴출당한다? 그것은 곧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전 세계의 감성이 남아 있다 해도 비밀을 새어 나가게 둘 생각이 없었다.

    그걸 신컨의 재는 꿰뚫어 본 것이고.

    ***

    스랑 제국의 베르사유 궁전.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곳이다.

    “흥미롭군.”

    국민에게 사랑받는 황제는 신문을 보며 말했다.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폐하.”

    “그래. 네놈을 믿고 보냈더니 이 꼴이 난 것이지.”

    황제는 알고 있었다.

    리안이 해전 때 어떤 활약을 했는지.

    “괴물입니다. 실제로 보시면······.”

    쾅!!

    황제는 의자를 내리쳤다.

    그는 마나 유저도 되지 못한 일반인.

    그럼에도 모두가 꼼짝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황제가 가지는 카리스마.

    그것은 소드마스터라 해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네놈이 그나마 우리 황족 중에는 특출나다 생각했거늘······.”

    “그렇지만······.”

    “변명 따위를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네놈 능력 따위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넌 그냥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되었다. 괜히 네놈이 나서서 내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다.”

    권위.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더 웃긴 것은 이곳에 황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위 귀족들도 있었다.

    다만, 황제의 체면이란 걸 인정했다.

    그걸 또 당연시 여겼고.

    그러니.

    “경들은 뭘 했소. 이렇게 내 체면이 구겨지는걸.”

    “망극하옵니다. 폐하!!”

    인간적으로 본다면 능력이 없는 황제.

    사실 이전 해전에서 성과를 못 보인 이 황자에 비한다면 무능력에 또 무능한 자.

    딱 한 가지 장점은 군림하는 자.

    불륜을 그렇게 저지르고도 국민들에게는 ‘우리 폐하라면 당연하지!’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백성들에게 지지받는 자.

    정치적 감각이 대단한 자.

    그렇기에 율 대륙의 최강 국가의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폐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네놈에게?”

    그때 고위 귀족 중 한 명이 읍했다.

    “이 황자님 말고는 보낼 사람이 없사옵니다.”

    “알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돈이 없지.”

    지금 상황은 잉글슨과 한창 전쟁 중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갑자기 마나 광산이 발견된 것.

    그것도 분쟁 지역에 말이다.

    운이 좋다면, 정보부가 제대로 일을 해서 잉글슨의 심장과 다름없는 인디아에 반란을 부추긴 것.

    “네놈은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폐하.”

    마음 같아서는 황태자를 북신대륙에 보내고 싶다만, 만약 실패했을 때 후폭풍이 심했다.

    그렇다고 잉글슨 쪽에는 만들어진 영웅으로 보이는 놈을 보내는데, 이쪽은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도대체 그놈은 정체가 뭐야?!”

    “저희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낸 것은?”

    “그게······.”

    아무것도 없었다.

    속국이나 다름없는 브루타뉴 공국 출신이며, 그의 어머니가 잉글슨의 속국인 아일리 섬 출신.

    그야말로.

    “잡놈이군. 가끔 똥개 중에 똘똘한 놈이 태어나긴 하는데, 그놈은 심하군.”

    “송구하옵니다. 폐하.”

    스랑 제국의 정보부도 죽을 맛이었다.

    가히 인간이 할 수 없는 업적들을 어린 나이에 척척 이루고 있는 리안.

    “신대륙 일이 잘되든 못되든 포섭을 해. 브루타뉴 공왕을 압박하는 것이 좋겠군.”

    “차라리 불러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폐하의 용안을 보면 공왕도 최대한 협조할 것입니다.”

    “흠. 좋네. 날을 잡아 봐.”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보통은 주군이 봉신에게 자질구레한 약점을 잡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리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만남과 동시에 모두 청산해 버렸다.

    리안에게 공왕은 그저 명분상 상위 귀족에 불과했다.

    ***

    평화로운 섬. 거기서 보는 바다는 거칠기 짝이 없었다.

    왈칵거리는 것이 태풍전야를 보는 것 같지만,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아. 딱 죽기 좋은 날씨네.”

    “주군!! 그런 말씀은······.”

    “아. 영화 대사예요. 헤헷!”

    리안이 폼을 잡으며 말하자 신컨의 재는 놀라서 리안을 다독거렸다.

    “영화???”

    “연극이요.”

    “주군.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말은 감정을 지배합니다.”

    “네의~ 네의~ 이제 대충 괴실이 익은 것 같은데··· 준비는 어떻게 되었나요.”

    “대충은··· 아주 대충은 조금···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음······.”

    리안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그 정도면 됐어요. 으휴······.”

    온갖 협박과 회유를 다해 기사들을 설득했고. 그들도 나름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들은 평생 백병전을 해 왔고 그것이 뇌에 박혀 있었다.

    신커의 재가 피를 토하며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려 해봤지만,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나마 거의 신적으로 리안을 따르기에 나름 바뀌려고 노력을 한 것.

    “고생했어요. 그래도 틈틈이 강의를 해 주세요.”

    “네······.”

    두 사람의 표정은 서로 다독거리듯 끝이 났다.

    땡땡~~ 땡땡땡땡.

    타종 소리.

    종이 없어서 냄비를 열심히 두들기는 소리다.

    뭔가가 오고 있다는 것.

    “어이쿠! 이랏샤이마세~ 손님 오셨네.”

    바다 건너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리안은 물개 박수를 치며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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