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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3화 (13/235)
  • 13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12)>

    “무슨 낯짝으로 기어 온 거야.”

    강서윤이 씹어뱉듯이 으르렁거렸다.

    눈빛이 적잖이 날카롭군. 찔려 죽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와서!! 나타난 거냐고!!”

    콰아아앙!

    강서윤이 일갈하자, 흉폭한 충격파가 주변을 마구 할퀴었다. 그녀의 분노에 스킬이 반응해 위상능력이 폭주하는 것이다.

    “수아는, 내 동생은! 너를… 엄청나게 따랐잖아……!!”

    스르륵.

    건물 잔해와 부서진 가구들이 공중에 떠오른다.

    강서윤을 중심으로 위협적인 기류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어디서 뭘 하다가!! 지켜주지 못한 거냐고……! 이, 쓸모도 없는, 개새끼야……!”

    강서윤은 이를 악물고 나를 힐난했다.

    “전부, 전부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수아가 죽은 거라고!!”

    논리가 지리멸렬하다.

    흘겨 뜬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다. 이제 보니 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어쨌든. 부당한 비난을 잠자코 들어줄 생각은 없다.

    너만 화나냐? 지금 누구보다 이 상황이 답답한 건. 네가 아니라 나다.

    “난 언제나 최선을 다했어. 다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딱히 강서윤이 내 말을 이해해 주긴 바라지도 않는다.

    나도 나 자신에게 변명했다. 우리는 사실상 서로를 노려보며 집단 독백을 읊고 있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굳이 따지자면 내 실수가 있었지만. 수아가 죽은 건 내 탓이 아니야.”

    “…뭐가 어째?”

    “그냥 죽을 팔자라서 죽은 거겠지. 애꿎은 생사람 잡지 마라. 강서윤.”

    “……!”

    강서윤이 눈을 터질 듯이 부릅떴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도저히 못 믿겠다는 눈치다. 그녀는 이내 내 얼굴을 삿대질했다. 그리고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내가 아는 한정용… 맞아?”

    “왜. 아닌 것 같냐?”

    “어떻게. 어떻게, 수아가 죽었는데! 말을 그렇게 개같이 할 수가……!”

    “먼저 개같이 말한 게 누군데.”

    그렇게 일축한 뒤. 나는 강수아의 시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쇄애액, 퍽! 날카롭게 벼려진 건물 잔해가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

    발을 멈추고 잔해가 날아온 방향을 노려봤다.

    강서윤이 내 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건물 잔해들이 일제히 떠올라 나를 겨누고 있다.

    “…오호.”

    위협사격이다. 강서윤이 내게 위협을 가한 것이다.

    내 목소리는 전에 없이 차갑게 식었다.

    “해보자는 거냐. 강서윤.”

    볼에 난 상처를 손으로 훑었다. 핏줄기가 손끝에 진하게 묻어나왔다.

    고작 깎아낸 콘크리트 따위로, 내 기본 방어력을 뚫고 면상에 흠집을 내다니. 역시 오버랭커다운 실력이다.

    “다, 다가오지 마. 뭐 하려고!”

    강서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비척거리는 내 행색에서 어떤 광기를 느낀 것인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옅은 공포가 새겨져 있다.

    “알 거 없어.”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다음에 실수하지 않도록 복습을 좀 하려는 거다.”

    “…다음? 복습? 대체,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괜히 알려고 하지 마라. 말해도 어차피 못 믿어.”

    만에 하나의 확률로 믿어준다 해도. 어차피 회귀하면 전부 잊어버린다.

    이미 강서윤만 해도 그걸 몇 번이나 경험해 봤다. 내가 너한테, 내 상황을 얼마나 많이 설명해 줘 봤는데.

    그랬는데. 저렇게 또 한 번 묻는 거다.

    ‘지금 이 상황조차도 지겨워.’

    수아가 죽고, 오해가 생긴 강서윤과 내가 대립한다.

    이 상황은 처음일 것 같냐? 당연히 아니다. 디테일은 조금씩 달라도 수없이 반복해 봤다.

    그래놓고도 강서윤은 전부 잊어버렸다.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초기화가 돼버렸다.

    그래서 이젠. 나도 지쳤다.

    ‘차라리 안 믿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전적으로 믿고, 모든 걸 털어놓고, 진심으로 의지했던 사람인데.

    돌아가면 깡그리 잊어버린다.

    ‘다시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아무리 설명해 봐도.’

    결국의 결국엔 백지로 돌아간다.

    그때 생기는 무력감과 공허감. 영혼이 짓눌리는 듯한 절망감. 어떤 몬스터를 상대할 때보다도 압도적인… 공포감. 그게 무려 999번.

    이제 더는 느끼고 싶지 않다.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

    “비켜라. 나 진짜로 화내기 전에.”

    건조하게 명령했다.

    강서윤은 흠칫, 발을 한 발짝 물렸다.

    “한정용. 너 지금, 진짜 이상해… 눈이 완전 맛이 갔다고! 알아?!”

    “몰라.”

    “오지 마! 내, 내 동생한테 뭘 하려는 거야!!”

    “시체한테 해봐야 뭘 하겠냐. 잠깐 몸만 좀 만질 뿐이야.”

    “모, 몸을 만져……?! 이, 이 미친 새끼!! 네가 사람 새끼야?!”

    강서윤이 혐오와 경멸이 드글드글 끓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뭐지 X발. 좀 이상하게 이해를 한 거 같은데.

    ‘…그냥 강수아의 육체에 남은 기억을 좀 읽어 들이려는 건데.’

    내가 가진 스킬 중 ‘사이코메트리’라는 게 있다.

    어떤 물체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읽어 들이는 유틸형 스킬이다. 그걸 사용하려면 대상과 접촉해야 한다. 그래서 강수아의 시체를 좀 만지려고 한 거다.

    어떤 경위로 죽었는지 알아야 다음 생에 참고를 하지.

    ‘됐다. 그냥 오해하게 냅둬.’

    내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행위에는 염증이 났다.

    오해가 생겼다면 내버려 둔다. 그로 인해 사태가 심하게 어그러지면… 그냥 다 죽여버린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한 400번째 회차부턴 그게 정석이 됐다. 경험상 그게, 차라리 내 멘탈 관리에 더 좋았다.

    “비켜라. 두 번째 말한다.”

    “모, 못 비켜! 안 비켜!”

    “세 번째는 없어. 방금 게 마지막 경고다.”

    “하. 마지막 경고면, 네가 뭐 어쩔 건데? 약해 빠진 D급 헌터 새끼가!!”

    “…….”

    “저리 꺼져!! 얼씬도 하지 말라고, 이 악마 같은 새끼야!!”

    퍼거걱! 육중한 파육음이 장내를 울렸다.

    빽빽 소리치던 강서윤은 단숨에 침묵했다.

    “…….”

    일대에 무거운 적막이 찾아왔다.

    어느새 나는 강서윤의 후방으로 이동해 있었고. 강서윤은, 머리통이 광대뼈 위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 그륵… 아.”

    그녀의 몸이 잘게 경련한다. 더듬더듬 단말마의 신음을 내뱉는다. 철퍽. 강서윤은 질펀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부서진 머리의 파편들이 뒤늦게 바닥에 쏟아진다.

    “후우.”

    나는 피로 젖은 손을 대충 털어냈다.

    주먹으로 강서윤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전력으로 가격했기에, 오버랭커인 강서윤이라도 한 방에 머리가 터졌다.

    기분이 좋지는 않다. 강서윤은 일단 내 소꿉친구니까. 누구보다 오래 사귄 진짜배기 친구다.

    내 손으로 죽이는 것에 어느 정도 거부감이 남아있다.

    “…비키랄 때 비키지 그랬냐. 서윤아.”

    정말 친했던 소꿉친구지만. 심하게 거슬리면 언제든지 대가리를 박살 낼 수 있다. 그게 인간 한정용의 현주소였다.

    인간? 지금의 나는 아직 인간이라 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나는 철학과 대학생이던 강수아가 아냐.

    철학엔 조또 관심 없다.

    “어디.”

    나는 강서윤의 시신을 팽개치고 강수아의 시체로 다가갔다. 그녀의 이마에 손바닥을 슬며시 얹었다.

    차갑다. 시체 특유의 무기질적인 감각이 엄습한다. 순간 가슴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사이코메트리.’

    스킬을 영창했다.

    [스킬 발동: 사이코메트리]

    파지직!

    순간적으로 강렬한 두통이 일었다. 직후 수많은 과거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헤집는다.

    “…후우.”

    잠시 후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부 파악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낮게 찼다.

    기억의 시작은 불안에 찬 강수아의 목소리였다.

    [저, 언니. 정말로 그래도 될까?]

    강수아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대화 상대는, 언니인 강서윤이다.

    [정용 오빠가, 여기서 꼼짝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야. 그 새끼가 여기 있으란다고 진짜 꼼짝 말고 있을 거야?!]

    [으음. 오빠가 그렇게 말했으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야, 강수아! 정신 차려! 너 그러다 죽어! 그 새끼가 너 죽이려고 환장한 거라니까!]

    [에이, 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오빠랑 절친이잖아!]

    강서윤이 강수아를 내 집에서 탈출시키려고 설득하는 장면이다.

    강서윤. 이 개 같은 년이 이딴 식으로 내 계획을 망쳤을 줄이야. 999번 반복할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 상상도 못했다.

    [아니. 그래도… 언니. 마땅히 갈 곳도 없지 않아?]

    [어쨌든! 최대한 게이트 붕괴지에서 멀리 떨어져야 돼!]

    [하지만. 오빠가…….]

    [아아, 그놈의 오빠! 정용 오빠! 너 걔가 뒤지라면 그냥 뒤져줄 거야?!]

    수아는 최대한 강서윤의 권유를 거절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려고 한다. 나를 철석같이 믿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X발, 기특해서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았다.

    [나랑 같이 도망가자, 수아야! 제발! 여기 집도 완전히 안전하진 않단 말이야! 지금 네 목숨이 위험하다고!!]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했다.

    강서윤이 울 것처럼 애원하자, 수아도 어쩔 수 없이 결국은 승낙했다.

    […알았어. 그럼 나 잠깐 준비만 하고 올게.]

    [아아, 그래! 잘 생각했어, 수아야!]

    뭐, 그래. 솔직히 강서윤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강서윤이 나 X돼 보라고 수아를 집에서 내보냈겠는가. 그녀도 수아를 엄청나게 걱정하니까, 바쁜 시간 쪼개가며 그녀를 멀리 피신시키러 온 거다.

    당연히 심정이 이해는 되지.

    그러니까 화가 나지 않고. 안타까운 거다.

    [최대한 빨리! 알겠지? 빨리!!]

    [아후, 알겠다니까. 그만 좀 보채.]

    그렇게 수아는 옆집…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강서윤은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어딘가에 계속 전화를 걸었다.

    [아오, X발!]

    이내 파각!

    강서윤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이 새낀 왜 또, 중요할 때 전화를 안 받는데!!]

    잠깐 사이코메트리를 멈추고 의식을 현실로 되돌렸다. 나는 품을 뒤적거려 핸드폰을 꺼내봤다.

    부재중 전화. 발신인은 강서윤.

    무려 15통이나 와 있었다.

    “…흐.”

    씁쓸한 나머지 비틀린 웃음을 머금었다.

    “여러모로, 꼬이고 꼬여버렸군.”

    뭐, 그 뒤로는 내가 아는 그대로다.

    멀리 한강변에서 거신병들의 광자포가 발사되었고. 압도적인 기세의 새하얀 빛이 천지를 뒤덮었다.

    그리고 콰콰콰쾅!

    그 충격파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이 집은, 순식간에 뼈대만 간신히 유지하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아, 안 돼! 수아야! 수아, 수아야!!]

    하필이면 그 순간에 강서윤은 강수아와 위치가 엇갈려 있었다. 내 집에서 나한테 전화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광자포가 발사되는 찰나의 순간. 수아와 함께 공간이동으로 피신하지 못했다.

    [아아, 아아아! 마,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강서윤이 허겁지겁 수아 곁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강수아는 죽어있었다.

    강서윤은 미친 사람처럼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라는 말만 반복했고. 터덜터덜 걸어가더니, 이내 수아의 시신 앞에 무릎 꿇었다.

    [꿈이야. 이거, 꿈이라고. 악몽. 그래. 악몽일 거야…….]

    공허하게 풀린 얼굴로 넋두리를 중얼거리는 강서윤. 완전히 넋이 나간 두 눈에선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왜. 왜 네가. 차라리, 내가 차라리 죽었으면……!]

    강서윤은 옛날부터 가족을 끔찍이 아꼈지. 중얼거린 저 말들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약 5분 정도가 정지화면처럼 흐른 뒤.

    [강서윤.]

    콰앙! 현관문이 개박살 났고.

    내가 들이닥쳤다.

    […네가 여기 왜 있냐.]

    나와 강서윤이 강수아의 시체를 사이에 둔 채 대치한다. 여기까지가 사이코메트리로 읽어낸 정황이었다.

    “네 말이 맞아. 강서윤.”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이건 악몽이다. 슬슬, 내가 깨게 해주지.”

    수아는 죽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은 없다.

    내게 유일하게 남은 ‘해야 할 일’을 할 차례다.

    “자살하자.”

    쓴웃음을 실실 흘렸다.

    내 처지가 마치, 복잡한 프로그램을 프로그래밍하는 개발자 같다.

    전에 이곳에서 버그가 터졌다. 그 버그를 고치기 위해 다른 코드를 짜 넣었는데. 이번엔 그 추가된 코드 때문에 저곳에서 버그가 터진다.

    ‘그야말로. 그것의 무한 반복이군.’

    두더지 잡기를 하듯이, 나를 놀리듯이.

    덕분에 아직도 그 버그를 완전히 못 고치고 이러고 있다. 디버깅을 999번 실패했고. 이제 1000번째다.

    ‘내가 했던, 전과는 다른 행동. 그것 때문에 이 사태가 터진 거겠지.’

    그렇다면 그게 뭐였지?

    내가 이번 회차에서, 전번 회차들과 확연히 다르게 했던 행동이 있다면?

    그래. 깊게 생각할 것도 없다.

    “…하트 기어. 혈천갑. 빨갱이놀이.”

    정확한 인과관계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연기했던 그 붉은 갑옷의 영웅. 그것이 강수아, 그리고 강서윤에게 어떤 식으로든 심리적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이번 회차는 강서윤이 별안간 강수아를 멀리 피신시키려고 한 거다.

    ‘다음엔 그에 대한 대처도, 한번 생각해 보자.’

    파지지직!

    허공을 푸른 스파크가 찢어발긴다. 쩍 벌어진 아공간에서 날이 시퍼런 단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시작하자. 리셋.’

    이제 이 세계를… 다시 며칠 전으로.

    1001번째 11월 27일로 만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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