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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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륵! 드르르륵~!
리안이 버튼을 누르자 조종간이 뒤집히며 기계식 조종간이 나왔다.
(처음 조타를 했을 때와 비슷한 환경.)
마나 감응력 따위는 필요 없이 키를 돌리거나 페달을 밟는 것으로 배를 조종
할 수 있다.
원래는 조타수가 휴식이 필요할 때 일반인도 조종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기
계 장치다.
“항법사 아저씨. 제대로 된 지도 맞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 근방의 해도만큼은 확실하게 정리하지. 이전에도 조
타수가 하나뿐이었으니.”
해도에는 육지의 모양뿐만 아니라 조류나 바람도 기록된다.
당연히 계절별로.
“오. 그럼. 저를 위해서.”
“착각하지 마라. 습관이니.”
조타수가 휴식을 할 땐 거의 직진밖에 하지 못한다.
조타수의 피로를 생각하면 조타수의 손이 덜 타는 최적의 루트를 찾아 주는
것이 좋다.
“그럼 맡겨도 되겠죠?”
“이 정도 속도라면 뭐······.”
급격하게 침로를 변경이 위험한 것이지 저속으로 전진하거나 좌우 15도 정도
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된다.
조타수도 비전투 시나 기후가 안정되었을 때 이 기계식 모드로 운전하는 경우
가 많다.
마나를 오래 사용하면 피로도가 높아지니.
어찌 보면 전투를 기계식 모드로 했었던 리안이 대단한 것이었다.
“으쌰.”
리안은 앙증맞은 손으로 가죽으로 된 끈을 키에 걸어 고정했다.
다른 선교의 선원들도 적당히 봐줄 거다.
이제 자리를 비워도 된다.
이대로 북쪽을 향해 쭉~ 직진을 할 예정.
“의사보다 조타수를 먼저 구해야 하나··· 부선장 아저씨. 작은어머니는 어디
계시죠?”
“일단 감옥에 가둬 놨다. 이제야 해치울 생각이군?! 어리다고 얕잡아 보일 게
아니라면 본보기를 확실하게 보이는 게 좋아.”
그냥 죽이는 것으론 성이 차지 않는단 말이었다.
“잡혀 오는 걸 본 사람이 많아요. 죽이는 건 곤란해요.”
가족 살해자라는 타이틀은 정말이지 골치 아프다.
물론 해군 포로들을 모두 풀어 줬기에 더는 증인이 될 만한 자들은 없다.
다만, 그들은 레온 백작령의 부인이 해적들에게 잡혀갔다는 것은 알고 있으
며, 나중에 추문이 붙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사라진 것에 대한 범인으로.
“처형하지 않으면 권위가 깎일 거야. 권위가 깎이면 통제력이 약해지지.”
“부선장 아저씨가 있잖아요. 아우. 생긴 걸 보니 반란은 꿈도 못 꾸겠네.”
급작스런 얼굴 공격에 약간의 타격을 받았는지 얼굴이 잠시 씰룩거리다가 진
지하게 말을 돌렸다.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선장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유약함에 기대
는 놈이 생기겠지. 나는 어디까지나 부선장이다.”
이 정도는 봐주지 않을까? 죽이지는 않겠지?
어려운 임무에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거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복수와 체벌은 필수다. 그것도 최대한 잔인하게.
“살려 두고 싶네요.”
“그럼 계속해서 감옥에 두겠다고?”
그것도 곤란하다.
나중에 살려서 데리고 가도 무슨 뻘소리를 지껄일지 모른다.
백작이 되자마자 권위가 깎이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곤란하네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회유를 해야 하기는 하는
데······.”
죽이는 건 해적 선장의 권위를 높이고, 살리는 것은 미래의 백작령에 대한 통
제력이니.
“죽이는 건 곤란하고 가둬 놓기만 하는 것도 곤란하다라. 그런 거라면 우리가
전문이지.”
“네? 설마······.”
있긴 있다. 회유하는 방법이.
이 세계는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
당연히 노예 각인도 존재한다.
문제는 노예 각인을 오래 하면 할수록 이성이 망가지고 그 흔적이 남는다는 것.
심하면 피부색 전체가 보라색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러면 더 곤란한데······?’
“꼬맹이. 뭘 걱정하는지 알겠지만 우리가 누구더냐.”
“아!!”
노예와 가장 밀접한 직종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해적이다.
보통은 납치만 한다만, 돈이 된다면 노예로 만들어서 파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는 족속들.
“맡겨도 될까요? 각인을 한 흔적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레온 백작
령을 먹었을 때 제정신이 박혀 있어야 하고요. 성격이 보통이 아니던데.”
각인 후 반항할 때마다 흔적이 번진다.
물론 물리적인 반항은 하지도 못하고 반항할 생각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각인
에 의해 고통을 준다.
그 여파로 각인 주변이 점점 침착되는 것이고.
중첩되면 온몸으로 퍼져 나가며, 오랜 기간 방치하면 회복도 되지 않는다.
“공을 들여야겠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지. 부하들이 좋아하겠어.”
“네?!”
섬뜩한 부선장의 미소에 리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노예 각인은 주문을 몸 이곳저곳에 지웠다 새겼다를 반복하면 되고. 그 전에
공포가 먼저겠군. 그 지랄 맞은 성격부터 고쳐 놔야겠어.”
“어쨌든 믿어도 되는 거죠? 정신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쓸데도 있고.”
리안의 눈이 반짝거렸다.
***
끼익!
감옥 입구의 문짝이 두꺼워서일까? 최신함임에도 문에서 쇳소리가 났다.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둘째어머니.”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네가 적으로 돌린 곳은 무려 스랑 제국이다!”
리안은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그래서요? 엄연히 브루타뉴 공국은 그들과 다른 국가랍니다.”
“그걸 몰라서 물어? 네 잘난 외가도 끈 떨어진 아일리 왕국의 퇴물인 걸 어려
서 모르는 게냐? 그냥 잉글슨 왕국이 통치하는 식민지의 귀족이다.”
“에이~ 아일리 왕국이 망한 지가 언제인데. 그냥 잉글슨 왕국의 백작가죠.”
리안은 그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과거 아일리 왕국의 대족장(공작)인 것도 그렇고. 잉글슨 왕국이 스랑 제국과
견원지간인 것도 그렇고.
“철없는 것아. 그래 봐야 섬나라 놈들이다. 그놈들이 도와주겠다고 꼬드겼더
냐? 그걸 설마 믿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그랬다면 애초에 수행원으로 달랑 두 명만 붙지 않았겠지.
외가에서도 포기를 한 것이다.
가봐야 얼마 가지 않아 죽을 거라고.
“후··· 리안아. 스랑 제국은 율 대륙 물류의 중심이자 최대 시장이고 경제 대
국이다. 전쟁은 돈으로 하는 것이다.”
“잉글슨 왕국도 돈이 없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는 걸요. 나름 해상 무역도 발
달했고.”
리안의 말에 백작 부인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잉글슨 왕국이 바다에서 아무리 강해 봐야 대륙에선 전쟁을 지속하지 못해.
넌 그냥 버림패야. 이용당하고 버려질 뿐이라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
를 풀어 주면 오해를 풀어 줄 수 있어.”
듣기로 백작 부인은 상인의 딸이라고 들었다.
그것도 스랑 제국에서 제법 잘나가는.
“흐흐. 그래서 탐이 나네요.”
뜬금없는 리안의 말.
“뭐?!”
“짱구를 돌리는 게 제법이네요.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약탈만 하지는 않는다.
약탈을 해도 처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익의 단위가 달라지기도 하고.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내 동료가 되세요. 전 해적왕이 될 거거든요.”
“지금 날 놀리는 거더냐?”
“놀리다니요. 우리 배의 회계사가 될 몸이신데.”
“누··· 누구 마음대로······.”
아마도 좋은 말로는 회유가 되지 않을 거다.
그 생각을 함과 동시에 부선장이 끼어들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할 것 같군.”
“네.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두 사람의 말에 백작 부인은 멀뚱멀뚱 눈만 껌뻑였다.
“잘 부탁드려요.”
“후··· 때마침 우리 배에 그쪽으로 뛰어난 놈이 있어서 말이지.”
부선장의 말에 비쩍 마른 사내 한 명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빅 존슨입니다요. 그냥 빅이라 불러 주면 되겠슴다.”
처음부터 감옥에 있어서 간수인 줄만 알았더니 아닌가 보다.
그의 허리춤에는 인두가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복잡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 것이 마법적인 물건으로 보인다.
아마도 저걸로 낙인을 찍는 것일 테지.
리안은 그에게로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재이니 최대한 조심히 다뤄 주세요.”
전투원은 해적 섬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다. 다른 전문직들도 어느 정도는 가
능하고.
다만, 가장 어려운 세 명이 의사, 사제, 회계사였다.
이건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도 민망한 상식에 가까웠다.
“걱정 마십쑈. 선장님. 그보다 보고 가쉴 검니까?”
“아니요. 여기서부턴 미성년자 관람 불가일 것 같아서. 이 몸은 아직 어린 나
이라 정서에 좋지 않을 것 같네요.”
감옥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어떤 일이 일어날 건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
밖으로 나가니 선원들이 줄을 서 있었다.
“어이~ 애새끼.”
그때 칼칼한 여자 목소리가 리안을 불렀다.
누군지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누님. 존경심은 또 어딜 두고 온 겁니까? 애새끼라는 명칭에선 전혀 존경심
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런가? 알겠어. 귀여운 나의 아기 상어.”
“으엑!”
“그보다 생각보다 유약하더군. 그년을 살려 둔 거 말이야. 배 안에 소문이 벌
써 다 퍼졌어.”
확실히 해적과 귀족은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다.
하긴. 오늘만 산다는 놈들이 내일 아니 대대손손을 위해 사는 귀족들의 사고
가 같을 수가 없지.
“그냥. 죽여 버리는 게 나으려나······.”
“아니야. 나도 재미를 좀 보려는 찰나에 그러면 안 되지. 뭐. 죽이는 것보다
귀족인 그년에겐 이게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고. 흐흣.”
그 말에 리안의 표정이 뒤틀렸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동성애는 나쁜 것이 아니니까. 난 바다의 신 메살 님을
믿는다고. 뭐. 나는 양성애지만.”
애초에 리안이 살던 세계에서도 도덕의 잣대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런데, 봉건제가 버젓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는 더욱 심했다. 거기다 종교
라도 종파마다 교리가 조금씩 다르니 도덕이나 윤리 또한 천차만별.
“그래서 기대 중이야. 우리 아기 상어. 무럭무럭 자라나렴.”
그 말에 리안은 그녀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바다의 신은 동성애뿐만 아니라 이상 성애를 허용한다.
원리 자체가 육욕의 쾌락이다.
그래서 그런지 음탕함을 미덕으로 삼고 간통을 죄악으로 여기지 않는다. 순결
함을 죄악으로 여기는 황당한 신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나사 빠진 여자가 소아성애자가 아니란 점이다.
탁탁!
그녀가 리안의 어깨를 살짝 두들기고는.
“비켜!! 이놈들아! 내가 일 번이다!!”
줄을 서 있는 해적들을 우악스럽게 해치며 전진했다.
역시 이놈의 해적들은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후~”
리안은 바닷바람을 맞기 위해 갑판으로 나왔다.
속이 울렁거렸다.
게임이다. 게임 속이다. 게임 안으로 들어왔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사람이 죽는 걸 봤고. 간접적으로 죽이기도 했다.
역하게 피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다.
그래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선 스스로를 외부의 시선으로 보기로 했다.
스스로를 게임 캐릭터로 생각하기로 했다.
당연히 다른 이의 불행을 심각한 손해를 보면서 감수해 줄 생각이 없다.
어쩌면 진짜로 이 세계가 게임일지도 모른다.
실패하면 죽는 것은 자신이고.
“상태창! 상태창!!! 상태차아앙!!”
빌어먹을 상태창조차 없고. 어떤 신적인 존재가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이 세계에 대해 언질이라도 줬다면 조금 더 도덕적으로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최악이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난이도는 하늘을 찌른다.
아무 버프나 계승도 없는 1회차를 클리어하는 것이 조건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일단 대륙 통일이다.”
역시 방구석 패인보다는 대륙의 패자가 되는 것이 더 즐겁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니 우울감이 사라졌다.
그때.
“오오오!! 역시. 도련님. 역시 지고왕의 핏줄!”
갑자기 위에서 뭔가가 리안을 덮쳤다.
“우아악!! 위험하게 시리.”
“도련님이 이렇게 놀라는 표정이 좋더라.”
사자에게 덮쳐진 기분이다.
이것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겠지?
샬롯의 이런 장난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당연히 리안에게 남은 기억은 없지만.
“어··· 저기. 그런데 바다 위에 점이 보이는데요?”
“안 보이는데? 장난 좀 그만 쳐.”
“진짜예요.”
리안은 눈을 비볐다.
아무리 봐도 안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