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09화 (109/235)

109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30)>

메모리 크리스탈과 연동된 홀로그램 패널 속. 지글거리는 화질로 비치는 중년 남자.

영상 속 애덤 크로스는 의미심장한 말을 지껄였다.

“10년 전부터 정해져 있던……?”

이 영상이 찍힌 날짜는 2030년 11월.

여기서 약 10년 전이라면. 약 2020년에서 2021년. 최초의 게이트 붕괴 시절까지 거슬러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니.’

그것은 15차까지 줄기차게 이어지는 던전 붕괴를 뜻하는가. 아니면 그로 인한 인류의 멸망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양쪽 다 아닌, 다른 무언가인가?

아니. 어느 쪽이든 똑같은 소리겠다.

‘설마 뭐, 이 새끼도 그런 부류였나?’

던전 종말론.

동서고금 막론하고 수많은 음모론자들의 단골 화제다.

‘던전의 등장 자체가 인류 멸망의 초석이라던가.’

던전은 인간에 대한 신의 분노가 표상된 것이고. 이미 신의 심판은 시작됐다.

그래서 이제 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자비를 빌다가 하나씩, 남김없이 죽어갈 수만 있을 뿐이라나.

“지긋지긋한 운명론자 새끼들.”

그중에서 가장 비대해진 단체가 던전교였을 뿐.

비슷한 사상이나 교리를 가진 사람은, 사실 영원회귀 이전 시절부터 전 세계적으로 수두룩했다.

‘너는… 던전을 연구하다 정말로 미쳐버려서. 던전을 숭배하게 된 거냐?’

애덤 크로스는 그냥 흔해 빠진 광인인가?

아니. 아마 그렇진 않을 거다. 그랬으면 슈레더가 기를 쓰고 이 자의 소문을 통제했을 리가 없으니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쯤에서 고개를 휘젓고 영상에 집중하려 했지만. 자기소개를 끝낸 영상 속 애덤 크로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걸 깨달았다.

끝이었다. 영상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뭐야. 여기서 끝?”

황당하다 못해 분노까지 느껴지는 타이밍이다.

절단 신공 오지는데, 애덤 크로스. 웹소설 좀 써봤냐? X발놈.

분기탱천해서 혼자 욕을 씨부렁거렸다.

“아니. 아니지. 이럴 때가.”

황당해하는 것도 잠시.

그럴 시간도 아까워진 나머지, 빠르게 패널의 스크롤을 내렸다.

‘좀 더 뒤져보자.’

슈레더가 ‘위험하다’라고 판단한 근거가,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음 화. 빨리 다음 편을 내놓으라고. 애덤 크로스.

“뭐야. 없는데……?”

하지만 해당 영상은 그것으로 진짜 끝이었다.

희망을 품고 아무리 뒤져봐도, 거기서 이어지는 다음 내용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아카이브 수색을 계속해 나가던 차.

“이건.”

문제의 다음 편 대신, 한 흥미로운 영상을 발견했다.

내 시선은 한 CCTV 영상에서 멈췄다. 홀린 듯이 클릭해 그 영상을 재생해 봤다.

평범한 한국의 시가지가 찍힌 영상이다.

“이거… 애덤 크로스잖아.”

그 자글자글한 화소의 세상 속. 아까 영상에서 봤던 남자가 어렴풋이 포착됐다.

한 붉은 금발의 외국인 여자와 함께, 주위를 경계하며 밤거리를 바삐 걷고 있었다.

‘저건 로즈 휴스턴이겠고.’

화질이 안 좋은 데다, 감마값이 현저히 낮아 확실하진 않다.

하지만 붉은 빛이 도는 특징적인 금발. 체형과 체격. 그리고 애덤 크로스와 함께하는 점까지.

여러 정황을 조합해 추측은 가능했다.

“…한국인데?”

익숙한 거리와 익숙한 간판.

그런데 그곳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가 찍혀있다.

퍼뜩, 시선을 올렸다. 영상의 상단에 기재된 정보를 훑었다.

[2031/11/24―21:32]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07번 CCTV 영상]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11월 24일이면… 영원회귀의 시작 지점인 11월 27일에서, 사흘 전이다.

“고작, 사흘 전?”

현시점 기준으로 따져봐도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제의 두 연구원이 이곳. 대한민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이 영상은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에는 또 왜…….”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이상할 건 없는 일이었다.

‘하긴. 던전교는 한국에서부터 창궐하기 시작했지.’

그 던전교의 뿌리가 애덤 크로스라는 정황이 등장했다. 그러니 그쪽은 분명 이상할 건 없는데.

대신 다른 의문이 내 뒷목을 살살 간지럽힌다.

‘언제부터?’

얘는 언제부터 한국에 있었나. 그리고 언제까지 체류하는 것인가.

이젠 그것이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애덤 크로스와 로즈 휴스턴은… 분명.’

앞으로 정확히 15일쯤 뒤,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거고.

미국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될 예정이니까.

‘어찌 됐든. 이건 나름 큰 수확이다.’

내가 찾던 종말론의 키워드 관련 정보는 아니다.

하지만 애덤 크로스의 최근 소재를 안 건 아주 고무적이었다.

“해운대구. 송정동. 기억해 둔다.”

조만간 저 CCTV 촬영 지역을 조사해 보면, 뭐라도 흔적이 나올지 모른다.

자연스럽게 패널을 만지는 손도 더욱 분주해졌다.

‘더 수색해 본다. 뭔가는 더 나오겠지.’

그래.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아카이브 조사는 이제 시작한 참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그 순간이었다.

[이상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삐이이익!!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훅, 패널이 다운됐다.

크리스탈이 위협적으로 붉은 빛을 토해냈고. 곧장 새로운 경고 패널을 띄웠다.

[경고. 메모리 크리스탈 구동을 강제 종료합니다.]

[경고. 시스템에 기록된 정보 일체를 전량 파기합니다.]

크리스탈의 강제 종료.

또한 모든 정보의, 일제 파기.

“…어.”

갑작스러운 청천벽력.

나는 채 반응도 못 했고,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아니. 무슨!!”

어찌나 당황했는지. 오랜만에 큰 소리로 탄성을 내질렀다.

왜냐. 대체 무슨 일이야. 어째서 크리스탈의 보안 시스템이 발동해 버렸나.

장수혁 대신 내가 패널을 직접 조작한 게 문제였나?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슈레더 아카이브에 접속해 본 게 처음도 아니다.

첫 접촉만 장수혁이 해주면, 내가 어딜 만져도 지금 같은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그래야 정상이란 말이다.

‘그렇다는 건……!’

크리스탈 첫 접촉의 대상.

장수혁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거겠지.

거기까지 사고가 도달한 순간. 지금껏 도외시하던 장수혁을 쳐다봤다.

“…장수혁.”

그리고 얼이 빠져 놈을 호명했다.

대체 언제부터였지. 장수혁은 마치 귀신 들린 사람처럼, 사지를 벌벌 떨고 있었다.

“끄… 걱. 커헉!”

두 눈이 허옇게 뒤집혔고, 간헐적으로 신음을 내뱉는다.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입술 사이로 피거품이 줄줄 샜다.

장수혁의 끔찍한 몰골을 눈에 담은 그 순간.

‘들켰다.’

단박에 직감했다.

나의 슈레더 몰살 및 아카이브 침입 등. 모든 행적이 발각되었다.

누구한테?

“눈치 하난 드럽게 빠르구나. 양호성.”

“뭘. 이 정도면 너무 늦었지.”

혼잣말에 대답이 튀어나왔다.

투학! 나는 바닥을 힘껏 박차 그 자리에서 재빨리 이탈했다.

투두두두! 직후 내 머리 위에서 시뻘건 화염탄 세례가 쏟아졌다.

“……!”

푸화악!

시뻘건 불의 폭포가 나를 빗겨나 바닥을 강타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 기록 보관소 전역을 순식간에 뒤덮는다.

나는 어렵지 않게 피해냈지만. 빈사 상태였던 장수혁은 그러지 못했다.

“끄… 아, 아아아아!!”

화염 속에서 장수혁의 통곡이 들려온다.

인간 모양의 불덩이가, 바닥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아아아아아아악!!”

작열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비명을 뒤로한 채.

키이잉! 나는 곧장 스킬부터 영창했다.

[스킬 발동: 염제의 가호]

직후 화염이 전방위에서 나를 집어삼킨다.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뒤덮었지만. 내성 스킬 덕분에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쓰읍.”

쿠르르르!

나는 손을 마구 휘저어, 몸에 붙은 불꽃들을 빠르게 꺼뜨렸다.

집요하게 들러붙는 불꽃을 걷어내고, 어느 정도 확보된 시야 너머.

“D급 헌터 한정용. 당신 정체가 뭐냐…….”

시뻘건 화마로 일렁거리는 기록 보관소 정중앙.

초로의 중년 남자 하나가, 불길 속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뭐 이런 류의, 이런 식상한 질문은 관두자고. 이미 존나게 들었지? 수혁이한테.”

한 손에는 검신만 2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양손검, 츠바이핸더를 들고 있다.

놈의 정체는 헌터 협회장. 양호성이이었다.

“한정용 헌터. 167명이다. 167명.”

양호성은 내게 천천히 다가오며 중얼거렸고. 나를 연신 빤히 쳐다봤다.

주위의 잔불보다도 뜨겁게 이글거리는 시선이, 오롯이 내 얼굴로 쏟아졌다.

“네가 한 시간 남짓한 사이에 죽여버린 암부의 인원. 167명이나 죽어버렸다고.”

화르륵!

양호성의 왼손에서 다시금 화염구가 일렁거린다.

불꽃의 음영이 양호성의 굳은 얼굴 위를 춤춘다. 그의 분노를 표상하듯이 거칠게 날뛰었다.

“우리 수혁이도 저리 쉽게 당한 걸 보면, 뭐. 내가 죽자고 덤벼봐야 뾰족한 수는 없을 것 같다만.”

퍼버버벙!

놈의 손끝에서 기관총처럼 화염탄이 쏟아졌다.

쉬리릭! 그 뒤로 꼬리를 물고 추격하는 양호성의 신형. 그 속도는, 제아무리 일류 헌터라도 감히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

“그래도… 대장부가 칼을 뽑았으면.”

콰콰콰콰!!

시시각각 추가되는 수많은 화염탄. 그리고 양호성 본인의 쐐기 같은 찌르기까지.

시야 전체가 놈의 공격으로 어지럽게 수놓여 간다.

“무라도 썰어야겠지?”

잠깐 넋 놓은 사이. 퇴로가 화염탄으로 완전히 차단되었다.

전투의 연륜이 느껴지는 프레이즈. 자비심을 완전히 배제한 채, 외통수까지 일직선으로 휘몰아치는 공격 일변도.

“후우.”

물론 외통수고 나발이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일류 헌터 레벨에서의 얘기다.

치지징! 곧장 내 주위로 샛노란 방어막이 생성되었다.

[스킬 발동: 안티 매직 리플렉터]

퍼퍼퍼펑!

배리어 위로 거센 화염의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둔중한 충격파가 세찬 폭발과 함께, 폭연을 사방으로 쏟아낸다.

기록 보관소가 순식간에 폭연으로 먹먹해졌고. 이내 양방이 다시 시야가 확보된 그 순간.

“…흡……!”

양호성의 입에서 당황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쿠구구궁. 배리어가 둔중한 공명음을 토해내며 화염탄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이내 천천히, 그리고 맹렬하게. 화염탄의 방향이 일제히 역전되기 시작한다.

“이런!”

양호성의 당혹성.

동시에 스르륵. 배리어에 명중했던 모든 화염탄이, 양호성의 면상을 정조준했다.

“무지개 반사다, 새꺄.”

투두두두!

다시금 양호성을 향해 총알처럼 날아가는 불꽃 세례. 위력도 속도도, 양호성이 사용했던 때보다 현저히 증가했다.

양호성은 돌진을 멈추고 긴급 회피 기동에 들어갔다.

“후웃!!”

투쾅! 콰콰쾅!!

빽빽한 화염탄이 아카이브 전역을 세차게 두들겼다.

지면과 벽이 폭발로 속속들이 터져나갔고. 보관소 전체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하아압!!”

까마득한 화염의 우박 한가운데.

양호성은 귀신같이 날랜 몸놀림으로, 모든 화염탄을 능란하게 피해 나갔다.

도저히 캐스터계 헌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스피드. 지켜보던 내가 다 감탄이 나온다.

‘진짜 괴물이란 건. 바로 저런 새낄 말하는 거겠지.’

양호성과 전투를 벌일 때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 내가 지든, 이기든. 몇 번째 회차라도. 그의 무력에 대한 순수한 경탄은 참을 수가 없었다.

새삼 놈의 상태창을 눈앞에 띄워봤다.

[인물 정보]

[명칭: 양호성]

[별칭: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S급 헌터, 최강의 헌터]

[체력: 95 마력: 76 신체 상태: 정상]

[힘: 44 민첩: 47 지능: 51 포텐셜: 89]

[최종 전투력: 324]

상태창의 ‘별칭’ 항목이 무슨 기준으로 표기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양호성에 한해서는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최강의 헌터.’

최강.

그 한마디가 곧 양호성의 아이덴티티. 그의 모든 것을 증명하고 대변해 준다.

그는 치트 플레이어에 가까운 나를 제외하면, 명실상부 지구 최강이다.

‘헌터 불모지인 우리나라를, 저놈 하나가 세계급 수준까지 끌어올렸지.’

헌터들의 스탯과 스킬셋은 기본적으로 ‘피지컬계’와 ‘캐스터계’로 갈라진다.

누구도 한쪽만 죽어라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다만. 마찬가지로, 양쪽 모두 정상급의 극의에 달한 사람도 전혀 없다. 보통은 한쪽만 줄창 파기도 벅차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그걸 해낸.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

우리나라 S급 헌터의 수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 아주 적은 편.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나 중국에 버금가는 위치까지, 한국 헌터 협회의 위상을 어거지로 끌어올려 놓은 당사자. 그것이 양호성이란 이름의 파급력이다.

‘최종 전투력. 324.’

거듭 말하지만.

나 같은 노력형은 진짜 괴물이 아니다.

내가 전투력 300을 넘는데 몇 년… 아니, 몇 회차가 필요했다고 생각하는가. 자그마치 150회차가 넘는다.

그걸 저 새낀 인생 1회차 만에. 1트에 해버린 거다.

“지금도 가끔은 상상한다, 양호성.”

반사된 화염탄 폭격이 끝난 뒤. 폐허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있는 양호성을 향해서. 이번엔 내 쪽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차라리 나 대신 너였다면. 어쩌면 진작에 끝장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으음? 뭐가 어쨌다고?”

“벌써 천 번을 넘게 했는데. 아직도 틈만 나면 그런 상상이 든다고, 나는.”

“도대체… 갑자기 무슨 개소리 짖어대는 거냐. 한정용 헌터.”

“잊어버려. 개 짖는 소리 맞으니까.”

파지직!

허공에 손을 집어넣고. 인벤토리에서 크로노스 대거를 꺼내 쥐었다.

과거. 한참 전의 전생 때. 서윤이가 남겨준 유품이다.

“……!”

양호성이 경계 어린 표정으로 상체를 잔뜩 낮춘다.

카가각! 바닥에 질질 끌리던 츠바이핸더가 놈의 어깨 위로 장전된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경계 태세.

예민쩍은 반응에 씁쓸하게 웃으며, 내가 먼저 대화의 종언을 고했다.

“이제 죽자, 호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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