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1003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5)>
“아, 아… 이, 이런……! X발!!”
애덤 크로스가 아찔한 표정으로 소리친다.
그러든 말든. 나는 로즈 휴스턴을 내 앞까지 빠르게 옮겼고. 크로스 박사를 따라 하듯 그녀를 힘껏 부둥켜안았다.
[스킬 발동: 슬립]
나는 손아귀에 머물던 푸른 마력을, 곧장 로즈 휴스턴의 뒷덜미에 집어넣었다.
파직! 손끝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아, 윽?!”
로즈 휴스턴은 아찔한 신음과 함께, 털썩.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이것으로 협상의 테이블은 대충 완성됐다.
“그럼…….”
나는 급하게 보쌈해 온 인질에게서 눈을 들었고.
당황해 마지않는 애덤 크로스를, 지긋한 시선으로 주시했다.
“인질을 교환하자.”
어조는 한없이 평온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온다.
* * *
단순하게 상황만 보고 따지면, 서로가 인질을 잡았으니 쌤쌤. 5 대 5의 상황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견적상으론 그렇지 않다.
“어쩔 거냐. 크로스 박사.”
“……!!”
지금은 내 쪽이 아득하게 유리한 장사.
나는 아까의 크로스 박사를 따라 하듯, 의기양양하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인질의 교환법은 네게 전적으로 맡기지. 네가 꼴리는 방법대로 교환해도 상관없다.”
“크, 윽!”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둘 다 죽여버리는 건 어때.”
“…뭣?!”
“귀찮게 인질 교환 같은 거 안 해도 되고. 서로 뒷맛도 깔끔하고 좋잖아.”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짓궂은 농담에 경기를 일으키는 크로스 박사. 곧바로 서슬 퍼런 증오의 시선이 내 면상으로 빠바박 꽂혔다.
협상엔 영 소질이 없으시군, 애덤 크로스 험버트 박사.
‘여기선 최대한 괜찮은 척을 했어야지.’
이세라는 크로스 박사의 목숨을 지켜주던 억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까지 인질을 확보해 버렸다. 덕분에 국면이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제 중요해진 건…….’
서로에게 인질의 목숨이 얼마만큼 소중한가.
당연히 지금 상황에선, 붙잡힌 인질이 덜 소중할수록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미 게임 끝났다. 애덤 크로스.’
로즈 휴스턴이 얼마나 저놈에게 소중한지. 방금의 반응만 봐도 너무 극명하다.
나는 마지막 외통수를 향해 더욱 압박을 넣었다.
“어때. 그냥 깔끔하게 서로 죽이고 끝내자고.”
“이 X발……! 함부로 지껄이지 마!!”
“뭘 그리 화를 내는데. 서로 교환하나 죽여버리나, 인질이 무의미해진다는 건 똑같잖아.”
“X발 닥쳐! 이 여자, 진짜로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허, 허세 부리지 말라고!!”
그건 맞다.
이건 똥폼이고 허세다. 나도 당연히 이세라가 죽는 건 싫다. 엄청 싫다.
그건 애덤 크로스도 분명 알고 있을 거다.
‘정말 이세라가 죽어도 괜찮았다면. 아까 내가 주저했을 리가 없지.’
나는 진작에 무지성 육탄돌격을 감행했을 거다.
그러다 일이 잘돼서 이세라를 무사히 구출하면 좋은 거고. 잘못돼서 죽으면, 불알을 탁 치며 아까워하고. 상황은 싱겁게 끝났겠지.
‘그런데 그렇게 끝내지 못했다.’
우스운 더블 인질극이 성립됐다.
그것부터가 이세라에게 인질 가치가 충분하다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게 사실이라 해도.
“그래서. 허세인데, 뭐 어쩌라고.”
“…뭐, 뭣?”
“이과라 그런지 문맥 파악을 잘 못하는구만. 진짜 사이좋게 인질 죽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고!”
“그게 최선의 수가 됐을 정도로, 네게 남은 선택지가 하나도 없다는 소리지.”
“……!!”
내가 괜히 아까 ‘판이 뒤집혔다’라고 선언한 게 아니다.
애덤 크로스가 쥐고 있던 유일한 우위가 따라잡혔다. 이러면 무력이 강한 내가, 무조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선택해라. 크로스 박사. 죽여버릴까, 아님 교환할래.”
“……!”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똑같지만. 적어도 네 손으로 선택하게 해주지.”
똑같이 인질을 잡고 있다 해도. 놈은 내게, 전적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거다.
“크…윽. X발… X발!!”
결국, 크로스 박사는 그 자리에 무릎 꿇었다. 자기가 처한 처지를 완전히 파악한 듯하다.
놈은 한동안 실성한 듯이 사죄만 연발했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로즈…….”
뭔 놈의 업보가 그리 많은지.
고해성사 하는 사형수 마냥, 눈물을 뚝뚝 흘리며 땅바닥에 대고 대성통곡을 해댔다.
“크흑. 흐흑……! 미안해. 전부, 모두 내 잘못이야. 전부 다……! 나만 없었으면!”
나는 하릴없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잠깐은 묵묵히 기다려줬다.
하지만 잠자코 들어주는 것도 한도가 있지. 10분을 넘게 죄송 모드를 고수하고 있으니, 결국 내가 도중에 끼어들었다.
“미안한 줄 알면. 여기로 데리고 오지나 말았어야지.”
“…뭐?”
크로스 박사는 퍼뜩 고개를 쳐들었고. 나를 멍한 눈으로 올려다봤다.
나는 차가운 조소를 머금고 놈을 응시했다.
“로즈 휴스턴이 숨어있던 위치가 너무 가까웠다. 그게 이 꼴이 난 이유라고.”
“…충고 고맙다. 개새끼야.”
“굳이 약점을 사지에 데려온 이유는 뭐지?”
“멀리 뒀다가. 그사이 또 다른 세력한테 노려지면. 그땐 네가 막아줄 거냐?”
크로스 박사가 씹어뱉듯이 으르렁거렸다.
무릎은 꿇었지만, 아직 마음마저 굴복한 기색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자포자기에 가까운 오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끄덕거렸다.
“…하긴. 이해한다.”
수아를 데리고 도피를 많이 해봐서 그런가. 오기에 차서 중얼거리는 애덤 크로스의 행색이… 좀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어째 여러모로 PTSD를 자극하는군. 이 새끼.
“뭐, 어쨌든.”
동정은 동정이고. 일은 일이다.
나는 천천히, 무릎 꿇은 크로스 박사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질문을 좀 할 거다. 아는 대로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크로스 박사.”
“지랄. 내가 누구 좋으라고.”
“누구는. 우리 로즈 아가씨 좋으라고.”
“…….”
“이년이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네 협조에 달렸다. 박사.”
“그… 으으윽!”
크로스 박사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놈의 핏발 선 두 눈이 나를 씹어먹을 듯이 노려보길 잠시. 결국의 결국엔, 눈을 깔고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서. 대체. 너희들은……! 우리한테 뭘 더 바라는 거냐.”
놈은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이내 표정과 어조가 점점 차가워졌고. 선명한 증오와 원망을 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다.
“정작 내가 들어달라고 할 땐… 들은 척도 안 하던 개새끼들이! 대체 이제 와서! 나한테 뭘! 내가 뭘 더 말해줘야 직성이 풀리겠냐고!!”
크로스 박사가 허공을 응시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두서없는 분노의 표출이다.
“이미 진작에 다 말했어. 몇 번을 말해야 되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언론에 실토했다고!”
크로스 박사가 치켜뜬 눈으로 날 흘겨봤다.
그리고 증오가 뚝뚝 흐르는 목소리로 뇌까리기 시작했다.
“내가 알게 된 던전의 비밀이 궁금한 거냐? 그럼 네가 알아서 인터넷이라도 찾아봐!! 이 개새끼야!!”
“나도 그러고 싶지. 근데 그게 안 된단 말이지.”
“…뭐, 뭐?”
그게 가능했으면 새꺄. 내가 개고생해서 널 찾아오지도 않았다고.
나는 짜증스럽게 뒷머리를 긁으며 짧게 요약해줬다.
“지금 당신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한국 헌터 협회가 직접 통제하고 있어서, 웬만한 수단으론 접근조차 할 수 없어.”
“그, 그게… 무슨. 아니, 날? 대체 왜?!”
크로스 박사는 얼빠진 얼굴로 되물어온다.
내 말이 금시초문이라는 행색. 놈이 아직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저놈이 저런 반응을 한다는 건.’
이 시점의 슈레더는… 아직 애덤 크로스와 제대로 접촉한 적이 없구나.
혹은 접촉을 했어도.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암부의 접근 목적은 보나 마나, 애덤 크로스를 자기들 통제하에 두는 걸 텐데.’
그걸 위해 대규모 인력까지 동원해 크로스 박사 주위에 진을 쳤건만. 정작 크로스 박사가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은 듯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로스 박사. 한국 헌터 협회 쪽에서 접촉해 오지 않던가?”
“말이라고. 당연히 해왔지.”
애덤 크로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골목 한쪽 어귀에 산처럼 쌓여 있던 시체 쪽을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가만히 따라가 보니, 장수혁의 시신이 그 끝에 있었다.
“네가 방금 죽여버린 저놈. 저 새끼가 특히 끈질기게 엉겨 붙었다.”
“…그래. 그랬겠지.”
“뭐야. ‘그랬겠지’라니. 아는 사이라도 되냐?”
“약간은.”
쓴웃음을 입가에 머금길 잠시. 나도 크로스 박사도, 곧 시신에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다시 돌아온 내 시선은 한층 가늘어져 있었다.
“저놈들이 뭘 요구했냐.”
“미국으로 돌아가지 말 것. 자기들이 지켜줄 테니, 감시 아래서 평생 조용히 살 것.”
“그게 끝인가?”
“그리고 아직 언론에 공표하지 않은 정보가 더 있다면… 전부 자기들에게 넘길 것. 이렇게 세 개 정도였다.”
“흐음.”
예상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요구사항이다.
역시 슈레더는, 애덤 크로스를 생포해서 감시하에 두고 싶어 했다. 그것을 위해 슈레더의 거의 전 병력이 이곳에 드글드글 모여 있던 거였고.
‘어떤 불순분자가 간섭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 이거였겠지.’
그러나 이 계획은 내일이면 어쩔 수 없이 와해된다.
불가항력의 대재앙. 15연속 던전 붕괴. 그 서막을 여는 수십 마리 드래곤의 습격이, 내일 용산에서 일어나니까.
슈레더는 더 이상 크로스 박사 건에… 모든 전력을 할애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뒤로 어떻게 되는지까진 정확히 모르겠다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애덤 크로스와 로즈 휴스턴은 며칠 뒤.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사살당한다. 영원히 입을 봉해진 채, 미국에서 시신만 덩그러니 발견된다.
‘아마도 슈레더겠지.’
끝까지 거부한다면, 남은 건 죽음뿐.
우리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져선 안 된다. 부숴버리겠다. 쉽게 말하면 그런 것이다.
‘그전에 만나러 오길 잘했어.’
타이밍적으론 지금이 정답이 맞는 것 같다.
그쯤에서 나는 약간 짓궂게 입매를 비틀어 올렸고. 장난과 진심을 섞어 물어봤다.
“앞에 두 개는 그렇다 치고. 공표하지 않은 던전의 비밀, 진짜로 있었나?”
“없어. 없다고 몇 번을 말하냐. 귀가 먹었어?! X발!!”
앙칼진 반응이다.
예민하네. 화났네. 장난인데 왜 그러냐.
저쪽이 받아줄 기미가 안 보이니. 나도 다시 진지한 어조로 돌아왔다.
“그래서, 놈들이 무료 최고급 요양원을 권유했는데. 거절했나?”
“거절했다. 단호하게 거절했지.”
“순순히 물러나 주던가?”
“X발. 그럴 리가 있냐? 나는 물론이고… 하나도 관계없는 로즈까지, 몇 번이나 목숨을 위협받았다고! 오늘만 해도 숱하게 그랬어!!”
“그래. 분명 그랬을 텐데.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냐.”
내가 궁금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장수혁이 X발 무슨 사이비 종교 권유하러 온 것도 아니고. 정중하게 거절한다고, 머쓱하게 뒷머리 긁으며 돌아갈 리가 없는 것이다.
“장수혁은 말이다. 네가 인질로 잡은 이세라랑은 경우가 완전히 달라.”
이세라는 S급 헌터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케이스다.
아무리 서포터계나 캐스터계 헌터라도, S급쯤 되면 이세라만큼 신체 능력이 밑도는 경우는 아예 없다.
하물며 크로스 박사에게 열심히 대시했다는 장수혁은… 피지컬계 헌터.
“크로스 박사. 널 쫓아다녔다는 저놈은, 스킬만 봉인한다고 도망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래. 확실히 그렇긴 하더만. 집념도 무력도 무지막지했지, 정말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냐.”
“잘.”
“…….”
대답하기 싫다고 대서특필을 하는 크로스 박사.
오냐. 그렇게 나와 봐라. 나도 그러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우리 로즈도 어떻게,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네.”
차킹!
허리춤에 꽂았던 단검이 다시 들려 나왔고. 단검은 곧장 로즈 휴스턴의 미간으로 날아갔다.
애덤 크로스가 해쓱해진 표정으로 빽 소리쳤다.
“펴, 펴, 편법!! 아, 아까 내가 썼던 재머 같은! 그런 편법을 썼다! 됐냐!!”
좀 대답다운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그 대답은 내 흥미를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차고 넘쳤다.
단검을 우뚝 멈추고, 애덤 크로스를 빤히 응시했다.
“편법.”
홀린 듯이 그 단어를 되뇌었다.
이내 놈의 미간을 꿰뚫을 듯이 쏘아보기 시작했다.
“숨겨놓은 비장의 수단. 스킬 재머 외에도 더 있었군.”
“그, 그래. 그땐 그랬었지.”
“그땐?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소리냐.”
“재머도 그렇고, 전부 소모성 아이템이야. 횟수에 한계가 있다고!”
“그렇군. 이해했다.”
각종 음해 세력의 압박을 피하느라 편법들을 대부분 소진했다. 그래서 현재까지 남은 비장의 편법은 ‘스킬 재머’ 뿐이다.
대충 이런 소리가 되시겠다.
“네가 개발했다는 그 스킬 재머. 하나만 내놔 봐.”
나는 대뜸 크로스 박사에게 손을 내밀었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크로스 박사는 굉장히 꺼림칙한 표정이었지만. 내가 로즈 휴스턴에게 나이프를 까딱이자,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재머를 힘껏 던졌다.
“…자. 받아라!”
“옳지.”
터벅.
붉은빛의 돌멩이가 허공에 포물선을 그렸고. 내 손아귀 안으로 안착했다.
나는 그것을 손끝으로 만져보다가, 이내 주머니에 고이 집어넣었다.
‘일단 샘플 하나 확보.’
‘스킬 면역’은 이브의 정체… 나아가, 던전의 비밀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나중에 오원태에게라도 조사를 맡겨보자. 여기서 뭔가 또 중요한 정보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쯤에서 다시 질문을 재개했다.
“참고삼아 알아두고 싶은데. 추격을 따돌릴 때 쓴 건 어떤 편법이냐.”
“자세히 설명해 줘도 어차피 넌 모를 거고… 그, 그냥 텔레포트 같은 거라고 생각해.”
거만한 태도로 말하다가, 내 눈치를 보고 말투를 누그러뜨리는 크로스 박사.
태도야 어떻든 간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그거면 됐어. 텔레포트라면 납득 못할 것도 없지.”
“…참고로, 한국도 그 능력 사용해서 왔다. 우리 비행기 타고 온 거 아냐.”
“으음?”
그건 좀 많이 놀라운 사실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고 되물었다.
“미국에서 한국까지… 텔레포트로 왔다는 소리냐.”
“쉽게 말하면 그런 거지.”
“사실이냐.”
“지금 그걸로 거짓말을 해서.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는데?”
“사실이라면… 좀 많이 대단한 편법이군. 그거는.”
놀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 텔레포트는 스킬이든 아이템이든. 거리에 비례해 마력을 소진한다.
그리고 아무리 나라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과 한국을 한 번에 넘나들지는 못한다.
‘수백 번을 연속으로 쓰면 갈 수야 있겠다만.’
그건 마나 통이 나 정도 되니까 가능한 얘기고. 원래는 S급 위상 능력자인 강서윤이라 해도 불가능하다.
죽살나게 사용하다, 태평양 한가운데쯤에서 마력 소진으로 꼴꼴꼴 수장되겠지.
‘스킬 재머도 좋지만… 저것까지 남아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인 건 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이 못내 남았다.
이내 나는 추가적으로 질문했다.
“굳이 그런 짓을 한 이유는?”
“미국에서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였지. 실제로 거기까진 잘 됐는데… 대체 한국 헌터 협회가 어떻게 곧바로 냄새를 맡은 건지. 그건 나도 진짜 몰라.”
“미국에서도 추격을 당하고 있었나? 누구한테.”
“글쎄.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워낙 많아서. 내가 누구한테서 도망치고 있던 건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는데?”
씁쓸한 미소와 함께 중얼거리는 애덤 크로스.
적어도 그 뒤틀린 미소에서 거짓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납득하기로 했다.
내 목소리는 한계까지 잠겨갔다.
“이쯤에서 근본적인 거나 짚고 넘어가자.”
“핫. 근본? 좋지. 그러시든가.”
“그래서 한국엔 뭐 하러 왔냐. 크로스 박사.”
“…….”
크로스 박사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정신 차린 그는 피식, 힘없는 미소를 지었고.
“관광.”
말쑥한 얼굴로 툭 내뱉었다.
어지간히도 당당한 행색. 덕분에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반응했다.
“…허.”
관광 이 지랄하고 앉았네.
헛웃음조차 턱 막히는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