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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94화 (94/253)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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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타뉴 공국의 수도이자 대항구 부루탄.

그곳에서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커다란 성이었다.

이벨 왕국의 뉴마더리드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작았지만, 나름 아기자기한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들었다.

“으아아함~!”

하얀색 피부에 포실포실한 귀족 남성이 소파에서 기지개를 켰다.

그의 등 뒤로 햇볕이 따사롭게 비쳤다.

“졸리시면 주무셔요~ 공왕님.”

소파 양쪽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미녀의 두 비서가 공왕의 목과 어깨를 주물러 줬다.

그는 집무실 책상이 아닌 소파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 습관이었다.

어쩔 때는 비서와 노닥거리는 시간이 더 길지도…….

“공왕님!!!”

그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비서가 들어왔다.

“깜짝 놀랬잖아. 왜 갑자기 호들갑이야.”

최근 긴장되는 일이 많았었다.

스랑 제국과 잉글슨 왕국의 해전으로 초조한 나날을 보냈다고 해야 하나.

브루타뉴 공작령은 스랑 제국에 공물을 바치는 속국이나 마찬가지지만, 다행히 독립국의 지위가 있었기에 공격당하지는 않았다.

“설마 우리 앞바다에서 싸우는 건 아니겠지?”

“함대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양측에 배도 별로 안 남았을 텐데. 어선이나 상선들에게 대피 명령 내리고. 항구를 봉쇄하라 해. 괜히 나갔다가 휘말리지 말고.”

“그게 아닙니다. 다른 국가의 함대가 나타났어요!”

비서 3의 말에 공왕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며… 몇 척이나!”

“20척가량이라고 해요. 국기는 이벨 왕국의 것이 걸려 있는데…….”

“음?! 그놈들이 여긴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공왕.

그보다 심각한 일이다.

스랑 제국과 이벨 왕국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브루타뉴 공국 역시 살짝 각이 잡혔다.

“하필이면 이때…! 스랑 제국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브루타뉴 공국의 해상 안 보는 스랑 제국에 거의 전적으로 도움을 받는다.

보유한 군함은 기껏 해 봐야 10척가량의 구형이 전부.

10대10 동수로 싸워도 힘들건만 20척이면 수도가 지워질 수도 있었다.

“내 이래서 수도를 옮기려고 했건만. 아버지가 반대만 안 하셨더라도!”

공왕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한 유언이 수도를 옮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놀기 좋아하는 공왕의 천성을 알고 수도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면, 태업을 할 것이 눈에 뻔했기 때문이다.

철컥!

그때 문이 열리고 비서 4가 뛰어 들어왔다.

“어이쿠! 공왕님!!”

그녀는 급히 들어오느라 구두가 꺾이며 넘어질 뻔했다.

“거참! 넌 그리 조심성이 없어서!! 그래서 이벨 놈들에게 뭐라도 온 거더냐? 항복이라도 하래…? 하… 항복은 안 되는데…….”

바다 건너 떨어진 이벨 왕국보다 육지를 맞대고 있는 스랑 제국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젠장… 도망가야 되나. 애들아 짐 싸라.”

“아니어요. 공왕님.”

“음?”

“자신들은 그저 호위를 위해 따라온 것이고…….”

공왕의 두꺼운 목이 옆으로 살짝 꺾인다.

“우웅? 누굴 호위하길래 군함을 20척이나 동원한다더냐.”

“그게… 레온 백작이라고 하는데…….”

“레온. 레온…!! 설마??!”

“네. 소문의 그 레온 백작이요!”

사실 레온 백작령은 아직 승계가 완료되지 않은 영지다.

지금도 그 안에서는 두 세력으로 갈라져 치고받고 싸우는 중이다.

용병을 고용하고 난리도 아닌 상황.

물론 그들은 레온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들어도 헛소리로 치부했지.

그것은 공왕이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아군끼리 싸우면 국가적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봉신의 힘이 강하면 공왕의 행동에 제약을 걸 수도 있었다.

적당히 기회가 날 때 밟아 주고. 힘을 깎는 것이 봉건 군주의 기본 소양이랄까.

“쯧. 재미를 다 봤군. 그보다 소문이 어느 정도는 사실인가 보군.”

워낙 허무맹랑한 소리만 들려와서 적당히 무시하고 있었다.

해전에서 통신선을 나포하는 큰 활약을 했고.

위기에 빠진 해적왕을 구했으며.

협상 자리에 신센롬 제국의 이 황자를 데려와 유리하게 이끌었으며.

서북부의 신생 군사 강국인 로이센 왕국이 점유하고 있는 슐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신센롬 제국 여제의 사위가 되었고.

이교도들과 용맹하게 싸워 명예 성기사가 되었다.

자. 여기서 어느 하나라도 믿을 만한 내용이 있던가?

일게 촌구석 공국의 일개 백작. 아니 백작 주장자 주제에 말이다.

“어디서부터가 진짜고. 어디서부터가 가짜인 거야!”

“솔직히 저 많은 일을 그 짧은 시간에 했다는 것 자체가 신뢰할 수 없는 소문이지 않겠어요?”

비서 1이 합리적인 조언을 했다.

“맞아. 도대체 스랑 제국의 수도로 보낸 정보원들은 뭐 하고 잇는 거야?!”

“비서 12와 13을 말씀 하시는 건가요? 하필이면 그 애들을 보낼 게 뭐람요.”

“음? 왜. 그 아이들이 나름 부지런해서 보낸 건데.”

“부지런하죠. 정말 부지런한데… 남자를 만나는 데 진심인 아이들이에요.”

“흐으…….”

브루타뉴 왕국은 율 대륙 서북쪽 구석에 있는 국가인지라 소식이 늦었다.

이미 스랑 제국의 수도에는 위의 것들이 신문으로 나온 것들도 많았다.

“신문이라도 사서 보낼 것이지…….”

스랑 제국이 정기 통신으로 이것저것 소식을 알려 주면 고맙겠지만, 브루타뉴 공국 따위에게 소중한 통신 에너지를 쓰기는 아까웠다.

특히나 아직 종전이 되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보다 웬 이벨 왕국? 설마…….”

“신센롬 제국과 관련이 된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아니면 운 좋게 진짜로 이 황자를 주웠을 수도 있고요.”

머리를 잘 굴려 보면 답이 나왔다.

신센롬 제국의 여제와 이벨 왕국의 국왕은 사촌 관계.

다시 말해 소문에 떠도는 신센롬 제국의 이 황자를 구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되면 자연스럽게 특별한 활약을 안 해도 전투 중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고…….

“애들아. 안 되겠다. 대비를 해야겠어.”

“네에? 어떤 대비 말인가요?”

“레온 백작령이 한 자라도 언급된 서류를 뒤져가 가지고 와!”

“힝~ 공왕님 갑자기 그런 일을 맡기시면…….”

비서들이 다들 찡찡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아. 소문의 1/10만 진짜라 해도 골치 아프다고. 미리 목줄을 걸어 놔야지!”

“알겠어요. 얘들아 어서 움직이자~!”

비서 1이 아양을 떨 땐 언제고 자리에서 도도하게 일어났다.

옷에서 나오는 포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리스마로 다른 비서들을 휘어잡았다.

“일이 잘되면 온천 휴가다! 그러니 열심히 하도록.”

“네~!!”

비서들은 휴가란 말에 얼굴이 밝아졌다.

공왕은 씀씀이가 나쁘지 않았고. 휴양지에 가게 되면 비서들에게 화끈하게 쐈기 때문.

바시락! 부스락!

비서들은 바지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안인지 미안인지 오기만 해 봐라. 내 공왕 10년 짬밥을 보여 주지.”

* * *

항구에서 입항 허가가 떨어졌다.

사실상 20척이 밀고 가면 허락도 뭐고 다 필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리안의 모국이지 않은가.

척!

휘장이 여러 개 달린 이벨 왕국의 중년의 장군이 리안을 보며 경례했다.

“영웅님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뭘요. 덕분에 편안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조타수까지 지원해 줘서 정말 편안하게 왔다.

흐리아 민이 배를 따로 몰고 왔기에 예전처럼 리안이 조타를 잡아야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럼 편히 돌아가시길.”

“영웅님의 앞길에 신의 가호가 가득하길. 그럼. 아디오스~”

“아디오스~”

그렇게 리안은 그들과 작별을 했다.

북적이던 항구가 그들이 빠져나가자 갑자기 휑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리안의 기세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퉁텅~ 퉁텅~

철갑으로 만들어진 신형전함에서 기세가 흉흉한 자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

항구 관리인은 그들의 면면을 보고는 기가 죽어 버렸다.

‘빌어먹을… 이건 해적 냄새인데…….’

항구 밥을 먹은 지 20년이 넘었다.

촉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극도로 위험한 자들이란 걸.

‘갑자기 공격하진 않겠지……?’

리안은 그런 항구 관리인의 속도 모르고.

“궁전에서 내려온 지시는 없나요? 숙소라도 잡고 기다려야 하나…….”

아무리 리안이 요란하게 등장했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상대는 공왕이다.

당연히 다짜고짜 만나자고 할 수도 없다.

거기다 레온 백작령의 주인이 되는 순간 그의 봉신이 된다.

“입궁을 하라고 전달하셨습니다. 지…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항구 관리인은 굽신거리며 말했다.

“마… 마차를 대령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됐어요. 주군을 만나러 가는데 마차를 타고 갈 수는 없죠.”

여기서 공왕을 주군이라 칭했다는 것은 본인이야말로 레온 백작령의 주인임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항구 관리인도 그제야 조금은 안심했다.

“그… 그럼 걸어 가시겠습니까?”

리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대충 무슨 속셈인지 알 것 같았다.

최대한 시간을 끌려는 듯 보인다.

그렇게는 안 되지.

“아니요. 그냥 우리가 알아서 갈게요. 흐흐.”

리안은 고잉미샤호가 아닌 흐리아 민의 배로 올라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

두앙~ 두아아아아아앙~!!

공중에서 검은 무언가가 바닥으로 뭔가 떨어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투르르릉~!

바닥과 충돌하려던 찰나.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듯 위로 튕겨 올라왔다.

“오토… 호스!!”

그보다 그들의 운전실력이 놀라웠다.

8기의 오토호스가 좁은 부두에서 일사불란하게 정렬했다.

“꼬맹… 아니. 선장님. 해병대도 준비되었습니다.”

부선장이 평소 말투가 튀어나오다가 자리가 자리인지라 급히 고쳤다.

“해병대 단원들에게 미안하지만 좀 달려야겠네요.”

“아무리 우리 출신이 좀 그렇지만, 달리지 말란 법은 없지요.”

오히려 산악 보병만큼이나 날랬다.

해적의 주업은 약탈이고. 정규군이 오기 전 빨리 털고 도망가야 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자 그럼 궁까지 갑시다.”

리안이 손을 높게 들며 가속을 시작했다.

부아아아앙~!!!

오토호스가 울부짖으며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나머지 7기의 오토호스도 뒤따랐다.

우오오오!!!

해적들은 뒤처질세라 오토호스 뒤로 따라붙는다.

그들의 패기에 시민들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두다다다닷!!

이벨 왕국의 수도와 달리 이곳 부루탄은 그리 크지 않았다.

궁전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머… 멈춰라…….”

궁전의 입구에 도착하자 놀란 경비병들은 급히 성안으로 숨으며 제지했다.

스랑 제국에게 오랫동안 보호를 받다 보니 다른 국가의 병사들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졌다.

“리안 레온 백작이다!! 주군의 부름을 받고 왔다!”

성문 경비들도 미리 언질을 받았다.

마차를 타고 올 줄 알았는데, 저리 병력을 이끌고 올 줄은 몰랐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각하. 성문을 여는 마법진이 고장 나서…….”

“일단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었는가?!”

리안이 큰소리로 외치자.

“네. 각하! 죄송합니다. 얼른 수리를…….”

“되었다. 주군께서 부르시는데 성문 따위가 별거더냐!”

리안이 고개를 돌려 부선장을 바라봤다.

“흐흐!! 애들아~”

부선장은 다시 지시를 내렸고.

휘리리릭!!

수많은 갈고리들이 성벽에 걸쳐졌다.

“어… 어이쿠!”

무서워서 성벽 뒤에 숨어 있던 경비병들이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급히 일어나 상황을 확인하려던 찰라.

“어이쿠!!!”

다시 나자빠졌다.

갑자기 성벽 아래에서 사람이 튀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십 명이나.

“어이 괜찮아…? 운 좋은 줄 알아. 다른 목적으로 왔으면 내 얼굴도 확인 못 했을 거니까. 음하하하.”

해병대원 중 하나가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성병에 기어오른 다른 해병대원들도 따라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들의 어설픈 복장과 말투가 오히려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너무 겁먹지 말라고.”

해병대는 병사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갈고리를 회수한 뒤 반대로 던졌다.

“빨리빨리 해 이 머저리들아!!”

부선장이 아래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껄렁대던 대원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뭔가 후다닥 하자 어느 순가 성벽 위로 오토호스가 올라와 있었다.

“감사~”

리안은 부선장에게 공주님 안기로 있다가 성벽 위에 사뿐히 내려졌다.

“자자~ 얼른 갑시다. 주군께서 기다리신다구요. 착한 봉신은 늦지 않는 법이랍니다.”

리안은 싱긋 웃고는 다시 오토호스에 올랐다. 그리고.

부아아아아앙~!

오토호스를 열심히 놀리며 궁전의 정원을 가로질렀다.

정원사가 보면 아찔한 상황일 것이다.

오토호스 8기와 다수의 사람들의 군화 발에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정리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아… 안 돼…….”

사실 정원사도 여자였다.

비서 17이라 불리는 인물.

그래서 그런지 정원은 대부분 작은 꽃들 천지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으응?! 뭐냐… 저놈들은…….”

갑자기 정원에서 나는 소란에 공왕은 창밖을 바라봤다.

너무 이질적인 모습이라 머리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주군!!! 부름을 받고 레온 백작이 왔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웬 꼬마의 낭랑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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