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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번째 로그라이크 헌터-8화 (8/235)
  • 8화

    <1000번째 로그라이크 헌터(7)>

    세 번째 붕괴는 충남 천안에서 일어난다.

    나는 지금 천안의 구세계 백화점에 들어와 있었다.

    “꺄아아악! 사, 살려줘!!”

    콰앙! 콰쾅!

    주변에선 온통 박살나는 소리가 비명과 섞여 울려 퍼졌다.

    “모, 몬스터다! 아아아악!!”

    널찍한 백화점에 사람들이 혼잡스럽게 뛰어다닌다.

    이미 죽어서 사지가 갈기갈기 찢긴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진열된 상품들이 온통 피로 점철되어, 백화점 전체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X발……!”

    내 옆에 있던 이름 모를 D급 헌터 하나가 씨근거렸다.

    “집합 금지 명령은 분명 내렸을 거 아냐! 뭔 사람이 이리 많아!!”

    던전 게이트는 개방이든 붕괴든, 필연적으로 인파가 뭉치는 곳에서만 일어난다.

    이건 10년 전부터 항상 그랬다. 인간의 생체 마력이 한 지점에 많이 뭉칠수록, 던전 마스터가 그 스팟을 감지해 내기 쉽기 때문이다.

    ‘아무렴 정부가 말한다고 들으면. 그게 한국인인가.’

    그래서 2연속으로 게이트 붕괴가 일어난 지금.

    정부는 안전상의 이유로 집회 및 다중이용시설의 집합 금지를 명령했지만. 꼭 세상엔 말 안 듣는 새끼들이 존나게 많기 마련이다.

    ‘그게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새끼들이고.’

    그래도 이번에 호되게 당한 뒤. 집합 금지 명령을 어기는 미친 새끼들이 거의 사라진다.

    이번 붕괴로 최소 수천 명. 최대 2만 명이 죽으니까. 사망자 수에 0이 하나 더 붙고 나서야 고분고분 말을 듣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세 번째 붕괴 이후론. 죄다 서울에서만 붕괴가 일어난다.’

    서울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모이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이 존나게 바글거린다.

    수도권 인구 과밀의 폐해를 이런 식으로 보게 될 거라곤… 10년 전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지.

    “그워어어어어!!”

    내가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쩌렁쩌렁한 고함과 함께 백화점 건물 전체가 진동했다.

    콰아앙! 거대한 도끼가 지축을 내리쳤다. 땅울림과 동시에 수많은 인간들이 일거에 찢겨나갔다.

    “끄욱……!”

    푸화악, 파육음이 울린다.

    핏줄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 아?”

    도망치던 사람들이 넋이 나간 채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날아온 도끼의 주인들을 눈에 담았다.

    “쉬익… 쉬이익!!”

    초록색 피부에 터질 듯한 근육질. 2미터를 훌쩍 넘는 장대한 체격. 그리고 돼지를 닮은 면상에 흉악한 송곳니.

    소위 말하는 오크다. 수천 마리에 달하는 오크들이, 백화점을 점령한 채 진군하고 있었다.

    “퀘에에엑!!”

    가장 선두에서 늑대 가죽을 뒤집어쓴 오크가 도끼를 치켜올렸다.

    그에 따라 다른 오크들도 한껏 고양된 함성을 내뿜었다.

    “크오오오!”

    “워어어어!!”

    진군 속도가 한층 빨라진다.

    방해되는 인간들을 도끼로 무참하게 박살 내버리면서. 짙푸른 괴물의 파도가 최종 방어선에 가까워진다.

    “마, 막아! 놈들이 백화점 바깥까지 나가게 하면 안 돼!!”

    그리고 백화점의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나 외의 수많은 무장 병력들. 그들을 지휘하는 헌터 부대의 부대장이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

    나는 소리친 부대장을 잠깐 지그시 쳐다봤다.

    곧장 패널이 떠올랐다.

    [인물 정보]

    [명칭: 박현우]

    [별칭: B급 헌터, 베테랑 사냥꾼]

    [체력: 53 마력: 29 신체 상태: 긴장, 공포]

    [힘: 28 민첩: 22 지능: 11 포텐셜: 18]

    [최종 전투력: 95]

    이번에 급조되어 편성된 ‘게이트 붕괴 대책 처리반’의 제13중대장이다.

    갑자기 연속해서 일어나는 게이트 붕괴 재해. 이건 비단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미증유의 재앙이다.

    그래서 각국의 헌터 협회나 게이트 대책 본부들은, 이 이상 현상을 방어할 특수 전담 부대를 급하게 신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강제로 편입된 것이 바로 여기. D급 헌터 제13중대였다.

    ‘B급 치곤 스펙이 꽤 높은 편이네.’

    제13중대의 중대장과 부대 편성원은 항상 달라졌다. 그래서 누구인지 확인해본 것이다.

    ‘이건, 사흘 만에 급조 편성된 부대라 그런가.’

    999번이 항상 다르기도 힘든데 말이야.

    놀랍게도, 이번에도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S급들 올 때까지 시간만 벌어라! 우리 역할은 어차피 딱 거기까지야!”

    이번 부대장, 박현우는 자기의 주제와 용도를 잘 파악한 사람이었다.

    D급 헌터들로만 이루어진 이 쫄병 부대. 사실상 ‘고기 방패 부대’라 불려도 이상할 게 없다.

    “X발! 이런 데서 개죽음 당할 수는 없잖아! 적당히 싸우다 눈치 봐서 빠져!!”

    굉장히 마음에 드는 말을 연신 지껄인다.

    게다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최전선에 나가 부하들 앞을 당당하게 막아서고 있다.

    부대의 지휘관으로서는 최악이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굉장히 마음에 든다.

    “흐음.”

    나는 무서운 속도로 입구를 향해 돌진하는 오크 떼들을 살펴봤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있는 우두머리를 시선에 담았다.

    [몬스터 정보]

    [명칭: 은빛 늑대 족장 케샤쿠]

    [체력: 95 마력: 0]

    [힘: 48 민첩: 14 지능: 1]

    [상세: 제21던전, ‘은빛 늑대 주둔지’의 던전 마스터. 주둔지의 모든 오크들을 힘으로 굴종시킨 패왕. 순수한 완력으로 무장한 글레이브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상세 탭에 쓰인 대로 지능과 마력은 처참한 반면, 힘과 체력이 무식하게 높다.

    나는 낮게 혀를 찼다.

    ‘세 번째 붕괴에서 최악의 상대를 만났군.’

    이번엔 백화점 내부에서 게이트가 붕괴되었다.

    때문에 헌터들은 몬스터의 외부 확산을 막기 위해, 백화점 입구를 봉쇄하는 수비전의 양상을 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 오크들은 공성전과 전면전의 대가다. 경험상 이번 붕괴 때는… 어떤 던전보다도, 오크와의 혈전에 가장 사상자가 많이 나온다.

    ‘이번에 죽는 수천 명의 인원 중에는… 급 낮은 헌터들도 수백 명은 된다.’

    초반 회차 때는 나도 저놈들에게 굉장히 많이 죽었다.

    그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이번 싸움에선 강서윤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어.’

    강서윤은 저번 월미도 사태 때 무리하게 능력을 사용해서, 그 후유증으로 입원 중이다.

    말하자면 쿨타임 상태. 써먹는다 해도 다음 붕괴 때나 다시 써먹을 수 있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이번 붕괴 때 쓸걸 그랬어.’

    나는 다음 붕괴 던전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건 잘 안다.

    그래도 그런 후회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법사들! 물리 방벽 빨리 둘러!!”

    부대장 박현우가 급박하게 외쳤다. 허둥대던 후방의 마법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배리어를 영창했다.

    “하아앗!”

    “씨, 씰 배리어!”

    우우웅.

    수 겹의 배리어가 부대의 앞에 둘러쳐졌다.

    오크들과의 격돌이 목전까지 다가왔다. 물론 오크들도 그 방벽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워어어어어!!”

    하지만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포효와 함께, 전열이 일제히 도끼를 들어 올렸다.

    박현우의 얼굴에 ‘설마’ 하는 표정이 어렸고.

    “크오오오!!”

    그들은 박현우의 기대대로 방어막을 향해 일제히 도끼를 내리쳤다.

    콰아아앙!! 건물 전체가 요동치는 폭음과 진동이 터져 나왔다.

    “크욱……!”

    “커헉! 끄아악!”

    방어막을 유지하던 캐스터계 헌터들이 일제히 온몸을 뒤틀었다.

    “쿨럭! 크헉……!”

    마법사 하나가 격한 기침을 하더니, 피를 쏟고 쓰러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까무러쳐 버리는 사람도 있고. 그 자리에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끄… 죄, 죄송… 합니다.”

    마법사들의 실신. 그것은 곧 배리어의 와해를 의미했다.

    콰창, 챙강! 높은 소음과 함께 우리를 지켜주던 배리어가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배, 배리어가 깨진다! 저, 저, 전투준비!!”

    박현우는 비명처럼 외쳤다. 그리고 거대한 그레이트 소드를 어깨에 들쳐 멨다. 다른 이들도 긴장한 얼굴로 각자의 무기를 부술 듯이 꼬나 쥐었다.

    “……!”

    일촉즉발의 상황 속, 키이잉! 마지막 배리어가 금속음과 함께 와해되었다.

    이제 저 짙푸른 괴물들에게서 우리를 지켜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워어어어어!!”

    오크 족장 케샤쿠가 포효했고. 그대로 가장 선두에서 돌격해 왔다.

    콰아앙! 전열이 부딪쳤다. 무기의 금속음과 칼날의 섬광이 난잡하게 오갔다.

    “으아악! 이야아아아!!”

    핏줄기가 터진다.

    비명과 고함이 무질서하게 뒤섞였다.

    “죽어! X발 죽어! 으아아아!!”

    작전에 임하기 전. 박현우가 늘어놨던 전략과 전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살육과 생존본능만이 꾸덕하게 늘어진, 질척한 진창이 펼쳐졌다.

    “아아악! 크아악!”

    “사, 살려줘! 끄아아악!”

    전의에 찬 함성 대신, 아비규환의 비명만이 들려왔다.

    푸직, 우드득! 오크들의 도끼에 무참히 썰려가는 이름 모를 잡졸 헌터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닥쳐올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

    “으, 흐으……!”

    이미 일말의 전의도 없다.

    공포. 그저 만면에 공포가 가득했다.

    “사, 살려줘! 으아악!”

    “씨, X발! 이건 미친 짓이야! 미친 짓이라고!!”

    그리고 결국 하나둘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무기마저 내팽개친 채 등을 돌려 후다닥 달려나간다.

    “크. X발!”

    박현우는 그 꼴을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처음에 뱉어 놓은 말이 있기 때문이리라. 설마 이렇게까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이… X발……!”

    박현우는 이를 악물더니, 들고 있던 그레이트 소드를 풍차처럼 횡으로 휘둘렀다.

    “으아아아!!”

    부오오오!

    가공할 파공성이 나며 오크들이 썰려나갔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은 박현우는 태풍의 눈처럼 계속 회전하며, 오크들의 종심까지 파고들었다.

    “후우… 후욱. 다 나한테 덤벼라. 개새끼들아.”

    수많은 오크를 일거에 썰어 넘긴 박현우가 도발하듯 말했다. 상당히 지친 듯이 헉헉댔지만. 기세와 눈빛만은 살기등등했다.

    “애먼 애들 잡지 말고. 나한테 덤비라고.”

    그 엄청난 기세. 꺾이지 않은 투기.

    멈출 줄 모르던 오크들의 기세도 잠시 움찔했다.

    “그르. 인간. 너는, 조금 강하구나.”

    문득 오크족장 케샤쿠가 박현우를 보고 히죽 웃었다.

    푸직. 케샤쿠는 한 D급 헌터의 몸에 박혀있던 글레이브를 뽑아냈다. 그리고 양손에 쌍 도끼를 든 채 박현우와 대치했다.

    “워어어어!”

    “우! 우!!”

    두 사람을 둘러싼 오크들이 원형으로 경기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제히 격앙된 함성을 내질렀다.

    “뭐야. 뭔데, X발……!”

    박현우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나는 워낙 많이 봐서 뭔지 알고 있다.

    ‘케샤쿠한테 인정을 받았군. 제법이야.’

    케샤쿠가 박현우를 적의 우두머리로 인식하고. 1대1 맞짱을 신청한 거다. 말하자면 일기토.

    역시 오크는 막고라가 국룰이지.

    “뭐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내가 널 이기면. 우리 애들 살려줄 거냐?”

    박현우는 대검을 고쳐 잡으며 그렇게 물었다.

    대화에 자동 번역 마법이 적용되어 있었다. 방금 케샤쿠가 중얼거린 말로, 대화가 통하는 몬스터라는 것을 알고 발동한 듯하다.

    “크르릉, 쉬쉭!”

    케샤쿠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크륵. 인간, 내 부하들도 전부 네가 가져가도 좋다.”

    “괴물 부하 필요 없어. X발. 약속이나 지켜라.”

    박현우는 씹어뱉듯이 말하고는 대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옆에 서있던 부관에게 목소리를 낮춰 중얼거렸다.

    “싸움이 시작되면. 애들 전부 대피시켜. 내가 볼 때, 나는 저 새끼 못 이긴다.”

    “네?! 하, 하지만……! 그러면 중대장님은!”

    “아가리 여매고 명령대로 해라. 어차피 저놈들, 우리들 수준으론 절대 못 막아.”

    “그, 그건…….”

    “그럴 거면 여기서 헌터들 뒤져봐야 개죽음밖에 안 되지. 맞아 아니야?”

    내가 들어도 옳은 소리뿐이다.

    부관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그, 그건… 맞습니다.”

    “내가 버티고 있을 동안, 최대한 애들 살려서 도망쳐라. 그게 차라리 더 많은 사람들이 살길이다.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바로 앞에서 대치한 케샤쿠도 못 들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멀찍이 이탈해 있던 내 귀엔 똑똑히 들려왔다.

    ‘저런 기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현명하고 타당한 생각이다.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

    저런 의인들이 좀 오래 살아야,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텐데 말이야.

    ‘슬슬 나가야 하나.’

    그런 의미에서 내가 나설 타이밍은 바로 지금이었다.

    다른 부대원들은 제 목숨 간수하느라 바쁘다. 그나마 도망치지 않은 놈들도 박현우와 케샤쿠의 대결로 이목이 집중된 상태.

    ‘영웅이 등장한다면 딱 이 타이밍이겠지.’

    아쉽게도 난 진짜 히어로가 아니다. 그래서 모두의 목숨 따윈 아무래도 관심 없다.

    그런 거에 관심이 있었으면… 내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아랑곳 않고, 게이트 터지자마자 변신했겠지.

    “흐.”

    사실 만화 속 히어로들도 시민들 목숨에 관심 없는 게 아닐까.

    제 정체 까발려질 게 무서워서 사람들 뒤지든 터지든 변신도 못 하다니. 그딴 게 뭔 영웅이냐. 그냥 어그로에 미친 정신병자 새끼지.

    “하트 기어. 발동.”

    쓰게 웃으며 하트 기어를 내 심장에 쑤셔 박았다.

    키이잉! 낮은 금속음과 함께 피가 쏟아져 나와 내 몸을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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