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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65화 (65/235)

65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1)>

내가 오늘 세상에서 삭제해 버린 조직. 레드 스컬.

놈들의 본부였던 폐건물을 빠져나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빠아. 아줌마는?”

꾸벅꾸벅 졸던 이브가 말을 걸어왔다.

시선을 슬쩍 내렸다. 게슴츠레하게 뜨인 새빨간 눈동자가 빤히 올려다보고 있다.

“아줌마, 두고 가?”

아줌마.

이브가 그렇게 부르는 사람. 세상에 딱 한 명 있다.

“…이세라 말이냐.”

나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뭐, 얘가 외형대로 진짜 애새끼도 아니고. 굳이 하늘나라 갔네, 몇 밤 자고 오네 따위의 개소리를 만들어낼 필욘 없겠지.

“아줌마 죽었다.”

나는 담담하게 사실을 입에 담았다.

비몽사몽하게 듣던 이브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놀란 듯하다.

“…어어? 죽어? 아줌마, 없어졌어?”

“그래. 죽었어. 더는 없어. 하지만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지.”

“으엥? 아빠! 아줌마 먹어버렸어?!”

“마지막은 그냥 개소리다. 그것만 흘려들어.”

“으, 으응…….”

이브는 이해가 안 되는지, 내 품에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후 1개월 상대로 너무 마니악한 농담을 쳤나. 스스로의 언행을 좀 반성하고 있자니.

이브가 긴 침음을 뚫고 퍼뜩, 말했다.

“음… 근데, 아닌데? 아닐 거 같은데?”

“뭐가 말이냐.”

“아줌마 말야! 아직 안 없어졌는데? 안 죽었지 않아?”

“…뭐?”

“으응. 아닌가? 이상하네에.”

그리고 아까처럼, 계속 고개를 이리저리 꼬아댄다.

그렇군. 이브는 지금 내 농담을 이해 못해서 저러는 게 아니었다.

“…….”

아줌마… 이세라가 죽었다. 그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거다.

자연스레 내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이브.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지금 상황에 대한 의문은 일단 제쳐둔다. 그건 나중에 고민한다고 치고.

지금은 우선… 이브가 내뱉은 저 폭탄 발언의 의미.

그게 제일 중요했다.

“으응? 근거? 근거가 뭐야?”

그리고 이브의 대답은 그것이었다.

요놈의 새끼 외계인이 전부터,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가 있군. 이 정도면 뜻 알면서 일부러 저러는 거 맞다니까?

‘딱밤 마렵게 하네. 진짜.’

이마를 짝 소리 나도록 세게 짚는 한편.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해 줬다.

“아줌마가 살아있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는 소리다.”

“으응… 왜? 왜는 없어! 그냥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 거야! 히히.”

2차 고비가 곧바로 찾아왔다.

진짜 딱 한 대만. 딱밤 한 대만 후려치면 안 될까?

저 순백색 덥수룩한 앞머리를 들추고, 하얗고 반들반들한 이마빡에 중지 한 대만 튕기고 싶은데. 과한 희망인가?

“봐라. 이세라… 아줌마는 지금 주변에 없지?”

“으응. 없네!”

그래. 어디 지금 아쉬운 게 이브냐. 나지. 인내심의 잔고를 탈탈 털어냈다.

이를 악물고 차근차근 해답을 찾아나갔다.

“근데 이브. 너는 아줌마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

“으응. 아줌마는 분명히 살아있어!”

“그건 이상하네. 주변에 아줌마가 있지도 않은데. 살아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으응? 눈빛이야, 눈빛!”

봐라. 고생 끝에 낙이 오는구나.

이제야 좀 쓸 만해 보이는 키워드가 하나 등장했다.

“눈빛이라고?”

“응! 아줌마, 항상 나 째려보던 기분 나쁜 눈빛! 그 무서운 눈빛이 지금도 느껴진단 말이야!”

이브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본인이 언급했던 ‘무서운 눈빛’을 떠올리듯이.

‘하지만 눈빛이라니.’

이세라는 장님인데?

그녀는 미래시를 사용하는 대가로, 양쪽 눈두덩을 안구째로 완전히 도려내진 걸로 아는…….

“…아.”

생각하던 도중에 깨닫는다.

그래서 그대로 중얼거렸다.

“미래시.”

미래시의 ‘시’는 무얼 뜻하지? 볼 시(視). 시선이다.

미래를 보는 시선.

‘게다가, 그 미래시 스킬의 진짜 이름도 분명.’

<천칭의 눈>.

내가 가진 ‘현자의 눈’과 동급. 그리고 입수경로도 거의 비슷한 S급 스킬.

영원회귀 100개 던전 중 가장 출현율이 낮은 제2던전. ‘연옥의 지평선’의 던전 마스터가 극악의 확률로 드롭하는 세 개의 보상 중 하나.

현자의 눈. 여신의 눈.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바로 천칭의 눈.

‘눈빛.’

바로 이거였구나.

이브가 유독 이세라한테만 까칠하게 대했던 이유.

‘그 눈빛을 말하는 거였어……!’

이브는 천칭의 눈이 발동되는 감각을 계속 느꼈다.

이세라가 무의식중에 지속적으로 쏘아 보내는… 자기 미래를 염탐하려는 그 끈덕진 시선.

그걸 계속 느끼고 있었던 거다.

“…이브.”

그리고 그 미래시의 기분 나쁜 시선이 지금도 느껴진다는 것.

그게 의미하는 바는 결국.

“아줌마의 시선. 어디서 느껴지고 있냐.”

살아있다.

이세라가 정말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부릅뜬 눈으로 이브를 쳐다봤고. 이브는 내 이글거리는 시선에 흠칫거리는 한편,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저어기.”

퍼뜩! 손가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타고 내려왔던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출입구. 정확히는 지하로 이어지는 하강 계단 쪽이었다.

“아래쪽이야, 아빠아. 음, 아마도? 맞을 거야! 응.”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추신을 붙이는 이브.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건 딸기우유 5개… 아니, 10개도 아깝지 않은 굉장한 조력이다.

타타탁! 비상계단 방향으로 곧장 질주했다.

“으햑!”

갑자기 속도를 올리자 이브가 아찔한 탄성을 냈다. 그녀가 내 품으로 더욱 파고들어 몸을 둥글게 말았다.

나는 단숨에 비상계단 출입구까지 도달해, 콰앙! 문을 발로 차 박살 내버렸다.

“이대로 내려간다. 방향을 계속 가리켜줘. 이브.”

“으응. 그럴게!”

이브에게 간단한 지시를 내리고, 곧장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이 건물의 지하는 5층까지 있다. 지하 1층은 식당 칸. 나머지는 전부 주차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선 지하 1층에 도착했다.

“이브. 여기냐?”

“으음… 아니?”

“그래. 계속 감각을 집중해라. 좀 더 빨리 간다.”

“꺄우!”

층을 내려갈 때마다 이브에게 물어보고. 부정이 나오면 곧장 한 층 더 내려간다.

그렇게 세 번을 반복했다.

“응! 여기야! 이쪽 어딘가야, 아빠아!”

네 번째.

지하 4층에서 드디어 이브의 반응이 달라졌다.

‘여기 어딘가……!’

콰앙! 이번에도 문은 발로 차 박살 내버렸다. 지하 4층 주차장으로 곧장 진입한다.

그리고 일단 코부터 틀어막았다.

“이런, X발.”

코를 막은 이유는 당연히 진동하는 악취 때문이었고.

그 악취는, 지하 주차장 전체에 즐비한 대량의 시체들에서 나왔다.

“푸하아! 아빠아! 여, 여기 냄새나! 냄새 엄청 나!!”

“그러게 말이다.”

온갖 시체들이 한 데 뒤엉켜 썩어가고 있다.

썩은 정도가 시체마다 다른 걸 보아 사망 시각은 제각각. 구더기와 파리, 기타 날벌레가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우글댄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나한테서, 기어코 욕을 뽑아내는 광경이었다.

“…며칠 새에 많이도 죽였구만. 박상아.”

이 광경은 당연히 전 건물주, 레드 스컬이 연출한 것.

놈들에게 반항했던 또 다른 조직원들. 혹은 레드 스컬의 배신자. 제들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일반인들. 그 외 기타 등등이겠지.

‘쓰레기장이었군. 여긴.’

좀 더 정확히는, 시체 투기용 쓰레기장.

지하 4층의 정체는 그것이었다.

“이게 몬스터지, 별게 몬스터냐고.”

어이가 없어서 잠깐 중얼거렸다.

어쨌든 이 시체의 산 어딘가에 이세라가 있다. 나는 퍼뜩, 내비게이션에 시선을 내렸다.

“이브. 방향.”

“으응… 응! 저기! 왼쪽!”

이브의 손가락 방향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우지직, 뿌득.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밟힌 시체들의 살점이 짓물러 터진다.

“…쓰읍.”

익숙하기야 하다만 좋은 기분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을 뿐이다.

“으응, 아빠! 여기! 이 주변이야!”

이브가 손발을 파닥거리며 외쳤다.

일대를 둘러봤다. 눈동자에 푸른 마력이 깃들며 현자의 눈이 발동되었다.

[반경 10M 내 생명 반응: 3개체]

그리고 확실해졌다.

이브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생명 반응이 3개체. 나와 이브를 제외하고도 하나가 남는다.

여기 어딘가, 반경 10미터 내에… 이세라가 아직 살아있다.

‘현자의 눈.’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스캔 대상과 방식을 좀 변경한다. 살아있는 인간의 생체 마력을 전력으로 수색했다.

‘좀 더 세세하게.’

시체들을 훑어보는 시선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스르륵. 미약한 푸른 아지랑이가 시체의 산에서 흘러나온다.

“…찾았다.”

단숨에 그쪽으로 다가갔고. 쌓여있던 시체들을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덥석. 깊숙이 파묻혀 있던 여린 팔뚝 하나를 힘껏 쥐었다. 그리고 김장철 배추 뽑아내듯, 단숨에 뽑아냈다.

쑤욱. 묻혀있던 이세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

나는 입을 꾹 닫고, 이세라를 유심히 살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투성이. 팔과 다리가 한 짝씩 잘려있다.

치명상은 복부다. 배 중앙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있었고. 거기서 창자가 살짝 비져 나왔다.

“못 본 사이 많이 변했구만. 이세라.”

얼굴은 거의 짓뭉개지다시피 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시커먼 안대도 갈가리 찢어발겨져, 흉터가 자글거리는 눈두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으아, 아줌마… 아파 보여!”

이브의 말대로였다.

아주 많이 아파 보인다.

‘이세라의 생체 마력을 전에도 스캔한 적이 있으니 망정이지.’

신체 훼손이 워낙 심해서, 겉만 봐서는 이세라인 것도 못 알아볼 뻔했다.

뭐, 외형이야 어쨌든. 나는 그녀의 목에 손가락을 갖다 댔고.

“…살아있다.”

미약한 맥박이 뛰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거짓말 안 하고 이대로 1분… 아니, 30초만 더 있었어도 숨이 끊어졌을 거다. 사실 지금 당장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숨이 붙어있다.

“이래서, 였구나.”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멍하니 이세라를 쳐다보던 시선이 퍼뜩, 이브에게로 향했다.

‘이세라가 보지 못하는 미래.’

조건은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가지가 있었지.

하나는 자신이 죽는 미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브. 이브가 관련된 미래.

‘이래서, 안 보인 거였어.’

자신이 꼼짝없이 죽는 미래가 아니라. 이브 덕분에 살아나는 미래였으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보이지 않은 거다.

“바뀌었어……?”

나는 미약한 온기가 남아있는 이세라의 몸을 연신 매만졌다. 직접 보고도, 만지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

‘처음이다.’

이세라가 9차 붕괴 이후에도 살아있다.

당연히 죽을 줄 알았다. 그래서 수색조차 안 하려고 했는데.

‘이브!’

이번에도 또다.

변화의 중심엔 언제나 그녀가 있다.

이브가 나서서, 1001번째 회귀자인 나조차 체념해 버렸던 운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어 버렸다.

‘아니. 일단 지금은……!’

한시가 급하다.

일단은 자잘한 건 넘어가자. 이세라가 살아만 있으면 됐다.

살아만 있으면. 몸은 내가 얼마든지 고쳐줄 수 있어.

“좀 따끔하다.”

나직이 통보하고, 이세라의 가슴 위로 손을 갖다 댔다.

마음속으로 빠르게 스킬을 영창한다. 묵직한 마력 파동이 퍼져나갔다.

[스킬 발동: 리스토레이션]

파지직!

이세라의 신체 표면으로 스파크가 치달렸다.

이내 그녀의 환부로 푸른 마력 덩어리가 이글거리나 싶더니. 상처가 부글부글 끓으며 순식간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끄윽?!”

움찔.

이세라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아… 아, 아아!”

문득 그녀의 입이 쩍 벌어졌고. 아찔한 탄성을 쏟아냈다.

그리고 직후.

“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짐승 같은 통곡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버둥버둥. 이세라가 내 품에서 온몸을 경련했다. 괴로움에 미친 듯이 발버둥 친다.

텅 빈 그녀의 눈동자에서 피 섞인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으, 으아… 사, 살려……! 그만! 그만해애애! 죽여! 차라리 죽여줘! 제발!!”

이세라는 정신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 나도 저거 무슨 느낌인지 안다.

그래서 차마 엄살 피우지 말라고는 못 하겠다.

“…쓰읍.”

다만 이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딱히 없고. 그렇다고 이세라의 요청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나는 그녀를 더욱 힘껏 껴안았다.

“아, 아……?!”

그러자 이세라의 경련이 살짝 줄어들었다.

어쨌든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그냥 다독여 주는 것뿐이다.

“괜찮아. 곧 괜찮아질 거다. 날 믿어라, 이세라.”

이세라의 귀에 최면을 걸 듯이 계속 속삭였다. 그리고 등을 쓸어줬다.

그러자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그녀의 몸이, 눈에 띄게 안정을 찾아갔다.

“으, 으… 으으……!”

…이거, 내가 워낙 세게 껴안아서 강제로 떨림이 멎은 건가?

사실 그럴 수도 있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추, 추워… 무서워. 아파… 누, 누가, 누가 좀……!”

“괜찮아. 곧 괜찮아진다. 내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

“…아아, 으…….”

이세라는 무의식중에도 내 품을 점점 파고들었다.

나는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1분 남짓한 시간이 더 흐른 뒤. 마침내 이세라의 온몸이 원상복구 되었다.

“…하아.”

뜨거운 날숨이 이세라의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질끈 감겨있던 이세라가 천천히 눈을 떴다. 물론 눈동자는 없고, 텅 비어 시커먼 눈두덩이 내 쪽을 빤히 주시했다.

“어. 정용, 씨?”

아직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이세라.

그녀가 홀린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중얼거렸다.

“여기, 지옥……?”

꼴에 전 S급 헌터라고. 자기가 천국 못 갈 팔자인 건 숙지하고 있구만.

일류 헌터다운 반응에 피식, 헛웃음을 흘렸고.

“맞아. 지옥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이세라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끝으로 슬쩍 훔쳐냈다.

“지옥에 잘 돌아왔다. 이세라.”

그래. 좋지. 이런 긍정적인 예외 사항.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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