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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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이 성벽을 둘러보고 웃은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대부분의 병력들이 궁전이나 시내에 있지 않고. 수성을 위해 배치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낮은 성벽이라지만, 일단 여기서 최대한 시간을 끌 요량이겠지.
다만, 이것은 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리안은 단숨에 1선을 돌파해 궁전으로 향할 것이니.
다시 말해 궁전에서의 소모적인 백병전이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성벽을 보고 웃은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저 배는 왜 저쪽으로 가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모든 병력이 성문 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참관인단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성벽을 포격한 뒤 부유선을 사다리로 이용해 그곳으로 병력을 올려보낼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리되면 당연히 예비대가 곧장 투입될 것이고 그것이 격전지가 될 것이지만… 병력은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어… 어?!”
“왜 속도를 안 줄이지?”
“설마 성벽에 들이박을 생각인가?!”
“설마… 아무리 철갑선이라 해도. 돌로 쌓은 성벽에 어찌…….”
갑작스러운 고잉미샤호의 돌발 행동에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아아아아~!”
리안이 직접 조종구를 잡고선 성벽을 향해 박을 기세로 달렸다.
선교에 있던 선원들은 리안의 실력을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았다.
“으흐흐흐흐~”
보조석에 앉은 흐리아 민 만이 실눈을 뜨고선 신음을 뱉었다.
심장이 두근대고 오금이 저린지 발을 찔끔찔끔 움직인다.
아마도 조종하는 것이 본인이면 이미 조종구를 꺾었을 것인데…….
“으아아아아!!!”
성벽을 지키던 병력들은 놀라서 대피하기 시작했다.
성벽은 무사하겠지만, 충돌지점에 있는 자들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트르르르륵!!
거의 부딪히기 직전에서야 고잉미샤호는 방향을 틀었다.
후우우웅~!
“배… 배가… 난~다~~요?”
어떤 참관인이 황당한 광경에 혀가 꼬였다.
모두가 놀라서 넋을 놓고선 고잉미샤호를 바라봤다.
휘이이이잉~!
거대한 고래가 수면 위를 위용 있게 솟구치듯 떠오르는…….
터턱.
성벽 아래 약간의 턱을 발견한 리안의 작품이었다.
쿠르르릉~!
다만. 점프를 하다말고 결국엔 넘지 못하고 성벽에 부딪혔다.
아무리 부유선이라 할지라도 성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드르르륵~!
그럼에도 고잉미샤호는 계속 움직였다.
다들 부딪혀서 바닥에 처박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고잉미샤호는 성벽에 옆으로 착지를 한 것이다.
볼을 바닥을 향해 꺾으면 마치 세상이 90도로 뒤집힌 것 같이 보였다.
“모두 꽉잡아요오오오~!”
고잉미샤호는 살짱 튕기더니 다시 날아올랐다.
성벽은 완벽한 평면에 미끈한 것은 아니다.
그걸 이용해 약간의 변형된 부분을 이용해 반동을 준 것이다.
다만.
휘리리리릭!!!
반동을 이용해 다시 공중으로 도약한 고잉미샤호는…….
“저게 뭐야!!”
“추락하는 건가…….”
참관인단은 끔찍한 부유선의 결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건… 예술…….”
그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얼토당토않은 말이지만, 서커스에서나 볼 법한 저런 걸 예술로 취급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저게… 가능한 일인가……?!”
다른 이들은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도대체 저 배는 정체가 뭐지?”
“절대 저런 배를 만들 수 없습니다. 저건 조타수가 미친 겁니다.”
부유선에 대해 지식이 있는 참관인이 소리쳤다.
“그 말은…….”
“저 조타수라면 다른 부유선으로도 저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겠죠.”
그런 결론에 다들 입을 쩍하니 벌렸다.
“레온 백작은 그런… 괴물을… 어디서…….”
“소문으로는 레온 백작 본인이 그 당사자랍니다.”
누군가 그 말을 했지만.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미 고잉미샤호는 성벽을 넘어 도시로 진입을 했다.
이들 시야에서 벗어 난 것이다. 그 말은.
이 전쟁이 끝났다는 것이다.
다만, 백작 궁전에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요.”
“공왕께서 날짜를 촉박하게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알고 계셨으니… 그런 결정을 내리셨겠지요……?”
다들 시선이 자티푸스 백작에게로 갔다.
그는 공왕의 측근이니.
“그… 그렇죠. 공왕께서 설마 모르시고 그랬겠습니까…….”
말은 그리 했지만, 장담을 하지는 못했다.
사실 공왕은 될 대로 되란 식이었다.
“그나저나 답답하군요. 도시 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쾅!!! 쾅!!! 쾅!!!
누군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포격 소리가 들렸다.
그 진원지는.
“서… 성문이 무너진다!!!”
도시의 성문 또한 역시나 밖은 견고하나 안은 약했다.
약전이 될 만한 곳이 너무 많았고.
약간의 포격만으로도 손쉽게 부서졌다.
“배… 백작님! 어서. 궁전으로~!!”
고잉미샤호는 안쪽으로 들어왔지.
포격으로 성문은 무너졌지.
“이… 이럴 수는 없다!! 이건 꿈이야.”
“어서 피하십시오!! 뭣들 하나. 어서 백작님을 모시지 않고!”
루데악 백작은 부하들에게 이끌려 궁전으로 대피했다.
도시 안은 건물들이 많았기에 부유선들보다 오토호스들이 더 빨랐다.
투르르르르~!!
저 멀리 한 무리의 오토호스들이 움직이는 걸 본 리안은.
“전 선원은 백병전을 준비하세요~!”
낭랑한 목소리로 선내 방송을 했다.
우오오오오!!!!
고잉미샤호가 들썩였다.
코앞에 리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시에 고리를 질러 리안의 말에 호응을 해 준 것이다.
푸아아아앙!
고잉미샤호가 사뿐히 공중으로 떠오른다.
궁전까지는 건물들이 가로막고 있었고 대로도 없어서 그냥 밟고 지나가야 했다.
파삭!! 푸스스슥!!
낮고 약한 건물들은 고잉미샤호의 부유석이 내뿜는 압력에 짓눌리며 부서졌고.
2층 건물들은 지붕이 뭉개졌다.
“꺄아아악!!!”
사람들이 놀라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나마 리안이 최대한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고도를 최대한 높인 것이다.
대피하지 못한 백성들을 위한 배려였다.
“느리군.”
부선장은 살짝 불평을 했다.
당연히 고도를 높이면 속도가 줄 수밖에.
“자… 자애로우세요! 백작님…….”
다만, 옆에서 지켜보던 흐리아 민이 얼굴을 붉혔다.
방금 전 리안의 미친 조타 실력을 보고선 여전히 몽롱한 정신에서 깨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흐하하. 내가 좀 자애롭지. 사랑! 정의! 박애! 그것이 나 리안이지.”
“무슨 개소리를……!”
부선장이 기겁한 얼굴을 했지만, 흐리아 민은 상기된 얼굴로 혼자 중얼거렸다.
“사랑… 정의… 박애…….”
사실 리안도 자신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몰랐다.
조종구 위가 땀으로 촉촉했다.
리안도 조금 전 공중제비(?)를 시도할 때 오금이 저렸다.
‘다시는 하나 봐라…….’
역시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영상으로 움직이는 것은 같을지 모르겠지만, 몸에 느껴지는 중력은 달랐다.
덕분에 착지를 할 때 아주 살짝 삐끗했다.
트륵트륵.
덕분에 고잉미샤호가 살짝 불안정했다.
마치 다리를 살짝 저는 느낌이랄까.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거의 매일 조종구를 잡아 온 리안은 눈치챌 수 있었다.
‘기관장이 지랄을 안 했음 좋겠네…….’
여기까지 기관장 헤르미의 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고치려면 한동안 영지에 정박해 놓아야 할 것이다.
‘잘되었나.’
어차피 국경 분쟁에 잠깐 다녀와야 하니.
‘그보다 내가 했던 게임은… 누가 만든 거야.’
딱히 지금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게임에서 했던 것을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해야 하나.
폰으로도 연동되어 돌아가는 게임인데, 물리 엔진의 정밀도가 대단해 보였다.
‘뭐. 내 머리로 생각해 봐야 답이 없지…….’
이 세계에서야 게임 지식으로 먼치킨 취급을 받지만, 원래 세계에선 그저 평범함… 보다 조금 못 미치는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포격 준비!”
리안은 생각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명령을 내렸다.
[맡겨만 달라고. 귀여운 선장!]
사격 통제실에서 답변이 왔고.
퍼버버버벙!
곧장 궁전을 향한 포격이 시작되었다.
외각 성벽의 성문과 달리 궁전에는 무차별적인 포격이 가해졌다.
그럴 것이 성문에는 일반 징집병의 비율이 높아 최대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으아아아악!! 피해. 피하라고!!”
궁전의 성벽에 있던 소수의 병력들이 모두 대피했다.
일부는 그 전에 몸이 터져 나갔다.
“부선장 아저씨. 가서 문을 여세요.”
“오냐!”
부선장은 갑옷을 입으며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투다다닷!!
부선장의 뒤로 해병대원들이 고잉미샤호를 빠져나간다.
그들은.
팅캉~ 팅캉~
궁전의 성벽에 갈고리를 걸고 빠르게 타고 올랐다.
역시 약탈에 특화된 자들다웠다.
철커덩!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성문이 열렸다.
“흐리아 민.”
“네! 백작님. 배를 지키…….”
“따라가겠나?”
“네에?!”
“배는 소수의 병력을 남겨 둘 것이다. 어차피 그동안에 조타수는 필요 없어.”
일단 그녀도 해적이니 리안은 흐리아 민에게 지상 전투를 구경시켜 줄 요량이었다.
평소라면 전투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려 지켜야 하는 고급 인력이지만, 지금은 나름 안전한 축에 속하니.
“아… 알겠습니다.”
그녀는 볼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녀의 자리가 조금… 축축해 보이는 것이.
“음……?”
“왜 그러시죠?”
“아… 아니야. 기분 탓이겠지.”
리안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당장 리안의 주변으로 호위 병력이 붙었다.
저벅저벅.
열린 성문은 부선장과 해병대가 통제하고 있었다.
그 말은 모든 해병대원들이 리안을 맞이한 것이 아니다.
끄아아아악!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아직도 곳곳에는 저항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궁전에 잔존하는 병력은 루데악 백작의 친위 세력이나 마찬가지이니.
“부선장!”
“네. 선장!”
리안이 힘을 주어 말하니 건들거리던 평소의 모습이 가셨다.
어떻게 저 면상에 저런 매너 있는 몸짓이 나올 수가 있는지 의문이다.
“내 선원이 최우선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백 명 아니 천 명의 생명보다 단 한 명의 아군이 더 소중했다.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기에.
“다들 가죠. 궁전에 걸려 있는 저 깃발이 거슬리네요.”
리안이 걷자 한 무리의 유기체처럼 동시에 움직인다.
조금의 위험만 감지해도.
스윽.
토우기슈끼 럽이 손짓하자.
타다다다당!!
포병들의 보조 모기인 마총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끄아아악!!
방금 전에도 어떻게 봤는지 숨어있는 적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가끔 사격이 힘든 곳으로 몸을 피하면.
두다다닷!
몇 명의 해병대원이 달려가 처단하고 왔다.
“하… 항복. 사… 살려… 크아아악!”
뒤늦은 항복은 받아 주지 않았다.
그럴 것이 이들은 충분히 기회가 있었음에도 저항한 이들이다.
또한 거짓 항복의 우려도 있다.
이곳은 적의 건물 안이니 어떤 흉계를 꾸며 놓았을지 모른다.
“항복을 하지 말고 궁 밖으로 피하라. 도망가는 자는 굳이 쫓지 않는다!”
리안은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내며 경고했다.
“눈에 띄는 순간 항복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니 도주하라!”
다시 느긋하게 궁의 중심부로 향했다.
물론 리안이 걸어가는 이 길은 이미 해병대들이 이미 한 번 훑었다.
옆에 사제인 세이나가 있었지만, 리안이 각성 전이라 선원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따각따각!
결국 리안은 궁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영지 전의 끝내는 방법으로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상대 영주의 항복.
두 번째는 협정.
마지막 세 번째는 상대의 궁전의 깃발을 갈아치우는 것.
당연히 이때는 깃발을 게양하는 사람이 영주여야만 한다.
그렇기에 세 번째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영지전을 벌여도 영주가 전투에 참여하는 일은 드물었다.
아무리 후방이라 할지라도 전쟁터는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펄럭!!
궁전의 꼭대기에 레온 영지를 상징하는 깃발이 서서히 올랐다.
리안이 지니고 있는 앙증맞은 고양이앞발 인장과 달리 레온 가문의 문장은 맹수의 앞발이 살벌하게 잘 표현되어 있었다.
[나 리안 레온 백작이 이 땅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음을 선포하노라!! 모든 이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이 땅은 더는 루데악 가문의 소유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부터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자는 반역으로 취급할 것이다.]
리안이 무선 마이크 마도구로 외치자 고잉미샤호에서 방송이 나왔다.
탈캉! 탈캉!!
궁전에 깃발이 바뀐 것을 본 적군들은 무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더는 싸워 봐야 의미가 없다.
궁전이 함락되었다는 것은 곧.
“루데악 백작은 찾았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해병대의 대장인 이염이 보고를 해 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일부 해병대들은 열심히 루데악 백작을 찾고 있었다.
“에휴. 어디 있는지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