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1001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2)>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에 하늘로 붕 떠서인가.
“으어, 우아아악!!”
별안간 오경태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뭐, 뭐야 X발! 왜, 왜 몸이 공중에 떠!!”
거 새끼. 드럽게 시끄럽네.
아가리 여물라는 차원에서 오경태 뒤통수를 빠악, 시원하게 갈겼다.
“악, 쓰읍!!”
사적인 감정은 없다. 진짜 시끄러워서 그랬다.
절대 부잣집 애새끼가 띠꺼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아무튼 아니라면 아닌 거다.
“내, 내 머리!! 으아아아! 주, 죽어! 죽는다!! 나 죽는다아아!!!”
그러자 오경태의 발작이 더욱 심해졌다.
혼란스러운 마당에 갑자기 머리에 충격이 가해지니, 패닉이 찾아온 모양.
‘그러든가.’
누가 이기나 해보자.
빡, 빡! 빠라바박빡! 나는 놈의 발광이 심해질수록, 더욱 세게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끄… 으, 으윽……!”
놈은 한동안 팔다리를 애처롭게 휘적거리나 싶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만뒀거나, 더 이상 발광하기도 지쳤거나. 둘 중 하나겠지.
“오, 오오오……!”
그리고 우리가 일정 고도 이상 상승한 뒤.
수몰된 여의도의 참상이 발밑으로 멀어지자, 슬슬 오경태도 제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나… 나, 이제 보니 날고 있는 거잖아?”
오경태가 자기 손을 쳐다보며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놈의 눈가에 선망의 빛이 어렸다.
“나, 나에게 이런 숨겨진 슈퍼 파워가……?”
얼씨구. 지랄한다.
하는 짓이 우스워서 헛웃음을 피식 흘렸다.
물론 소꿉장난은 여기까지다.
오경태도 마침 잠잠해졌겠다. 나는 시선을 조금 날카롭게 떴다.
‘곧바로 진입한다.’
[스킬 발동: 중력 조작]
[스킬 발동: 고속 비행]
[스킬 발동: 물리 저항 저하]
…….
…….
나는 다양한 스킬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거대한 신전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콰아앙! 쏜살같이 허공을 갈라 직선으로 쇄도하는 내 신형. 발사된 포탄을 방불케 하는 속도였다.
“끄, 으거어어어억!!”
가까스로 잠잠해졌던 오경태는 당연히 다시 난리가 났다.
놈이 반쯤 실성한 표정으로 무아지경의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털썩. 그대로 몸이 축 늘어졌다.
기절한 듯했다.
“음. 차라리 잘됐어.”
적절한 타이밍에 잘 기절해 줬다.
나도 놈에게서 완전히 신경을 끄고, 비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속도 자체는 상당한 빠르기였지만… 나는 불만족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느리다.’
비행하는 데 동시 발동한 스킬만 5개 이상.
5개나 중첩된 스킬의 사용에도, 생명력을 한계치까지 소모한 혈천갑의 블러드 스트림보다 속도가 약간 느리다.
“좀 답답한데.”
전에는 이 정도 속도만 해도 굉장히 빠르다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안 맞는 옷을 입은 듯한 갑갑함이 느껴진다.
역체감이 이렇게 무섭군.
이젠 하트 기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돼버렸어.
“스으……!”
잡생각을 하는 사이 신전이 코앞까지 다가왔고. 나는 숨을 빠르게 들이쉬었다.
신전 정면. 노을을 연상시키는 오렌지빛의 거대한 대문이 보인다.
당연히 굳게 닫혀있었다.
‘스킬 발동.’
물론 닫혀 있든 잠겨있든 상관없다.
어차피 벽 뚫고 들어갈 거니까.
[스킬 발동: 라이트닝 헬릭스]
파지지직!
굵직한 뇌전 다발이 단전에서 뽑혀 나와, 신체 말단까지 빠르게 훑어 내려간다.
이내 어마어마한 양의 스파크가 내 오른손으로 오롯이 집중되었다.
“…발사.”
콰콰콰쾅!!
명령어를 외자 곧장 뇌전의 탄환이 신전으로 치달렸다.
파랗다 못해 하얗게 빛나는 벼락 두 줄기가 나선형으로 빠르게 회전했다. 그리고 굶주린 뱀처럼 거칠게 쏘아져 나갔다.
콰자자자작!!
폭발음. 그리고 번개가 공기를 태우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다.
자욱한 흙먼지가 한 번 휩쓸고 간 뒤. 신전 정면의 벽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보였다.
“실례 좀 한다. 던전 마스터.”
예의상 인사나 박아준 뒤. 뻥 뚫린 구멍으로 신전 안에 입성했다.
치지징. 내부에 진입한 나는 곧장 광학 미채부터 풀어버렸다.
“후우.”
냅다 코트를 벗어버리고, 다시 인벤토리에 처넣었다.
이 아이템은 다 좋은데. 보온성이 너무 뛰어나서 잠깐만 입고 있어도 존나게 더운 게 문제다. 도저히 오래 입고 있지를 못 하겠다.
“…….”
신전 내부는 웅장한 외관에 걸맞게 엄청 넓었다. 또 칠흑처럼 어두웠다.
그야말로 빛 한 점 없는 까마득한 어둠. 그러나 신전의 복도를 가로지르는 내 발걸음엔, 일말의 망설임이 없다.
[스킬 발동: 나이트 비전]
내가 야시(夜視) 스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시야는 온통 초록색. 어둠에 잠긴 신전 내부 정경이 제법 선명하게 뇌리에 들어오고 있었다.
신전은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고 구불구불한 복도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오른쪽.’
그러나 복잡한 갈림길이 나와도 주저하는 법은 없다.
올바른 길을 찾아, 던전 마스터가 있는 ‘최후의 제사장’을 향해 쾌속 전진 한다.
“앵간히 많이 와봤어야지.”
나는 무심결에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던전마다 출현 확률이 정해진 건지는 모르겠다만. 이 ‘사양의 신전’은 출현율이 다른 던전에 비해 비교적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수십 번이다.
최소 스무 번은 반복해서 이 미로를 헤맨 것 같다.
거짓말 좀 보태서, 이젠 나이트 비전 스킬이 없어도 발의 감각만으로 길을 찾을 수준이다.
‘옛날 생각 무럭무럭 나는군.’
나는 실실 웃으며 잠깐 추억에 잠겼다.
우습게도 이 나이트 비전 스킬이 드롭되는 던전은… 제26던전. ‘사양의 신전’이다.
바로 여기지.
“어서… 오세요……. 도전자…님.”
그리고 어느 순간.
갈라지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쪽…입니다…….”
비좁았던 미로형 통로가 끝났다.
내 앞에 펼쳐진 건 거대한 원형 광장. 광장 중심에 거대한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 거대한 그릇이 있다.
그리고 그릇 안엔, 인간의 뼈를 가득 쌓아놓은 골탑이 있었다.
“희생제를… 완성시킬, 도전자님.”
그리고 소름 끼치는 인신 공양 제단의 옆. 갈라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보였다.
나는 그것… 아니. 그녀를 향해 질척한 비웃음을 흘렸다.
“오랜만이다. 던전 마스터.”
끔찍한 몰골을 한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 * *
끔찍한 몰골의 여인이었다.
피로 흠뻑 젖은 하얀 사제복 차림. 목 위는 예리하게 잘려 머리가 없었다.
그래서 잘린 머리는 어디 있는가 하면. 그녀가 오른손에 직접 들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그리고 그 잘린 머리통이 더듬더듬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의, 희생제를… 완성시킬, 도전자님.”
더러운 하얀색 베일 아래. 시퍼렇게 혈색이 죽고 썩어가는 얼굴이 드러나 있다.
파내져서 텅 빈 동공 안엔 구더기가 우글거렸고. 연신 그렁거리는 목소리를 내뱉는 입은 헐겁게 꿰매져 있다.
“오랜만이다. 던전 마스터.”
그리고 나는 딱히 그 몰골에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인사를 해줬다.
그녀는 이 신전의 주인. 즉 던전 마스터.
스테이터스상으론 대충 이런 느낌이다.
[몬스터 정보]
[명칭: 전추한 성녀 아델라]
[체력: 11 마력: 32]
[힘: 8 민첩: 5 지능: 27]
[상세: 제26던전 ‘사양의 신전’의 던전 마스터. 한때 성녀로 추앙받던 고귀한 여성. 금단의 의식을 치르려다 발각되어 처형됐으나, 의식의 완성을 위해 금단의 힘을 빌려 부활했다.]
여사제 같은 거룩함과 고귀함.
그리고 희생제의 제물 같은 애잔함과 잔혹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외관.
실제로 그녀는 이 폐쇄된 신전의 유일한 여사제이자, 성녀이자. 희생 제물이기도 하다.
“정말… 빨리, 이곳까지… 도달하셨군요. 도전자님.”
문득 던전 마스터… 아델라가 내게 그런 말을 해왔다.
특유의 소름 끼치고 더듬더듬 끊기는 목소리는 의문에 차있었다.
“오는, 길이… 꽤나 복잡하고. 방해자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시커멓게 썩어가는 면상이 기괴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언뜻 나를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순수하게 놀라는 것 같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미궁이라면 이미 길을 다 외웠다.”
나는 인벤토리를 뒤적거렸고. 사실만 간략히 그녀에게 브리핑해 줬다.
구더기와 벌레가 드글거리는 아델라의 면상을 무심하게 쳐다봤다.
“그래서 네가 말한 방해자는 얼굴도 못 봤다. 내가 빨리 도착한 이유지.”
방해자. 쉽게 말해서 잡몹들.
저 아델라 년이 이 신전의 미궁 여기저기 배치해 놓은, 각종 기괴한 몰골의 몬스터들을 의미한다.
‘놈들의 위치는 고정. 시간이 몇 번을 회귀해도 똑같다.’
머릿속에 이미 신전 미궁의 지도는 물론이고, 그 잡몹 배치도 그려져 있다.
당연히 여기까지 올 때 잡몹들은 전부 피해서 왔다.
“또… 방금 그 말투.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군요.”
아델라는 그르륵, 하고 피 끓는 소리를 냈다.
“저희. 언젠가… 만난 적이, 있던가요?”
아델라가 문득 꿰매진 입을 쩍 벌렸다.
희번득. 입 안의 시커먼 어둠 안에서 허연 눈알 하나가 뒤룩거렸다.
눈알의 붉은 동공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도전자님. 정체가, 대체 무엇입니까?”
“취미로 헌터를 하는 사람이다.”
“…헌터. 헌터란,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사냥꾼을, 의미하지요?”
“비슷한데 좀 다르지. 우리 세계에선 의미가 좀 확장됐다.”
나는 던전의 몬스터들에게 일일이 말을 거는 기괴한 습관이 있다.
그러나 몬스터들과 길게 대화하는 취미는, 없다.
“너 같은 외계인 새끼들 잡아 죽이는 사람. 그게 헌터다.”
키이잉!
인벤토리에서 손을 빼냈다. 손아귀엔 푸른 칼날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블라이스의 단검. 내 자살 전용템이다.
“이제…….”
신형을 살짝 낮췄다.
사냥 직전의 맹수들이 그러하듯.
“죽어.”
아델라가 있는 제단까지 어림잡아 약 50미터.
발끝에 극한까지 힘을 주고, 스킬을 사용한다.
[스킬 발동: 그림자 쇄도]
눈 깜짝하는 사이.
나는 이미 아델라의 후방에 나타나 있었다.
아델라는 뒤늦게 나를 포착했고. 입 안에 도사린 눈알의 동공이 화등잔 만해졌다.
“아?”
한 템포 늦게, 시커먼 그림자의 폭풍이 내 경로를 따라 쇄도해왔다.
쿠구구구! 거칠게 허공을 할퀴는 압도적인 그림자의 칼날. 그것들이 일거에 아델라의 정면으로 쏟아진다.
“…이런.”
아델라는 나직한 탄성을 유언으로 남겼고.
촤자작! 우지직! 그림자 칼날 세례에 사지가 갈가리 찢겨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녀가 오체분시되는 것을 확인한 뒤.
“후우.”
나는 몸에서 힘을 빼고 한숨을 흘렸다.
“끝.”
그림자 쇄도.
블라이스의 단검에 붙어있는 옵션 스킬이다.
단 한 방. 이거 한 방이면 아델라를 저세상 보내는 데는 충분했다.
진짜 끝난 거 맞다.
진(眞) 최종 보스가 기다리는 거 아니고. 보스몹답게 2차, 3차 변신 형태를 남겨둔 것도 아니다.
아델라는 방금의 일격으로 치명상.
곧 숨이 끊어질 거고, 던전은 폐쇄될 일만 남았다.
‘애초에 깡스탯 자체가, 던전 마스터치고는 너무 낮지.’
이건 물론 내가 지나치게 강력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델라 쪽이 지나치게 약한 것도 있다.
그녀가 지나치게 약한 이유는 이 던전의 특수한 구조 때문이다.
‘잡몹들이 던전 마스터보다 센 케이스의 던전이니까.’
간혹 이런 유형의 던전들이 있다.
비선형 던전은 아니고 일반형 던전인데. 던전 마스터보다 잡몹들이나 필드 기믹이 던전 전투력의 핵심인 케이스.
전생에서 월미도에 붕괴했던 던전. ‘유령의 축제’도 비슷한 느낌이다.
던전 마스터인 ‘꼭두각시 소녀’ 자체는 약하다. 그녀에게 조종당하는 수백 개체 묘지기 광대들이 실질 전력이지.
“여기까지 내가 온 시점에서. 넌 이미 죽은 거였다.”
드래곤이나 코스모의 거신병보다도 강력한 잡몹들이 산재한, 사양의 신전 내부의 미궁.
나는 그 미궁의 구조를 들어오기도 전에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 한 마리도 만나지 않고 무혈입성을 했다.
“상대가 안 좋았다. 던전 마스터.”
노여워할 것 없다.
허탈하거나 실망할 것도 없다.
상대가 나잖아. 경력이 지나치게 많은 신입. 1001번째 회귀자 한정용.
네 패인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