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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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 요새에 황당한 명령이 떨어졌다.
“나가서 적을 요격하라고?!!”
예비대가 있는 곳에서 지휘를 하기로 했던 푸제흐 백작이 뜬금없이 예비대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더니 더 뜬금없이 에이드와 비스 요새의 중간 부분에 지휘 막사를 설치하고선…….
“백작께서는 정녕 제정신이신 건가…….”
“하다 기사님. 다른 이들이 들을까 두렵습니다!!”
하다는 비스 요새를 지휘관으로 임명된 인물.
기사 작위를 가지고 있지만, 무위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저 스랑 제국 대학의 군 관련 학과를 졸업했단 이유로 기사가 된 인물이다.
요새 지휘관으로 발탁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이번 전쟁의 계획을 짤 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명령을!!”
“어쩌면 좋습니까?!”
“후…….”
한숨을 돌리며 잠시 머리를 식혔다.
‘항명할 것인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나가서 죽는 한이 있어도 명령에 따라야 한다.
만약 항명을 해서 요새를 지킨다 하더라도 자신의 가문은 끝이다.
가문은 이미 몰락했지만, 명맥을 유지하게 해 주었고, 제국 대학에 다닐 수 있게 지원한 것이 푸제흐 백작이었던 탓.
“백작께선 이런 무모한 명령을 내릴 분이 아니다!”
설령 진짜로 노망이 났다 한들 명령은 거부할 수 없다.
“방금 전까진… 노… 망…….”
“내가 잘못생각했다. 적들이 움직인 이상 어차피 예비대가 올 것이니 나가서 지연 작전을 하란 말씀일 터.”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예비대가 이미 적의 배후로 이동하고 있단 사실을.
이것은 지휘관 하다뿐만이 아니었다.
* * *
마맨 백작가의 실질적인 두뇌인 란스 용병단장.
원래라면 용병 따위는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며 으름장을 놓았겠지만, 란스 용병단은 잉글슨 왕국 쪽에서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확실히 똑똑한 자이긴 하다.’
마맨 백작도 이를 알아차리고 그를 기용했다.
회의를 할 때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첩보입니다!!! 비스 요새의…….”
병력이 밖으로 나와 마맨 백작군을 요격할 것이란 정보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첩자가 있었던 탓이다.
“이… 이러면 곤란하지 않는가? 란스!!”
“백작 각하. 고정하십시오. 적이 제대로 낚였다는 징후입니다.”
적의 지휘부는 분명 예비대가 있는 곳일 터.
리안에 의해서 예비대가 자신들의 뒤로 이동 중이란 사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그… 그게 왜 그렇게…….”
“거리 때문입니다. 전령은 오토호스를 타고 이동하며 소식을 전할 수 있지만, 예비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
행군 중에 문제가 생겼음이 틀림없다.
그러니 손해를 보더라도 요새 밖으로 병력을 보내 시간을 끌게 했을 터.
“정예 일부는 비스 요새 쪽으로 돌리시죠.”
“음?! 우린 에이드 요새를 단숨에 점령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러니 적들이 계속 속아 주어야죠. 수성이 아니라면 적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아……!!”
마맨 백작은 뒤늦게 이해를 했다.
적들은 지금 다급하고 밀리기까지 한다면, 예비대는 허둥거리며 체력을 더 빠르게 소진할 것이다.
“어쩌면 승리의 축배를 위해 적 수도까지 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의 신이 자신을 돕는지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오합지졸이군. 예비대는 신속이 생명이거늘. 나름 군기가 좋고 발 빠른 자들을 예비대로 편성했다고 들었는데… 개뿔.’
확실히 듣던 대로 브루타뉴 공국에 속한 곳은 실력이 형편없었다.
다만, 국경지에 있는 귀족가들은 나름 실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저 소문일 뿐이었다.
“흐흐흐. 알겠네. 국왕 폐하께선 안목도 좋으시다니까. 자네 같은 이를 추천해 주시고.”
사실 딱히 잉글슨 왕국이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이 근방에서 고용이 가능한 용병대 중 가장 군략이 뛰어나다고 소문은 퍼진 상태고. 마맨 백작은 딱히 머리가 나쁘진 않지만, 줏대가 없어 큰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떨어졌다.
그러니 당연 란스 용병단장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 것.
‘이자는 진짜로 용병인 걸까?’
이런 조치에 마맨 백작은 란스 용병단장이 잉글슨 왕국과 깊이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
일반 영지전과 다르게 혈연이 아니라면, 10명 이상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하지 못한다.
나중에 가서라도 밝혀지게 된다면 뒷감당이 힘들어진다.
“내 이래 봬도 중견급 기사네. 내가 직접 가서 막겠네. 인장을 넘겨줄 테니 그대가 직접 군을 통솔하도록.”
마맨 백작 홀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신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 * *
한편 에이드 요새의 지휘관 마시는 고민에 휩싸였다.
병력을 이끌고 적을 요격하라니.
작전 회의 때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다.
‘샛길들을 이용해서 한쪽 요새를 치는 척하다가 다른 요새 쪽으로 병력을 이동한다?’
기발해 보일진 몰라도 어떤 미치광이가 대규모의 병력을 판 돈으로 저런 작전을 펼치겠는가.
어차피 병력의 질과 양에서 이쪽을 압도하는 중이니 굳이 그런 도박수를 던지지 않아도 된다.
“출정 준비를 하라!”
“마시 남작님!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수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공세라니요!”
부관이 강하게 부정했다.
“뭐. 나도 이해는 하네. 하지만,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하는 법.”
에이드 요새의 사령관은 비스 요새의 사령관에 비해 고지식한 인물이었다.
생각보다 명령을 우선시하는.
“명령을 무조건 따르시는 것보다… 현장의 상황을 먼저 고려하심이…….”
“그래서 우리가 확인한 것이 무엇인가.”
“네???”
“아무것도 없네. 적의 본진으로 보낸 정찰대는 분명 비스 요새 방면으로 적들이 움직인다는 첩보뿐.”
부관이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리를 비워도 우리 요새는 안전하단 말이지.”
“적들이 되돌아가 다시 우리 요새 방향으로…….”
“적들이 회군해서 우리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빠를까? 아님 우리가 되돌아오는 것이 빠를까?”
그만큼 에이드와 비스 요새 사이의 샛길들은 효율이 떨어졌다.
샛길을 왜 샛길이라 부르겠는가.
“내가 명령을 중시한다고 멍청하다고 생각하는가? 부관.”
“그… 그게 아니오라…….”
“이상하군. 참으로… 그대는 아무래도 요새에 남아 줘야겠어.”
부관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시 남작님! 저를… 혹시.”
“그래. 의심하는 걸세.”
“저는 기사입니다!”
“기사 한 명이 빠진다고 우리 요새군이 질 정도로 우리는 나약하지 않다. 더군다나 적들의 전략이 간파당했다면 더더욱!”
에이드 요새의 사령관 마시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하늘이 돕는구나.’
푸제흐 백작이 이런 것을 생각했을 리가 없다.
레온 백작이 올 것이라 하더니 유능한 참모진을 데려온 모양.
거기다가 간자까지 잡아내었다.
“지금부터 지하 감옥에 잠깐 들어가 있게.”
“이건 아닙니다. 저희 가문은 대대로 푸제흐 백작가를 위해…….”
스릉!
마시 남작이 칼을 뽑아 부관의 목에 칼을 가져갔다.
“자네의 결백함은 돌아와서 확인해 보겠네. 아니라면 미안하게 되었어.”
마시 남작은 손수 부관을 은밀히 지하에 가뒀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자들에게 명령했다.
-병사들에게 요새 앞에 매복과 함정을 판다고 알리게. 그리고 은밀히 관찰해서 수상한 놈들을 색출하게.
-알겠습니다. 영주님!
마시 요새는 마시 남작의 영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평상시엔 그의 영지가 관리했다.
다만, 중요한 곳이기에 사병이 아닌 백작가의 중앙군이 파견 나오는 형식.
부관 또한 남작의 측근이 아닌 중앙의 사람이었다.
“간자를 색출한 뒤 행군 속도를 높여야겠군.”
* * *
란스 용병단의 단장은 에이드 요새에 소식을 기다렸다.
적들도 아군처럼 간자를 심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혹시나 모르는 일.
“소식은?”
“에이드 요새는 함정을 늘리고 매복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멍청한 놈들이군. 수성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요새를 나와 적은 병력으로 매복을 한다고?”
간자가 보내온 소식에 그는 마지막 남은 불안감을 내려놓았다.
혹시나 몰라 1/3 병력을 본진에 남겨 둔 상태.
“그렇다면 굳이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겠군.”
-----마맨군 본진-----
에이드 요새---비스 요새
---푸제흐군 임시 지휘부---
이런 식의 배치였기에 현장과 먼 이곳에 남는 것은 시간 손실.
현장에서 작은 전투들도 지휘를 한다면 더 큰 성과를 거둘 것이다.
적들을 안심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고.
‘여기 본진까지 비우면 적들은 우리가 비스 요새를 칠 것이라고 확신하겠지.’
확신에 찬 란스 용병단장은 곧장 본진의 군대를 모두 이끌고 비스 요새 방면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적입니다!! 후측면에서 적이 나타났습니다!!”
척후병의 보고가 들어왔다.
“아니. 무슨! 깃발은 확인을 했나?”
“코프 용병단입니다!!”
“아니! 그런 덜떨어진 놈들이 갑자기 왜? 에이드 요새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란스 단장은 급히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향해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꼴들이 좋지 않군.”
“혹시… 탈영한 것은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위치가 너무도 공교롭다.
후미를 완전히 막은 것도 아니고 어설프게 진을 짰다.
‘게릴라인 것인가? 아니면 진짜 탈영인 것인가?’
저들은 소수로 길이 아니거나 험한 길을 따라 강행군했을 것이다.
그러니 상태들이 매우 나빠 보였다.
* * *
“젠장!! 이건 우리보고 다 죽으란 거 아니오?!”
코프 용병단도 나름 불만이 많았다.
지원 없이 일개 용병단만 가지고 적의 후미를 공격하라니.
“아니다. 적극적 공격이 아니라 위치를 잡고 견제만 해도 된다고 했다.”
“아니. 단장! 저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견제던 적극적 공격이던 이곳은 적진이나 마찬가지인 곳.
결과는 거기서 거기다. 단.
“아무리 귀족들이 군략에 약하다 한들 병사 한 명이 아쉬운 판에 우리를 이곳에 괜히 보냈겠나?”
“저놈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보오?”
상황이 급박해지면, 느긋하게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특히나 퇴각해야 되는 상황이면 더더욱.
참고로 길을 완전히 막지 않은 상태다.
지나가려면 피해를 감수하며 지나갈 수 있다.
물론 그 피해를 입으면 행군 속도가 느려질 것이고 선두의 작은 정체는 후미의 체증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치 막히는 고속도로처럼.
* * *
결국 사건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갑자기 늘어난 전령들로 인해 정보가 과부하가 되었다.
란스 용병 단장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에이드 요새 측이 샛길 A 지점을 막아섰습니다.
-B2 지역도 공격받고 있습니다.
-B4 지역에 적이 출현했습니다.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합니다.
하나의 길이 아닌 여러 갈래의 샛길들에서 적들이 나타났다.
“아니… 이게 무슨!”
코프 용병단이 후측면에 나타난 것을 기점으로 전방에서도 소식들이 도착하고 있는 것이었다.
에이드 요새의 마시 남작이 간자들을 거르고 출정한 덕에 란스 용병단장은 작은 대비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란스 용병단과 일부 병력이 본진 캠프에 예비대로 남아 있어야 했었다.
그랬다면 적절히 코프 용병단을 적절히 견제했을 텐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이것까지는 리안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
“작전 실패다. 병력을 물린다! 신호탄을 쏘아 올려라! 전령을 보내 각하께도 알려라.”
삐우우우웅~! 퍼버버벙!
하늘 높이 마법탄이 터졌다.
* * *
리안은 적들의 방향에서 신호탄이 터지는 것을 보았다.
“소식이 전달된 모양이네.”
신호가 무슨 뜻인지 당연히 알 수 없지만, 예측은 할 수 있었다.
“레온 백작. 정말 저길 가로질러 갈 생각인가……?”
능선에 숨어 길게 늘어진 적들을 본 푸제흐 백작은 침을 삼켰다.
100명 남짓한 병력으로 저 허리 부분을 치겠다는 것이다.
“시간만 끌 생각이에요. 저길 끊지 않으면 코프 용병단이 전멸할 테니까요.”
퇴각하는 속도와 양을 적절하게 맞출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퇴로를 완전히 막지 않는다 해도 병목이 심해지면, 도주가 아닌 길의 일부를 공격권으로 둔 란스 용병단의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용병단쯤이야!”
“그들을 버림패로 쓴다면, 앞으로 어떤 용병단이 우릴 믿고 싸워 주겠어요?”
우리라 말했지만, 우리가 아닌 리안 본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2/3 정도는 살려야지.
물론 리안은 알지 못했다.
에이드 요새 사령관의 꾀로 인해서 코프 용병단을 견제해야 할 적의 본진까지도 갇혀 버렸단 사실을.
“공격 명령을 내리세요. 푸제흐 백작님.”
“저… 정녕 공격을 할 생각인가? 우리가 잡히면 전쟁이 끝나 버린다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어요. 여기서 멈춘다면 원점이에요.”
코프 용병단이 전멸해 버리면, 적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한다.
“예비대가 적의 완전 후방으로…….”
“그 예비대도 적이 뭉치면 큰 힘을 쓰지 못한다고요.”
애써 도박수를 던졌는데, 큰 이득을 취하지 못한다면 안 하는 것만 못했다.
“알겠네… 모두 공격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