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50)>
언젠가 이런 대화를 한 기억이 있다.
대화 상대는 이세라였다. 이세라가 등장했으니, 당연히 배경은 이세라의 칵테일 바.
“저기, 정용 씨.”
“왜.”
시각은 야심한 밤이었고. 수아는 울다 지쳐서 휴게실에서 자는 중이었다.
이 당시 수아는 우울증 비슷한 것에 걸려있었다. 하루 종일 우울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다가, 갑자기 울고. 그러다 지치면 자곤 했지.
“지금은 좀 바쁘다. 작업 끝나면 다시 불러.”
나는 말단부터 썩어가는 오른팔을 부여잡고. 절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푸르딩딩한 팔뚝을 내려다본다. 심호흡을 빠르게 마친다.
“후우, 후……!”
꾸드득.
이빨과 왼손으로 오른팔 상박에 고무 끈을 힘껏 조였다.
이런 건 괜히 망설였다간 한도 끝도 없다. 피가 안 통하는 오른팔 위로, 단숨에 블라이스의 단검을 내리친다.
“흡……!”
뿌드득!
살과 뼈가 토막 나는 소리. 이세라가 어깨를 움찔거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팔꿈치까지 시퍼렇게 썩어버린 오른팔이 털썩. 바닥에 짐짝처럼 널브러졌다.
“크으……!”
정신이 아찔해지는 격통. 식은땀과 함께 온몸을 두들긴다.
나는 곧장 스킬부터 영창했다.
[스킬 발동: 페인 킬러]
우우웅.
피가 콸콸 흐르던 절단면에 푸른 마력이 깃든다.
온몸으로 지끈지끈 퍼지던 고통이 점점 둔중해지더니, 이내 참을 만한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후우.”
이제 좀 살 만하다.
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마무리 작업을 시행했다.
“…리스토레이션.”
쿠르륵, 우드득!
잘려나간 어깻죽지 아래로 기괴한 소리가 난다.
허공에서 허연 뼈대가 생성되고, 그 위로 근육과 살이 붙는다. 지점토를 붙여나가듯 꾸역꾸역 재구성 되어가는 오른팔을 지켜봤다.
“후우, 후욱……!”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리스토레이션은 ‘회복’이 아니라 ‘복구’ 마법이다.
물상의 원상복구에만 스킬의 모든 기능이 집중되어 있다.
“…그욱……!!”
때문에 절단된 인체를 강제로 수복시킬 때 발생하는 엄청난 구토감. 벌레 수백 마리가 체내를 기어가는 듯한 불쾌감.
그리고 정신이 아찔해지는 막대한 고통 같은 건, 계산해 주지 않는다.
“…후우. 후우우…….”
그리고 마침내, 진통 스킬로도 제어되지 않는 고통의 파도가 잠잠해졌다.
이제 8부 능선은 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X발…….”
털썩. 푹신한 소파 위로 무너져 내렸다. 등받이에 잡아먹힐 듯 몸을 기댄 채 숨을 골랐다.
그러자니 빼꼼, 옆에서 이세라가 얼굴을 들이밀어 왔다.
“작업 끝났나요?”
“…보시다시피.”
“그럼 얘기 계속해도 될까요?”
이세라가 내 오른쪽 옆으로 바싹 붙어 앉았다. 그리고 기대감 어린 얼굴을 내게 맞대왔다.
검은 붕대로 칭칭 감긴 그녀의 눈가를 빤히 쳐다봤다.
“중요한 얘기냐.”
“저한텐 중요한데, 음… 솔직히 정용 씨 입장에선 딱히 아닌 것 같기도 해요.”
“그럼 10분만 더 기다려. 나 좀 쉬자.”
“네. 그러세요.”
이세라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진득하게 기다려줬다.
아니지. 장님이니까 응시한다는 표현은 틀렸나.
“쉴 만큼 쉬었다. 좀 살 만해졌다.”
약 5분 정도가 더 지났다.
어색한 침묵이 싫어져서 내가 먼저 통보했다.
“할 말 해라.”
이세라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씨익. 그녀가 입가에 빙긋 미소를 머금는다.
“좀 긴 얘기가 될 거 같은데. 괜찮아요?”
“모레까지만 끝내. 모레엔 게이트 붕괴 막으러 가야 된다.”
“푸흐. 그렇게까지 오래는 안 하죠, 당연히!”
“그럼 상관없어.”
“좋아요. 그럼…….”
톡톡.
이세라가 새로 돋아난 내 오른팔을 손끝으로 두들겼다.
살짝 벌어진 입으로 신기하다는 듯한 탄성을 연신 터뜨리다가, 이내 물었다.
“정용 씨. 힘들지 않아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의도를 알기 힘든 질문이다. 나는 보란 듯이 오른팔을 까딱였다.
“팔은 이제 괜찮아졌다. 그러니까 너랑 대화도 하는 거지.”
“아.”
“그건 됐으니까 용건이나 말해봐라. 또 뭐가 궁금해졌냐.”
“아, 아뇨. 제 용건이 그거였는데요.”
“……?”
“힘들지 않냐고 물어본 거요. 팔 얘기가 아니에요.”
문득 이세라가 소파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사박사박. 사뿐히 걸어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뭔가를 주워든다.
내 잘려나간 오른팔이었다.
“이거, 이번에 붕괴했던 던전의 몬스터한테 당한 거죠?”
시퍼렇게 썩다 못해 지글지글 끓고, 푸른 진물이 되어 흐물흐물 녹아 내려가는 중이었다.
주점 안에 온통 누린내와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 이세라는 진물로 범벅된 하얀 손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맞아. 정확히는 던전 마스터였다.”
“대체 뭘 당하면… 팔이 이렇게 되는 건가요?”
“독을 쓰는 던전 마스터. 방심하다 팔뚝이 살짝 스친 것 같다.”
“…그렇군요.”
“내려놔. 그거 지지다. 지지.”
내가 감염된 건 ‘청혈독(靑血毒)’이라는 치명적인 마력 독이다.
생체 마력에 감응해, 신체를 순식간에 점령하고 괴사시키는 독인데… 잘라낸 이후라 감염 걱정은 없겠다만. 일단 썩은 고깃덩어리니까 위생상 좋을 게 없다.
“이렇게 끔찍한 꼴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도 못 받고. 아무도 안 알아주잖아요.”
안대로 둘둘 감긴 이세라의 얼굴이 나와 똑바로 마주한다.
그녀의 입술 끝이 살짝 떨리고 있다.
“근데도 정말로? 진짜로 정용 씨는 힘들지 않아요? 그게 궁금해졌어요.”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은 어디 가고,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나를 진심으로 안쓰럽게 여기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끝이 아니다. 그녀는 타박하듯 계속 쏘아붙였다.
“툭 까놓고 본론으로 갈게요.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 수아 씨가, 원망스럽지 않으세요?”
“갑자기 수아는 왜 나오냐.”
“정용 씨의 고생을 알아줘야 할 사람이니까요.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수아 씨는 알아줘야 하니까요! 옆에서 보는 제가 다 야속할 정도인데?”
핵심은 그쪽인 듯했다.
이세라의 얼굴이 멀찍이, 수아가 잠들어 있는 휴게실 쪽으로 향했다. 분한 듯이 입술을 슬쩍 깨물고 있다.
“솔직히 저는 수아 씨가 싫어요. 아니, 싫어졌어요. 요 며칠 사이 엄청나게요.”
그렇구나.
이세라는 지금 화가 나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나 일 나간 사이 싸움이라도 했냐.”
“진심으로 그렇게 묻는 거 아니죠? 당연히 당신 때문에 싫어진 거죠.”
“이상한데. 난 너한테 수아 욕한 적이 없어.”
“이렇게나 정용 씨가 고생하고 고통받는데! 자기만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처럼 시종일관 주저앉아서 질질 짜고 있잖아요. 당신이 고생하는 게, 자길 지켜주는 게! 당연한 권리인 줄 아는 거라고요!”
콰앙!
이세라가 발을 힘껏 굴렀다. 아주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행색이다.
1001번째에 이르는 현생까지 다 합쳐도, 그렇게까지 분노를 표출하는 이세라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일단 좀 진정해라. 남의 일에 뭘 그리 열을 내고 있어.”
오죽하면 내가 당황해서 삼삼한 위로의 말씀까지 건넸겠냐.
그런데 내 말이 오히려 화를 돋운 듯했다. 이세라는 퍼뜩 쌍심지를 세우며 내게 다가왔다.
“남의 일?! 남의 일이라뇨! 지금 정용 씨, 당신 얘기 하는 거예요!”
“그래. 나랑 수아 일이지. 너한텐 남의 일 맞잖아.”
“…그, 그건……!”
이세라가 뭔가 반박하려 했지만, 할 말이 없어진 건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 와중에도 수아 편을 들어서 그런가. 그녀의 양 뺨은 남산만치 부풀어있었다.
그 행색이 우스워서 피식 웃어버렸다.
“수아가 내 고생을 알아주길 바라는 건 이기적인 소리지.”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일부러 한마디도 말을 안 하는데.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꿈틀. 이세라의 미간이 사정없이 뒤틀렸다.
말 나온 김에 할 말은 해야지. 그녀의 착각도 좀 바로잡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 안 힘든 놈이 어디 있겠냐. 너야 전직 헌터니까 이 상황에서도 멘탈이 버티는 거고. 수아는 그냥 일반인으로서 당연한 반응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까 제 말은! 최소한 정용 씨가 수아 씨한테 진실을 밝혀야……!”
“근데 그럴 수가 없단 말이야.”
“…네?”
이세라는 즉각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런 디테일한 개인사까지 이 여자한테 말하게 될 줄은 몰랐네. 현 상황이 좀 어처구니없어져 피식 웃었다.
“솔직히, 내가 보호받는 당사자였다면…….”
“당사자였다면?”
“나 같은 놈은 기분 나빴을 거다.”
“아… 네?”
“그냥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닌가? 공포. 존나게 혐오스러웠을 거다.”
이세라의 표정이 해괴하게 뒤틀린다.
자학적인 말을 쏟아내는 내가 도저히 이해 안 된다는 표정.
저건 굉장히 익숙한 표정이다. 강렬한 기시감이 쏟아진다.
“지금 그 얼굴.”
번쩍.
이세라의 면전에 삿대질 했다.
“내가 수아 때문에 어떤 짓까지 하는지 본인한테 들키면. 딱 너 같은 표정을 한다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자기가 기존에 알던 것과는 무력부터 사고방식까지, 180도 달라져 버린 내가.
행동 원리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미지의 생물. 영원회귀를 겪은 한정용이 말이다.
“오빠. 대체 날 위해서… 왜 이렇게까지 해요?”
예측이 안 된다.
그러니 점점 무서워진다.
마침내, 괴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도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는 거고.”
그래서 설명해 줄 수가 없다.
그러니 수아에게 나를 이해시켜 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 나한테나, 수아한테나.
“어쩌면 나도 그냥, 뭐라도 좋으니 목적이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아무도 나한테 목적지를 설정해 주지 않았다.
대체 언제쯤. 내가 어떻게 해야 이 무간지옥이 끝나는지에 대해서.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이 영원회귀의 목적 말이다.
“이세라. 내가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냐?”
15번째 붕괴까지 무사히 막아내면 되나?
그러면 영원회귀가 끝나냐? 정말로? 찍고? 확실해?
근데 만약에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15번째 붕괴를 어떻게든 막아냈는데.
그다음에도 회귀가 계속되면?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
나는 그때도 제정신을 유지할 자신이 있나.
아니. 없다. 난 비로소 완전한 광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터무니없이 강해져 버린 지금의 내가, 정신 줄을 놓는다는 것은 곧.
“내가 지킨 세상. 내 손으로 다시 아작 내버릴지도 모른다고.”
한정용의 완전한 흑화를 의미한다.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15번째 붕괴를 막고 싶어 한다.
동시에 15번째 붕괴가 나한테 막히게 될 그 순간을, 옛날부터 막연히 두려워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럴 때를 대비해서, 또 다른 목적이 필요했던 거야.”
세계평화 같은 거창한 건 애초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훨씬 친숙하면서, 지켜낼 가치가 있고. 내 인간성을 유지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나한테는 강수아였던 거다. 강수아밖에 없었던 거야.
“뭐, 다 추측이다. 옛날의 내가 이렇지 않았을까… 예상을 해보는 거지.”
수아에게도 누누이 말했는데. 난 딱히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강수아를 살리려고 집착했던 건, 이런 이기적인 목적이 숨어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내 심리를 추론해 본 거다.
“…….”
이세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그녀가 슬픈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16번째 게이트 붕괴만큼은… 절대 안 일어났으면 좋겠네요.”
15번째 붕괴 후에도 회귀가 계속돼서, 내가 미쳐 날뛰는 상황.
그녀는 그것을 ‘16번째 게이트 붕괴’라고 표현했다.
“…크흐.”
기막히게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었다.
“나도 던전 마스터로 이직하는 건 사양이다.”
그렇게 얼버무려서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모레. 9번째 게이트 붕괴 후. 그 생의 이세라는 죽었다.
그날도 하늘에선 부슬비가 내렸다.
“…….”
한 꼬마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칵테일 바 근처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는 그 꼬마의 미래는 봤지만. 정작 자신이 처한 위기는 보지 못한 이세라였다.
―그오오오오오!!
살해자는 코스모의 거신병.
그 생의 9차 붕괴는 거신병이 활개를 쳤고. 이세라는 거대한 주먹 한 방에 쥐포처럼 납작해져 버린다.
“…….”
짓이겨진 이세라의 시체를 잠깐 내려다본다.
딱히 안타까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항상 이세라는 9번째 붕괴 전후 즈음해서 죽곤 했다.
그냥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을 뿐이다.
“…흐.”
익숙해졌다.
이 또한, 익숙해져 버렸다.
* * *
푸각!
채찍처럼 늘어난 사복검이 B급 헌터의 경추를 꿰뚫었다.
헌터의 손에 응축되던 바람의 탄환이, 채 맺히지 못하고 흩어진다.
“끄그르륵……!”
헌터 사내는 온몸을 경련하다 그대로 쓰러졌다. 놈의 목뼈 쪼가리가 핏방울에 섞여 혈천갑을 두들긴다.
나는 파리 쫓듯이 그것을 손으로 털어냈다.
“이놈이 마지막.”
쉬리릭!
늘어난 사복검을 회수한다. 다시 장검 형태로 합쳤다.
잠깐 숨을 돌렸고. 이내 현자의 눈을 발동시켜 주변을 스윽 훑었다.
[반경 500M 내 생명 반응: 1개체]
폐건물에 온통 시체들이 즐비하다.
최상층인 6층부터 1층까지. 한 층씩 내려오며 보이는 족족 전부 죽여버렸다.
그 결과는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다.
“…….”
퀴퀴한 물비린내와 뒤섞인 자욱한 혈향. 도처에 산처럼 쌓인 인간의 조각들.
두 발로 서있는 이는, 나밖에 없다.
“생각보다 금방 끝났네.”
작업이 모두 끝났다.
슈르륵. 바로 혈천갑을 해제했다. 피곤한 얼굴의 이브가 품 안으로 천천히 재구성된다.
나는 문득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아직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세라의 시신을…….’
한 번 찾아볼까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허탈한 미소가 입가에 깃들었다.
‘관두자.’
정황상 그녀의 사망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다.
구태여 찾아서 뭐 할 거야. 장례라도 치러줄 텐가.
“흐.”
얕은 비웃음과 함께 말끔히 단념했다.
연신 눈을 비벼대는 이브의 머리를 괜히 쓰다듬은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으응, 아빠아. 아줌마는?”
이브가 문득, 내게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