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102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
정확히 몇 번째였는지는 기억 안 난다.
내 전생의 기억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몇 번, 몇십 번이나 반복된 이런 기억은 특히나 더 그렇다.
“오빠… 미, 미안…해요.”
아무튼 그때도 수아는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아가 처절하게 사과할 땐 항상 그랬듯이. 처참한 몰골로 죽어가는 중이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나도 수백 번이나 반복한 지겨운 대사를 내뱉는다.
이미 알고 있다. 이게 수아가 가장 안심하며 눈 감을 수 있는 대사라는 걸.
“네가 미안할 건…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기계처럼 무미건조하게 입을 놀린다.
갑자기 사과하는 의도를 추궁할 생각도, 어떻게든 살려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죽어가는 그녀를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든 행동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도, 이미 전부 알고 있으니까.
“…다, 다행…이…….”
직후 수아의 숨이 끊어졌다.
수아는 ‘다행이다’라는 유언을 완성할 때도 있고. 완성하지 못한 채 절명할 때도 있다.
그 회차는 끝까지 내뱉지 못한 케이스였다.
“…….”
죽어버린 수아 앞에서 멍하니 상념에 잠긴다.
왜 실패했나. 이번엔 뭐가 또 잘못됐을까.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디서 기회를 놓친 것인가.
기계가 알고리즘을 따라가듯 순서대로, 무기질적으로 떠올린다.
“내 잘못이, 있었나?”
그때쯤이면 슬슬 그런 의심이 들던 무렵이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 이번만큼은 잘못한 게 없다. 진짜 최선을 다했다.
이것 이상으로 잘할 건덕지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이게 맞는 거 아니야?’
나는 대체 뭘 바꾸려고 하는 거냐.
강서윤 때와 마찬가지야. 삼라만상이 합심해서 강수아의 죽음을 바라고 있잖아.
나는 세계의 ‘올바른 진행’을 틀어막기 위해 헛된 발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수아가 죽는 게… 옳은 걸지도 몰라.’
…베르페아노에게 전말을 전해 들은 지금 보면, 그야말로 깜짝 놀랄 발상.
아쉽게도 당시의 나는 그저 자학이 하고 싶었을 뿐이다. 당연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아니야. 아니지.”
직후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의미 없는 자학은 당장 그만둔다. 약해지려는 정신 줄을 반쯤 억지로 다잡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뭔가는 잘못했겠지.”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수백 번이나 들이박았다. 뭔가는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만 부여잡고, 벌써 수백 번이나 이 꼴이다.
그 수백 번의 반복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 왔던가.
‘그것도 이제 기억 안 나네.’
다만 이건 확실히 안다.
이젠 수아가 눈앞에서 죽어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이미 망가졌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뭔가를 희생했다는 실감만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끝이다?”
그냥 이럴 팔자니까 받아들여라?
안 되지. 절대로 안 된다. 그런 X같은 운명은 받아들일 수 없다.
“…돌아간다.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통보했다.
파지직! 허공을 찢어발겨 손을 집어넣었다. 익숙한 그립감이 느껴지자 손을 빼냈다.
시퍼렇게 빛나는 블라이스의 단검이 손아귀에 쥐어져 있다.
―그그그그그그!!
그리고 심장을 박박 긁는 기괴한 포효가 들려왔다.
퍼뜩, 괴성의 발원지로 지친 눈을 들어올렸다.
―그그그그그그그!!!
시커먼 공허가 있다.
일견 블랙홀 같기도 하고. 신이 하늘 한가운데에 검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형상의 무언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현자의 눈.’
그 존재를 포착한 순간 오금이 쫙 저려왔다.
턱이 떨려 이빨이 딱딱 부딪쳤지만. 나는 애써 평소처럼, 이 악물고 상태창부터 띄웠다.
[몬스터 정보]
[명칭: ???]
[체력: ??? 마력: ???]
[힘: ??? 민첩: ??? 지능: ???]
[상세: 실패한 자. 무한한 무(無)와 함께하리라.]
일견 단출하고 간단하기 그지없는 상태창.
모든 것이 의문. 심지어 이름까지도 죄다 물음표로 점철됐다. 상태창의 헛소리도 기억 속 그대로다.
내가 아는 15차 붕괴의 던전 마스터. 최종 붕괴의 ‘그것’이 맞았다.
―그그그그그그……!!
놈이 나를 내려다보며 끔찍한 괴성을 토해냈다.
아니, 내려다보고 있다? 괴성을 토해내? 그 말은 둘 다 어폐가 있다.
저 직경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시커먼 무언가에는… 눈이나 입이랄 게 전혀 달려있지 않으니까.
“……!!”
하지만 느껴진다.
보이진 않아도 본능이 비명을 지른다.
저것은 지금 나를 주시하고 있다.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버린 강남구 한복판, 아직 유일하게 생존한 생명체인 나를 말이다.
―그그그그그……!
그리고 그런 내 직감을 증명하듯.
쿠구구구! 허공에 둥둥 떠있던 ‘그것’이 천천히 내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창했던 하늘의 쪽빛이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놈이 움직인 궤도를 따라 하늘이 무참히 이지러지며, 시커먼 스파크와 붉은 안개가 휘몰아쳤다.
―그그그그그그……!!
동그라미. 세모. 그 외 수많은 다각형.
정해진 형태도 없다. 쉴 새 없이 변화무쌍하게 형태를 바꿔가며, 놈은 거대한 공허의 표면에 자라난 촉수들을 천천히 내 쪽으로 뻗어온다.
―그그그그그그그그!!
이제 느껴지는 것은 명백한 적의.
저 형태를 가진 거대한 절망이, 나를 향해 쏟아내는 숨 막히는 악의뿐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턱을 애써 움직였다.
“…그, 냥은. 못… 가지.”
최후의 발악을 준비하기로 했다.
파지직!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사람 모양으로 오려놓은 종이뭉치 두 장을 꺼내고, 빠르게 전방에 겨누었다.
‘식신을 쓸까.’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현실 파악과 손익 계산을 마치고, 이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스르륵. 다시금 두 장의 종이뭉치가 허공의 균열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은 참자.’
반야의 식신은 최대 사용 횟수가 한정된 물건이다.
내가 가진 ‘반야의 식신’은 고작 두 개. 이 시점 기준으로, 하나는 7회 정도가 남았고. 나머지 하나는 단 1회가 남아 있었다.
‘어차피 이번 생의 나는… 이미 실패했다.’
세계를 예정된 파멸로 몰아넣는 저 공포의 대왕.
15차 붕괴의 던전 마스터와 맞설 뾰족한 방도도 마련되지 않은 채. 나는 어김없이 오늘을, 최종 붕괴를 맞이했다.
이 시점에서 세상의 종말은 확정이나 다름없다.
‘식신의 마지막 한 번은, 좀 더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 거다.’
그리고 이때 식신을 아낀 선택.
지금 돌아보면 기가 막힌 선택이 됐다.
1002번째 전생에서 양호성을 맞닥뜨렸을 때. 그때 사용한 식신이 한 마리뿐이라면 방어선이 좀 더 빨리 무너졌을 것이고. 수아나 이브의 신변에 더 큰 위협이 닥쳤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전부 없던 일이 돼버렸으니, 의미 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만.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어쨌든 식신을 포기한 나는 양손을 활짝 펼쳤다.
파지지직! 스파크가 자글거리며 순식간에 세찬 벼락이 모여들었다.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양손에 나선 번개가 장전된 상태로 다시 한번 스킬을 영창.
파지지지직! 두 개의 황금빛 나선이 손아귀를 중심으로 맹렬하게 맴돌았다.
‘트리플.’
거기서 받고. 한 번 더.
파지지지직! 벼락의 나선이 세 줄기가 되었다.
이젠 내 주변으로 강맹한 기류가 발생해, 스파크를 머금은 광풍이 온몸을 할퀴기 시작했다.
‘쿼드러플. 퀸터플. 섹터플…….’
네 줄기. 다섯 줄기. 그리고 여섯 줄기.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요동친다. 시야는 온통 황금빛 나선에 휩싸여, 아득한 광풍이 주위의 모든 것을 살라먹기 시작한다.
“…옥터플.”
마침내 양손에 각각 여덟 줄기 벼락이 광란의 춤사위를 벌이는 그 순간. 나는 숨을 최대한 들이쉬며, 번개를 전방에 힘껏 휘둘렀다.
일순간 일대의 공기가 바짝 숨을 죽였고.
“죽어.”
적막 속에서 기원하듯 중얼거렸다.
콰콰콰콰쾅! 침묵이 압도적인 폭음에 무참히 찢겨 나갔다.
양손의 여덟 줄기. 도합 열여섯 줄기의 벼락이 한 지점에 뭉쳤고. 16개의 거대한 나선을 그리며 쐐기처럼 날아갔다.
―그그그그……!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버릴 기세로 날아가는 나선의 섬광.
그 앞에는 모든 것을 살라먹을 기세로 팽창하는, 최종 붕괴의 던전 마스터가 있었다.
콰아앙! 빛과 어둠이 허공의 일점에서 격돌했다.
“크욱……!”
세계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파. 지독한 뇌명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모든 방어 스킬을 풀 전개. 온몸이 갈가리 찢길 것 같은 압도적인 충격을 이 악물고 버텨냈다.
“…후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천천히 눈을 떠봤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눈에 담고는, 허허허. 김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아픈 척이라도 해봐라. 좀.”
변한 것은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최종 붕괴의 ‘그것’은 아까보다도 사나운 기세로 크기를 확장시켜 갔고.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는 표면엔 자잘한 생채기 하나 없었다.
“괜히 힘만 뺐네. X발.”
다만 일대의 지면이 온통 용암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는 점만은 달라졌다.
딱히 대단한 변화는 아니다. 내가 스킬을 쓰기 전에도 초토화된 폐허였던 건 매한가지니까.
단순한 ‘폐허’였던 강남이 ‘곱창 난 폐허’가 됐다. 그뿐이었다.
“이제, 어쩐다.”
어쩌긴 뭘 어째.
포기할 수밖에 없다. 역시 지금의 나는 저놈을 이길 수 없다. 단 1합의 공격이었지만, 그것을 확실히 알았다.
‘방금 이게 내 최대 출력. 필살기였으니.’
같은 스킬을 중첩하면 약점의 일점 폭격이 쉬워진다.
또한 스킬이 속성 시너지를 일으켜 대미지가 비약적으로 증폭된다.
그래서 같은 스킬을 16번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과, 한꺼번에 몰아쳐서 사용하는 것. 중첩한 배수만큼 후자가 강력해진다.
“…허억. 헉. 후우.”
당연히 단점도 당연히 있다.
라이트닝 헬릭스를 무려 16번이나 중첩하는 동안, 그것을 유지하는데도 마력이 증폭해서 소모된다는 점.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그 극심하고 급격한 마력 소모에 의한 후폭풍이었다.
‘몸이, 말을 안 듣는데.’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리는 데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대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천천히 다가오는 저 거대한 죽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것.
지금 내게 남은 선택지는 그것뿐이었다.
“X발. 사양…하지.”
당연히 그러고 싶진 않았다.
마지막 힘과 마력을 쥐어짜내 허리춤에 끼워놓은 블라이스의 단검을 들어올렸다.
채 목까지 들어 올릴 힘도 없다. 급한 대로, 칼끝을 배에 정조준했다.
“후우……!”
이대로 찔러도 못 죽는다.
살가죽을 제대로 관통할 힘도 내기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을 풀어버렸다.
“……!”
기우뚱.
상체가 휘청이고, 나는 그대로 전방을 향해 엎어졌다.
푸직! 자연스럽게 내가 겨누고 있던 칼끝은, 중력에 따라 뱃가죽을 힘차게 파고들어 갔다.
“…끄…….”
아찔한 신음, 새빨간 선혈이 입과 배에서 흘러나왔다.
탈진 상태라 그런가. 졸음보다 질척한 죽음의 감각이 순식간에 온몸을 집어삼켰다.
당연히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 * *
번쩍. 눈을 떴다.
딱히 상체를 벌떡 일으키거나, 헉헉대며 땀을 비 오듯이 흘리지 않았다.
대수롭잖게 기지개나 쭉 켜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어기적거리며 냉장고로 다가갔다.
‘이놈의 악몽은 어째, 레퍼토리가 변하질 않냐.’
어차피 이 정도 악몽은 일상다반사.
1020회차의 한정용. 깨방정 떨 짬은 진작에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