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72화 (72/235)

72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8)>

갈고리 사냥꾼에게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다.

놈은 1 대 1 상황만 봤을 때, 사냥꾼 중에서 가장 강하다.

―하아아앗!!

“……!”

내가 많이 약하던 초창기 전생만 봐도 증명된다.

다른 사냥꾼을 다 잡아냈는데, 마지막 수문장인 갈고리 사냥꾼에게 죽었던 적도 숱하게 많다.

이놈은 1 대 1에 한해선, 그야말로 뉴비 절단기 그 자체다.

―오오오오오!!

“…….”

까다로운 점은 바로 사용하는 무기.

양손에 두 자루, 그리고 입 속의 한 자루까지.

세 자루나 되는 사슬낫에서 온다.

“후우……!”

채채챙!

변칙적인 궤도의 기습, 좀처럼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긴 리치.

사냥꾼 본인이 사슬낫을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쓰기 때문에, 그 까다로움이 폭증한다.

게다가 하나 더.

―그우우욱!

쿠르르륵!

갈고리 사냥꾼이 입에서 뽑아낸 제3의 사슬낫. 저기엔 특수한 스킬이 하나 있다.

마침 사냥꾼이 그것을 사용하려 했다.

―연환윤무……!

곡선의 참격들이 정신없이 뒤섞이는 와중, 사냥꾼이 스킬을 영창했다.

놈의 입속 사슬낫이 시커먼 기운에 물든다. 허공에서 연신 흐느적거리다가, 슈르륵!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내 목으로 쇄도했다.

“쯧.”

가능하면 저게 발동되기 전에 숨통을 끊어버리려 했는데, 일단 그건 실패했다.

나는 혀를 낮게 차며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콰자작! 나를 빗겨나간 어둠의 사슬낫이 그대로 바닥에 박혀 들었다.

―춤춰라!!

콰드드득!

사슬낫이 수십 개로 분열되어 바닥을 뚫고 솟아난다. 그것들이 살아있는 촉수처럼, 일제히 내 급소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주 지랄이 났군. 나는 혀를 차며 블러드 스트림을 발동했다.

“후우……!”

수많은 사슬낫의 세례가 전방위에서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공중을 종횡무진하며 그것들을 이리저리 피해냈다.

키키킹! 날카로운 금속음이 연신 온몸을 두들긴다.

―그 갑옷, 단단하군.

희미한 파공성이 들리는 찰나,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뒷목을 핥았다.

생각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스킬 발동: 텔레포트]

순간 메스꺼운 느낌이 전신을 강타한다.

시야가 격변했다. 나는 다시 지상으로 순간이동 해있었다.

―후웃!!

동시에 콰드득! 내가 방금까지 떠 있던 곳에 수많은 사슬낫이 일제히 쇄도했다.

서로 얽히고설켜, 미친 듯이 허공을 조여든다.

―이 또한 피해냈군,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건만.

잠깐이나마 내 배후을 점했던 사냥꾼이 중얼거렸다.

안타까움, 그리고 적잖은 감탄이 어려 있었다. 놈은 나와 싸우는 와중에도 나의 압도적인 무력에 감탄하며, 전율하고 있었다.

‘이해가 안 된다니까.’

놈은 절대 날 이길 수 없다.

갈고리 사냥꾼은 그걸 이미 알고 있다.

‘X같은 전투광 새끼들.’

비장의 일격, 비장의 스킬.

밑천은 이미 진작에 모두 드러냈다. 그럼에도 내게 유효타를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

그런데도 놈은 계속해서, 구질구질하게 내게 덤벼든다. 왜?

‘자기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정확히는 자기가 어디까지 한정용의 무력을 뽑아낼 수 있는지.

나를 얼마나 진심으로 싸우게 만들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한 거다.

‘곧 뒤질 놈이 그건 알아서 뭐 하려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전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죽기 전에 똥꼬쇼를 성대하게 하고 싶어서, 나한테 깽판을 치는 거다.

나는 차라리 살기 위해 싹싹 빌고. 개처럼 기고. 개발악하는 쪽을 선호한다. 혈액 사냥꾼처럼.

잘 죽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내 가치관으론 저런 새끼들이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종자들이다.

―아까부터, 빈틈이 너무 많군!!

잡생각이 너무 깊어졌음인가.

갈고리 사냥꾼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방심은 금물이다, 붉은 사냥꾼!

촤르르륵!

교묘하게 파고든 사슬낫 하나에 왼팔이 칭칭 묶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에 비행속도가 순간 급격하게 낮아졌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이면, 갈고리 사냥꾼에겐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다.

―글레이프니르……!

사냥꾼이 내게 쇄도하는 것과 동시, 허공에 거대한 문이 생성되었다.

쿠구구구! 허연 대리석 문이 굉음과 함께 열린다. 그 안에는 시커먼 공허가 꿈틀거렸다.

‘이건…….’

지금까지의 공방이 소꿉장난처럼 보일 정도로, 압도적 기운을 머금은 대문. 나는 그것의 정체를 깨닫고 온몸을 바싹 굳혔다.

전생에서 몇 번이나 당했던 패턴이 불현듯 떠오른다.

‘위험하다.’

나는 황급히 백 스텝을 밟았고.

쿠르르르! 문 안의 암흑 속에서 시커먼 사슬 다발이 쏟아져 내렸다.

‘역시……!’

예상대로의 진행. 수없이 겪었던 전개였다.

저건 피할 수 없다. 내 속도가 느려서가 아니고, 그냥 시스템적으로 무조건 피할 수가 없다. 반드시 적중하는 타겟팅 스킬 같은 거니까.

그러니까…….

‘스킬 발동.’

콰드득!

시커먼 사슬이 내 온몸을 단단히 감싼 직후. 아니, 거의 동시였다.

나는 득달같이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 발동: 디스펠(dispel)]

채채채챙!

청명한 소리가 잇달아 울리며 암흑의 사슬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러면 이젠, 반격의 시간이다.

‘눈으로 보려 하지 말고.’

생각조차 하지 마라.

그러면 무조건 반응이 늦는다.

수십 번의 반복에 따른 조건반사. 그저 본능에 각인된 프레이즈를 따라,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킬 발동: 스파이럴 블러드]

콰드드득!

주먹을 중심으로 맹렬히 모여드는 혈류의 나선.

나는 순식간에 몸을 반 바퀴 돌렸고, 그 회전력을 그대로 실어 주먹을 내질렀다.

―…아아.

갈고리 사냥꾼이 눈앞에 있다.

배후로 습격해 오던 그의 얼빠진 표정이 보인다.

놈의 안개처럼 희미한 얼굴이 번쩍, 새빨간 핏빛에 파묻혔다.

―컥……!

사냥꾼의 단말마가 도중에 끊어진다.

콰콰콰쾅!! 혈류의 폭발음이 우악스럽게 놈을 집어삼킨다.

순간 시야 전체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래. 이 정도면 만족하냐?”

어쨌든, 이쯤이면 예의 차려줄 만큼 차려줬다.

갈고리 사냥꾼은 민간인을 단 하나도 죽이지 않은 던전 마스터. 기특해서 장단 맞춰주는 건 여기까지다.

“그쯤하자.”

털썩. 갈고리 사냥꾼이 그대로 쓰러졌다.

나는 발끝으로 툭툭 차서 놈의 신형을 뒤집었다. 놈의 오른쪽 상체가 둥그렇게 뜯겨나가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갈고리 사냥꾼의 머리 위로, 발을 한껏 쳐들었다.

“유언.”

밟기 전에 마지막으로 묻는다.

갈고리 사냥꾼은 날 보지 않았다. 공활한 겨울 하늘에 시선을 박은 채, 피식 웃는다.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나도 사냥꾼의 덫 안이었다.

“…….”

―발악해 봐라, 사냥꾼. 해줄 말은 그것뿐이다.

놈은 전번 회차와 똑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로선 알 길이 없는 의미심장한 발언. 언뜻 나를 조롱하는 듯하기도 하고, 동정하는 듯하기도 하다.

이어질 최후의 멘트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고마웠다. 지옥에서 다시 보지.

“오냐.”

퍼억!

발을 굴렀다.

피와 살, 머리뼈와 눈알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33던전 ‘사냥꾼 도시’의 던전 마스터가 모두 세계와 단절되었습니다.]

갈고리 사냥꾼까지 숨통을 끊은 순간, 어김없이 붕괴 종식의 패널은 떠올랐다.

슈르륵, 혈천갑을 해제했다. 갑주는 새빨갛고 꾸덕한 액체로 녹아들었고, 그것이 뭉친 곳에는 언제나처럼 이브가 우거지상이 되어 등장했다.

“우으… 아빠아, 피곤해.”

“고생했다, 쉬어라.”

“으응. 잘자, 아빠아.”

이브는 내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 이젠 이 프레이즈도 익숙해지려 한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무섭다.

[게이트가 힘을 잃고 소멸합니다. 던전의 붕괴가 종식됩니다.]

그다음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상의 시간.

전투 후마다 찾아오는 나른한 탈력감을 느끼며,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보상 관련 패널들을 천천히 읽었다.

[획득할 보상의 종류를 선택하십시오.]

[1. 유틸리티/범위 공격]

[2. 현혹/신체 조종]

[3. 혈질]

[4. 잠입/암습]

[5. 군중 제어/속박]

완전 랜덤으로 지급되는 통상의 던전 보상과 다르게, 33던전은 약간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사냥꾼 5명의 특징을 그대로 빼다 박은 특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한 특성에 맞는 랜덤 보상이 하나 부여된다.

“보자…….”

어쨌든, 이건 또 진득하게 고민을 좀 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잠깐 그 자리에 철퍼덕 걸터앉았다. 그리고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단순 효율만 따지면 역시 혈질이긴 하다만.’

혈질 속성이 붙으면 스킬이든 장비든, 본래 랭크보다 최소 한 단계 이상은 강해진다.

생명력을 담보로 사용하는 구조, 리스크를 짊어진 만큼 그만한 리턴 값이 있는 것이다.

‘다만 혈질 장비는… 두 개 이상을 한 번에 운용하긴 힘들다.’

생명력을 매개로 사용한다는 특성이 발목을 잡는다.

나한텐 이미 혈질 장비 중 최강급인 혈천갑… 이브가 있다. 그러니까 혈질 보상은 일단 선택지에서 제외다.

“2번 4번도 볼 것도 없고.”

잠입과 신체 조종.

이미 관련 스킬 썩어날 정도로 많다.

그리고 잠입은 몰라도, 신체나 정신 조종 쪽은 애초에 크게 사용할 일도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육탄계 헌터이기도 하고, 남의 신체나 정신을 장악하는 건 생각보다 정신력과 마력 소모가 엄청나게 크다.

‘안 그래도 빡대가리인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저걸 골라.’

멀티태스킹 하느라 대가리 터진다.

그래서 할 수 있어도 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10차 붕괴만 넘어가도, 웬만한 던전 마스터는 정신 지배를 완벽하게 걸어도 0.5초면 풀려난다. 노력 대비 성과가 심하게 안 나오는 편.

“그러면 솔직히, 범위 공격 아니면 군중 제어인데.”

범위 공격은 아마도 폭발 사냥꾼의 유산.

그러니 폭발계 범위 공격에 관한 아이템이나 스킬을 받을 거다.

‘범위 공격 스킬이 거의 없어서 좀 탐나긴 하는데.’

문제는 일회용 소모성 아이템이 나올 확률도 있다는 것.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 높다. 지금껏 1번 특성을 5번 정도 골라봤는데, 아직 광역 스킬을 한 번도 못 받아본 내가 산증인이다.

‘군중 제어는 갈고리 사냥꾼의 유산, 이번에도 속박과 관련된 뭔가가 나올 거고.’

군중 제어의 실용성은 ‘절대 영도 영역’ 스킬을 써보면서 확실히 느꼈다.

사실 그것도 10차 붕괴쯤 오면 던전 마스터에겐 크게 쓸모없겠다만. 광역 스킬의 유용성은 어차피 잡몹 처리에서 오니까 상관없다.

‘이건 스킬이 광역 확정이 아닌 게, 좀 걸리는군.’

단일 개체 군중 제어는 이미 ‘천라’라는 최강급 스킬이 있다.

내가 주전력으로 사용하는 마법계 스킬은 많아 봐야 5개에서 10개 사이. 머리가 안 따라줘서 최강급 스킬만 빼고 대부분은 방치된다.

갈고리 사냥꾼이 과연, 실용성 면에서 천라를 뛰어넘는 단일 군중 제어를 뱉어낼까?

‘내 생각엔 아닌데.’

결국, 현 상황에서 5번을 선택하면 최상의 결과이거나 완전 꽝이거나. 둘 중 하나다.

약간 도박성이 있다는 소리다.

“음.”

한참 심사숙고한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했다. 나는 패널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패널을 누르자 시스템이 곧장 반응해 왔다.

[‘군중 제어/속박’ 특성 보상을 선택합니다.]

결국 나는 군중 제어 보상을 선택했다.

그래, 전부터 나는 확실히 느끼고 있다. 이번 회차의 보상 뽑기는 뭔가가 있다.

‘처음 보는 좋은 스킬이 많이 쏟아졌었지.’

이번에도 뭔가 그런 기적이 일어나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도박을 감행해 봤다.

안전빵을 선호하는 나로선 좀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꽝이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까짓 꽝, 한두 번 나와 보나.

어차피 1번 특성도 꽝이 나올 확률이 있는 건 매한가지다.

기왕 도박하는 거면, 최소한 당첨의 리턴 값이 높은 쪽이 맞다고 판단했다.

‘뭐 주냐, 이번엔.’

약간의 기대를 담아 패널을 쳐다봤다.

약간은 개뿔, 솔직히 존나게 기대하고 있었다.

[던전 마스터 ‘갈고리 사냥꾼’ 사냥 보상을 획득합니다.]

[스킬 ‘글레이프니르’를 획득하셨습니다.]

“오.”

드물게도 내게서 리액션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놀라기도 했고, 솔직히 기쁘기도 했다.

그것은 분명히 기억에 없는 스킬. 이번 생에서 처음 받아보는 스킬이었다.

‘스킬 확인.’

나는 부푼 기대를 끌어안고 현자의 눈부터 발동시켰다.

[스킬 정보]

[스킬명: 글레이프니르 (A급)]

[타입: 즉발형/군중 제어]

[효과: 명계의 사슬을 소환하여, 최대 5초까지 적을 속박한다.]

[효력 범위: 반경 100m, 동시 최대 10인]

[상세: 제33던전의 던전 마스터, ‘갈고리 사냥꾼’ 처치 보상 중 하나. 최대 10인까지 동시에 속박할 수 있는 명계의 사슬을 소환한다. 이 스킬의 대상이 되면, 반드시 속박된다.]

읽다 보니 눈을 의심해야 했다.

그 부분을 몇 번이고 돌려 읽었다. 물론 그런다고 표기된 부분이 변하진 않았다.

“…대상이 되면, 반드시 속박?”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이건 적중률이 100%란 말인가.

타기팅 스킬. 일단 사용하면 무조건 맞는다? A급 중에서도 최상급 CC기인 천라조차도 그런 개사기 옵션은 없는데?

‘광역기… 라기엔 10명 한정이라 좀 아쉽다만.’

그래도 내 예상대로의 효과라면 굉장히 훌륭한, 아니.

A급 최상급의 스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준S급이었다.

“실전 사용이 기대되는데.”

나는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투학! 지면을 박차고, 이브를 안아 든 채 하늘로 솟구쳤다.

‘노원구까지는 또 언제 날아가냐.’

속으로 잠깐 푸념했지만, 내까짓 게 푸념해서 뭐 어쩔 텐가.

마력이나 한껏 불살라 비행에 박차를 가했다.

“…….”

폭발로 녹아내리고 그림자에 꿰뚫리고, 혈탄에 벌집이 되고 얼굴 가죽을 짜깁기 당하고.

쑥대밭이 된 강서구가 내 아래로 빠르게 스쳐간다.

“…….”

파괴된 교량과, 쑥대밭이 된 시설물.

그 사이 쓰레기더미처럼 널려있는 사람들의 시체.

나는 그것들을 쳐다보며, 이번에도 사망자의 숫자를 가늠해 봤다.

[최근 2시간 내 사멸한 생명 반응: 801,635 개체]

현자의 눈에 따르면, 80만 정도가 이번 붕괴로 폐사했다고 한다.

나한테 있어서 그건 좀 의외인 결과였다.

“…생각보다 잘 막았네?”

긍정적으로 의외라는 소리다.

다른 회차들의 10차 붕괴 평균보다 살짝 많은 수준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