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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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선이 유려하다.
그건 아마도 눈앞에 있는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을 말하는 것일 거다.
그러나.
스르르…….
그녀가 걸치고 있던 긴 모피 코트가 땅에 떨어지자 비키니 수영복만 남겨졌다.
몸매까지 완벽했으나 지금은 한겨울이었고 이곳은 내륙이었다.
정신 상태를 의심하기 충분했다.
“스승님!!!”
그녀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헤르미!!!”
그녀를 본 노인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에 감동의 장면이 벌어지나 싶었는데.
“젠장! 헤르미……!!”
노인이 뒷걸음질을 쳤고. 그에게 달려간 헤르미가 안겼다.
“스승님! 보고 싶었어요. 흑흑.”
“젠장. 나오거라?!! 이 녀석아!!!”
불쌍한 노인은 결국 나자빠졌고 그 위를 기관장이 올라탔다.
놀란 주변의 인물들이 급히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스승님. 편지 하나만 남겨 놓고. 갑자기 사라지셔서 얼마나 걱정한 줄 아세요?”
“네 녀석 때문에 도망간 건데!! 이놈아. 이제 나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가 남은 여생 동안 편히 모시겠어요.”
“네가 없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 네 녀석 때문에 우리 공방이 망해서 야반도주한 걸 모르더냐? 이제 겨우 재건해 가거늘.”
“다 제 걱정을 해서 그런 거 알아요.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뭔가 조금 핀트가 어긋나 보였다.
“그래. 그걸 알면 제발 꺼져 주거라. 제자야.”
“아직 공방이 많이 힘든가 보네요. 우리 학파를 위해 저도 팔을 걷어붙일게요.”
그녀의 말에 노인이 기겁을 했다.
그때 공방 안에서 젊은 남성이 걸어 나오다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하우저 사형!!!”
“젠장!!”
들키자 급히 뒤돌아 달렸지만, 이미 그의 뒤를 덮친 그녀였다.
방금 전 보던 상황이 연출되었다.
“사형!!”
“이건 꿈이야. 악몽이라고……!!”
그는 자포자기하고 바닥에 축 늘어졌다.
무슨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리안은 그녀의 스승과 사형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고잉미샤호의 선장 리안이라고 합니다. 헤르미 디토스는 우리 배에서 기관장을 맡고 있죠.”
리안이 노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응? 기관장이라고?! 제자야. 이제 순진한 귀족가 꼬마에게까지 사기를 치고 다니는 게냐? 사람의 목숨은 장난이 아니다.”
주눅이 들어 있던 노인이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의 말투에서 장인의 책임감이 엿보였다.
“헤르미 디토스는 실력 있는 마도 공학자입니다.”
“저 아이가…? 믿지 못하겠군. 우리를 속이려는 것은 아니겠지?”
노인은 리안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때 그녀가 다가와 말했다.
“다들 사라지고 홀로 남아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요!!!”
“넌 마이너스의 손이다. 손만 대면 다 터져 버리니!”
“이제 안 그런다니까요. 치이. 누굴 언제까지 철부지 어린아이로 아나.”
“흠…….”
그때 리안이 나섰다.
“후. 그럼 다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이 황자 전하를 호송한 리안 레온 백작입니다.”
그러자 노인과 그의 제자의 눈이 커졌다.
“우리가 타고 온 부유선의 기관장이 바로 헤르미 디토스입니다.”
리안의 말에 그녀가 팔짱을 끼고는 한껏 어깨를 들썩였다.
“저… 정말 그대가 수도를 떠들썩하게 한 그 소년 백작이라고?!”
“그렇습니다.”
“후… 만나서 영광입니다. 세기바라 우르르 남작입니다.”
리안은 머릿속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공군의 창시자! 생기발랄 우르르?? 까꿍?”
“음? 그게 무슨 말이신지요.”
남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귀족이었지만, 리안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백작부터는 귀족의 위에 있는 대귀족이기 때문이다.
“혹시 바람 속성의 대전사들을 위한 보조 장치를 연구 중이시지 않나요?”
“이제 따로 연구를 하고 있진 않습니다. 제자들에게 모든 비기를 전수했고 녀석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공방을 운영하며 돈을 벌고 있을 뿐이지요.”
그의 제자라면 하우저와 피프티 홍이 있다.
하우저는 평민으로 성이 따로 없었고 훗날 오토호스 장인으로 유명해진다.
피프티 홍은 동방의 인물로 부유석을 가방처럼 멜 수 있게 개량한 인물로 공군의 아버지라 불렸다.
지금의 바람 속성 대전사들이 짧은 시간 활공하기 위해 뭔가 조잡하게 덕지덕지 붙은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잠깐. 그렇다면 설마…….
“부유선은……?”
“저 아이에게 제가 아는 부유선에 대한 모두 넘겨줬죠. 나름 열심히 수련했나 봅니다. 그런 최첨단 부유선의 기관장이 될 정도면.”
사실 눈앞의 노인 세기바라 우르르는 게임에서 제자들에 의해 이름만 언급되지 따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두 제자의 캐릭터 일러스트 뒤에 공통적으로 그려진 그를 보며 생기발랄 우르르 까꿍 이란 별칭이 지어졌을 뿐이다.
배경이 된 일러스트에는 총 세 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특이한 것이 백인, 황인 남자 그리고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아이가 아마도 헤르미 디토스.
“스승님! 저 정말 열심히 수련했어요. 남기고 가신 자료들을 하도 봐서 이제 다 외워 버렸다니까요. 어어?! 저거 저거!!! 부유석 케이스!!! 드디어 만들었네요!”
그때 헤르미가 지나가는 인부가 들고 있는 물건을 보며 달려갔다.
뭔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모두 피해!!!!”
노인은 소리쳤고.
그의 외침에 모두가 급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에이~ 스승님도 참. 이제 옛날의 제가 아니라니까요. 보자. 이건…….”
“위험해!!!”
노인의 절규.
“응? 뭔지 모르겠지만. 도련님. 뒤로!!”
샤로트가 급히 리안의 앞을 막아서며 화염을 펼쳤다.
퍼어어엉~!!
결국 뭔가가 터져 버렸다.
“콜록! 콜록!!! 샤로트. 이런 공방에서 화기는 엄금이라고!”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린 헤르미가 샤로트에게 뭐라 했다.
그나 다행인 것은 심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
“어어어? 무슨 일이야?”
그때 공장의 옆에 딸린 건물에서 문을 박차고 달려오는 검은 머리의 남자.
아마도 그가 피프티 홍일 것이다.
“헤르미??”
“첫째 사형!!!”
“잘 지냈어? 못 본 사이에 숙녀가 다 되었네.”
스승과 둘째 사형처럼 도망가거나 하지 않았다.
“오~ 사형도 ㅁ음직스러워졌어.”
“응? 무슨 말이야.”
“자, ㅁ 안에 들어갈 말은?”
그 말에 피프티 홍은 가까이 다가와 헤르미의 이마를 짚어 줬다.
“딱히 머리를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보다 대단해. 왜 폭발이 이 정도밖에 안 되지?”
“네가 어릴 때 사고를 많이 쳐 준 덕에 영감을 얻은 거지. 특히나 공중에서 사람의 등에 짊어지도록 개발해야 하니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고.”
피프티 홍이 그녀에게 호의적인 이유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던가.
그 실패를 대신해 준 것이 바로 헤르미였던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월척인 학파네.’
리안은 그들을 보며 침을 질질 흐르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한 스승 아래에 유능한 육해공 기술자가 다 모여 있었다.
특히나 헤르미 디토스는 긁지 않은 폭탄이었다.
게임 스토리에 등장하지 않았으니.
죽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꽝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샤로트가 죽지 않고 해적 섬에 노예로 팔려간 것을 봐서는 지금 고잉미샤호의 해적들이 초반의 그 장소에서 스랑 제국 해군에게 수장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다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녀의 실력이 너무 좋았다.
방금 전 폭발도 헤르미가 그런 것이 아니라 샤로트가 설레발을 치다가 폭발이 일어난 거고.
“죄송합니다. 우르르 남작님. 제 부하가 사고를 친 것은 충분히 사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제자를 못 믿어서 경계를 사게 만들었으니 원인 제공은 제가 했지요. 그보다 대단합니다. 저 나이에 2차 각성이라니.”
군수 물품을 만드는 장인이라 그런지 세기바라는 샤로트의 경지를 대번에 알아봤다.
“우리 배의 파수병 겸. 화포병 겸. 제 호위이자 시녀입니다.”
“우물은 하나만 파는 것이 좋지만. 저 아이는 다재다능해 보이는군요.”
샤로트야 SSR+급에 워낙 다재다능한 만능캐이지만, 그렇다고 세기바라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부유석이 사용된 것도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고 여전히 미지의 분야다.
“그보다 제자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 것 같지는 않고 어쩐 일로 오셨는지.”
“아. 앤시드 중령님의 소개로 왔습니다. 오토호스를 구입할 수 있을까 해서요.”
오토호스는 헝그 왕국의 것이 가장 유명하지만, 기술력은 신센롬 제국의 수도가 있는 트리아 왕국이 앞선 상태다.
헝그산이 더 뛰어난 몇몇 부품은 수입을 하면 그만이고.
그런데도 여전히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기수 때문.
부유석이 나오기 전부터 기병하면 떠오르는 곳이 헝그 왕국과 폴란 왕국이었으니.
여전히 그들은 기병에 대한 긍지가 높았다.
지망생들의 열정도 대단하기도 하고.
“호오.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제자 녀석이 모시는 분이니 원가에 맞춰 드리도록 하죠.”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쳐 드려야죠. 최상급으로만 맞춰 주세요.”
리안은 진심으로 돈을 펑펑 쏟아부을 생각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안 된다면 단지 돈이 모자랄 뿐이지.
“허허허. 제자가 스승 복은 없어도 주인 복은 있나 봅니다. 혹시 따로 가지고 온 에고라도 있습니까? 에고의 성격에 따라 제작을 달리…….”
“오리지널로 탈 생각입니다. 여기 우리 세 명의 것으로요.”
리안을 포함한 세 명은 모두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 말에 노인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에고가 없이 타는 것은 힘듭니다. 그나마 저 여기사는 2차 각성까지 했으니 연습이 가능하겠지만…….”
재능과 상관없이 연습으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그 연습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우리 세 명 모두 이미 오리지널 버전을 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는 세기바라.
지금 이 시간에도 헝그와 폴란 왕국에선 오리지널 오토호스의 기수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다가 죽어 가는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훈련 방법이 있고. 고참 기수들이 옆에서 도와준다지만 아차 하는 순간에 목숨을 잃는 것이 오리지널 버전 오토호스였다.
“앤시드 중령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설마……!”
노인의 고개가 공방 마당의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익숙한 오토호스가 보인다.
“오오~! 이건!”
샤로트가 달려가 오토호스를 확인했다.
짧은 시간에 말끔히 수리된 것을 보아하니 다행히 크게 이상이 있는 곳은 없는 듯 보였다.
“아… 안 돼! 샤로트으으으…….”
리안이 놀라 말리려는 찰라.
부르르르…….
이미 오토호스에 올라탄 것이 보였다.
리안은 이마를 탁 쳤고. 동시에…….
부르르르르르~~~ 부아아아앙!!!
날았다. 하늘 높이. 더 높이. 이미 공방의 지붕까지 올라가 묘기를 펼치는 모습이 보인다.
“루루랄라. 내 애마엔 이상이 없는 거겠지? 벌써 찾아가라고 연통이 온 걸 보오… 니… 그보다… 지붕 위에 저 오토호스 참. 이쁘게 생겼네. 뭔가 익숙하기도… 한 거… 같… 으아아아아!!!”
앤시드의 절규는 커다란 충돌 소리에 묻혔다.
콰아아아앙~!
오토호스에서 튕겨 나오는 한 소녀.
그녀는 우아하게 공중제비를 돌아 바닥에 착지했다.
이미 한번 겪어 본 일이라 익숙해 보인다.
“오토호스는 왜 이렇게 약할 걸까요?”
그걸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쩍하고 벌렸다.
“으으으으… 샤로트……!!”
“죄송해요. 도련님. 그냥 너무 반가워서 조금만 타 보려고 했는데에엣.”
리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 샤로트에게 고잉미샤호를 맡기지 않겠노라고.
“우르르 남작님. 저것에 대한 수리비도 저에게 청구해 주세요. 그리고 앤시드 중령님에게 고지하고 새 걸 원한다면 그것도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하하하. 속을 많이 썩겠습니다. 저 정도면 그래도 애교지요.”
노인의 시선은 자신의 막내 제자에게 가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딴청을 피우는 헤르미 디토스.
“둘째야.”
“네. 스승님.”
“앤시드 경에게 다녀오거라. 일단 다른 물건을 대마해 드리고. 수리가 끝나면 부임지까지 배달해 드린다고 하거라. 만약 새것을 원한다면 설계가 있으니 같은 것으로 뽑아 드린다고 하고.”
“알겠습니다. 스승님.”
하우저는 스승의 명에 고개를 숙인 뒤 서류를 챙기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자. 그럼. 어떤 물건이 맞을지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레온 백작님.”
노인은 리안 일행을 공방 안으로 초대했다.
오리지날 오토호스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의 성향이나 특성에 맞아야 한다.
“샤로트. 또 사고를 치면 3일간 밥 없다.”
물론 그 전에 리안은 샤로트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다.
“뿌우우. 알겠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