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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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미샤호가 운항을 멈추자 50기의 기병들도 멈춰 섰다.
황자의 경호로 너무 초라한 병력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저들은 모두 오토호스 기수이니 기사라 해도 무방했다.
거대한 덩치의 고잉미샤호 앞에 서서 그렇지, 기사 전력 50명이면 어딜 가도 무시 받지 않는다.
또한 그중에 대기사라 불리는 자들도 5명이나 되었다.
전쟁이 발발 직전에 이 정도 병력을 뺀 것만 해도 많은 배려를 해 준 것이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황자 전하. 저는 기병 중대장 앤시드 소령이라고 합니다.”
호위를 지휘하는 인물은 중대장이었는데, 기병 지휘관은 다른 지휘관 병과의 지휘관에 비해 계급 높았다.
‘앤시드???’
이 황자의 옆에 있던 리안은 생각을 정리했다.
‘아! 화재경보기 앤시드.’
진짜로 불을 끄는 인물이 아니라 정찰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송곳은 주머니를 뚫는다고 했는가?
그도 딱 그런 인물.
이번 전쟁으로 빠른 진급이 예정된 자다.
이전 시대의 전쟁에서 기병은 화력을 담당했지만, 마총과 마포 그리고 테르시오 진형이 발전하며 지금의 전장에선 정찰과 우회 기동의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나 대규모 접전에선 사전 정찰이 매우 중요해졌고.
로이센 왕국에 비해 신센롬 제국의 유일한 강점이었다.
앤시드는 그 정점에 선 사나이고.
‘그럼 좀 친해질 필요가 있겠네.’
마침 리안에게 약탈금 대신 신센롬 제국에 뱉을 만한 것이 떠올랐다.
도시들을 턴 돈을 돌려줘야 하는 이유는 보급 때문이다.
신센롬 제국의 병력이 슐 지역으로 진격하면, 현지 조달을 해야 하는데… 이미 리안이 털어버렸으니 여러 가지로 차질이 생길 거다.
그러니 뇌물이 아닌 약탈을 하지 않아도 되게 군자금을 지원할 명목으로 절반을 신센롬 제국에 줄 요량이었는데...
“앤시드 소령님. 식사도 할 겸. 잠시 이야기 좀.”
고잉미샤호가 50인분의 식사를 더 준비하는 것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호위 기사들도 이런 야지에서 전투식량이 아닌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무슨 일이시죠? 레온 백작님?”
리안은 식당이 아닌 갑판 한쪽에 설치한 파라솔로 그를 불렀다.
시커먼 남정네와 일대일로 밥을 먹는 것은 그다지 내키진 않지만, 엄청난 돈을 킵할 기회였다.
“호위가 끝나면 전장으로 곧장 복귀하시죠?”
아이의 표정으로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지만, 앤시드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네. 쉬지 않고 복귀하면 슐 지역에 도달하기 전에 합류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열정적인 군인이었고.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우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실 우리 배가 황자님을 호위하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돈을 많이 썼습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슐 지역을 관통할 생각은 그 아무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비용 지출은 정보 교란과 공작에 관련된 것입니까?”
사실 그딴 비용은 전혀 쓰지 않았다.
그저 리안의 눈물 나는 연기와 네르데르 공화국 통령의 분노로 일어난 일이니.
“역시 엘리트인 기병 장교라 그런지 잘 알고 계시군요. 그래서… 비용을 메꾸기 위해 현지 조달을 꽤 했습니다.”
리안의 말에 앤시드의 얼굴이 살짝 더 굳었다.
이미 한번 털렸다면, 신센롬 제국이 현지 조달을 할 때 반발이 생기거나 예상보다 적은 물품이 걷어질지도 모른다.
그리되면 소도시나 마을까지 털어야 하는데, 그러면 군대의 스태미나를 잡아먹는다.
“이거 큰일이군요. 현지 조달을 못 하면 보급의 양을 늘려야 할 텐데… 군대의 이동 속도가 걱정입니다.”
리안도 그걸 걱정했었다.
아무리 슈우퍼 카를 대공의 특기가 빠른 행군이라고 하지만, 현지에서 협조를 해 주지 않으면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비용을 지불하면 되지.’
화폐의 발전을 군대 보급을 위한 국가의 약속이라는 설이 있다.
다시 말해 가치 있는 것을 주고 주민의 협조를 받으면 된다.
현지 조달이라 부르고 약탈을 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다.
“방법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꿀꺽해도 되지만, 신센롬 제국을 위해 남겨 놓은 것이 있습니다.”
“네?!!”
“일단 여제께 보고를 하겠지만, 상당한 전쟁 자금을 얻을 진주 광산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진실 속에 거짓이 숨어 있다.
바로 리안이 챙기려 했지만, 제국을 위해 챙기지 않았다는 것이 거짓이다.
시간도 없거니와 대략적인 위치밖에 알지 못한다.
사실 진주 광산의 정체는 n9932-dana135 요새의 찌꺼기 보관소다.
요새는 원래 댐이었고.
댐의 물은 지하에서 끌어 올린다.
그 물이 흐르는 수도관이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또 마법적 술식이 필요했고.
그 이물질들을 처리하는 곳이 찌꺼기 보관소.
‘몇백 년을 분출하지 못하고 아주 오래 참았으니 사리가 많이 쌓였겠지.’
그 농담으로 말한 사리의 정체가 바로 진주들이다.
그외 각종 보석들도 꽤 있을 거다.
“아아. 백작께선 진심으로 신센롬 제국의 우방이십니다. 여제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방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영지는 작은 국가라 해도 되니.
물론 지금 리안은 가진 영지가 없었다.
“다만, 위치를 찾기가 조금 힘듭니다. 대략적으로 알려 드릴 테니 앤시드 소령께서 고생을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런 고생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진주는 이 세계에서도 귀하다.
아니 더욱 귀하다고 보면 된다.
바로 마법 용품의 소모품으로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중해의 패권자 중 하나인 베넷 조합의 구성원인 밀라노정이란 가문이 있다.
그들의 특산물이 바로 바다에서 나는 보석 진주다.
고대에는 진주가 흔했다는데, 갑자기 공급이 줄었기에 조개 양식을 하던 그의 가문이 덕을 본 것이다.
어쩌면 그 당시에 흔했기에 지금 남아 있는 마법들의 흔적에서 진주를 주로 사용했겠지.
어쨌든 진주는 비쌌다.
“급한 대로 그걸 돈 대신 보급과 군대의 급여로 이용하면 될 겁니다.”
“병사들과 주민들의 반발을 줄일 수 있겠습니다.”
신센롬 제국의 군비는 지금 한계치에 달해있다.
일단 저걸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다.
“아 그리고…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원래는 레오폴트 황자의 후광으로 오토호스를 좀 타 볼까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앤시드 소령의 눈은 하트가 뿜뿜거리고 있으니.
“어떤 부탁인지 모르겠으나 제가 협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엄청난 광산을 찾는 공을 자신에게 넘겼으니 그에 대응하는 대가를 내어놓으리라 생각했다.
못해도 특진은 따 놓았다.
아마 수도에 도착하면 리안 레온 백작이 직접 앤시드를 언급하며 여제에게 요청할 것이다.
그러면 여제에게도 앤시드의 이름이 각인 될 것이고. 이후 작은 공을 세워도 더 크게 언급될 것이다.
군인에게 명성은 그만큼 중요했다.
“오토호스를 타 보고 싶습니다. 제 조수와 함께요.”
“네에??? 어렵지 않습니다만…….”
앤시드는 걱정이었다.
사실 기사에게 오토호스는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기에 함부로 다른 사람의 손을 타게 하지 않는다.
다만, 리안은 자신에게 공을 밀어줄 은인이나 다름없다.
오토호스를 백 번이고 더 태워 줄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신센롬 제국의 오토호스는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 절대 레온 백작님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헝그 왕국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오토호스에는 말의 에고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재능과 엄청난 훈련이 필요했다.
대기사들도 우습게 보고 탔다가 곤혹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만큼 예민하고 강력한 것이 헝그 왕국산 오토호스였다.
“제가 유저이니 잘못되어도 크게 다치지 않을 겁니다.”
“음… 유저라 해도 만만하게 보실 것이… 운이 나쁘면 어디 하나 부러져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대기사 정도는 되어야 타박상 정도로 끝날 거다.
“우리 배에는 사제도 있습니다. 주교급이죠. 그러니 즉사만 안 하면 어찌어찌 될 겁니다.”
“후... 그리 고집을 부리시니 정말 타 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리안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여기서 이러는 이유는 제국의 수도에 도착하면 오토호스를 탈 여유가 안 되기 때문이다.
리안은 제국의 입장에서 이 황자를 데려온 귀빈이고.
위험한 오토호스를 타는 걸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허락한다 해도 엄청난 인력을 쏟아부으며 안전에 신경 쓸 것이 분명하다.
“후… 위험하다 싶으면 그만두셔야 합니다.”
“네에에~”
리안의 대답에 앤시드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상대를 고위 귀족으로 대했는데,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다.
한편으로는 뿌듯한 기분도 든다.
신센롬 제국의 오토호스에 대한 동경이 엿보이니.
“그럼 가시죠.”
식사가 끝나고 곧장 출발하지 않았다.
이벤트가 벌어졌기 때문.
-선장이 저걸 탄다고?
-신센롬 제국 거는 괴랄하지 않나?
-그러니가 신센롬 제국의 기병이 율 대륙 최강이란 소리를 듣지.
소식을 해적들도 고잉미샤호의 갑판 위로 올라가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들은 머릿속으로 리안이 오토호스를 타고 가다 처박히는 꼴을 떠올렸다.
-흐흐. 드디어 선장이 애먹는 걸 보겠네.
-다치면 어떻게 하냐.
-걱정 마. 우리 주교님이 어떻게 해 주시겠지.
목이 꺾여 즉사하지만 아니면 된다.
아무리 성능이 떨어지는 전쟁의 신 주교라도. 부상자가 단 한 명이라면 어찌 될 거다.
명색이 주교인데 모든 힘을 짜낸다면 목숨은 건지게 해 줄 터.
반면 호위로 나선 기병들은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만약 리안이 다친다면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지도 모르니.
-도대체 호위대장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짓을 하는 거야.
-하… 꼬마가 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게 아니라고.
-다치면 곤란한데…….
그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안은 앤시드의 오토호스 앞에 섰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당부했다.
“일반적인 오토호스를 타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이 훈련된 말이라면 이것은 야생마입니다.”
그는 조작법을 일일이 알려 주며 경고했다. 그리고 뒤를 바라보며 호위병들에게 말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개입한다. 몸을 날려서라도 구하라.”
50기의 기병들이 리안의 주변을 달릴 예정이다.
헝그 기병들은 훈련을 마친 신입이 처녀 기마 때마다 이렇게 함께 달려 준다.
위험하다 싶으면 개입해서 폭주를 막아 주고.
“후…….”
리안이 결국 오토호스에 오르자 모두가 긴장했다.
앤시드도 부하의 오토호스에 올라 걱정스러운 눈을 했다.
“가즈아아아!!”
리안이 스위치를 올리고 마나를 동기화했다.
부르르르!!!
오토호스가 몸을 떨며 이륙했다.
마치 큰 동그란 고무공의 위에 두 발로 선 느낌이다.
앞뒤좌우는 물론 위아래로도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와씨!!”
어쩌다 보니 출발까지 하게 되었고. 속도 또한 자동이 아닌 감각.
자칫하다간 급발진하는 자동차처럼 처음부터 최고 가속이 될 수도 있다.
‘어렵네.’
이렇게 자신 있게 헝그 오토호스에 올라탄 것은 본인이 부유선 조타수이기 때문.
에이스급이었기에 자신감을 가진 것인데,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체급이 달라서 오는 괴리감이랄까.
만약 부유선을 타 보지 않았더라면 5초도 안 되어 꼬라박았을 거다.
‘내가 감이 좋은 게 아니었구나.’
또 다른 깨달음이 있었다.
리안이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부유선을 조종했던 것은 감각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스마트폰이나 PC로 1인칭 영상을 보다 보니 외워진 것이다.
이 정도 각도에선 어느 정도로 조타를 하고. 어떻게 조작해야 배가 뒤집히지 않는지.
눈으로 학습한 것을 실전에 써먹었고.
감각은 후천적으로 익혀진 것이다.
이번엔 후천적으로 익힌 감각을 이용해 오토호스에 적용시키는 중이고.
부아아아아앙!!!
“오오오오미미미!!!”
덕분에 리안은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감각이 틀리다 싶은 것은 임기응변으로 해야 했는데, 이 또한 고잉미샤호의 자세 제어 장치를 끄고 타다 보니 생긴 것.
“와아아아…….”
다만 불안불안한 모습이지만, 이내 적응해 내는 리안을 보며 다들 놀라워했다.
대충 헝그 왕국의 수습 기병 정도 태가 났다.
-진짜 처음 맞아?
-보니까 저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 초짜야.
역시 가장 놀라워하는 것은 호위병들이었다.
그들은 리안을 천재를 넘어선 괴물로 보고 있었다.
드르르릉…….
리안은 평원을 작게 한 바퀴 돌고 고잉미샤호로 돌아왔다.
“도련니이임!! 여기… 어휴. 땀 좀 봐!!”
“고마워. 샤로트.”
어찌나 힘이 들었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도련님. 저도 타 보면 안 될까요?”
“흐흐흐. 그래. 어차피 수도에 도착하면 너도 한대 뽑아 주려고 했으니 미리 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리안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왠지 샤로트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고 해야 하나.
어차피 샤로트는 대전사이니 최악의 상황에도 죽지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