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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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제흐 백작가의 궁전에 도착하자 리안은 동생의 손을 잡았다.
그걸 본 푸제흐 백작의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아주 보기 좋습니다. 참으로 동생을 아끼시는구려. 레온 백작.”
아주 우애 좋은 형제처럼 보인다.
그에게도 나쁘지 않은 것이 둘 사이가 나쁘지 않다면, 두 백작가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니.
특히나 지금 같은 경우는 데릴사위로 들일 예정.
다만, 리안의 머릿속은 달랐다.
‘이 자식 커서 뒤통수를 때리지는 않겠지?’
동생에게 먹일.
그러니까 지금 푸제흐 백작가와 싸우고 있는 영지는 마맨 백작가다.
그곳은 브루타뉴 공국으로 들어오는 입구.
매우 중요한 위치다.
“내가 죽은 형들의 등쌀에 밀려서 신경을 못 써 줬지만, 앞으로는 잘 챙기려고요.”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동생들은 어리고. 그 어린 동생들이 자신에게 반감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한 밑 작업이랄까.
“그렇군요.”
“그래서 내 동생의 배필이 될 아이는 어디에 있나요?”
“아아. 때마침 저기 오네요.”
한 아이가 백작 부인의 손에 이끌려 다가오고 있었다.
딱 동생의 나이대로 보인다.
“크루슈.”
“네… 형님.”
“네 부인이 될 아이니까. 친하게 지내야 한다!”
“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사탕이나 입에 물려 줘야겠다.
“그럼. 내 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백작 부인.”
리안은 이 짐덩이를 백작 부인에게 슬쩍 밀었다.
“제 아이처럼 보살피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래 보살필 일은 없을 거다.
마맨 백작가를 먹는 순간 이 아이는 독립할 것이고. 케네이나가 수렴청정을 할 것이다.
결국엔 케네이나가 다시 키울 예정.
“여기 친절하신 백작 부인의 말을 잘 듣고 있어야 한다.”
“혀… 형님. 어디 가요…….”
“일을 보고 금방 올게. 잘 있을 수 있지?”
“웅… 눼.”
리안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푸제흐 백작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걸 본 푸제흐 백작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냥. 다과나 먹고 시간이나 때울 것이지!’
아무래도 저 천방지축같이 보이는 어린 백작은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나 보다.
이미 천 단위의 싸움이 된 전쟁터.
그가 데려온 몇 명의 기사들도 전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내 집무실로 모시겠소. 레온 백작.”
“네. 지금은 전쟁이 더 중요하니까요.”
리안이 웃으며 먼저 움직였다.
‘제발. 작전은 그대로 둬 주길.’
자신의 무관장과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내 만든 작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왕이 돈을 지원해 줘서 제법 많은 용병을 고용할 수 있었다.
상대도 잉글슨 국왕에게 금전 지원을 받았는지 많은 병력을 동원했다.
징집병까지 합하면 양측은 일개 백작가의 싸움 규모가 아니게 된 것.
끼이익!
어느새 집무실에 도착하고 리안이 주변을 슬쩍 훑었다.
“꽤 열심히 준비하셨나 봐요.”
지도들과 그 위에 각종 말들이 올려져 있었다.
대충 봤을 땐 마맨 백작가가 1.5배 정도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푸제흐 백작이 수비하는 입장이라 그렇게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다른 세력만 끼어 있지 않으면, 해 볼 만한 전쟁이라 생각하오. 그러니 잘 부탁하오. 레온 백작.”
푸제흐 백작은 자신이 하는 말을 리안이 알아들을지도 의문이었다.
정리하자면.
네가 신센롬 제국과 이벨 왕국의 사위이니 네가 이곳에 있으면, 잉글슨 왕국이 끼어들지 못할 것이다.
잉글슨 왕국이 끼어드는 순간 그 명분으로 신센롬과 이벨 왕국도 개입할 수 있으니.
참고로 잉글슨 왕국이 마맨 백작가를 움직인 것은 바로 스랑 제국과의 확전을 위해서였다.
속국이나 다름없는 브루타뉴 공국을 공격함으로써 스랑 제국을 자극하는 것.
‘거참 절묘하게 물렸네.’
리안은 싱글생글 웃으며 생각했다.
웃긴 것이 이 영지전을 승인해 준 것이 스랑 제국이었다.
결국 노르망 공국도 스랑 제국의 소속이니까.
그런데 또 웃긴 것은 스랑 제국도 이제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이 이 전쟁에 이벨 왕국이 끼어드는 것을 당연히 반기지 않는다.
“뭐. 제가 있으니까 다른 나라가 끼어들지는 못할 거예요. 제 장인어른들이 좀 힘이 세거든요.”
리안의 말에 푸제흐 백작이 조금은 안도를 했다.
어리지만 그래도 영특한 것이 말은 알아듣는 모양.
“음… 그런데…….”
“우움? 문제라도 있소?”
“저기 배치. 저렇게 하면 안 될 텐데…….”
리안의 말에 푸제흐 백작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이 꼬마는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건가.
“이건… 말일세. 여기 요새와 여기 요새 사이에서 위험한 곳을 구원하기 위한 예비대로…….”
일단 설명을 해 주긴 했다.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에에~ 그러니까요. 굳이 왜 병력을 허비해요.”
“응? 허비가 아니라. 어느 요새도 뚫리지 않게…….”
정말 정밀하게 계산하에 예비대를 구성해 놓은 것이다.
상대의 병력이 많으니 대응해서 수비대를 배치할 수 없다.
전장은 이 요새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있었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몰라요?”
“그게… 말은 좋다만. 우리의 병력은 숫자도 모자라고… 부끄럽지만 질도…….”
마맨 백작가가 먼저 전쟁준비를 했기에 쓸 만한 용병대를 거의 다 가져갔다.
그래도 운이 좋금 좋았던 것이 그들보단 명성이 좀 떨어져도 나름 실력 있는 용병단을 고용할 수 있었다.
공왕이 생각보다 많은 돈을 지원해 줘서다.
그렇다 해도 실력이 이쪽이 약간은 밀린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수비만 하다가 끝낼 거예요?”
“우리는 시간만 끌면 되네. 저들은 침략군이라 보급도 신경을 써야 하니.”
나쁜 판단은 아니다.
이 시대의 보급은 현지 조달에 많이 의존하는데, 이 땅 안으로 병력만 들여보내지 않아도 저들의 현지 조달은 힘들어진다.
보급선을 유지하는 것은 돈이고.
결국엔 마맨 백작가의 국경 근처 마을들이 약탈당할 것이다.
아군에 의해서.
“아니. 그러니까요. 상대 보급선을 끊어 버려야지. 이 아까운 병력을 그냥 내버려 둬요?”
“그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한 생각…….”
리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 푸제흐 백작님은 국경을 지키는 곰이란 소리를 듣고 흔쾌히 정략결혼을 허락한 건데… 이런 식이면 물려요. 안 해! 못 해! 내 귀한 동생을……!!”
리안이 완전히 삐친 표정을 지었다.
어린아이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랄까.
‘이런. 미친!!!’
푸제흐 백작은 기겁한 얼굴을 했다.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상대가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
문제는 그 어린아이가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키다.
“그게… 그러지 말고. 레온 백작. 잘 들어 보게.”
“뭘 들어 봐요. 저는 제 소중한 동생을 겁쟁이 백작가에 데릴사위로 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그 말에 푸제흐 백작의 무관장이 참지 못하고 리안에게 살기를 뿌렸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도가 지나친 언행.
그런데.
팅!!
매서운 살기가 가볍게 튕겨 나갔다.
“거기. 죽고 싶나?!”
부선장이 리안의 앞을 막아서며 으르렁거렸다.
그 순간 푸제흐 백작가의 기사들이 칼을 뽑았고.
당연히 리안 측 인물들도 대응을 했다.
스르르르~!
그 모습에 모두들 경악했다.
단 한 명, 세이나를 제외하고 모두 대기사였다.
“어어…….”
가장 놀라운 것은 중견급이 두 명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그저 리안의 노리개 정도로 생각했던.
“뭐야. 다들 왜 그래요?”
리안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런. 주교 누님. 혼자 그러고 있으니 좀 보기가 그렇네.”
그 와중에 리안은 세이나를 보며 웃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정령 갑옷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러게요. 백작님.”
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검은 머리의 차가운 소녀가 자신도 조금 민망한 모양.
팅~!
리안이 품에서 보석 하나를 던졌다.
“계약해요. 헤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는 걸까?
“이런 선물을 주시다니. 역시 백작님은 통이 크시네요.”
세이나는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정령 계약석의 가격은 최소 2만 페니를 가볍게 넘는다.
시세나 상황 그리고 장소에 따라 8만 페니가 넘을 때도 있고.
돈이 있다 해서 쉽게 구하기 힘든 물건.
“우리 탱글교는 영원히 백작님의 우방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세이나는 곧바로 계약해 버렸다.
충격적인 장면이다.
계약은 신중하고 보호받는 상황에서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난장판이 상황에?
확신이 있는 것이다.
주변에 다섯 명의 대전사가 에워싸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는가.
샤르르르르!!!
집무실에 가벼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리안이 세이나에게 준 계약석 속성은 바람.
“사… 상급!!”
세이나는 계약과 동시에 엄청난 포스를 풍겼다.
3차 각성.
어디서든 백작위 작위를 받을 수 있는 경지.
애초에 세이나는 전쟁의 신 가호를 받는 유일한 주교다.
탱글신의 사랑이 몰빵될 수밖에 없으니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질 것이다.
“오! 누님 축하드려요. 단번에 두 단계를 뛰어넘네요.”
“모두 백작님 덕분입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세이나 본인도 놀란 모양.
리안은 가볍게 웃어 주고는 표정을 냉담하게 바꿔 푸제흐 백작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그만 떠나죠. 겁쟁이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곳이군요. 주인의 허락도 없이 살기를 뿜는 기사라. 그것도 이 나약하고 어린 나에게…….”
“그… 그게 아니라네. 레온 백작!! 그리고 이 결혼은 우리들의 주군이신 공왕께서 주선하신……!!”
리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참고로 나는 공왕 전하께 빚이 없습니다. 결혼사는 아무리 상위령이라 할지라도 간섭하지 못하는 귀족의 고유 권리입니다.”
“그런……!!”
공왕의 가장 큰 실수이다.
리안이 뭔가를 지켜야 할 의리가 사라져 버린 것.
명분을 잃은 것이다.
“이만 가지요.”
리안이 돌아서려 하자.
“제발. 부탁이네. 레온 백작! 그대의 조언을 무시하지 않겠네. 그리고 무관장!! 당장 사과하게.”
“죄… 죄송합니다. 레온 백작 각하!!”
급히 한쪽 무릎을 꿇는 푸제흐의 무관장.
“음. 그럼 또 말이 조금 달라지긴 하지요. 뭐. 무관장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자신의 주군을 무시하는 것은 쉽게 참기 힘들었겠죠.”
그러며 손을 살랑살랑 흔든다.
“충성스럽기는 하나 인내심을 좀 기르시길~~”
그 얄미운 모습에 무관장은 이를 갈며 고개를 숙였다.
“조언 깊이 새기겠습니다. 레온 백작 각하!”
“뭐. 됐으니 일어나세요. 자. 그럼 이제 전쟁에 대해 의논해 볼까요?”
리안은 의논 따위를 할 생각이 없었다.
“보자 보자~”
리안은 집무실 중앙에 배치된 커다란 테이블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지도 위에 있는 병력 배치를 아무렇게나 툭툭 옮겼다.
“지… 지금 뭐 하는… 겐가…….”
몇 날 며칠을 고생해 만든 배치다.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전쟁에서 이기고 싶지 않아요? 감히 우리 브루타뉴 공국을 넘보는 간악한 놈을 그냥 돌려보낼 생각인가요?”
“우린 병력도 실력도…….”
“내가 전선으로 갈 겁니다. 내 충성스러운 부하들을 데리고.”
푸제흐 백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만약 리안이 전쟁에서 사로잡히거나 죽는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사로잡히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죽는다면……?!
이 영지는 강대국들의 대리 전쟁터가 될 것이다.
“내 부하들의 실력이 못 미덥나요?”
아주 형편없어 보이는 기사들이었다.
품격 자체가 결여되어 보이는.
그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중에 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더군다나 가장 상류층에 가까운 사람은 사제인 세이나였는데, 그녀는 다른 신도 아니고 전쟁의 신을 믿는 사제였다.
“그… 그건 아니네……!”
이들만으로도 대대 하나는 그냥 박살 날 것이다.
무려 상급 대전사 하나와 중견급 대전사가 둘이다.
물론 상급이니 중견급이니 해도 실전은 변수가 많아서 허무하게 죽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서 이대로 두들겨 맞기만 할 건가요?”
“조… 좋네. 레온 백작 그대의 뜻대로 하지.”
결국 푸제흐 백작은 수락했다.
리안이 어린 나이에 치기 어린 마음에 저럴지라도 그의 부하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보다 레온 백작가의 무관장이… 안 보여.’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이 더 소름 돋는 일이었다.
레온 백작가의 무관장은 나름 브루타뉴 공국에서 실력 있는 검사였다.
“그럼. 가시죠.”
“음?? 뭘 말인가?”
“지휘부가 움직여야 유동적인 작전을 펼치죠. 자, 빨리 작전판이나 챙겨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