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29화 (29/235)

29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5)>

장내는 난데없는 갑분싸가 도래했다.

왜? 폐허가 된 여의도가 수아의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

“……!!……!!!”

폐허 주변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개미떼마냥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복장을 봐선 피해복구에 투입된 사후지원반 헌터들과 인부들. 그리고 자진해서 발 벗고 나선 자원봉사자들 같았다.

천리안 스킬로 확인하고 알았다.

“…….”

“…….”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여의도의 참상에서 시선을 뗐다. 침울하게 잠긴 수아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저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강수아가 한없이 이기적이었으면 한다.

이미 죽은 시체들에 괜히 연민을 갖지 말고, ‘저놈들 갈려나갈 때 난 살아남아서 천만다행이군. 휘유~!’ 하고 안도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그럴 리가 없겠지.’

나는 강수아를 잘 안다.

8년 전부터 병상에 누워 혼수상태인 수아의 어머니나, 바빠서 열흘에 한 번 꼴로 집에 오는 강서윤보다. 훨씬 잘 안다고 자부한다.

‘강수아는 그렇게 모질지 못하다.’

150번도 넘게 수아의 자살을 막지 못한 내가 보증한다.

그녀가 그런 냉혈한이었으면. 애초에 내가 지켜주고 싶어서 개발악하지도 않았다.

냉혈한들은 내버려 둬도 멸망 최후반까지 알아서 꾸역꾸역, 바퀴벌레 새끼들처럼 징글징글하게 살아남는다. 인성 터진 십새끼들이 원래 생존력은 강한 법이지.

유리 세공품에 ‘취급 주의’ 라벨이 붙는 이유가 뭐냐.

그게 잘 부서지는 물건이라서 그렇다.

“오늘 너무 좋았어요. 오빠.”

어색한 기류 속에서 나들이는 끝이 났고. 우리는 각자의 집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수아는 애써 만들어낸 미소를 머금은 채,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빠도… 바로 어제 붕괴 현장에 싸우러 나갔었는데. 많이 힘들고, 충격을 받았을 텐데. 저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미안해요.”

“그런 식으론 말하지 마라. 애초에 내가 원해서 놀러 간 거니까.”

“…네. 그러네요. 죄송해요.”

잠깐 서로의 현관문 앞에 선 채로 침묵을 지켰다.

이내 수아가 푹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위태로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오빠. 오빠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절대로, 나 버려두고 죽으면, 안 돼요?”

수아는 울먹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봤던 지겨운 표정이다.

그런데도 필사적인 수아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마음이 안 좋다.

“나는 안 죽어.”

신념대로 거짓말은 섞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안 죽는다.

“어쩌다 죽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다. 너 만나러.”

11월 27일 오후 2시.

돌아오자마자 낮잠을 자고.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너와 대화를 하는 거다.

그리고 너와 함께 1002번째 햄스터를 풀어주러 가겠지.

“아핫. 뭐예요, 그게!”

수아는 눈꼬리에 찔끔 맺혀있던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가 한결 진정된 얼굴로 미소를 띠었다.

“멘트 깜짝 놀랐네. 무슨 고백이라도 하는 줄 알았잖아요!”

“해달라면 해줄 의향은 있다.”

“씨이, 말은!”

수아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이내 아까보단 진정된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정말,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오빠.”

“그래. 나도야.”

“다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인데. 제가… 저만 이렇게 즐거워해도 되는 걸까요?”

불안과 초조, 죄책감으로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

이것이 지금 수아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다.

알지. 아무렴. 다 안다.

“너는 즐거울 자격이 있다. 수아야.”

다만 이렇게 분위기 좋은 특별한 순간들조차, 이미 전생에서 지겹게 반복됐다는 사실. 내가 지금 묘한 지루함과 지겨움을 느끼고 있는 현실.

그게 좀 씁쓸할 따름이다.

“흐흐. 네! 오빠도요! 잘 자요 오빠!!”

수아는 평소처럼 밝게 돌아와 내게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콰당. 그녀가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수아네 현관문을 지그시 쳐다봤고.

불현듯 중얼거렸다.

“자격이 없으면. 내가 만들 거다.”

한국인 5천만 명을 죄다 죽여서라도. 나아가 전 세계 80억 인구를 몰살시키는 한이 있어도.

그리고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래서 강수아가 살 수만 있다면. 나는 무조건 그렇게 한다.

분명히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

“응애.”

그 순간.

하루 내내 잠자코 있던 이브가 처음으로 옹알이를 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응애.”

이브의 붉은 눈동자는 갓난애답지 않게 심원했다.

쳐다보고 있으니 핏빛의 늪에 잠겨가는 감각이 엄습한다.

“…응애?”

나를 향해 무언가 묻는 듯한 옹알이다.

기분 탓인가. 시선에서 나를 향한 연민과 조롱이 동시에 느껴지는 듯했다.

“허.”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 애새끼. 마냥 띠꺼운 표정만 짓는 줄 알았더니. 이런 침중한 얼굴도 할 줄 아는군.

나는 이브를 감싼 포대기를 내 품으로 한껏 밀착했다.

“이브.”

“응애.”

“너 술 좋아하냐.”

“애응?”

생후 3일짜리 애한테 술 한 잔 권할 뻔했다.

“아니. 아니다. 잊어버려라.”

“…응애.”

결국 그날은 수아와 헤어진 이후, 멍하니 TV만 보다가 하루를 마감했다.

TV에서는 어제에 이어 제4차 던전 붕괴에 대한 얘기가 한창이다.

[이번에도 등장! 밝혀진 던전 폐쇄자는 <레드 저거너트>!!]

[레드 저거너트, 그는 누구인가? 취재진 집중 탐구!]

뉴스 헤드라인이 온통 내 별명을 대서특필한다.

인터넷 등지로 나의 인기가 컬트적으로 퍼지고 있다고 한다.

꽤 본격적으로 나를 추종하는 세력까지 생겼다는데. 이건 나중에 내가 직접 찾아봐야겠다.

“흐음.”

나는 채널을 돌려가며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사이 예능 방송, 연속극 드라마 따위는 거의 씨가 마른 상태였다.

정규방송의 8할은 뉴스의 긴급보도.

또는 게이트 연속 붕괴 참사를 다루는 특집방송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왜. 이제 좀 심각해지냐?”

조소와 함께 비아냥거렸다.

방송편성조차 웃음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슬슬 온 국민이, 전 세계가, 이 심상치 않은 사태에 본격적으로 두려워한다는 방증이었다.

현재 모든 뉴스가 규모 있게 다루는 핫 토픽은 크게 세 가지.

우선은 첫째.

‘희생자 수와 피해 규모. 그리고 원인 규명.’

뒤진 놈 불알 빠는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관심 없다. 그리고 원인 규명은 될 리가 없다.

지금껏 무능한 정부와 방송에 나오는 헛똑똑이, 헌터 협회 개새끼들이 뭘 밝혀내는 회차를 내가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쪽 정보는 시선도 안 준다. 다음.

‘둘째. 나.’

다음은 레드 저거너트.

내로라하는 S급 헌터들조차 족족 뒤져나가는 던전 붕괴를, 혈혈단신으로 호쾌하게 격파해 나가는 의문의 히어로.

나의 정보를 어떻게든 캐내려는 추측성 찌라시가 한가득.

‘그리고 셋째는… 바로 저거.’

지금 막 내가 튼 뉴스에서 한창 다루고 있는 주제였다.

[정부, 계엄령 선포 아직 일러… 아직도 시기상조?]

우선 정부의 본격적인 계엄선포에 대한 찌라시.

[헌터 협회, 정규 헌터 상비군 체계 준비 중이라 밝혀… 유례없던 대대적 헌터 동원령 발령되나.]

그리고 헌터 협회 소속 모든 정규 헌터들이, 본격적인 ‘상비군인’으로서 편제를 개편한다는 소문이다.

‘사실 2차 붕괴 이후부터 계속 나왔던 얘기지.’

4차 붕괴까지 진행된 지금. 이쯤 되면 지나가던 개새끼라도 깨닫는 사실이 있다.

현재 11월 29일을 기점으로, 이틀에 한 번 꼴로 게이트가 붕괴한다.

이 유례없는 템포의 재난에 대비하려면. 더 이상 지금까지의 주먹구구식 헌터 운용으론 절대 불가능하다.

아무리 대가리 총 맞은 헌터 협회라도 그 정돈 예측을 한다.

“헌터 협회도 결국은 정부 산하의 기관이니까…….”

그런 만큼 정부의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협회 소속인 모든 헌터들은 국가 존폐를 위협하는 게이트 재해가 닥치면. 정부 소속의 정규군으로서 징집될 수 있다.

무려 헌법에 확실히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무조건 일어날 일인데.”

문제는 시기다.

헌터 상비군 체계나 계엄선포 시기는 회차마다 좀 유동적이다.

보통 5차에서 내가 희생자를 많이 막아내면 6차 이후가 되고. 5차에서 희생자가 많으면 5차 이후에 바로 시행된다.

“…그 후부터가 진짜지.”

정규 헌터들 전체가 상비군 체계가 된다.

이 소리는 무엇이냐. 협회 소속 헌터인 내가 본격적으로 병영생활을 하게 되고. 이 집을 잠깐 떠나게 된다는 소리다.

그러면 잠시 동안은 불가항력으로 수아와 떨어지게 된다.

‘이건 강서윤도 얄짤이 없어.’

오버랭커인 강서윤도 헌터군 징집은 피할 수 없다.

당연히 대령급 이상의 고위 장교로 배정될 거니까 제약이 훨씬 덜하겠지만. 어쨌든 헌터 정규군에 편입이 된다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수아를 면밀하게 지켜주고 돌봐줄 사람이 없다.’

물리적으로도 문제인데 수아의 멘탈 때문에도 문제가 된다.

그래봤자 그 뒤로 헌터 협회가 붕괴하기까지 대충 2~3일 걸리니, 그 사흘만 버티면 되는데. 수아가 그 짧은 새에도 뒤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문제다.

“모쪼록… 이번에도 잘 풀렸으면 좋으련만.”

의미 없는 기원을 혼자 중얼거렸다.

기도는 하지 않는다. 딱히 잘 풀릴 거라 기대를 안 해서 그렇다.

모 게임에서 그랬지. 기대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거라고.

기본적으로 기대를 안 하면, 배신당할 일도 없다.

‘그게 마음처럼 쉽게 안 되니 문제지만.’

한참을 TV나 쳐다보고 있었더니 출출함을 느꼈다.

나는 냉장고에 남은 레토르트 식품을 데웠고. 그걸로 대충 끼니를 때우기 시작했다.

“흐음.”

문득 주린 배를 채우다가, 나는 이브에게 생각이 미쳤다.

발발발발. 지금도 방바닥을 활발하게 기어 다니는 이브. 연신 꼬물거리는 그녀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얘는 식사를 안 하나?’

그래도 생물은 생물 같은데 뭔가 줘볼까.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뭘 줘야 할지 모르겠다.

잠깐 고민한 후. 대충 냉장고에서 뒹굴던 딸기우유를 던져줬다.

“옜다.”

“아우?”

딸기우유를 배식 받은 이브는 벙찐 표정이다.

성경 선물 받은 스님이 저런 표정을 짓겠지. 피식 웃으며 우유를 마시는 시늉을 했다.

“밥.”

“…바아?”

“배고프면 먹어라. 아니면 말고.”

“아후우.”

저 아기가 내 말을 이해할 지능이 있다는 건 파악했다.

그래서 딱히 젖병으로 옮겨 주지도 않았고. 우유갑을 통째로 넘겨줬다.

‘뭐… 딸기우유도 일단은 우유지. 같은 젖류(?)인데 괜찮지 않을까.’

딸기우유 픽은 그런 단순한 생각의 발로였다.

일단 냉장고에 애가 먹을 만한 게 딸기우유밖에 없기도 했다.

‘처먹고 뒤지기야 하겠어.’

나 육아 모른다. 하물며 던전발 몬스터 육아는 알 게 뭐냐.

그리고 의외로, 이브는 딸기우유를 곧잘 받아먹었다.

“우… 후갸!”

아니. 곧잘 먹는 수준이 아니다.

환장을 했다.

“으후우. 갸우우우!”

온 얼굴에 우유를 다 묻히고, 허겁지겁 우유 팩을 핥아댄다.

눈빛에서 일종의 광기까지 느껴졌다.

“푸햐아…….”

식사가 끝난 후. 나는 황홀경에 빠져있던 이브를 번쩍 들어 올렸다.

우유로 범벅된 이브의 입가를 닦아줬다.

“맛있냐?”

“응!! 애!!!”

존나 맛있다고 한다.

언제 시간 내서 딸기우유나 한가득 공수해 놔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이브를 방바닥에 방목(?)했다.

그렇게 TV 뉴스를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갸우우. 아바… 바!”

소파와 TV 사이를 어기적어기적 기어 다니던 이브가, 어느 순간 번쩍!

두 다리로 일어서는 데 성공했다.

“오.”

나른하게 풀렸던 눈이 순간 크게 뜨였다.

내 탄성을 들었는지, 휙! 이브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면에 특유의 우쭐한 표정이 가득해진다.

“움훗. 갸우!”

어떠냐, 대단하지? 대단하잖아!

그렇게 온몸으로 내게 어필하는 행색이었다.

짝짝짝. 가볍게 박수를 쳐줬다.

“장하네. 대단하군.”

“갸후후! 우훗!”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웃는 이브.

내가 칭찬해 주니 기쁜 듯하다.

“응애!!”

문득 이브가 두 팔을 내게 쭉 내밀었다.

그리고 뭔가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저건 뭔 소린지 알 것 같다.

“안아달라고?”

“응애!”

이브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과업을 달성했으니, 정당한 보수를 요구하겠다 이거냐.

근데 왜 보상지급의 주체가 나냐. 이브의 뇌 내 알고리즘 짜임새를 알 수가 없다.

“오냐. 이리 와라.”

어쨌든 어려운 것도 아니고, 못 해줄 것도 없다.

번쩍! 나는 이브를 안아 들고 품에 단단히 고정했다.

둥가둥가.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며 다이나믹을 더해줬다.

“만족하냐?”

“응애! 응애!!”

아주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휴일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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