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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12화 (12/253)
  • 12화

    ##012

    “주. 교. 님. 스. 랑. 제. 국. 배. 가. 접. 근. 하. 고. 있. 습. 니. 다.”

    노예의 말에 쥬신의 주교는 인상을 찌푸리며 성경을 품속에 넣었다.

    도망칠까 생각해 봤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스랑 제국의 배는 처음 보는 양식으로 형태로 최신형일 터.

    더군다나 이 배는 조종하는 것은 노예들.

    인격이 말살된 덕분에 쫓고 쫓기는 난도 높은 운항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후···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군. 감히 신의 뜻을 방해하다니. 불신자들이

    로다.”

    자신은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인 태양 신의 주교다.

    지금 대륙에 유행하는 거의 모든 종교가 태양 신 쥬를 상위 신으로 인정하는

    분위기.

    신화가 겹치는 부분이 많기에 같은 종교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아무리 스랑 제국이 아무리 큰 나라라 해도 일개 함장 따위가 함부로

    할 수 없다.

    쥬교는 국가를 초월한 종교이니.

    “설득해 보고 정 안 되면 싸우는 수밖에 없나? 해군 놈들이 백병전을 감당할

    수 있나 모르겠군.”

    해적들이라면 부담스러웠겠지만, 정규 군함이라면 또 다르다.

    약탈을 해야 하는 해적들이야 정원을 꽉 채워서 다니지만, 해군의 기본 교리

    는 포격이다.

    당연히 전투병의 숫자가 적고 백병전 실력도 아래다.

    특히나 다가오는 군함의 크기가 작다.

    챙!! 챙!!!

    갑판에서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겨우 여자아이 하나 감당하지 못하는 전투 노예를 믿고 해군과 싸울 생각을

    하느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아이가 전쟁의 신 주교라면 말이 달라진다.

    전투 노예들이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해군과의 백병전은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괴물 같은 이교도 년 같으니라고.”

    전쟁의 신을 믿는 전투 사제들이 무서운 점.

    신성력이 허락되는 한에서 모든 위험을 피해 가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보지 않고도 공격을 피해 버리는 우아한 동작은 마치 무희의 춤사위와 같다.

    그녀를 향해 몇 명이 붙던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무적은 아니다.

    저 화려한 춤은 그리 오래가지 않으리다.

    대단한 신통력인 만큼 소모하는 신성력이 상당했다.

    저런 식의 전투라면 아무리 신성력을 아껴 써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다.

    소녀가 주교급이 아니었다면 이미 예전에 지쳐 쓰러졌을 터.

    “군함이 다가올 때까지는 처리하지 못하겠군.”

    신형 군함이라 그런지 속도가 빨랐다.

    생각보다 더 일찍 도착할 것 같았다.

    챙!! 챙!!

    전쟁 신의 주교 세이나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에 비례해 무희와 같던 부드러운 그녀의 움직임이 점점 삐걱댔다.

    신통력을 빠르게 끊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신성력을 아꼈지만······.

    두르르르.

    갑판 아래에서 밀려 올라오는 전투 노예들의 숫자가 끝이 없었다.

    화물로 위장해 여객선 창고의 상자 속에 숨어 있던 녀석들이다.

    “신이시여······.”

    더군다나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

    인격과 이지가 깎인 노예의 특징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버티지 못했을 거다.

    “아아··· 신이시여. 나의 신 탱글이시여.”

    이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뜨겁게 끓어 오르던 신성력이 증발해 갔다.

    포기란 단어가 머리를 두들기려던 찰나.

    펑!! 펑!!!

    타고 있던 여객선 근처로 물기둥이 튀어 올랐다.

    빠르게 다가오는 군함이 보인다.

    세우지 않으면 격침하겠다는 경고.

    싸아아아!

    경고 사격에 여객선의 속도가 줄기 시작했다.

    이상 현상에 노예들이 잠시 전투를 멈췄다.

    덕분에 전쟁의 신 주교 세이나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각. 다각.

    저 멀리 계단에 걸터앉아 있던 태양 신의 주교 정크가 천천히 난간을 향해 걸

    었다.

    아마도 직접 교섭을 할 모양.

    츠윽츠윽~ 끼이이익.

    군함이 상선과 옆면을 맞대고 섰다.

    조금 특이한 것은 군복을 입은 수병들의 상태다.

    해군이 맞는 걸까? 마치 해적 같잖아?

    군복을 제대로 입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간혹 제대로 입은 수병이 보이긴 했지만, 머리 스타일부터 표정이······.

    더 특이한 것은.

    “인사드리오. 본인은 태양의 신이신 쥬 님을 믿는 교국의 주교 정크라 합니

    다. 함장님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본인은 고잉미샤호의 함장 리안 레온이라고 합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그렇다. 가장 특이한 것은.

    저쪽의 함장이 어려도 너무 어렸다.

    재킷을 걸치고 있었는데,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코트가 되어 버렸다.

    “장난하지 말고. 함장 나오시오!!”

    “아니 진짜라니까. 이 아저씨가 속고만 살았나.”

    “아저씨라니!! 나는 교국의 주교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이 냉랭하던 태양의 신 주교가 폭발했다.

    “거. 아무리 주교라 해도 그렇지. 지금 대 스랑 제국 함선의 함장에게 너무

    무례한 것 같네.”

    “오히려 지금 교국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그쪽이다. 어린아이를 내세워서 장

    난을 치다니!”

    “어허! 나 이 배의 선장 맞다니까.”

    “내 이 일은······!”

    화가 단단히 난 주교가 말을 끝내기 전.

    “지금이다. 쏴 버렷!”

    앳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타다다다당!!

    난간 아래에 숨어 있던 해적들이 일시에 일어나 그에게 마총을 발사했다.

    “컥!!”

    주교가 어깨에 마총을 맞아 쓰러졌다.

    어떤 게임이든 힐러 먼저 보내는 것이 국룰이지 않은가.

    “아쉽네. 한 방에 끝낼 수 있었는데. 가자! 짜식들아!!”

    오오오오오!!

    리안의 말에 수병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휙휙!!!

    상선에 로프를 걸었고 그 위로 판자가 올라간다.

    수병들은 능숙한 솜씨로 상선을 향해 넘어가기 시작했다.

    “쓸어버려!!”

    “죽어어어!!”

    “으하하. 전투다!!”

    도저히 군기 엄정한 해군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마치 그 모습은 해적과도 같았다.

    “우리도 가지.”

    병사들이 상선으로 넘어가자 리안도 배와 배가 연결된 판자 위로 올라갔다.

    “꼬맹이. 직접 갈 필요가.”

    “군종 사제를 모시러 가는 길인데, 삼고초려는 못 해도 선장인 내가 직접 가

    는 성의를 보여야죠. 성의를. 에잇! 요즘 해적들은. 쯧쯧.”

    “으흐으음.”

    리안의 옆에 달라붙은 부선장이 못마땅한 듯 신음을 냈다.

    거기다가.

    “계집 꼬맹이. 넌. 왜 따라가냐.”

    괜히 리안의 시녀인 샬롯에게 시비를 걸었다.

    “도련님께서 가시는데, 당연히 제가 따라가야죠.”

    이 어린 꼬맹이 둘은 겁대가리를 상실했는지.

    사람이 죽어 가는 곳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부선장님. 뭐 해요? 선장 가시는데 길을 열어요.”

    “으휴. 알겠다.”

    부선장의 온몸이 갑옷으로 덮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 검이 생성된다.

    모양새가 갑옷과 세트로 보였다.

    “비켜!! 이놈들아! 노예들 주제에 어디서.”

    슈각. 슈각.

    노예들도 상당히 강해 보였지만, 정령 갑옷을 입은 대전사 앞에선 두부처럼

    썰리고 으깨져 나갔다.

    부선장은 이참에 자신의 실력을 선장에게 보여 어른으로서의 체면과 존경을

    얻고자 꽤 과하게 손을 썼다.

    ‘충격 먹지는 않겠지?’

    슬쩍 뒤를 흘겨보니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법이군.’이란 표정을 짓는다.

    정말 꼬맹이가 맞는지 믿기질 않는다.

    그러다 목적지에는 새하얀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꼬맹이!! 설마 우리 군종 사제라는 게······.”

    “저 아이를 구해요.”

    꼬맹이 주제에 누굴 보고 아이라니.

    소녀는 못해도 십 대 중반 그에 비하면 리안은 십 대 극초반.

    뭐. 선장도 꼬맹이인데, 군종 사제가 십 대인 게 뭐 대수랴.

    “걸리적거리지 말고. 비켜!!”

    부선장은 그대로 달려가 소녀의 주변에 있는 전투 노예들을 한칼에 쓸어버렸다.

    조금 무리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소녀의 상태가 많이 나빠 보였다.

    “당신은 누구······.”

    소녀의 앞에 나타난 거만한 표정의 꼬마.

    그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녀는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이 꼬마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해군 장교용 재킷을 걸치고 있는데, 누가 봐도 아빠나 삼촌의 것으로 보였다.

    꼬마의 보호자가 저 군함의 함장인 걸까?

    “고마워요. 당신의 보호자께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소녀는 다짐하지 않았던가.

    누구라도 돕는 자가 있다면 그의 말을 자신이 믿는 전쟁의 신 탱글 다음으로

    여기겠노라고.

    “아니. 내가 누나를 구한······.”

    말을 길게 이어 가지 못했다.

    노예들이 그들을 향해 사방에서 몰려왔다.

    징글징글한 숫자.

    “이런! 선장! 뒤로······.”

    부선장이 급히 보호에 나섰지만, 모든 방향을 다 커버할 수가 없었다.

    소녀도 나서서 거들었지만··· 전투 노예 하나가 리안에게 접근했다.

    “도련님!!! 위험······.”

    그때 하녀복을 입은 샬롯이 리안을 밀치고서는 검을 찔러 오는 전투 노예의

    팔을 붙잡고 온몸으로 밀쳐 냈다.

    휘이익!!

    검은 리안의 옆으로 비켜 나갔다.

    ‘미친!’

    리안은 식겁을 하고 벽 쪽으로 대피했다.

    문제는.

    ‘여기서 샬롯을 잃을 수 없어!’

    SSR+급에 다재다능한 지휘관이다.

    겨우 저런 전투 노예에게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

    품을 뒤적거려 마권총을 꺼냈다.

    휙!!휘이이익!!

    그런데······.

    제대로 맞힐 수 있을까?

    쏘려고 하니 두 사람이 너무 화려하게 얽혔다.

    전투 노예의 공격은 단순해 보였으나 샬롯이 온몸을 비틀어 가며 힘겹게 피하

    고 있었다.

    ‘저게 무슨······.’

    검술 따위를 알 리가 없다.

    그런데, 마치 어디로 공격이 올지 안다는 것처럼 미리 움직이는 듯 보인다.

    마치 한쪽에서 분투하고 있는 전쟁의 신 주교처럼.

    ‘전쟁의 신을 믿는 것은 아닐 테고. 눈?!’

    눈이 좋다는 것은 저 말일까?

    그 눈이 좋단 말은 반응 속도도 포함된 말일까?

    검술이라고는 겪어 보지 못했던 소녀가 저 정도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역시 한계는 존재했다.

    덥석!!

    피하지 못할 것 같으니 무기를 쥔 상대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열심히 이빨로 물어뜯는다.

    그러나.

    퍽!! 퍽!!

    전투 노예는 다른 손으로 샬롯을 때렸다.

    작고 여린 소녀는 악착같이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다.

    “도련님!! 오지······.”

    “내 부하 1호를 때리다니.”

    리안은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는 샬롯 베리에게 한눈이 팔린 노예의 근거리까지 접근한 뒤.

    탕!!

    마권총을 당겼다.

    퍼서석!

    전투 노예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마권총은 정령 갑옷에도 타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그걸 지근거리에서 맞았으니 터져 나갈 수밖에.

    “괜찮아?! 샤롯?!”

    “흐어엉. 도련님. 머리에 혹 났어요.”

    다행이다.

    아무래도 샬롯 베리에게 검술을 빨리 가르쳐야 할 것 같았다.

    ‘이왕이면 나도······.’

    아무리 지금이 예외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해적은 어쩔 수 없이 백병전을

    벌여야 할 때가 온다.

    지금은 무기력해도 너무 무기력했다.

    “언니가 치료를 좀 해 줄까?”

    부선장과 전쟁의 신 주교가 힘을 합치니 주변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전체적인 전투도 해적들이 압도적이었다.

    정령 갑옷을 입은 대전사가 무려 다섯이다.

    “언니가 훨씬 더 심각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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