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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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과 세이나는 태양신 주교의 마음을 흔들어 놨다.
거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저는 레온 백작님의 호종 사제입니다.”
세이나가 태양신 주교에게 폭탄 발언을 날렸다.
“그… 그 말씀은…….”
이곳 백작령의 봉역 종교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교가 존재하지만, 모든 영지가 국교를 따라가진 않는다.
보통은 영주의 종교에 따라 봉역 종교가 바뀌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 교회를 비워 줘야 할 때도 있었다.
수도의 교회는 해당 종교의 것이 아니라 영주의 것이기에.
(가끔 헌금으로 지어진 경우도 있음.)
“걱정하지 마세요. 주교. 그대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따라 이 영지의 종교는 바뀔 수도 있고 그대로 둘 수도 있으니.”
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만약 이 영지의 봉역 종교가 바뀐다면 자신은 교황청으로 소환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청난 질책을 받겠지.
“일단 우리 백작님은 나이가 어리니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레이나가 거든다.
확실하게 견제를 하겠다는 뜻.
무슨 말이냐면 인장 인계식을 태양 신과 전쟁 신이 함께 주관하겠단 말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주교는 대번에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뒤로 한 발 뺄 수밖에 없는 것이. 상대는 추기경급 신성력을 뿜어 대고 있었다.
작정하고 자신과 신성력 경쟁을 하면, 밀릴 수밖에.
“자. 그럼. 여기서 곧장 진행하죠.”
“그래도 되겠습니까?!”
인장 계승식은 보통 교회 안에서 고위급 인사들만 초청해 진행한다.
굳이 백성들에게 보여 줄 필요가 없었으니.
“상관없어. 진행해 줘요. 세이나.”
리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이나가 품에서 단검을 번쩍 꺼내 들었다.
그걸 지켜보던 백성들이 경악했다.
그들은 세 명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알지 못했기에.
샤악!
리안은 팔을 걷으며 올렸고. 세이나의 단검이 리안의 가늘고 하얀 팔을 베며 지나갔다.
붉은 피가 바닥으로 뚝뚝 흐른다.
스스스스스스스! 번쩍!!
피가 바닥에 떨어지자 푸른 빛이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서늘하고 명예로운 푸른 기운이 리안을 맴돈다.
“나 세이나는 전쟁의 신 탱글 님의 이름으로 이분이 이 땅의 진정한 후계자이심을 증명한다!”
샤로트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세이나가 무슨 의식을 치른 것이 아는 자들이 생겨났다.
백성이라고 모두 무지렁이인 것이 아니었고. 전쟁의 신 사제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
-백작 각하 만세!!
-이 땅의 지배자에게 경의를.
-영주께 충성을.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리안에게 풍기는 명예로운 지배자의 기운은 감히 그냥 지켜볼 수 없게 만들었다.
신성 마법. 지배자의 의식.
이것은 단순히 땅에 대한 명분만을 알려 주는 판별식 따위가 아니다.
적법한 명분이 있는 자에게 탱글 신의 가호가 내리는 것.
이 땅의 주민들에게는 지배자에게 경외심을 가지게 만든다.
‘얼마나 올랐으려나.’
리안은 근엄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신성력에 의한 뽕맛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사제의 신성력에 따라 카리스마가 일시적으로 상승.
세이나가 힘을 꽤 쓴 듯 보인다.
아주 자존감이 뿜뿜 넘치는 것이 휘트니스 모델들이 취하는 포즈를 취하고 싶은 마음에 간질거린다.
‘참아야 되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한 달은 가지 않을까?’
축복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조금씩 약해지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데, 인간은 학습의 동물인지라 리안을 한 번 본자들은 리안의 카리스마가 영원히 갈 가능성이 높았다.
전쟁 신 사제들이 영주들에게 각광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
“호홈!”
리안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짜리몽땅한 팔을 가슴에 붙여 팔짱을 끼고야 말았다.
어깨가 한없이 올라가 볼품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읭? 저게 뭐 하는 짓이야?
리안을 따라나선 해적들은 황당한 표정이다.
대게 위풍당당한 폼은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폼인데, 리안의 포즈는 엉망이었다.
싸움을 밥 먹듯이 하는 그들에게는 엉성하게 보일 뿐.
-오오오! 저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라.
-저것이야말로 지배자의 품격!!!
-저런 분이 우리의 영주님이 되다니!!!
그런데, 백성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그럴 것이 축복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해적들과 달리 이곳 백성들에게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리안이 여기서 똥을 싼다 해도 박수를 칠 것이다.
진심으로.
“찬란한 태양이여! 축복을.”
그에 이어 태양신 주교도 질세라 두 팔을 번쩍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번쩍!!
태양에서 강렬한 빛줄기가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다른 지역은 어두워졌다.
‘돋보기처럼 빛을 끌어모아 내게 집중시키는 건가?!’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았다.
‘뜨끈뜨끈하네.’
진짜로 이 정도 지역의 빛을 홀로 받는다면 타 버릴지도 모른다.
돋보기조차도 종이에 불을 붙일 정도이니.
다만.
“호랑이 기운이!!!”
느껴졌다.
태양 신은 힘을 상징한다.
과학적 원리였다면, 리안은 지금 재만 남고 타 버렸을 테지만.
‘마나가 올랐다. 한동안 건강은 걱정 없겠네.’
태양신 주교가 힘을 좀 쓴 것 같다.
경지가 미세하게 올랐고. 그 밖에 기력이 넘쳐흘렀다.
아쉽지만 각성은 하지 못했다.
리안의 재능이 뛰어났다면, 방금 전 축복으로 각성했겠지만, 아쉽게도 소량의 증진이 있는 걸로 그쳤다.
휘이이이잉~!
오롯이 리안에게만 비치던 태양 빛이 점점 흩어졌다.
리안의 몸에서는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와아아아아!!!
시민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가뜩이나 탱글 신의 축복으로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데, 쥬신의 연출까지 더해지자 백성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흐압!!”
리안도 스스로 뽕이 차올라 이번에는 짜리몽땅한 양팔을 허리춤에 올렸다.
이번에도 해적들이 보기엔.
-으으으. 오그라들 것 같아. 아무리 우리 선장이라지만. 븅신 같아.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백성들이 열광을 하고 있으니.
“으라차차!”
축복으로 마나가 소량 증가해 시험 삼아 마나도 한 바퀴 돌려 봤다.
소량이라지만, 이 정도면 영약급 이상으로 진전이 있는 것이니.
화르르르~~
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보름 정도는 쥬신의 가호를 받아 마나에 태양의 힘이 깃들 것입니다! 최소 보름은 모든 독에 면역이 될 것입니다.”
태양 신 주교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제대로 힘을 쓴 모양.
참고로 태양은 독조차도 정화한다.
정확히는 태워 버린달까.
“호오~!”
단련한다면 태양열 배터리라도 탑재한 듯 빠르게 경지가 상승하겠지만…….
리안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을 거다.
재능이 바닥이니.
“이것은 우리 교회에서 보관 중인 이 땅의 성물입니다. 적법한 주인에게 돌려드립니다.”
태양 신 주교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인장을 리안에게 넘겼다.
딱 봐도 무리해서 힘을 쓴 모양.
“사자의 손 모양이라 들었는데…….”
인장의 모양은 영지마다 다양하다.
“새끼 고양이앞발 같군.”
부선장이 입을 열었다.
워낙 작고 아담하다 보니 사자의 손이 고양이 손같이 보인달까.
“사자도 고양잇과니까요.”
“응? 사자가 고양이라고?”
“과! 라고요. 조상이 같아요.”
“그럴 리가…….”
부선장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럴 것이 이 세계의 사자는 리안이 살던 현대보다 두 배, 심하게는 세배까지 더 컸다.
“안 믿을 줄 알았어요.”
리안은 한 번 웃어 주고는 근엄한 표정으로 시민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외쳤다.
“나 리안 레온은 이 땅의 온전한 지배자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 땅을 어떤 땅보다 풍요롭게 만들 것을 약속한다!”
율 대륙 변방의 이 땅은 리안의 고향이자 원천이 될 것이다.
수도야 전쟁 상황에 따라 옮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 한들 언제나 제2의 수도로 남을 것이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이 환호했다.
저 말이 진짜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두들 뽕에 차 있었다.
지금은 리안이 똥으로 된장을 만들어 준다 해도 맛있게 퍼먹을 상태다.
“그러기 위해선 큰 행정력이 필요하다. 글을 아는 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지원하라! 기본만 하더라도 중히 채용할 것이다.”
레온 백작령에 있는 남작들과 훈작들의 땅을 모두 몰수할 생각이다.
당연히 강제로 그러진 않을 것이고. 다른 지역의 더 큰 땅을 줄 예정.
최소한 레온 백작령의 모든 땅은 리안의 직할지가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공무원들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고?
-월급은 감당할 수 있는 건가?
-모르겠어!! 그래도 일단 지원을…….
-관료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놀고먹기만 하던 이들의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능력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중히 쓸 것이다.”
* * *
신컨의 재는 교회의 구석에 앉아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팔 하나와 다리 하나가 없는 병신.
만약 자신이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었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길바닥에서 구걸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
-어쩌다가 저리되었대?
-집사장도 안되었지. 저런 동생을 평생 책임져야 하다니.
-거긴 멀쩡하겠지?
-그보다 저자에게 시집갈 처자도 불쌍하군.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 결혼 말고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몸.
다른 자들이 신컨의 재를 보며 쑥덕였다.
그렇게 부끄러움이 극에 달해 머리가 하얗게 변해갈 때쯤.
-어린 영주님이 교회밖에 도착했대.
-뭐? 그런데 왜 안 들어와.
-밖에서 의식을 진행한다더군!!
그에 교회에 대기하고 있던 귀빈들도 밖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신컨의 재는 그냥 교회에 남아 있을까 하다가 결국 목발을 들었다.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 형님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르고.’
쩔뚝이며 밖으로 나갔다.
집사장은 리안의 행렬에 있을 것이니 얼굴을 비춰야 한다.
번쩍! 와아아아~ 번쩍!! 와아아아~~
밖으로 나오니 놀랍게도 두 명의 사제에게 축복을 받았다.
그것도 다른 종류의 종교.
이것은 왕들의 계승식에나 볼 수 있는 사치.
그리고 이어진 리안의 연설.
그것은 신컨의 재의 마음을 뛰게 만들었다.
‘나도 글을 아니까… 아니지. 나같이 거동도 불편한 자를…….’
“나는 능력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중히 쓸 것이다.”
리안의 시선이 자신을 향했다.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자신도 어찌 보면 이 땅의 백성이니 전쟁 신의 축복이 먹혀들었다.
이성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굴복했다.
자존감이 낮은 탓도 있었다.
“집사장의 동생 신컨의 재!!!”
신컨의 재는 화들짝 놀랐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콕 집어서 부를 줄은 몰랐다.
“이리로.”
리안의 단조로운 부름에 신컨의 재는 쩔뚝거리며 걸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님에도 천리 길처럼 느껴졌다.
또각. 또각.
오늘따라 나무로 만든 의족과 목발의 소리가 왜 이리도 큰지.
사람들의 시선이 따끔거렸다.
“무릎을 꿇어라.”
리안은 근엄하게 서서 그에게 말했다.
신컨의 재는 속으로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면박하는 것일까?
설마 자신의 형이 내침을 당하는 것인가?
그래서 이런 꼴임을 알고도 인장 계승식에 부른 것일까?
스윽!
리안이 팔을 펴서 손을 뻗었다.
“여기 있어욧!”
옆에 있던 샤로트가 급히 칼자루를 옆으로 들었다.
스릉!
리안이 손잡이를 잡고 뽑았다.
얇고 하얀 레이피어의 검날이 빠져나온다.
“서… 성검!!”
태양 신 주교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전설에 나오는 그런 검이 아니라 명예 성기사에게 내려지는 검.
자신도 주교라 잘 알았다.
주교들에게는 성검에 대한 할당량이 정해져 있었다.
성검을 만드는 것은 주교들의 의무이니.
“최소… 추기경급…….”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검이다.
저것은 교황청의 보물이나 다름이 없다.
성기사가 아닌 자는 가질 수 없으며 가끔 왕이나 황제들에게나 선물로 줄 때도 있었다.
“나 레온 백작이자. 신센롬의 사위이자. 위사 명예 백작이자. 이벨 왕국의 남신대륙 코파나 백작이자. 쥬 신의 교황청에서 임명한 명예 성기사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노라.”
리안의 말은 폭탄 발언이었다.
백성들도 저게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저게… 진짜야?!
-멍청아. 지금은 명예로운 의식 자리야. 여기서 거짓말을 했다간…….
-저기 언급된 모든 곳에서 공격을 받겠지…….
절대 거짓을 말해선 안 된다.
만약 거짓이고 이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레온 백작령은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방금 언급한 곳들은 한 곳도 예사로운 곳이 없었다.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왜? 어떻게? 따위는 잠시 접어 뒀다.
영주가 강하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축복.
외부의 위협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도대체…….’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역시나 신컨의 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