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1002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5)>
그날 새벽에 가까워진 시각.
이브는 한참 전에 곯아떨어졌고. 나도 슬슬 잠에 들려 하던 그 찰나.
띵동―!
문득, 그 시간에 울릴 리가 없는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곤히 자는 이브에게서 시선을 뗐다.
“…누구야.”
의문 반, 경계 반을 담아 인터폰을 쳐다봤다.
이내 화면에 뜬 얼굴을 보고 얼빠진 탄성을 흘렸고. 홀린 듯이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익.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내뱉었다.
“웬일이냐. 이 시간에.”
찾아온 것은 강서윤이었다.
익숙한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표정으로. 현관 너머에 우두커니 서있다.
“…….”
강서윤은 뭔가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전에 없이 심각한 표정. 입을 꾹 닫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어색한 행색에 고개가 모로 꺾였다.
“……?”
그 분위기는 마치… 그래.
이질적이면서도 뭔가 익숙하다 싶었더니. 기억났다.
바로 직전 회차의 기억에서 찾아냈다.
‘6차 붕괴 직전.’
강서윤이 죽기 직전.
심각한 일을 앞두고 날 찾아올 때. 그럴 때나 보여주던 진지한 표정이다.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하러 왔다.
그것을 깨닫고 얼굴이 조금 굳었다.
“뭐야. 들어오라고 안 하냐? 손님 계속 세워둘 거야?”
강서윤이 짓궂은 미소와 함께 장난을 쳐왔다.
100% 억지웃음이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그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못 속인다.
물론. 알았다 해도 굳이 티는 내지 않았다.
“언제부터 허락 맡고 들어왔다고.”
“들어가도 된다는 소리지?”
“잠가놔도 벽 뚫고 들어오잖아.”
“흐흐. 뭐, 그야 그렇지!”
강서윤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나를 지나쳤다.
그녀가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선다. 신발을 벗고 거실에 한 발짝 디딘다.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는 다시 말을 걸었다.
“붕괴 현장에 출동했던 거. 네 의지로 왔던 거냐?”
멈칫.
강서윤의 행동이 일순 정지했다.
그녀가 날 빤히 쳐다본다. 미간에 골이 슬쩍 패여 있었다.
“…거참. 뜬금없는 새끼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데?”
“그냥. 개인적으로 이유가 궁금할 뿐이야.”
“어. 맞아. 내가 원해서 갔어.”
“흐음.”
난 또. 그렇다면 다행이다.
혹시나 장수혁한테 뒷조사의 덜미라도 잡혔나 싶었다. 놈이 굳이 강서윤을 콕 집어서 현장에 데려갔다면, 그런 정황을 의심해 볼 만했다.
내 표정이 사뭇 심각해져서 그런가. 강서윤이 머리를 긁적이며 추가 설명을 했다.
“아니, 원래도 긴급 출동 대기하고 있었긴 했는데. S급들 본격적으로 출동하기도 전에 네가 게이트를 닫아버렸잖아?”
“그랬지.”
“그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후 대책반에 꼽사리 껴서 찾아간 거야.”
“그랬던 거군.”
“그랬던 거지.”
강서윤이 장수혁과 함께 사후 대책반으로 출근한 전말은 그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슬쩍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찾아왔던 거냐.”
“…왜는. 왜일 거 같냐?”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지.”
“네가 무릎이라도 까졌을까 걱정돼서 갔다고 그러면. 믿을 거냐?”
“역시 그랬군. 하여간 식을 줄 모르는 이놈의 인기란.”
“푸하, X발. 징그러운 새끼!”
강서윤은 악동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그쯤에서 눈에 힘을 줘서 강서윤을 노려봤다.
개소리 그쯤하고 진짜 이유나 뱉어라. 그런 압박이었다.
“아하하… 뭐, 여러 이유가 있었어. 복합적이야 좀.”
강서윤은 대답을 아꼈다.
그녀는 심지가 곧은 사람이다. 일단 말 안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을 테지.
“하필이면 장수혁과 같이 찾아왔던 거. 관련이 있냐?”
“…흐응. 글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습적으로 찔러봤지만. 강서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쳤다.
나는 그쯤에서 체념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야밤에 찾아온 이유는 뭐냐.”
“아니.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내가 중요한 걸 안 물어봤다 싶어서.”
“중요한 거?”
강서윤이 바로 본론부터 꺼낸다.
빙빙 돌아가길 싫어하는 그녀답다. 난 그녀의 이런 직선적인 점이 좋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뭘 물어보려고.”
“너는 회귀자니까, 지금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전부 알고 있는 거잖아?”
“전부는 아니고. 내 주위의 확정성 사건들 몇 개만.”
“나 언제 죽어?”
“…….”
이건 좀 너무 직선적이라 당황스럽네.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그게 웃겼는지 강서윤이 실실 웃었다.
“푸흐흐. 아니! 생각해 보니까 세상이 곧 꼼짝없이 처망한다는데. 그러면 내가 언제까지 살지, 궁금할 법도 하잖아?”
“…그야. 뭐.”
“전에는 그쪽 얘기를 이 악물고 피했지? 내가 못 물어보게 하려고. 일부러.”
정답이었다.
정곡을 찔리자 더더욱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녀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아주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럼 말이야. 일단 이거라도 대답해 주라.”
“뭐냐.”
“내가 죽는 건… 확정성 사건이야?”
“…….”
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서윤은 내 대답이 없어도, 곧 알아서 깨달았다.
내가 거짓말을 잘 못 하는 것. 이십년지기 친구인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안다.
“…….”
“…….”
내가 완전히 입을 닫아버렸다.
그것부터가 이미, 그녀의 죽음이 근 시일 내에 확정되었음을 암시했다.
“응. 그래. 일단 그건 알겠고.”
강서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입술 끝이 살짝 떨리고 있다. 예상은 했어도 역시 충격을 받은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움을 숨긴 채, 짐짓 유쾌한 어조로 물어왔다.
“그래서. 어? 언제 죽는데? 응?”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뭐어?”
“확정 아니라고. 그래서 언급을 안 한 거야. 단정 짓지 마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강서윤의 눈썹이 슬쩍 말려 올라갔다. 어이가 없다는 행색이다.
“참나. 이제 와서? 발뺌하기엔 좀 늦었지 않냐?”
“발뺌이 아니야. 진짜다.”
“아니 이 새끼 진짜! 구질구질하게 왜 이래?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는데!”
전 회차.
혹은 2회차 전의 내가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아마 나도 주저 없이 이렇게 말했을 거다.
‘넌 정확히 12월 8일. 6차 붕괴 언저리에 죽는다.’
시체는 손톱 쪼가리도 남기지 못하도록 갈가리 찢긴다. 처참하고. 비참하고. 참혹하게. 몇 번이고.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개죽음을 당하지.
그게 빼도 박도 못할 네 운명이다…라고.
“아니야. 아직이야.”
하지만 1002번째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내 시선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브 쪽으로 향했다.
반쯤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었다.
“분명히. 이번엔 가능성이 있다.”
이브의 곤히 자는 얼굴을 필사적으로 훑어봤다.
거기에 숨어있는 해답이라도 찾아내듯.
“정확히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전생에서, 분명히 그 가능성을 보고 왔다.”
“…가능성?”
“믿어줘.”
당연히 죽었어야 할 이세라가 살아있었다.
그러니까 이브가 있는 지금이라면 혹시 모른다. 당연히 죽어야 하고. 실제로 수없이 죽어버렸던 서윤이라도.
어쩌면, 솟아날 구멍이 있을지 모른다.
“…믿어줘.”
재차 강하고 힘 있게 강서윤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애써 유지하던 미소가 사라지고,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찡그린 표정을 짓는다.
“뭐 어쩌게. 네가 구해주려고? 나를?”
“그래.”
“지금까지 네가 수아한테 했다는 것처럼? 나도 그래 주겠다고?”
“…그래.”
“그게 가능해? 정말로? 둘 다 구할 수 있겠어? 병신 같은 한정용 주제에?”
거기선 잠깐 대답하지 못했다.
할 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느라 그랬다.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몰라.”
이전의 나는 확실히 알았다.
나는 강서윤을 절대 구할 수 없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래도. 나는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한테는 이브가 있다.
이세라는 살아났다. 나도 이번 생의 흐름을,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 그래도.”
그래도.
확신할 수 없으니 도전을 안 한다는 게 아니다.
확신할 수 없으니까 도전하는 것이다.
“가능성이 0만 아니면 돼.”
1%… 아니. 0.1%라도 괜찮다.
1000번을 넘게 도전했다. 0.1%의 벽은 이미 돌파했다.
그 희박한 확률의 무게를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이미 지금까지도. 나는 그렇게 해왔다. 그러니까.
“0만 아니라면. 도전할 가치는 충분하지.”
이번이 안 된다면 다음에라도.
다음이 안 된다면 그다음. 아니면 그다음에라도.
그리하여 마지막의 마지막엔, 반드시.
“널 구해줄게. 내가.”
여기만큼은 확신에 차서 선언했다.
강서윤의 찡그린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습기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야. 기억나냐? 초등학교 때. 너 전학 온 바로 다음 날… 수학 시간 말이야.”
익숙한 서두였다.
익숙한 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넋두리.
‘그 상황이구나.’
지나간 전생들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 구절의 반복이다.
그 상황이 이번에도 되풀이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기억난다.”
어차피 이 흐름이 됐으면 막을 수 없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제 강서윤은 제 할 말만 계속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다만 긍정해 줬다.
“우리가 2학년 때였지. 난 구구단 8단을 패 죽여도 못 외웠다. 선생한테 존나게 처맞았어.”
“흐흐. 맞아 맞아. 진짜 기억하네?”
아는 체를 하자 강서윤은 반색했다.
볼에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는데. 입은 웃고 있다. 그래서 더욱 슬퍼 보인다.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대충은 기억하지.”
사실 하나도 기억 안 난다.
내가 기억하는 건 영원회귀 후. 지금처럼 강서윤이 들려줬던 추억담을 기억하는 것뿐이다.
나는 그녀가 해줬던 얘기들을 떠올리며 계속 말했다.
“그래서 방과 후에 나머지 공부를 했다. 열두 시에 끝난 학교에 다섯 시까지 남아있었어.”
“아하하. 맞아. 지금 생각하면 선생도 진짜 지독한 새끼였어. 아주.”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남았다. 일주일 내내 남았어. 심지어…….”
“심지어 구구단 시험은 진작에 끝났는데도. 남아서 공부했었지?”
강서윤이 내 말을 가로채 버렸다.
멋쩍게 입을 다문 나 대신, 그녀가 계속 말했다.
“구구단 따위 이제 검사도 안 하는데. 선생이 남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넌 일주일 내내 남아서, 깜지가 새까매질 때까지 달달 외워가면서… 결국엔, 8단을 외웠잖아.”
“…내가 그랬던가.”
“그랬다구! 기억난다며, 새꺄!”
“그렇게까지 디테일하게는 기억 안 나.”
“푸흐흐!”
강서윤이 짐짓 즐거운 듯이 싱글거렸다.
아마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발갛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맞아. 넌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새끼였다니까.”
“그런 새끼가 어떤 새끼냐.”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병신 또라이 같은 새끼지. 뭐겠냐!”
“신랄하구만.”
“흐흐. 팩트잖아!”
강서윤은 특유의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지금껏 참고 있던 내 욕을 해서 그런가. 어딘가 후련한 기색이다.
“그런 너를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앵간히 빡통인갑다, 했을 테지.”
“아하하! 뭐, 그것도 맞지. 그것도 맞고…….”
강서윤이 박장대소하며 맞장구를 친다.
참고로 강서윤은 구구단 나머지 공부는 고사하고, 초등학교 내내 학년 톱클래스의 성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피지컬도 좋아 뇌지컬도 좋아. 하여간 세상은 존나게 불공평하다.
“쟤 진짜 멋있는 애다… 그렇게 생각했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강서윤이 한마디 했다.
그래.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다음 주에, 내가 바로 너한테 말 걸었잖아. 그건 기억나?”
“그래. 기억난다.”
“진짜? 내가 뭐라 그랬는데.”
“같이 축구나 하자. 바보야. 그랬었지.”
“오올? 이 새끼! 진짜 기억하는구나! 인정!”
슬슬 길었던 추억담의 끝이 보인다.
강서윤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내 시선을 슬쩍 피하며 중얼거렸다.
“그, 그러니까 뭐, 사실 그때부터 아니었을까? 18년이면 엄청 오래됐네.”
“뭐가.”
“내가 너… 좋아하기 시작했던 거.”
“…….”
거 봐라.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강서윤의 고백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중했다.
“있잖아. 들었어?”
하렘 만화 주인공 마냥 ‘어, 뭐라고?’식의 모르쇠 사태를 방지하려는 건가.
“나. 너 좋아한다고. 한정용.”
강서윤은 한 번 더 확실하게 말했다.
엄청나게 쪽팔려 하면서도. 완전히 못을 박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