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4)>
내 집요한 요구에 수아가 마지못해 수락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는 같이 놀러 가게 되었다.
너와 나. 지금 바로. 당장 오늘.
“하아. 진짜. 갑자기 나들이는 무슨 나들이람…….”
뭐 멀리는 안 가고. 서울 바닥 안에서 논다. 남산타워를 중심으로 일대 공원을 잠깐 도는 정도.
답답한 기분도 환기할 겸, 바람이나 쐬러 가는 수준이다.
“언니한테 너무 죄짓는 느낌이네요…….”
수아는 집을 나오는 순간부터 연신 혼자 꿍얼거렸다.
전부터 자꾸 강서윤이 왜 튀어나오는지 도통 의문이다.
“그래서. 준비는 끝났냐.”
“네. 뭐, 일단은요.”
“좋아.”
죄책감 어린 멘트와는 다르게 강수아는 전에 없이 화사하게 차려입고,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왔다.
그야말로 완전무장. 나들이 준비 만전이다.
‘기대는 하고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긴 한데.’
…입으로는 싫다 그러는데 몸은 솔직하군.
놀러 가고 싶은 거냐 싫은 거냐. 당최 갈피를 잘 못 잡겠다.
역시 수아의 정신세계는 내가 발을 들이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
제15차 붕괴의 던전 마스터를 상대하는 듯하군. 거대한 장벽을 느낀다.
“오빠. 오늘 저… 어때요?”
지하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찰나. 수아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나는 수아의 인상착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심히 살펴봤다.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쁘네. 많이.”
말했다시피 나는 거짓말을… 이하 생략.
아무튼 예쁜 건 가감 없는 사실이다. 단아한 블라우스에 치마를 차려입고, 자연스러운 화장을 곁들인 강수아는 몰라보게 예뻐진 상태.
언제나 트레이닝복 차림에 부스스한 민낯만 봐서 그런가.
그 갭이 시너지를 일으켜 더욱 예뻐 보인다.
“아. 흐흐. 고, 고마워요.”
수아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본인이 물어봐 놓고 왜 저리 쪼그라드는 거지.
하긴. 그녀는 옛날부터 칭찬에 약했다.
“가자. 수아야.”
“아, 네!”
나는 주차장 구석에 대놨던 차에 올라탔고. 수아를 조수석에 앉혔다.
그리고 털썩. 뒷좌석에는 안고 있던 이브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 예상은 했는데. 결국 걔도 데려가는군요?”
조수석에서 빤히 바라보던 수아가 입을 열었다.
이브를 쳐다보는 표정이 복잡미묘하다. 뭔가 미약한 불만과 귀여움, 원망… 온갖 감정들이 우글우글 끓는 듯한 얼굴이다.
이거 대답을 잘 해야겠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 직감이 들어, 슬쩍 긴장했다.
“애가 어느 순간부터, 나랑 떨어지는 걸 되게 싫어해. 미안하지만 이해 좀 부탁한다.”
“아, 아뇨! 뭐라 하려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그렇다구요.”
“고맙다. 수아야.”
“아니에요. 그, 그럼요. 혼자 집 지키고 싶어 하는 갓난쟁이가 어딨겠어요. 아하하…….”
그렇게 두 사람을 태운 뒤. 나는 운전을 시작했다.
싸구려 중고차가 도로를 미끄러진다. 가는 길에 심심함도 타파할 겸, 잡담을 늘어놨다.
“서윤이한텐 제대로 말 해놨냐?”
“…아뇨?”
“왜 보고를 안 해.”
“어떻게 말해요. 오빠랑 데이… 나, 나들이 간다고.”
“말 못할 게 뭐가 있어. 그래도 소중한 가족인데. 너 갑자기 집에서 사라지면, 걔가 걱정 많이 한다.”
그놈의 지극정성이 문제였다.
그 지나친 걱정 때문에, 전생에선 강서윤이 본의 아니게 강수아를 죽였지.
반사적으로 인상이 슬쩍 구겨졌다.
‘아니. 아니다. 한정용.’
괜히 그런 거 떠올리지 마라. 이미 없어진 일이야. 괜히 기분만 잡친다.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강제로 물려버렸다.
“…오빠. 진짜 사람이 너무 무신경하네요. 좀 원망스러울 정도로.”
별안간 수아가 나를 지그시 째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뭔 개소리야.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냐. 수아야.”
“덥석 물어버린 제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요. 그, 언니한테 죄책감 안 드세요?”
“강서윤한테? 내가 왜.”
“왜라뇨! 여자친구 놔두고, 여자친구 여동생이랑 날 잡고 놀러 가는데……!”
“…여자친구?”
아.
아아.
아아아아.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느껴지던 대화의 위화감. 수아의 머리에 자리 잡은 거대한, 상당히 불쾌한 착각.
“수아야. 대체 어느 시점에서 그렇게 이해한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수아의 개족같… 부적절한 오해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녀는 곧장 내 해명을 받아들였다.
“아아. 제, 제가 착각한 거구나! 언니랑 사귀는 게 아니었군요?!”
“당연하지. 세상이 1천 번 망했다 돌아와도 그럴 일 없어.”
실제로 그런 일 한 번도 없었다.
‘강서윤 말고 강수아라면 모르겠네.’
세상이 1천 번 망하는 동안… 실제로 초반 회차의 몇 번은 사귀어본 적도 있으니까.
가끔은 나도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정말 가끔이다.
“그, 그렇구나. 난 또!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야……!”
수아는 아주 큰 시름 덜었다는 양,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니. 이게 울 정도의 일인가. 아무튼 감성도 참 풍부하다.
“뭐, 서로 다행이구나. 오해를 풀어서.”
당황한 나머지 서둘러 대화를 수습했다.
시선을 차량 앞 유리에 처박았다. 그냥 운전이나 열심히 하기로 했다.
오늘따라 남산타워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 * *
남산공원에 도착했다.
“와아. 여기 와본 지도 되게 오랜만이네요.”
“그렇구나.”
주변을 대충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령도시 한가운데에 우리만 떨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원 전체가 싸늘한 적막에 잠겨있다.
“조, 조용하네요. 엄청.”
“그렇구나.”
“저희가 공원 전세 낸 것 같아요. 이런 적은 또 처음이네…….”
“…그렇구나.”
평일 정오 시간대라 그런 것도 물론 있다.
그러나 게이트 참사가 연쇄 발생해서, 정재계 고위인사를 비롯해 십수만 명이 폐사당한 게 훨씬 큰 이유다.
‘다들 식료품을 사재기하고. 집에서 두문불출하던가.’
회사 등 생업에 무단결근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일부 마트와 편의점은 내용물을 탈탈 털린 채 을씨년스럽게 방치된다.
마트 주인들조차 영업 안 하고 집에 틀어박혀 버린 것이다.
‘공기업 직원들도 공포심에 관두는 사람이 속출한다.’
그래서 이맘때부터 가정집의 수도나 전기가 간헐적으로 끊긴다.
인력이 갑자기 부족해지니, 공공 인프라 관리가 제대로 안 되기 시작하는 거다.
이 시기. 4차 붕괴가 끝날 때쯤.
힘없는 일반인들의 행동 양상은 대충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 인정한다.’
솔직히 나도 좀 급하게 날짜를 정한 감이 있다.
내가 굳이 오늘을 나들이 날짜로 강행한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오늘이 사실상 최후의 안식일이니까.’
다음에 이어질 5차 붕괴 이후부턴 이럴 여유도 없다.
아니. 그냥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전국적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될 확률이 있으니까.
웬만한 대도시들은 철저하게 헌터 협회와 군부에 의해 유동 인구가 통제된다. 그렇게 되면 민간인들의 이동조차도 녹록지 않아진다.
“아, 오빠! 또 딴생각 한다!!”
쿡쿡.
옆구리를 사정없이 쑤셔대는 수아의 손가락. 나는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음. 미안.”
시선을 흘깃 돌렸다.
수아가 볼을 빠방하게 부풀린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빠. 오늘 나랑 놀러 온 거잖아요. 그것도 오빠가 요구해서! 맞죠?”
“그렇지.”
“그러면… 지, 지금은 나한테 집중해요! 알겠어요?”
“미안하다, 수아야.”
“으음. 네! 사과했으니, 한 번만 봐줄게요.”
이내 우리는 남산공원의 꽃인 남산타워로 향했다.
타워 입구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 그리고 하늘 높이 뻗은 타워의 자태를 감상했다.
‘이건 7차 붕괴 때 무너졌지. 아마.’
남산타워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밖에 안 드는 내가 레전드다.
어쩔 수 없다. 내 기준으로 남산타워는 우뚝 선 모습보다, 산산조각 나 지면에 널브러진 모습이 더 익숙하니까.
피식. 비릿한 조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감성이 어지간히 곱창 났군.’
하긴. 그렇게나 자살과 죽음을 반복했다.
샤브샤브마냥 삼도천에 대가리까지 푹신 잠갔다 나왔다의 반복. 그걸 무려 1천 번.
사람 하나 미치기엔 충분하고도 잔고가 남지.
“아, 오빠 뭐 해요! 빨리 와요! 벌써 엘리베이터 왔어요!”
문득 강수아가 목청을 높여 나를 불렀다.
어느새 전망대로 올라가는 승강기가 도착해 있었고. 그녀는 승강기에 먼저 타서 애타게 손짓하고 있었다.
‘이 시국에 남산타워 운영하는 것도 레전드군.’
안내 데스크에 앉아있던 안내원과 어색하게 눈인사를 했다.
아마 저쪽도 우리를, 이 시국에 전망대나 보러오는 미치광이 커플쯤으로 생각하겠지.
서로 신경 쓰지 말자고. 직업 정신 투철한 미치광이 직원들아.
“미안. 생각 좀 하느라고.”
내가 사죄하며 엘리베이터로 달려갔고, 수아는 퍼뜩 문을 닫았다.
그녀는 내 옆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으휴. 또 멍 때리고 있었죠? 사람이 왜 그리 정신이 없을까?”
“요즘 좀 생각할 게 많아.”
“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데요? 네?”
“여러 가지. 이것저것 한다.”
“…히히. 이번에도 내 생각이라도 하셨나아~?”
“그것도 있지. 대부분은 너에 대한 생각이긴 하다.”
흠칫.
이죽거리던 수아가 눈에 띄게 얌전해진다.
“아. 네, 네에. 그렇, 군요.”
“음? 왜 그러냐. 수아야.”
“아니. 그, 너무 당당하게 말하시니까. 제가 다 부끄럽네요…….”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와중, 우리는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눴다.
타워의 높이가 있다 보니 잡담은 한참을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나란히 서있었을까.
별안간 강수아가 나를 연신 흘깃거리나 싶더니. 툭 물었다.
“…오빠. 그러고 보니 요즘 키 컸어요?”
수아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까치발을 번쩍 들어, 자기 키와 내 키를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뭔가 요사이 갑자기 키 차이가 커진 느낌이에요. 남자는, 25살에도 키가 크나?!”
“그럴 리가. 기분 탓이겠지.”
“음. 그런가? 기분 탓인가? 아닌 거 같은데에…….”
기분 탓 아니다.
강수아는 여전히 이런 쓸데없는 부분에서만 촉이 좋군.
‘실제로 컸지.’
원래의 나.
그러니까… 1회차 때의 나는 171cm 정도의 평균 이하 신장이었다.
하지만 신체 스탯을 키워서 거기에 최적화된 육체로 탈바꿈한 건가. 어느 순간부터 환골탈태라도 한 듯 골격이 좋아지고 근육이 붙으며, 키가 쑥쑥 컸다.
현재는 178cm 신장에 73kg 정도 체중이 저절로 유지되고 있다.
‘하긴. 7cm 차이면 눈치채는 게 당연한가.’
지금 150대 후반인 수아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165cm까지 키가 큰다. 그러면 눈썰미가 없는 나라도 단박에 그녀의 변화를 눈치챌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산타워 최상층에 도착했습니다.]
팅.
청명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사방으로 막혀있는 유리창 앞. 탁 트인 서울의 상공이 펼쳐졌다.
“와아!”
수아가 만면에 밝은 미소를 띠었다.
그녀가 도도도 달려가 전망대 유리창에 착 달라붙었다.
“아하하. 이것도 오랜만에 보니까 되게 좋네요!”
그리고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여러모로 요즘 마음이 답답했는데.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요!”
다행이군. 긍정적인 반응이다.
거리가 을씨년스러워서 좀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그녀의 안에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이 기억이… 최대한 수아의 자살 충동을 막아준다면 좋으련만.’
그건 지금부터 수아가 싸워나갈 몫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이 정도.
어쨌든 나들이 목적 자체는 성공했다.
“와, 저기! 저쪽이 우리 빌라 방향이죠?”
“그렇구나.”
“오빠. 우리 집 제대로 보여요?”
“그래. 보인다.”
“그래요? 난 잘 안 보이는데. 오빠 눈 되게 좋구나!”
“…어. 좀.”
항시 발동 처리해둔 천리안 스킬 때문이라곤 못 말하겠다.
어쨌든 그 뒤로도 수아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고. 눈에 보이는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 저기는…….”
수아가 말꼬리를 흘리나 싶더니. 표정이 극적으로 어두워졌다.
뭐지. 뭘 봤길래 저러냐. 나는 황급히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봤고.
이내 탄식을 흘렸다.
‘이런. 망할.’
여의도다.
침수되고, 폭발에 휘말려 초토화가 된 여의도가 멀찍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